입력 : 2014.02.28 10:55
[김형욱 재산상속 신고서 최초 입수]
불의의 사태 예감? - 1975년 일찌감치 유언장 작성
미 법원, 법규정 깨고 김형욱 실종 1년 6개월만에 사망판결
재산은 주식-예금 등 18만달러 불과…자녀 등 명의 재산 가능성
김형욱이 1975년 1월 작성한 유언장.
김형욱이 1975년 1월 작성한 유언장.
35년전인 1979년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 미국 법원은 실종뒤 1년6개월만에 이례적으로 ‘조기’에 사망판결을 내렸으며, 김형욱은 미국 도피 직후인 1975년 이미 유언장을 작성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또 수백만달러의 주식을 보유했고 도박으로 수백만달러를 탕진했던 김형욱이 남긴 재산은 81만달러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도박빚을 제외하면18만달러에 불과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79년 10월 7일 파리에서 실종된 김형욱은 자신의 반국가적 행위로 인해 실종 또는 죽음에 이를 수 있음을 미리 예견한 탓인지 1973년 4월 5일 미국으로 도피한지 약 1년 8개월 정도가 지난 1975년 1월 25일 유언장을 작성했습니다. 미국 법원에 제출된 그의 유언장은 1975년 1월 25일 미국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트라팔가 소재 자신의 집에서 작성된 것으로 유언 내용을 담은6매의 유언장과 증인 3명의 서명 등을 담은 문서 1매 등 모두 7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김형욱은 이 유언장에서 만약 내가 죽으면 동산과 부동산, 부채를 포함한 모든 자산의 50%를 나의 아내 김영순에게 주고 나머지 50%는 장남 김정한, 차남 김정우, 딸 김신혜 등 자녀들에게 나눠주라고 말했습니다. 즉 부인에게 50%, 세자녀에게 각각 16.65%씩을 주라고 한 것입니다. 김형욱은 자녀들이 21세, 성년이 되기 전에는 자녀들에게 상속되는 자산을 아내 김영순이 관리하며, 유언장 집행과 자녀양육도 아내 김영순에게 맡긴다고 밝혔습니다. 또 자신과 아내, 두 사람이 동시에 사망한 경우를 대비한듯 “만약 나의 아내가 유언장을 집행하지 못할 경우 ‘이백’에게 유언장 집행을 맡긴다. 또 신탁재산의 관리인으로 ‘이백’을 지명하며 아내 김영순이 사망할 경우 자녀양육도 ‘이백’에게 맡긴다”고 명시하고 자필서명을 했습니다.
김형욱이 1975년 1월 작성한 유언장의 자필 서명.
김형욱이 1975년 1월 작성한 유언장의 자필 서명.

