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속에서도… 구룡포 과메기의 분투

찬 바람부는 겨울이 시작되면 생각나는 국민 별미가 있다.
바로 단단한 살과 풍부한 지방을 담아 말린 과메기이다.
청어부터 꽁치까지 겨울 별미 과메기의 과거와 현재를 비춰본다.

  • 이지형 작가·푸드칼럼니스트 
  • 편집=유승희

    입력 : 2018.01.26 08:15

    [음식]
     

    이지형 작가·푸드칼럼니스트

    과메기에게 올해만큼 드라마틱했던 겨울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지난 11월 중순, 그러니까 한반도에 찬 서리 내릴 무렵 과메기의 본고장 포항을 강타한 지진 얘기인데, 그 얘기 전에 먼저 해결해둘 게 있다. 지진으로 매출이 떨어지자 청와대까지 직·간접적인 마케팅에 나설 정도로 ‘국민 별미’인 과메기이지만, 도대체 "그 과메기란 게 무엇이냐"를 두고 겨울의 초입마다 술꾼과 미식가들의 논쟁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겨울, 새로운 이유로 또 해묵은 이유로 국민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고 있는 과메기는 무엇일까. 조금 멀리서 시작해 보자.

    '등푸른생선'의 비밀


    물고기 중에 '등푸른생선'이라 불리는 것들이 있다. 청어, 정어리, 고등어, 전갱이 등이 우리에게 친숙한 등푸른생선이다. 이 생선들은 대개 바닷물 수면 가까운 곳을 헤엄쳐 다닌다. 그리고 등이 진하게 푸르다. 왜 그럴까. 푸른빛은 바다의 빛깔이다. 바다 위를 날며 호시탐탐 물고기들을 노리는 새떼들을 피하기에 적당하다. 얕은 바다를 유영하는 생선들의 푸른 등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이다.

    바다 표면을 헤엄치고 다니다 보니 등푸른생선들은 어업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도 사람들의 식탁에 자주 올랐다. 그런데 등푸른생선들은 육질과 성분에서, 바다 깊은 곳 흰살생선들과는 차별화되는 특징들을 갖고 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물살을 따라 이리저리 헤엄치다 보니 근육이 발달했다. 살이 단단한 편이다. 에너지원으로서 지방의 함량도 흰살생선에 비해 높다.

    자, 이쯤에서 우리들이 겨울철이면 싱싱한 물미역에 보기 좋게 자른 실파까지 몇 개 곁들여 초고추장에 푸욱 찍어 먹는 과메기를 떠올리자. 깊숙한 발효를 짐작하게 하는 진한 구릿빛의 쫀득쫀득한 육질과 육질 곳곳에 밴 감칠맛의 기름기…. 단단한 살과 풍부한 지방의 등푸른생선이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맛이다. 그리고 다양한 문헌과 구전이 확인해주는 대로라면, 긁어 담을 만큼 흔했던 한반도 근해의 대표적 등푸른생선이 바로 '푸를 청(靑)' 자를 쓰는 청어였다. 그 흔한 청어를 얼리고 말리면, 그게 바로 과메기다.

    그런데 어쩌다 얼리고 말리게 됐을까. 그냥 구워 먹어도 담백하고 맛난 게 청어인데. 한 음식의 기원이 고달픈 사회사(史)를 함축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세계 어디서나 즐겨 먹는 감자가 그렇다. 남미가 원산인 감자는 유럽에 상륙하고도 한참 기피의 대상이었다가 18세기에 대기근이 유럽을 휩쓸자 비로소 '음식'의 자격을 얻었다. 과메기의 탄생 과정에도 서글픈 사회문화사가 개입한다.

