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을 뛰쳐나왔다, 내 언어로 말하고 싶었으니까"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는 배우에서 기자를 거쳐 지금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두 번째 소설 '달콤한 노래'로 공쿠르 상을 수상하고
올해 마크롱 대통령에게서 프랑스어 진흥 특사까지 임명받은 그의 모든 것이 궁금하다.

    입력 : 2017.11.17 06:07

    [어수웅의 Dear 라이터,]
     

    레일라 슬리마니의 책 '달콤한 노래'.

    달콤한 노래
    레일라 슬리마니 지음
    방미경 옮김|아르테
    300쪽|1만5000원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36)는 그 자체로 입체적인 텍스트다. '배우 뺨치는'이 아니라 실제로 배우였던 미적(美的)자본, 나라 밖 프랑스어 진흥을 위해 마크롱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프랑스어 진흥특사(장관급), 그리고 "젊고 유망한 작가에게 시상한다는 본래 취지로 돌아간다"는 심사평과 함께 받은 지난해의 공쿠르상까지. 바로 그 수상작 '달콤한 노래' 국내 출간을 계기로 슬리마니가 14일 한국을 찾았다. 모든 게 궁금했지만, Books의 주인공이니 우선 소설 이야기부터.

    제목과 달리, '달콤한 노래'는 참혹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헌신적이라고만 알고 있던 보모(保姆)가 그 집 남매를 죽음으로 이끈 것. 살인이었다. 아직 초등학교도 채 들어가지 않은 귀염둥이였는데


    레일라 슬리마니는 모로코 시골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책방도 없는 작은 마을. 하지만 부모가 구해준 책들을 읽으며 상상의 세계를 누볐다. 톨스토이를 읽으며 러시아를, 마르케스를 읽으며 남미를…. 책을 읽을 때면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는 "흰 종이는 자유"라면서 "정확한 단어를 찾아 썼을 때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고 했다. 파리보다 서울이 더 춥다고 투덜댔지만, 작가의 언어는 따뜻했다. /오종찬 기자

    ―이런 끔찍한 시작의 이유는.

    "물론 잔인한 시작이다. 하지만 죽은 장면으로 시작했지, 죽이는 장면을 직접 묘사하지는 않았다. 이 귀여운 아이들이 나중에 죽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읽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서스펜스로 승부하는 범죄 소설이 아니다. 물론 끔찍한 시작이지만, 독자들은 이미 아이들이 죽었다는 걸 알고 있다."

    ―미스터리라기보다는 심리 스릴러다. 독자의 궁금증은 이제 '어떻게'가 아니라 '왜'로 모아지니까. 완벽하다고 칭찬받던 보모 루이즈는 왜 그런 살인을 저질렀을까.

    "사람이 사람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루이즈도 마찬가지. '보모'라는 직업에 대한 흥미가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 가정부와는 다르지 않나. 보모는 아이에게 사랑을 주기 위해 고용된 인물이다. 아이를 기르고, 밥을 먹이고, 걷는 것을 가르치는데, 자기 아이가 아니라 타인의 아이. 본인은 부르주아가 아닌데, 부르주아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부러워하는."

    타인의 아이를 기르는
    '보모' 라는 직업에 흥미

    얼핏 사회면 사건 기사처럼 순식간에 읽히는 소설이지만, 인상적인 질문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모성의 발현과 여성의 자아실현 사이의 갈등, 또 하나는 작가가 언급했듯 가난한 보모와 부자 엄마로 대표되는 계층 갈등이다. 슬리마니의 특징은 극단적으로 한 입장을 강요하기보다, 독자 스스로 선택을 고민하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는 것.

    모성과 여성해방 문제부터 보자. 법학을 전공한 엄마 미리엄은 루이즈를 보모로 뽑은 뒤 '감옥' 같던 가정을 벗어난다. 능력 있는 변호사로 성장하는 것. 하지만 그만큼 집에서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 열풍이라 불러도 좋을 시대다. 하지만 어떨까. 소설 속에서 변호사 미리엄의 역할이 커질수록, 엄마 미리엄의 성취감은 줄어든다. 여성해방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정 기반의 약화로 볼 수도 있다.

