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 머신 뛰며 글을 쓴다… 소설은 독자를 땀흘리게 해"

<파이 이야기>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얀 마텔이 신작을 냈다.
신작<포루투갈의 높은 산>에서는 침팬지를 등장시켜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다.

    입력 : 2018.02.09 07:22

    [World Wide Writer] 신작 낸 '파이 이야기' 작가 얀 마텔
     

    책 '포르투갈의 높은 산'

    포르투갈의 높은 산
    공경희 옮김ㅣ작가정신
    416쪽ㅣ1만4000원


    캐나다 서부 서스캐처원주(州)의 도시 새스커툰은 북풍(北風)지대로 불린다. 올겨울엔 3주 넘게 영하 30도로 떨어지는 사상 최악의 한파에 시달렸다. 인구 27만 명을 헤아리는 이곳은 문화와 교육 도시로 꼽힌다. 현대 미술의 최첨단 경향을 보여주는 '리마이 모던 아트 갤러리'와 함께 2002년 맨부커 수상작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55)이 자랑거리로 꼽힌다. '파이 이야기'는 전 세계 50국에 번역돼 1300만 부나 팔렸다.

    지난달 새스커툰에서 만난 얀 마텔은 "내 스튜디오를 보고 싶다고 했지?"라며 앞마당에 지은 한 칸짜리 오두막으로 안내했다. 집필실은 남달랐다. 컴퓨터 화면과 자판이 연결된 러닝머신이 집필실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걸으면서 몸과 마음의 운동을 한꺼번에 한다. 하루에 6~8㎞를 걸으면서 자판을 두드려 1000단어씩 쓰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탁월한 방법이다. 게다가 푹 자게 된다."

    러닝머신 위를 걸으며 자판을 두드리는 소설가 얀 마텔. 그는 "요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재조명하면서 인간의 기억과 이야기의 관계를 다룬 소설을 쓰고 있는데, 이르면 내년에 출간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해현 기자

    ―당신은 출세작 '파이 이야기'에서 신(神)의 의미를 다뤘는데, 지난해 말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 '포르투갈의 높은 산'(작가정신)도 종교의 의미를 탐구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세속적 인간이지만 종교를 통해 본 것을 소설로 쓰고 싶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종교를 혐오한다. 하지만 나는 젊은 시절 인도에 머물며 종교에 새롭게 눈을 떴다. 기독교, 힌두교, 이슬람교를 구별하지 않게 됐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쓰며 기독교를 메타포(은유)로 선택했지만 기독교가 내 종교의 전부는 아니다. 나는 모든 종교의 바탕이 되면서 종교를 뛰어넘는 '성(聖)스러움(The Divine)'에 접근하고 싶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20세기 포르투갈을 세 시기로 나눠 저마다 다른 인물의 삶을 펼치면서 기독교를 세 가지 관점에서 바라봤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
    행동하는 양식을
    세 가지로 그려봤다.

    나는 '어찌 보면 고통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세 이야기 모두 상실을 다룬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 행동하는 양식을 세 가지로 그려봤다. 첫 번째 이야기는 상실로 인한 분노를 다루고 싶었다. 신(神)에게 저항하는 사람 이야기다. 그는 '침팬지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像)'을 찾아내 신을 조롱하고 싶었다. 그러나 분노가 소진되고 나면 어떻게 되나. 그가 원하던 십자가상을 구했다고 해서 그는 행복해졌는가. 무신론은 결국 행복의 부재(不在)에 그친다. 세 번째 이야기는 현존(現存)을 다룬다. 주인공은 침팬지를 입양해 애완동물이 아닌 동등한 존재로 인정한다. 침팬지를 통해 평화를 얻고 침팬지의 품에서 은총(恩寵)을 체험한다. 가장 복잡하고 논란이 많은 부분은 두 번째 이야기다. 종교를 믿지만 성스러움을 체험하지 못한 병리학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믿음을 실험해봤다. 그가 부검한 남자의 시신 속엔 어려서 죽은 아들을 상징하는 아기 곰 인형이 들어 있었고, '침팬지가 그 인형을 돌보듯 안고 있는 장면'을 두고 말이 많았다. 나는 '어찌 보면 고통엔 의미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당신이 '예수는 비유가 아닌 것으로 말하지 않았다'는 복음서를 인용한 대목은 '믿음과 소설의 관계'를 다룬 듯한데.