    청어가 주로 잡히던 동해는 왜적의 침입이 잦았다. 가을이 지나면서 어부들은 제철을 맞는 청어를 열심히 잡아들였다. 그런데 그때쯤 왜적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어부들은 급한 대로 잡아놓았던 청어들을 지붕 위로 던져서 숨긴다. 해풍(海風)이 매서워지기 시작할 때다. 지붕 위의 청어는 침략자들이 마을을 헤집는 며칠 동안 지붕 위에 숨겨진 채로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물론 순전히 '요리사(史)적'인 설명도 있다. 11월 지나 찬바람 들기 시작하면서 잡히기 시작하는 청어들은 동지쯤 되면 남아도는 지경이 된다. 구룡포 사람들은 남은 청어들을 부엌의 창에 내걸었다. 바깥에선 겨울바람이 쌩쌩 부니 청어들은 밤새 꽁꽁 언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밥을 안칠 때 아궁이에서 나오는 훈기는 얼었던 청어를 녹인다. 그렇게 얼었다 녹았다 하는 중에 아궁이에서 타는 나무의 연기까지 곁들여지며 훈제의 효과도 얻는다.

    포항 구룡포의 과메기 덕장.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푸를 청(靑)'자를
    쓰는 청어…


    청어를 얼리고 말리면
    그게 바로 과메기

    어느 쪽이든 과메기 맛의 비밀은 두 가지 '비법'에 의존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툭툭 끊어지면서도 보기 드물게 쫄깃한 육질과 온몸에 퍼진 채로 혀를 즐겁게 하는 지방은 냉동과 해동의 반복에서 얻어진다. 회도 아니고 포도 아니면서 물컹한 듯 쫀득한 육질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찬 바닷바람이 가세한다. 생선을 저장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소금에 절이는 것이다. 그러나 과메기는 소금에 절이지 않는다. 대신 짠 기운을 머금은 바닷바람의 향취(香臭)가 과메기의 맛을 은은하게 끌어올린다. 과메기 맛의 다른 한 축은 바닷바람이다. 그 복합적인 숙성 과정에서 등푸른생선에 안 그래도 많은 불포화지방산 DHA까지 풍부해져 영양까지 높인다.

    그런데 왜 청어가 과메기가 됐을까. 과메기란 이름은, 과메기가 말려지는 바닷가의 전통적 덕장 풍경을 스케치하듯 보여준다. '덕'은 널이나 막대기를, 적당히 떨어진 기둥 사이에 얹어 만든 시렁이나 선반을 말하는데, 바닷가에선 이 덕에다가 명태도 말리고 오징어도 말리고 청어도 말린다. 청어의 경우 바닷물로 잘 씻은 뒤에 싸리나무 가지로 눈을 꿰어 여러 마리를 엮은 채로 덕에 건다. 물론 전통적인 방식이 그랬다는 얘기다. 그때 눈들을 꿰니까 관목(貫目)이고, 관목어(貫目漁)가 되는데, 관목어의 발음이 변하면서 과메기가 됐다는 설(說)이다. '목'이 현지 방언인 '메기'로 변하고, '관'의 'ㄴ'은 발음하기 번거로우니 사라졌다. 과메기란 이름에는 찬바람을 맞으며 주렁주렁 매달린, 눈 내리는 바닷가 덕장 풍경이 담겨 있다.

    청어에서 꽁치로


    그런데 과메기의 역사는 1950년대를 전후해 중대한 변곡점을 맞는다. 그때쯤 '청어=과메기'의 등식이 깨지기 시작한다. 1950년대 전후로 한반도에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은 광복, 건국, 6·25전쟁 등이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이 과메기의 입지에 영향을 끼쳤을 리는 없고 그보다 훨씬 중차대한 ‘사건’이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났다. 바로 해류의 변화다.

    지구온난화 때문인지 주기적 기후 변화의 일환인지 모르지만 그때쯤 한반도 주변 해류에 변화가 생겼고 청어가 급격히 줄어든다. 전쟁 탓도 있었겠고 어쨌든 1950년대를 지나면서 국내 청어 어획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과메기.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청어는 사라졌지만 과메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청어보다 작지만 얼리고 말렸을 때 비슷한 맛을 내는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청어 과메기'의 시대를 '꽁치 과메기'의 시대가 잇기 시작한 것이다. 역사적 원조에 해당하는 청어 과메기가 더 기름지고 살도 많지만, 후발주자인 꽁치 과메기의 고소하고 쫀득한 맛을 더 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렇다고 청어 과메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연간 7만t에 달하던 청어 어획량은, 1990년대 중반엔 1만t 아래까지 떨어지더니,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는 회복세를 보여 요즘엔 연간 2만~3만t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몇 년 전 일본 원전 사고 이후에는, 주로 원양산인 꽁치에 비해 연근해산이 많은 청어 쪽에 소비자의 관심이 쏠리면서 청어 과메기에 대한 수요도 덩달아 늘고 있다. 그러나 대세(大勢)는 물론 꽁치 과메기다. 꽁치 과메기의 시장 점유율이 90% 이상인 것으로 업계는 파악하고 있다.

