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그리지 않았다

매일 보는 것이지만 대체 얼굴은 무엇인가.
책 '자화상의 비밀'에서는 화가들이 그린 자신의 초상화에 담긴 이야기를 전한다.
책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는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해 얼굴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학 서적이다.

    입력 : 2018.02.23 07:37 | 수정 : 2018.02.23 09:54

    [Books]
     

    책 '자화상의 비밀'.

    자화상의 비밀
    로라 커밍 지음|김진실 옮김
    아트북스|504쪽|3만원



    자화상에 대한 오래되고 엄연한 정의는 '그림을 그린 화가 자신의 초상화'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화상 속 인물을 보며 화가의 실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반에이크, 뒤러, 렘브란트, 쿠르베, 뭉크 등 숱한 화가들의 자화상을 담은 이 책은 그런 일반의 인식에 도전한다. 시스티나성당 벽에 새긴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엔 근육과 뼈를 발라낸 인간의 살가죽이 그려져 있다. 이 축 늘어진 피부 덩어리가 미켈란젤로의 자화상이다. 겉모습보다 인간 내면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이 그림은 죄 많은 육신을 벗고 신 앞에 다시 서겠다는 고백이자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그린 내면의 자화상이다.

    영국의 저명한 미술평론가인 저자 로라 커밍은 자화상을 '단순한 초상화가 아니라 진실을 드러내는 특별한 수단'이라고 정의한다. 수많은 자화상과 그것을 남긴 화가들의 삶이 교직된 책을 통해 그는 예술이 아니고서는 드러낼 수 없는 인간 본성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한다. 저자는 먼저 자화상의 시선(視線)을 주목한다. 저자에 따르면 시선은 남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와 자화상을 가르는 가장 특징적인 요소다. 15세기 중반 산드로 보티첼리는 '동방 박사들의 경배'에 자신을 그려넣었다. 그림 속 모든 인물이 한결같이 옆얼굴을 보인 자세로 예수 탄생을 경배할 때 오직 오른쪽 구석의 한 남자(보티첼리)만이 시선을 돌려 예수가 아닌 그림 밖에 있는 감상자와 눈을 맞춘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이 작품을 그렸다는,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드러낸 사례다.

    뒤러부터 앤디 워홀까지
    자신의
    얼굴 그린 자화상

    화가, 수많은 고통 담아
    내면 표현하는 도구로 써

    미켈란젤로가 신 앞에서 면죄를 갈구하는 피조물을 그렸다면 독일 알테피나코테크미술관에 소장된 뒤러의 '자화상'(1500년)은 정반대로 예수의 이미지를 따 왔다. 뒤러는 인간이 신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니 인간의 형태야말로 신성의 표현이라는 믿음을 자화상에 구현했다. 책은 화가의 삶과 자화상을 겹쳐 읽는 재미도 선사한다. 스무 살이 되기 전 아버지의 친구에게 성폭행 당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17세기 여성으로선 흔치 않게 강간범을 법정에 세운 당찬 여성이었다. '그림의 알레고리로서의 자화상'은 그의 이런 다부진 성격을 드러내는 작품이다. 반듯한 이마와 곧게 뻗은 콧날, 붓을 든 손과 팔뚝에 강조된 강인함은 여성으로 겪은 고난을 딛고 직업으로서 화가의 길을 택한 이의 결의를 느끼게 한다.

    수많은 화가가 자신이 겪은 고통을 자화상에 담았다. 하지만 고통을 대하는 화가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고통의 꽃'에서 타오르는 지옥의 유황불 속에 자신을 던져넣은 뭉크는 자기 곁을 떠남으로써 실연의 고통을 안긴 옛 연인을 비난한다. 반면 살인죄를 짓고 쫓기던 카라바조는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에서 골리앗의 잘린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죄했다.

    사진의 탄생은 또 다른 자화상의 세계를 열어젖혔다. 그림은 오브제를 조작할 수 있지만 사진은 피사체를 그대로 찍는다. 신디 셔먼은 사진의 이런 속성을 절묘하게 비틀어 가짜 이미지가 넘쳐나는 자화상을 만들었다. 셔먼은 무뚝뚝한 사춘기 소녀부터 처녀의 시체, 맨해튼의 부유한 과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찍었지만, 사진 속 인물이 모두 셔먼 자신이라는 점에서 '사진은 사실을 찍은 것이 될 수 없다'는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

    저자는 예술이 구현해온 자화상의 의미를 보르헤스 소설 '모든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저승에 간 셰익스피어가 신과 나눈 대화에 빗대 설명한다. 너무도 많은 인물을 창조했던 셰익스피어는 신에게 자신이 적어도 한 사람으로서 설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한다. 신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어떤 한 사람이 될 수 없다네. 그대가 작품을 꿈꾸었듯 나 역시 세상을 꿈꾸었으니까.(…)그대는 나, 신처럼 수많은 사람일 뿐 어느 한 사람이 아닐세." 2012년 '화가의 얼굴, 자화상'이란 제목으로 나왔던 책의 개정판이다.

    /박상훈 기자.

