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침묵의 세계'

아직 아무도 찾지 않은 서점의 아침은 어떠할까.
청소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며 시작되는 서점의 아침은 적막하리라 만치 고요하다.
우리를 둘러싼 침묵의 세계를 통해 침묵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 유희경 시인·시집전문서점 주인 
  • 편집=유승희

    입력 : 2018.02.09 07:16

    [유희경의 曰常詩話]
     

    유희경 시인·시집전문서점 주인

    서점의 하루는 청소로 시작된다. 전날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하나의 의례다. 뒤이어 서가를 정리한다. 뒤죽박죽된 책을 정돈하고, 책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새 책으로 채운다. 그러고 나서야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해 계산대 뒷자리에 앉는다. 첫 손님이 오기 전까지 기분 좋은 침묵의 시간이다. 책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 역시 그 고요함에 몸을 맡긴다. 이때를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때론 손님이 문을 여는 소리가 달갑지 않을 정도로.

    책 '침묵의 세계'

    서점을 열겠다고 공언했을 때, 은사는 내게 조용한 서점 주인이 될 것을 당부했다. "서점을 찾아온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만의 시간일 거야. 너는 가만히 들어주는 사람이 되렴." 독서란 확인하고 되묻고 깨닫는 앎의 행위다. 이는 침묵 속에서 행해진다. 사람은 침묵 속에서 독서를 하고 독서의 주변에는 침묵이 있다. 그러니 책을 건네는 사람이 요란해서야 되겠는가. 시인 정현종은 "불행의 대부분은 경청할 줄 몰라서"라고 했고 "고요 속에서 세계는 행여나 한 송이 꽃 필 듯" 할 것이라 썼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은 불행과 소란의 시대다. 듣기보다 더 많은 말을 하게 되고, 침묵이 무지함이나 비겁함을 뜻할까 두려워한다.

    그럴 때 꺼내 보게 되는 책이 있다. 스위스 태생 의사이자 작가이고 철학자인 막스 피카르트가 쓴 '침묵의 세계'(까치). 오직 침묵만을 다루는 책답게 한없이 느린 책이다. 또 무겁고 단단하다. 그는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모든 현상의 근원에 침묵이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어떤 것도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때부터 존재했던 침묵은 모든 사물과 사상(생각)을 "뒤덮고" "보호"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느릿느릿 조심스럽게" 사물과 사상에 "다가갔다"는 것. 그러나 오늘날의 인간에게 이런 "능동적 행위"가 가능하지 않다. 침묵은 무가치하고 비경제적인 어떤 것으로 치부된다. 인간은 사물과 사상에 점령당하고 흡수된다.

    그러나 침묵은 사라지지 않는다. 잠시 "잠들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모든 것의 이전에 있었던 것이므로. 요란하고 바쁜 일과에서 빠져나와 버스에서, 어둑한 골목에서, 때로 집에서 비로소 혼자가 될 때, 침묵에 빠져들 때 찾아오는 작은 기쁨은 누구나 느껴보는 감정일 터다. 그 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을지라도, 필요하며 의미로 가득함은 분명하다. 그러니 "침묵을 창조하라!"(키르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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