    "첫 딸을 낳은 직후, 처음 미리엄은 엄마 역할을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딸바보 엄마로 불릴 만큼. 하지만 남편이 육아를 외면하며 집은 감옥이 된다.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위치가 높다고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 여성들도 죄책감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직업을 가진 여성들은 어머니로서의 죄책감,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누리지 못한다는 고통을 겪고 있다."

    프랑스 콩쿠르상을 수상한 '달콤한 노래'의 저자 소설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2017년 11월 14일 오후 서울 남대문 인근 카페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오종찬 기자

    ―무례하지만 그건 질문의 회피다. 당신의 선택을 묻고 있다.

    "(천진하게 웃으며) 우리 세대는 뭐든지 가능했던 시대에 태어났다. 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결혼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심지어 결혼을 남성과 할 수도 있고 여성과 할 수도 있고. 모든 게 선택 가능했다. 운이 좋은 세대지. 하지만 그런 우리도 '현명한 엄마'와 '완벽한 직장 여성' 둘 다 잘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반드시 공유와 협력이 필요하다. 지금의 젊은 남편들이 그들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세대처럼 살아야 할까. 인간은 미래의 노동 조건을 재정립해야 하는 것처럼, 성역할과 관계도 마찬가지. 남편의 역할, 아버지의 역할도 재정립이 필요하다."

    공정을 기하기 위해 슬리마니의 개인적 결단과 행운도 병기(倂記)해야 할 것 같다. 그는 6세 아들과 6개월 된 딸이 있다. 한국에는 함께 오지 않았다. 6개월 된 딸이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구김 없이 웃으며 "전혀"라고 답했다. "나는 애들 아빠의 육아 권리를 100% 보장한다. 남편은 내가 마음 편히 글을 쓸 수 있도록 아예 은행원 일을 그만두고 아이들을 보고 있다"가 이어진 대답이었다.

    뭐든 가능했던 시대에 태어난 작가는, 계층 갈등을 묘사하는 시선과 방식도 전과 다르다. 이 소설 후반에는 한 점의 살도 남아 있지 않은, 완벽하게 발라진 통닭의 뼈가 등장한다. 퇴근한 미리엄이 자신의 식탁 위에서 발견한,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조립한 듯 완성된 닭의 뼈대. 이 소설의 백미(白眉)라 불러도 손색없는 대목인데, 부자 미리엄과 가난한 루이즈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날 아침 미리엄은 살점이 충분히 남아 있었지만 유통 기한 임박했던 통닭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하지만 루이즈는 검은 봉지에서 통닭을 구출했고, 게임이라 속이며 미리엄의 두 아이에게 마지막 한 점까지 먹게 한 것. 목마르다고 환타까지 먹이며, 다 먹은 뒤에는 잘했다고 사탕까지 두 알 주면서. 이 대목에서 두 계층 사이의 물리적 충돌은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미리엄과 루이즈의 내면이 폭발할 뿐이다. 음식 버리는 게 죄악이라고 믿는 계층과 신선한 유기농과 취향 우선인 계층 사이의 갈등이 미학적으로 표현된 사례랄까.

    ―결국 둘은 파국에 이른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빚어낼 비극에 대한, 당신 스타일의 경고인가.

    "보모를 고용하지 않았다면, 두 계층은 사실 만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파리는 점점 더 부유층과 빈민이 서로 만나기도 어려운 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가난한 사람들은 이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 통닭뼈 장면은 두 계층의 갈등이 전면화하고 극대화되는 지점. 일부러 작정하고 썼다. 하지만 희화화하거나 흔해빠진 클리셰(상투적 표현)로 처리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계층, 계급 간의 충돌은 마르크스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라, 디테일에서 온다. 대표적인 게 음식이다."

