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 받으면 두뇌 스위치 끄는 '막무가내' 리더십

미국 독서 시장에 파란을 몰고 온 책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저자는 트럼프 대통령을 보필하는 전·현직 관계자를 취재해 백악관 내부를 폭로한다.
이 책은 취임 2년차에 접어든 트럼프에 큰 타격을 입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 강인선 워싱턴 지국장 
  • 편집=한승미

    입력 : 2018.01.26 07:18

    [Books] 트럼프 백악관의 내막 파헤친 '화염과 분노'
     

    화염과 분노
    마이클 울프 지음
    Henry Holt and Co
    336쪽ㅣ17.99달러


    "트럼프는 사회생활에 필요한 훈련이 거의 돼 있지 않았다. 점잖게 보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정보를 공유한다든지 서로 균형 있게 말을 주고받는 식의 대화는 거의 불가능했다. 자신이 원하는 게 있을 때는 정확하게 초점을 맞추지만, 상대가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을 땐 짜증을 내거나 금세 관심을 껐다."

    트럼프 백악관의 내부를 파헤친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의 저자 마이클 울프가 묘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모습이다. 올해 초 미국을 뒤흔든 이 책은 트럼프가 불같이 화를 내며 이 '가짜 책'의 출판을 막겠다고 나서면서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받았다.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는 TV 토크쇼와 사인회 등 섭외 1순위 인사가 됐다. 부제는 '트럼프 백악관의 내막(Inside the Trump White House)'. 출판사 은행나무에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2월 19일부터 예약 판매하고 책은 3월 초 나온다.

    "백악관보다 트럼프타워가 더 좋아"

    '화염과 분노'는 트럼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본 전·현직 관계자 200여 명을 만나 백악관에서 일어난 일과 트럼프의 문제적 스타일을 폭로한다. 억만장자 부동산 재벌 출신 대통령의 결벽과 과민한 성격으로 집약된다.

    대부분 미국 대통령들은 백악관 생활을 시작하면 감격스러워한다. 궁궐 같은 환경에 경호원과 비서, 참모진과 전용기가 늘 대기하고 있는 놀라운 삶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에겐 놀라울 것이 없었다. 뉴욕의 트럼프타워에서 그보다 훨씬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자기 물건에 다른 사람이 손대는 걸 병적으로 싫어한다. 한번은 직원이 바닥에 떨어진 트럼프 셔츠를 주웠다가 야단을 맞았다. 트럼프는 "내 셔츠가 바닥에 있다면 그건 내가 그 셔츠가 바닥에 있길 원하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특히 칫솔에 누가 손대는 걸 제일 싫어한다. 독살에 대한 공포 때문이다. 맥도널드 햄버거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불시에 찾아가면 안전하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우선주의'로 대통령이 된 트럼프에겐 '가족 우선주의'도 있었다. 트럼프는 사위 재러드 쿠슈너를 대통령 비서실장에 앉히고 싶어 했다. 백악관과 행정부를 잘 이끌기 위해선 워싱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경험 많은 비서실장을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뜻을 접었지만 트럼프는 대통령도 '가족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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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 백악관의 내막을 파헤친 이 책은 대통령을 '화염과 분노'에 휩싸이게 했다. /일러스트=박상훈

    딸 이방카를 미국 최초 여성 대통령으로

    트럼프는 공화당 전국위원회(RNC) 위원장 출신의 라인스 프리버스를 비서실장에 낙점했다. 하지만 수석전략가 배넌, 사위 쿠슈너는 물론 트럼프의 오랜 친구들도 비서실장을 거치지 않고 트럼프에게 직보할 수 있었다. 누구에게도 실권을 주지 않는 게 트럼프 방식이었다. 백악관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트럼프는 주로 마지막에 얘기한 사람의 말을 들었다. 논리나 주장이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영향을 받는 타입이다. 그래서 딸 이방카와 사위 쿠슈너는 가능하면 트럼프 가까이에 있어야 트럼프에 대한 영향력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방카 부부는 훗날 때가 되면 이방카가 대통령에 출마해야 한다고 여겼다.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은 이방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연방정부의 인선이 이전 행정부에 비해 늦어진 것도 결국은 트럼프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관심 없는 일이 논의될 때 트럼프는 텅 빈 눈으로 멍하게 응시할 뿐이다. 연방정부 인사는 트럼프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니 진도가 나갈 수 없었다.