    얼굴은 인간을 어떻게 진화시켰는가
    애덤 윌킨스 지음|김수민 옮김
    을유문화사|672쪽
    2만5000원



    매일 보는 것이지만 대체 얼굴은 무엇인가. 외모 지상주의라지만 인간에게 얼굴은 신체 부위 이상의 존재. 얼굴이야말로 인간의 진화를 야기한 핵심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 책은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해 얼굴의 역사를 추적하는 과학 서적이다.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유전·생물·인류학 등 인간 진화의 최신 연구를 집대성해 '얼굴 지도'를 그려낸다. 얼굴의 진화를 다룬 가장 최근의 책이 미국 고생물학자 윌리엄 그레고리가 1929년에 낸 '어류에서 인간까지 우리의 얼굴'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얼굴의 진화를 다룬 90년 만의 책이라는 것이다. 주석만 35쪽이므로 각오 단단히 하는 게 좋다.

    ◇얼굴의 기원은 물고기?

    5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캄브리아기(紀) 출현한 최초의 척추동물, 턱뼈가 없는 무악(無顎) 어류에서부터 최초의 얼굴이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다. 저자의 얼굴 탐구는 진화학자 찰스 다윈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인간의 얼굴과 표현 능력이 오랜 기간 진화를 통해 형성됐다는 것. 책은 다만 곧장 진화의 역사로 돌입하지 않는다. 생체 발달의 세부 사항, 배아기와 태아기에 머리·얼굴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 유전학에 대한 설명이 5장까지 이어진다. 이를테면 얼굴 원기(原基)가 성장해 돌출하면 ‘얼굴 융기’가 되고, 인간의 머리뼈 봉합이 마지막으로 끝나는 나이는 스무 살쯤이라는 식의 설명. 얼굴 찌푸리지 않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얼굴은 모든 척추동물이 지니고 있지만 미국 과학자 도널드 엔로의 평에 따르면 인간의 얼굴이 가장 특이하다. "포유류의 기능적인 긴 주둥이가 인간에게는 없으며, 이 주둥이는 줄어들어 돌출된 흔적만 남았다… 두 눈은 가깝게 붙어 있으며 정면을 향한다." 보통 얼굴과 관련된 네 가지 형질이 있다. 치아, 털, 얼굴 근육, 주둥이. 핵심은 주둥이다. 얼굴의 행동, 즉 표정을 야기했기 때문이다.

    ◇얼굴의 진화, 언어를 가져오다

    영장류가 등장하고 5000년쯤 뒤부터 얼굴에서 털이 사라지고 주둥이가 짧아졌다. 보통 포유동물의 주둥이는 살아 있는 사냥감을 붙잡기 위해서 사용되는데, 인간은 손을 쓰는 탓이다. 인간뿐 아니라 유인원도 의사소통에 손을 자주 사용한다. 수화(手話)는 자연스레 표정을 변화시킨다. 특히 납작해진 '입'은 훨씬 다양한 표현을 낳았다. 영장류의 '입맛 다시기'와 같은 리듬 구사가 가능해졌고, 얼굴 표정과 말하기의 활발하고 지속적인 관계가 새로운 신경 회로의 진화를 수반해 '결과적으로 언어 사용을 가능하게 만드는 복잡한 신경의 연결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진화론으로 본 '얼굴의 역사'
    5억년 전 최초의 얼굴 형성


    "영장류 출현 후 주둥이 짧아져
    다양한 표정·언어 사용 가능"

    얼굴의 진화를 가져온 강력한 힘은 바로 사회성이었다. 상호 작용을 하려면 먼저 서로의 얼굴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개별 얼굴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다고 밝혀진 동물은 인간을 포함해 유인원·원숭이·개·양·소·돌고래·코끼리 정도. 저자는 몸집이 클수록 얼굴의 표현력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를 제시하는데, 이것이 ‘눈’의 크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발달한 시력이 표정을 제대로 감지하게 해주고, 이것이 덩치 큰 영장류의 표현 능력 확장으로 이어졌을 거라는 얘기다.

    ◇'세계화' 되는 얼굴의 미래?

    인간은 자신의 매력을 높이기 위해 얼굴에 물리적인 변화를 가한 최초의 동물. 고로 얼굴의 미래는 '생물학이 아닌 문화적 현상'이다. 현대사회, 대도시에서 상이한 인종 집단에 속하는 사람들이 더 빈번하게 마주치고 있다.

    "그 결과 상대편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서로를 '우리 중 한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혼혈은 더 이상 오명(汚名)이 아니다. 저자는 미래 인간의 얼굴이 점점 더 균질하게 세계화될 것이라 예견한다. 특히 "완벽한 세계적 균질화가 발생한다고 해도 인간의 얼굴은 옛 아프리카 조상이 아닌 아시아인에 더 가까운 생김새를 보일 것"이라는 예측이 흥미롭다. 원제 'Making Faces'.

    [Books] 평창 온 버럭 영감… "한국인, 北을 늘 화난 외삼촌처럼 여겨"
    [Books] 생명체 멸종 속도, 인류가 나타난 뒤 1000배 빨라졌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