    겨울 초입, 막회를 팔던 식당에 과메기가 합류할 무렵 호사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 즉 "과메기는 무엇인가"에 관한 술자리의 유쾌한 말다툼은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과메기의 원형은 역사적 기원으로 따지면 청어, 현실적 대세의 관점으론 꽁치다. 청어·꽁치 논쟁이 생기는 게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청어 과메기'와 '꽁치 과메기'로 과메기를 구분하고 나면 '과메기 정체성 논쟁'은 무의미해진다. 게다가 최근 들어 청어 어획량이 늘어가면서 '청어 과메기'와 '꽁치 과메기' 사이의 선택 가능성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취향에 맞는 과메기를 찾아 먹으면 그만이다.

    네덜란드 청어절임이 부럽지 않다


    그리고 청어와 꽁치, 어느 쪽이든 얕은 바다 위를 유영하는 등푸른생선을 찬 겨울바람으로 서서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얼녹인 과메기의 효능은 기막히다.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지방산이 고혈압, 심근경색,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비타민 E는 세포 노화를 저지한다. 칼슘도 많고, 단백질도 풍부하다. 과메기를 먹을 때 물미역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건 맛의 차원을 넘어선 영양상의 궁합이기도 하다. 미역의 주요 성분 중 하나인 알긴산이 과메기에 함유된 콜레스테롤을 몸 밖으로 빼준다.

    청어 과메기에서 꽁치 과메기로의 변신, 그리고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원조 청어 과메기의 부활…. 안 그래도 드라마틱한 변화 속에서 살아온 과메기는 올겨울 또 하나의 드라마를 맛보았다.

    포항 지진 얘기다. 과메기철을 앞둔 과메기의 최대 원산지 포항의 노력은, 올해 남달랐다. 포항시는 126억원을 들여 구룡포읍에 과메기문화관을 만들고는 시범 운영까지 거친 뒤에야 지난 11월 3일 정식 개관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11월부터 2월까지 이어질 과메기철의 시작을 전국적으로 알리려는 올해의 승부수였다. 그때를 즈음해 구룡포 여기저기서 민·관의 다양한 과메기 축제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과메기 특수(特需)가 본격화되어야 할 11월 중순의 15일, 포항 전역에 규모 5.4의 지진이 일어났다. 과메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점포만 수십 개에 달하고 겨울만 되면 200m를 넘게 줄지어 앉은 상인들이 과메기 껍질을 벗기는 죽도시장의 진풍경도 지진과 함께 사라졌다. 그러나 학생들의 수능마저 미룬 초유의 자연재해 앞에서도, 청어 과메기와 꽁치 과메기의 한겨울 분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등푸른생선의 대표주자이면서 과메기의 원조 주인공인 청어 얘기로 돌아가 보자. 청어는 대서양과 태평양 가릴 것 없이 지구 북반구에 흔한 생선이다. 저 멀리 북유럽 네덜란드의 청어절임은 세계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황금기 자체가 독점에 가까운 청어 조업으로 인해 가능했다. 네덜란드의 청어절임을 생각하면서 우리 과메기에도 모종의 바람을 품게 된다. 동아시아의 끄트머리, 구룡포의 겨울과 해풍, 그리고 해류 변화에 따른 역사적 신산(辛酸)까지 품어낸 과메기의 풍미가 네덜란드의 청어절임에 뒤질 이유가 뭐 있을까. 난데없는 지진으로 어수선해진 과메기철에, 과메기가 써나갈 새로운 드라마를 기대해 보는 것이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88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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