    "트럼프는 단순한 기계 같은 사람"

    '화염과 분노'의
    인기는 매우 압도적이다.


    '해리 포터' 신드롬 이후
    이렇게 열광적인 반응은 처음이다.
    출간 1주일 만에 140만 부가
    팔렸고 저자는 인세로 최소
    79억원(740만달러)을 벌었다.

    한때 트럼프의 복심이었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트럼프는 아주 단순한 기계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아부를 하면 기계 스위치가 켜지고, 비난을 하면 스위치가 꺼진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성격은 제멋대로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엄청나게 성공한 배우 같았다. 그래서 트럼프가 화를 내거나 심술을 내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는 것이다.

    '화염과 분노'에 담긴 내용이 일부 부정확하다는 지적도 있다. 저자 울프의 신뢰도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이 중 10%만 사실이라 해도 문제"라고 할 정도로, 이 책에 담긴 에피소드는 자극적이다.

    미국 독서 시장에서 백악관 내부 권력투쟁과 정책 결정 과정을 세밀하게 들여다본 책은 늘 잘 팔린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백악관의 속사정을 취재한 '어젠다',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강경 외교정책을 추진한 네오콘을 다룬 '벌컨의 부상'이 대표적이다.

    '화염과 분노'의 인기는 더 압도적이다. 워싱턴 사람들이 추운 겨울 한밤중 책을 사러 서점 앞에 줄을 섰을 정도였다. '해리 포터' 이후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 출간 1주일 만에 140만 부가 팔렸다. 저자는 인세로 최소 79억원(740만달러)을 벌었다.

    저자, 다른 제목으로 백악관 지원 얻어내

    저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과 백악관 직원 등을 취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책의 '가제' 덕분이었다. 울프는 '위대한 전환: 트럼프 행정부의 첫 100일'이란 제목을 내세워 백악관의 협조를 얻어냈다고 최근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미국 주류 언론의 부정적인 뉴스에 시달리던 백악관은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백악관 직원들은 울프가 대통령이 좋아할 만한 책을 쓰는 것으로 알고 협조했다고 한다. 취재 방향이 좀 이상하다는 감을 잡았을 땐 이미 상당 부분 취재가 이뤄진 후였다. 이 책에서 트럼프만큼 중요한 등장인물은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이다. 그는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취재원이기도 하다. 극우 온라인 매체를 운영하던 배넌은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배넌은 트럼프의 아들 도널드 주니어와 사위 쿠슈너가 러시아 정보원들과 만난 것을 '반역적'이라고 말해 트럼프에 타격을 주었다. 트럼프가 격분하자 배넌은 사과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망가졌다.

    '화염과 분노'는 트럼프의 취임 1년을 망치는 데 톡톡히 기여했다. 올해 가을 중간선거를 앞두고 심기일전하려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 책과 싸우는 데 신년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했다.


    "책에 쓴 모든 내용, 자신 있다"

    '화염과 분노'의 저자 마이클 울프(Michael Wolff·64)는 책 출간 후 '트럼프 저격수'로 떠올랐다. 지난 19일에는 TV 토크쇼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내에서 혼외정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신뢰도가 떨어진 작가가 쓴 가짜 책"이라고 일축한다.

    울프는 신문 'USA투데이'와 잡지 '할리우드 리포터'에 정기적으로 칼럼과 기사를 쓰는 언론인이다. 뉴저지 출신으로 컬럼비아대에서 수학했다. 스물한 살 때인 1974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기사를 쓰면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잡지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를 두 차례 수상했다. 7권의 책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닷컴 기업을 다룬 베스트셀러 '번 레이트'(1998), 미디어 재벌 루퍼드 머독의 전기인 '뉴스를 가진 남자'(2008) 등을 냈다. 사업가로서의 면모도 있다. 1991년 도서 포장 회사를 설립했고, 현재는 인터넷 언론사 '뉴서(Newser)'를 운영 중이다.

    울프는 취재한 사실을 바탕으로 '화염과 분노'를 썼다고 주장한다. 그는 "책에 쓴 모든 내용에 대해 자신이 있다. 인용한 말은 모두 녹취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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