김형욱이 1975년 1월 작성한 유언장의 증인서명 부분.
김형욱이 1975년 1월 작성한 유언장의 증인서명 부분.
이 유언장 맨 뒷장에는 유언장 증인 3명의 이름과 주소, 서명이 기재돼 있으며, 3명의 증인은 매리 앨런 멜버리, 이담풍, 유봉섭씨 등 3명이며 이들은 김형욱이 자신들이 보는 앞에서 유언장을 작성해 서명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유언장에서 ‘이백’이라고 표기된 사람은 전 중앙정보부요원으로 김형욱의 미국도피 당시 비서역할을 했던 ‘이백희’씨를 말합니다. 또 증인으로 서명한 이담풍씨는 이백희씨의 부인으로 옛날 월남에서 부총리와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인물의 딸이기도 합니다. 김형욱은 이처럼 실종 4년여전, 비장한 마음으로 유언장을 작성했고 그의 부인 김영순씨는 1979년 10월 김형욱이 실종되자 뉴저지주 법원에 ‘실종에 따른 사망’을 선고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게 됩니다.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법원의 김형욱 사망판결문.
미국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법원의 김형욱 사망판결문.
미국법상 ‘실종에 따른 사망’ 선고는 ‘최종목격된 날로부터 5년이 지난 뒤’에 사망판결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김형욱에 대한 사망선고는 이례적으로 조기에 내려지게 됩니다. 1981년 4월 8일, 그러니까 정확히 김형욱 실종 1년 6개월만에 김형욱은 미국 법원에 의해 사망으로 간주됩니다. 실종 1년 6개월만에 적어도 미국에서는 사망자가 된 것입니다. 뉴저지주 버겐카운티법원 하비 스미스 판사는 1981년 3월 30일 김형욱의 가족들을 불러 제반사항을 조사한 뒤 1981년 4월 8일 김형욱이 법적으로 사망했다고 판결했습니다. 숱한 논란을 낳았던 김형욱 실종사건은 이 단 2장의 판결문으로 김형욱 사망사건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뉴저지주 법원이 김형욱에게 이례적으로 조기에 사망판결을 한 것은 예외조항, 즉 ‘사망했음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했을 경우’에 해당했기 때문입니다. 법원 심리과정에서 가족들이 재판부에 김이 사망했음을 확신시킨데 따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처럼 미국 법원이 김형욱 사망 판결을 내리자 부인 김영순씨는 본격적인 유산상속 절차에 돌입합니다. 김영순씨는 사망판결 약 보름 뒤인 1981년 4월 22일 뉴저지주 버겐카운티 상속법원에 유언장 집행인 자격인정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약 20일 뒤인 5월 12일 김영순씨를 유언장 집행인으로 지정합니다. 이 자격인정 소송과정에서 유언장 작성때 증인이었던 이백희씨의 부인 이담풍씨가 법정에 출석, 유언장에 대해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김영순씨는 유언장 집행인 자격을 획득한 뒤 유산 상속을 위해 ‘김형욱에게 채권이 있는 사람은 모두 신고하라’는 신문광고를 내기도 하는 등 관련절차를 진행했고, 마침내 약 8개월뒤에 미국 국세청에 김형욱 재산상속 신고서를 제출합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미 국세청에 제출한 김형욱 재산상속 신고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미 국세청에 제출한 김형욱 재산상속 신고서.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미 국세청에 제출한 김형욱 재산상속 신고서. 사망장소 및 원인부분은 'UNKNOWN'으로 기재돼 있다.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미 국세청에 제출한 김형욱 재산상속 신고서. 사망장소 및 원인부분은 'UNKNOWN'으로 기재돼 있다.
프리미엄조선이 단독입수한 김형욱 재산상속 신고서는 모두 15매로 1981년 12월 10일자로 작성된 것으로 유언장 집행인인 김형욱의 부인 김영순이 자필서명한 것입니다. 미 법원에 제출되기도 한 이 신고서에 망자 김형욱의 생일은 1925년 1월 16일이며, 주소지는 뉴저지주 알파인의 하이우드 소재 주택인 반면, 사망장소와 사망원인은 ‘UNKNOWN’(모른다)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이 신고서에서 김형욱의 재산은 81만5천7백여달러지만 부채와 비용 등이 63만여달러로 드러났습니다. 김형욱의 재산중 부동산은 장용호 YH무역사장과 공동매입한 조지아주의 40만평 나대지의 50% 지분이 유일하다고 밝히며 자산가치를20만1천6백달러라고 신고했습니다. 또 주식 및 채권(BOND)은 41만4천3백여달러로, 엑슨·휴렛패커드·GE·맥도널드 등 17개 종목의 주식을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예금과 현금은 19만9천8백여달러로 시티뱅크의 당좌예금계좌(계좌번호 10557208)에 6만2백여달러, 시티뱅크의 리볼빙타임디파짓계좌에 13만8천달러, 시티뱅크 투자자문계좌에 8백여달러라고 밝혔습니다. 현금은 한푼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김형욱의 재산은 부동산과 주식 및 채권, 예금 등 3개부분에 모두 81만5천7백여달러였습니다.

그러나 보드워크리젠시카지노 20만달러, 리조트인터내셔널 카지노 5만달러 등 도박빚이 32만달러에 달했고 자신의 장남인 김정한에 대한 채무가 11만3천2백여달러, 시티뱅크에서 빌린 10만달러 등 부채가 모두 53만1천6백여달러에 이른다고 신고했습니다. 시티뱅크에서 빌린 돈 10만달러는 ‘의류업체’가 빌린 돈에 대한 공동보증 성격으로 자신의 집사 등에게 가게를 열어주고 빚보증을 서준데 따른 돈으로 추정됩니다.

김영순씨는 이외에 그동안의 생계비 등 비용도 공제해야 한다고 신고했습니다. 김형욱 실종에 따른 법원소송 등에 소요된 변호사 비용이 2만2천달러, 행정비용이 2만8천달러, 딸 김신혜에게 빌린 돈이 3만2천여달러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김형욱 실종 뒤인 1979년 10월 7일부터 1980년 7월 23일까지 42주간 생계비로 매주 2백달러씩 8천2백달러가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1979년 당시 법원이 인정하는 4인 가족의 생계비가 매주 2백달러, 1년에 만6백달러정도여서 당시 만달러 정도의 돈이 지금으로 환산하면 얼마나 큰 돈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부채나 비용에서 장남에 대한 채무, 외동딸에 대한 채무 등이 모두 15만달러에 달해 미심쩍은 부분이 많지만 국세청은 이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결국 김형욱이 남긴 재산은 부채와 비용 등을 빼고 약 18만달러에 불과했고, 이중 절반인 9만여달러는 부인, 나머지는 자녀들에게 상속된 것입니다.

1976년말 김형욱 부부가 보유중인 주식만 백36만달러에 달했지만 김형욱 사망 때 김의 주식보유액은 41만달러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 그가 회고록 ‘혁명과 우상’의 출판을 포기하는 대가로 실종전까지 최소한 50만달러이상을 받았지만 그같은 현금보상의 흔적은 이 재산상속 신고서에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어쩌면 그같은 현금보상은 출처가 불분명한 돈을 미국에 들여올 수 없다는 점에서 스위스은행 등에 예치됐거나 은행예금 등이 아닌 다른 형태로 보관됐고 미국에서의 재산신고에는 포함되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재산상속 신고서에 나타난 김형욱의 재산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적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 ‘김형욱’ 자신 명의로 된 재산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김형욱의 부인이나 자녀들의 재산은 포함되지 않은 것입니다. 다음 회에는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김형욱의 치밀한 미국도피 작전과 재산은닉 의혹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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