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후 로봇과 함께 사는 시대 온다"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 '휴보'를 만들어낸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
휴보는 세계 최고의 로봇들과 경쟁해 당당히 다르파 세계재난대응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오준호 교수는 휴보에 대해 "애물단지다, 자식 키워 본 사람은 알 거다"라며 애정을 표현했다.

    입력 : 2017.11.15 07:10

    [Interview] '휴보 아빠'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
     

    오준호(63)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에게는 '휴보 아빠'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오 교수에게 휴보는 그야말로 아들이나 다름없다. 2002년 개발에 착수한 이래 오 교수는 15년 동안 신장을 키우고 성능을 강화해 세계 최고의 휴머노이드 로봇을 만들어냈다. 휴보의 성능은 2015년 6월에 다르파(DARPA·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가 주최한 세계재난대응로봇 경진대회에서 입증됐다. 세계 최고의 로봇기술 각축장에서 무려 3년간의 경진대회 기간을 거쳐 당당히 최종 우승을 거머쥔 것. 우승상금만 200만달러(약 24억원)에 달한다.

    기자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든 사건은 따로 있었다. 지난 9월 오 교수가 미국 오리건주 웜스프링 지역에서 촬영한 개기일식 영상이 미 항공우주국(NASA) '오늘의 천체사진'에 선정됐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천체사진가들을 제치고 최고의 영상을 담아낸 것이다. 로봇과 천체. 얼핏 연결이 되지 않았다. 처음엔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 알고보니 그는 20여년 전부터 툭하면 옥상에 올라가 별을 관측해왔다고 한다. 순전히 재미와 호기심에서였다고 털어놨다.

    오 교수를 알아갈수록 질문지가 점점 불어갔다. 평창동계올림픽 로봇총감독으로서의 역할, 상대적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이뤄낸 휴보의 기적, 한국 로봇기술의 현주소도 궁금했지만, 서로 다른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 진짜 비결을 파헤쳐 보고 싶었다. 그의 빈 시간을 파고들기는 쉽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차 전화하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내일은 미국대사관 초청이 있고, 월요일엔 네덜란드 기자단과 오스트리아 상공회의소 상무관이 방문합니다. 화요일은 오후에 일본 글로비스 회장단이 오기로 했으니 오전이 비었네요. 화요일 오전에 오시죠."

    10월 17일 오전, 대전 카이스트에 있는 휴보랩에 들어섰다. 연구소에는 오 교수를 비롯, 10명 정도의 연구원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주문받은 휴보를 제작 중입니다. 한 대는 미국으로, 한 대는 국내 연구용으로 갑니다. 미국으로 갈 아이는 팔의 힘이 더 강했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받았어요. 대당 가격은 5억원 정도입니다. 옵션에 따라 8억~9억원까지 가기도 해요."

    정중앙엔 '휴보 넘버 2'가 떡하니 서 있다. 다르파에서 우승한 주인공이다. 똑같은 휴보 두 대를 제작, 컨디션이 좋은 로봇을 출전시켰다고 한다. 휴보의 왼쪽 팔과 등 뒤에는 대한민국 국기가 달려 있다. 잠깐 시연을 요청했다. 연구원들이 리모컨과 컴퓨터 키보드로 명령을 내린다. 휴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혼자 자동차 운전석에 올라타고 내린 후 울퉁불퉁 장애물을 통과하는 시연이다. 휴보만의 개인기는 차체를 손으로 잡고 내리는 동작. 버튼 하나로 조작 가능하다. 휴보의 손가락은 세 개다. 오른손을 뻗어 차체를 손가락으로 감싸잡고, 왼손도 같은 방법으로 잡은 후 오른발을 내리고 왼발을 내린 후 엉덩이를 든다. 걸음걸이는 보폭 10㎝ 정도. 보폭은 조정 가능하다. 걸을 때마다 하체가 좌우로 흔들린다. 그 다음은 콘크리트 장애물 위를 걷기. 얼굴에 달린 카메라로 장애물을 스캔, 발을 디딜 각도와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해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연구원들 사이에선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두 번째 개발실에서는 차기 로봇 부속을 연구 중이었다. "차기 로봇은 3년 후 완성이 목표입니다.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된 로봇을 위해 모터부터 다시 제작하고 있어요. 전혀 다른 구조로 제작해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로봇을 만들 겁니다." 오 교수의 말은 매우 빨랐다.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간혹 말이 꼬이기도 했다. 걸음걸이도 빨랐다. 주당 40시간 이상 연구실에 머문다는 그는 연구 시간이 아까워 웬만해선 외부 일정을 잡지 않는다고 한다. 방문 손님 위주로 스케줄을 잡고, 식사는 대부분 교내에서 해결한다.

    오 교수 연구실로 들어서자 책상 위 컴퓨터모니터에 시선이 머물렀다. 가로×세로 100×50㎝가 넘는 초대형 모니터다. 모니터에는 복잡한 도형과 수식으로 이루어진 설계도가 펼쳐져 있다.


    다르파 세계재난대응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DRC휴보Ⅱ를 사이에 두고 의견을 나누는 오준호 교수와 연구원들.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한국 로봇기술의 현주소

    - 이 설계도는 뭔가.

    "모터 개념설계도다. 마음에 드는 모터를 찾지 못해 모터를 만드는 기계를 만드는 중이다. 모터를 설계해 코일에 감아서 힘을 측정해 본 후 공식을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 중이다."

    - 모터 제작업체에 발주하면 될 텐데.