    "소설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위대한 이야기는 현미경이나 전파 망원경 같다. 동시에 인간은 믿음을 지녀왔다. 믿음은 상상력에도 개입한다. 모든 종교는 스토리 텔링이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 모두 소설처럼 인물을 세우고, 스토리를 제시하면서 삶의 의미를 탐구한다. 물론 예수와 부처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종교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은 상상력을 발휘해야 신앙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와 소설은 모두 자발적 불신의 정지(suspension of disbelief)를 요구한다. 좋은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불신을 멈추게 한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냉소주의를 멈춰야 마법이 작동한다. 믿음과 허구는 마술적 사고를 통해 맞물린다고 본다."

    ―때로는 믿음이 갈등을 낳기도 한다.

    "9·11 사태 때 이슬람은 납치당했다. 이슬람은 테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를테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으로 민주주의가 납치된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트럼프가 민주적으로 선출됐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나쁜 게 아니다. 히틀러도 선거로 집권했다. 모든 제도에는 결함이 있다. 종교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파이 이야기'에선 호랑이를 등장시키더니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선 침팬지를 통해 종교를 다뤘다.

    "동물은 현재 상태에 살 뿐이고 과거와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예수, 알라, 붓다를 읽으면 현존 감각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신도들을 향해 '나는 당신과 함께 있다'고 한다. 성자와 동물은 모두 과거와 미래에 연연하지 않는다. 특히 침팬지는 가장 인간적인 동물이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라. 침팬지는 인간과 성스러움을 연결해주는 동물이다."

    ―과학기술의 시대에 문학과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

    "과학은 은유를 사용하지 않은 채 직접적으로 현실을 본다. 종교는 이성에서 벗어나 '너의 상상력을 이용해서 이해하라'며 비유를 동원한다. 문학도 마찬가지로 독자의 개별적 참여를 요청한다. 좋은 소설은 독자를 땀 흘리게 한다. 독자도 일하지 않으면 얻을 게 없는 법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을 예수의 복음서에 비교한 까닭은.

    "살인 미스터리에선 누군가 죽는다. 누가 왜 죽였는지 알아내야 한다. 추리소설에선 증인이 매우 중요하다. 복음서는 증언 모음집이다. 추리소설과 종교 모두 죽음을 다루면서 죽음을 인간이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완화시킨다. 추리 소설이 많이 팔린 까닭이기도 하다."

    ―당신은 독자의 해석을 중시한다. '파이 이야기'도 독자의 선택을 요구한다. 절대적 진실은 없고 상대적 해석만 있다는 입장인가.

    우리는 모두 주관적
    현실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대체로 주관적이다.

    <포루투갈의 높은 산> 작가 얀 마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우선 그렇지 않은 까닭을 말하라면, 우리가 거짓말을 판별할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거짓말할 때 우리는 모두 진실이 아닌 것을 안다. 거꾸로, 진실이란 무엇인가? 더 말하기 어렵다. 과학적 진실은 명백하다. 객관적 진실이다. 하지만 그 너머에 주관적 진실도 있다. 우리는 모두 주관적 현실을 지니고 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도 대체로 주관적이다. 물론 우리는 틀리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삶은 세련된 주관에 의해 발전하므로 주관의 예민한 감성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주관과 객관이 서로 가까워지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

    ―인공지능 시대는 어떻게 바라보는가.

    "인공지능은 도구일 뿐이다. 유용하지만 무용할 수도 있다. 휴대폰이 아무리 발달해도, 연결할 사람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요즘 아이들이 게임에 빠져 점점 사회적 관계를 잃고 있다. 이대로 가면 과학기술 자체가 쓸모없어질 수도 있다. 지구 환경 보호를 위해 비행기 운항을 줄일 날도 올 것이다. 과학기술은 왔다가 가지만 인류는 남는다."

    네 살·두 살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소설가 아빠 얀 마텔. /박해현 기자

    얀 마텔은 영어뿐 아니라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도 구사한다. 부친이 외교관으로 부임한 스페인에서 태어나 자랐고, 부모가 프랑스어를 쓰는 퀘벡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영어 학교에 다니며 자랐기 때문에 영어로 소설을 쓴다"고 했다.

    그는 캐나다 트렌트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뒤 인도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체험으로 소설 '파이 이야기'를 2002년 발표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 후 2010년 소설 '베아트리스와 버질'에 이어 2016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을 냈다. 현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재조명한 소설을 쓰고 있다. 역시 작가인 앨리스 카이퍼즈와 함께 네 자녀(2·4·6·8세)를 키운다.

    [Books] 한밤의 간이식당… 고독과 불안 품은 도시의 속살을 엿보다
    [Books] 물질주의·개인주의 '돈키호테'로 극복을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