    ―이 파국의 국면에서 작가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순진하거나 유토피아적 상상인지는 몰라도, 나는 미래를 믿는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지 않았을 테니까(웃음). 작가는 세상의 분쟁, 인간 조건의 모순, 폭력과 악, 그런 것에서 영감을 얻고 그려나간다. 평화로운 세상이 되면 작가의 역할은 줄어들겠지. 도스토옙스키도, 빅토르 위고도, 찰스 디킨스도 모두 소외당한 사람들을 주목했다. 작가의 역할은 정답을 주는 게 아니라, 단지 그들을 호명하는 것이다. 그다음 공은 독자에게 넘어간다. 각자 자신의 질문을 찾으면 된다."

    /오종찬 기자

    슬리마니는 고등학교 때 프랑스로 유학 와서 파리 정치대학을 졸업했고, 잠시 배우의 삶을 살았으며, 서른 안팎에는 시사 주간지에서 현장 기자로 뛰었다. 어쩌면 사회부 사건 기사나 현장 르포 스타일의 소설은 그 영향도 있을 것이다. 배우에서 기자를 거쳐 지금의 소설가 삶.

    ―이 독특한 삶의 궤적을 설명해 달라.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이 스크린 밖으로 뛰쳐나가는, 일종의 액자 영화다. 나는 반대로 스크린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다르더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감독이 시키는 말을 해야 하더라고. 그건 못 참겠더라. 그래서 작가가 됐다(웃음)."

    슬리마니는 프랑스 대선 직전 마크롱을 공개 지지했다. 모로코 출신인 작가는 이민자를 거부하는 국민전선의 르 펜을 혐오했고, 자신과 같은 세대인 마크롱의 젊음과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같은 파리 정치대학 선배라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지난 7일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 프랑스어 진흥특사에 슬리마니를 임명했다. 보통은 정치인들이 가던 자리다.

    언어는 작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다.

    나는 프랑스어에
    문화적이고 예술적이며
    동시에 유용하고 실용적인
    이미지를 불어 넣고 싶다.

    레일라 슬리마니

    "언어는 작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재료다. 나는 프랑스어에 새로운 이미지를 불어 넣고 싶다.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동시에 유용하고 실용적인 언어. 좀 더 유연한 프랑스어를 알리고 싶다. 엘리트의 언어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는, 혹시 실수하더라도 한 번씩 웃을 수 있는 탄력적인 언어. 나를 임명한 까닭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남대문이 내려다보이는 창가에서 그녀는 한국과의 인연을 이야기했다. 얼마 전 모로코에서 한국식 돌잔치에 참석했다는 것. 은행원인 친구가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다. 자신처럼 곱슬머리지만 한국인의 눈을 하고 있는 '멋진 아기'라고 불렀다. '돌잡이'를 처음 봤는데, 어떤 행사인지 설명을 들은 후 아이 가까운 쪽으로 슬쩍 펜을 내려놓았다는 것. 하지만 아이는 그 펜을 밀어내고 지폐를 잡았다는 것이다. 아이 아버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더라나. 슬리마니는 "무척 실망했다"며 구김 없이 웃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스크린에 뛰어들었다는 배우, 정색하는 명사(名詞)보다 치고 빠지는 부사(副詞)를 선호하는 작가, 엘리트의 엄격보다는 빈틈과 실수를 선호하는 프랑스어 진흥특사. 그는 인터뷰 내내 자주, 구김 없이 웃었다. "젊고 유망한 작가에게 시상한다는 본래의 취지로 돌아갔다"는 공쿠르상 선정 이유가 다시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서른아홉 마크롱과 서른여섯 슬리마니는 둘 다 30대. '젊은 프랑스'를 만날 기회다.

    [books] 커튼 뒤의 사악함… 나는 인간이 궁금하다
    [books] 젊은 당신, 자아실현에 목매지 마라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