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7500㎞… 아이폰 한 대 만드는 데 필요한 거리

중국에서 대만, 대만에서 유럽·상하이 등에서 온 부품들을 조립해 일본을 거쳐 다시 중국으로.
아이폰 한 대가 완성되기까지 부품의 이동 거리가 25만7500km다.
이 거대한 물류의 세계를 '도어투도어(door-to-door) 세계'로 저자는 명명한다.

    입력 : 2017.11.10 07:07

    [books]
     

    에드워드 흄스의 '배송 추적'.

    배송 추적
    에드워드 흄스 지음
    김태훈 옮김|사회평론
    420쪽|1만6000원

    2015년 2월 13일, LA 근교 실비치에 사는 저자는 25만7500㎞ 넘는 여정의 집약체인 아이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깬다. 운송 족적이 최소 16만㎞에 달하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저녁엔 1만5000㎞ 이상의 여정이 녹아 있는 도미노 피자 한 판을 아들에게 사준다.

    무슨 얘기냐고? 아이폰 홈버튼을 예로 들어 보자. 홈버튼의 여정은 중국 후난(湖南)성의 한 기업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인조 사파이어 크리스털을 홈버튼에 내장된 지문 센서 덮개로 탈바꿈시킨다. 이 덮개를 890㎞ 떨어진 장쑤(江蘇)성 공장서 가져온 금속 테두리로 둘러싼 다음 1600㎞ 떨어진 대만 가오슝의 반도체 조립 및 검사 공장으로 이동한다. 상하이·유럽·일본·대만 등에서 온 부품들과 결합한 조립체는 일본을 거쳐 중국 정저우(鄭州) 공장으로 보내져 최종 조립된다. 그리하여 아이폰 버튼 하나를 만들기 위한 부품을 조립지까지 옮기는 데 약 1만9300㎞에 걸친 여정이 소요된다. 아이폰 한 대가 완성되기까지 부품의 이동 거리가 25만7500㎞나 되는 까닭 중 일부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독일제 커피메이커가 저자의 주방에 이르기까지 부품의 여정만 2만5300㎞, 생두, 물, 원두 분쇄기, 연료 등의 여정도 남아 있다. 하루치 전 세계 상품 이동에 수반되는 물류는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아폴로 달 착륙 프로젝트를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크다.

    미국에 본사를 둔 국제 운송 업체 페덱스 트럭이 거리를 달리고 있다. 중국에서 조립한 아이폰 중 대부분의 미국행 제품은 페덱스와 UPS가 주요 허브로 활용하는 홍콩과 알래스카를 거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도어투도어(door-to-door) 세계'. 저자는 출발에서 도착까지 문에서 문으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물류의 세계를 이렇게 명명한다. 현지 생산 시스템의 쇠퇴와 하청 시스템의 고착이 이 세계의 발전을 가속화시켰다. 애플의 제조 공정이 세계 각지서 이루어지는 것은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다. 스티브 잡스가 1998년 팀 쿡을 영입해 CEO 자리를 물려준 것은 그가 컴퓨터 천재라서가 아니라 탁월한 물류 관리 능력 때문이었다. 쿡은 상하기 전 팔아야 하는 우유처럼 컴퓨터를 하루 단위로 재고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체 공장 보유 방식을 폐기하고 판매 며칠 전에야 부품과 완제품을 하청기업의 공장에서 조달하는 제조 전략이 실행됐다. 제조 단가는 낮아지고 재고 처리 속도는 빨라졌다.

    현지 생산 사라진 시대
    커피·휴대폰 등 소비재에
    숨어 있는 운송 거리 측정

    현대사회는 물류에 점령
    퓰리처상 받은 美 기자
    자동차 중심 문화 비판

    고대로부터 국제 교역은 운송비, 도난 위험 등 많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 저자는 화물 컨테이너의 발명이 국제 운송 비용을 대폭 감소시키는 돌파구가 되었다고 말한다. 높이 쌓을 수 있는 이 거대한 금속 상자는 방수가 되므로 화물을 채운 후 배가 올 때까지 창고에 두지 않아도 된다. 잠글 수 있어 도난도 방지할 수 있다. 크레인 기사 등 소수 인력만으로 몇 톤을 싣고 내릴 수 있다. 1966년 최초의 컨테이너선인 페어랜드호가 첫 국제 운송을 완료하면서 컨테이너 시대가 열렸다. 700달러짜리 TV 1대를 지구 반대편으로 옮기는 비용이 10달러밖에 들지 않게 되었다. 중국의 경제특구 지정으로 저렴한 노동력 공급이 가능해진 것도 자체 생산 시대의 종언을 앞당겼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책의 의도는 물류 산업의 역사와 구조를 심층적으로 파헤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89년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궁극적 관심은 미국의 자동차 중심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물류 산업에 대한 잡학 지식은 양 많은 양념인 셈이다

    물류 산업 발달로 교통 인프라는 과부하에 이르렀고 환경은 오염됐다. 하루 평균 22시간을 세워두는 자동차에 미국인은 유지비로 월평균 1049달러를 쓴다. 게다가 교통사고는 39세 미만 미국인 사망 원인 1위다. 저자는 묻는다. "로봇을 화성으로 보내고, GPS 칩을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나라가 어떻게 매일 97명을 죽이고 매분 8명을 다치게 하는 2t짜리 금속 상자에 일터로 사람을 옮기는 일을 맡길까?" 그렇다면 대안은 있을까. 저자는 자율주행차와 공유경제가 보편화되면 운전은 승마와 같은 수준의 취미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밀레니엄 세대가 운전과 차 소유에 흥미를 잃고 있다는 것이 근거다. 실제로 미국 내 차량 미보유 가구 수는 2007년 이래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고유가 시대에도 불구하고 도로는 여전히 꽉 막혀있다. 2008년 7월 8일 오후 6시쯤 서울 강변북로 구리방향 마포대교 부근이 차들로 정체 현상을 빚고 있다. /오종찬 기자

    뉴욕처럼 대중교통망이 잘 갖춰진 대도시가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차 없는 생활'이 가능할까? 저자는 지자체의 대중교통 인프라 투자와 함께 개인의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해답은 자전거와 걷기다. "로스앤젤레스(그리고 다른 많은 도시)에서 이뤄지는 모든 주행의 거의 절반이 4.8㎞ 미만의 단거리라는 놀라운 통계치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 정도 거리는 자전거로 15분, 최대 20분이면 갈 수 있다. 적당한 속도로 걸어가도 1시간이면 된다." 결론이 다소 허망하지만 읽는 재미는 있다. 문체와 글의 전개 방식은 알랭 드 보통의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연상시키고, 저자의 박학다식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쓴 빌 브라이슨의 계보를 잇는다. 원제 'Door to Do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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