    "선진국은 되지만 우리나라는 우리가 원하는 모터를 제작발주하기가 쉽지 않다. 제대로 만든 건지 몰라서 모터업체에 가지고 가 봤다. 깜짝 놀라더라. 무엇이든 시도해 보는 걸 좋아한다."

    - 휴보의 다르파 우승은 기적으로 평가된다.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는데, 서운하진 않나.

    "시기적으로 메르스와 딱 겹쳤다. 우승한 날 삼성병원에서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다. 뉴스의 20꼭지 중 19꼭지가 메르스로 도배되더라. 취재진은 많이 왔지만 메르스에 묻혀서 단신 정도로만 보도됐다. 청와대 초청 만찬 얘기도 오가다가 흐지부지되고. 외신에서는 많이 다뤄지고 해외 인터뷰도 많이 했다."

    오준호 카이스트 교수가 오리지널 휴보를 안고 있다. /신현종 조선일보 기자

    - 휴보의 성과를 두고 '로봇강국 대한민국'이라고 평가해도 될까.

    "안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휴보를 빼면 로봇강국이라는 표현이 나오기 힘들다. 외신에서는 한국을 '인간형 로봇을 잘하는 나라'로 안다. 휴보를 큰 연구소에서 몇백만달러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줄 알고 있고. 2억~3억원 규모의 지원금으로 한다고 하면 외국에서 안 믿는다."

    - 그러면 우리나라 로봇기술은 어느 수준인가.

    "그렇다고 하국(下國)도 아니다. 세계의 로봇연구 그룹은 유럽, 미국, 일본으로 나뉘는데, 그 세 곳 빼고 우리나라가 잘한다고 볼 수 있다."

    - 휴보를 빼더라도?

    "그렇다. 산업용 로봇공급률이 OECD 평균을 넘는다. 딱 부러지는 제품이 없고, 펀드멘털도 약해 모터나 감속기도 제대로 못 만들지만 로봇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대단하다. 분위기와 열정만으로 본다면 로봇강국이라고 할 만하다."

    - 진정한 로봇강국이 되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우리나라 정부지원체계는 완벽하다. 여기에서 완벽하다는 건 공정함의 의미다. 완벽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나는 예외이긴 하다. 산업부에서 나에 대해 '저 교수는 연구비 주면 연구만 하는 사람'으로 각인된 듯하다. 제안서를 쓰지 않아도 와서 뭘 도와드릴까요 하고 먼저 묻는다."

    - 정부에 바라는 점이 많을 것 같았는데, 의외다.

    "일반적인 측면으로 보자면 바라는 점이 많다. 일단 평가시스템도 바뀌어야 하고. 하지만 내 연구 스타일로 보면 더 바라는 게 없다. 정부는 더 많이 주려하는데, 나는 필요 없다고 했다. 5억원만 주면 된다고 했는데 30억원을 받았다. 관리하기가 더 힘들다. 2년 후면 은퇴인데, 빨리 은퇴해서 내가 하고 싶은 연구만 하고 싶다."

    - 은퇴 후엔 휴보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나.

    "휴보는 얼마 후 내 손을 떠날 수밖에 없다. 후임교수를 구하는 중이다. 5년 전 학내 출자기업 '레인보우'를 만들었다. 은퇴 후에는 레인보우에서 일하게 될 거다."

    - 휴보의 아버지로서 15년간 살아왔다. 오 교수님에게 휴보란 어떤 존재인가.

    "참 어려운 질문이다. 애물단지다. 자식 키워 본 사람은 알 거다.(웃음)"

    - 애증관계?

    "그렇다. 애증의 관계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뜻대로 안 된다. 왼쪽 발을 들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기울어야 하는데 반대로 넘어지고."

    - 궁극적으로 휴보를 어떤 로봇으로 구현하고 싶은가.

    "나는 모빌리티에 관심이 많다. 움직임이 유연하고 사람과 상호작용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인간형 로봇이 궁극적 솔루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빨래로봇, 청소로봇 등으로 목적이 정해져 있는데, 빨래도 하고 집도 지키고 정원도 가꾸는 다목적 로봇을 만들고 싶다. 이런 건 사람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과연 다목적 로봇이 필요한가는 의문이다. 니즈와 기술이 만나는 지점이 문제다."

    - 그렇다면 현 수준에서 휴보 개발의 목적은.

    "현 단계에서 휴보는 인간형 로봇에 도달하려는 수단이다. 쓸 만한 로봇 말이다. 로봇 팔이 있으면 그걸 이용해 뭔가를 하려는 사람이 생길 거다. 드론을 만들어놓으면 사용자에 따라 활용도가 다르듯 말이다. 사용자의 용도에 따라 다용도로 활용될 수 있는 로봇의 기본 틀을 만들고 싶다. 가볍고 싸면서 생각대로 움직이는 로봇."

    - 언제쯤 가능할까.

    "5~10년 내에 가능하다고 본다. 4차 산업혁명도 이런 기술과 연관돼 있다. 말하자면 협력로봇이다. 사람과 로봇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면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작동할 수 있는 로봇. 레인보우에서 그런 걸 만들려 한다."

    항상 생각한다.
    문제를 내 사고체계에 집어넣어서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

    책을 안 봐도 세상에
    정보는 널려 있다.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내
    사고체계에 집어넣어 구조화하면
    굉장히 단편적인 것이라도
    스토리로 완성된다.

    오준호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교수

    - 평창동계올림픽 로봇총감독을 맡았는데, 이때에도 협력로봇을 선보이는 건가.

    "그렇다. 휴보를 비롯해 10개 업체의 로봇이 참가해 VIP들의 의전담당을 하게 될 거다. 귀빈이 오면 로봇이 인사하고 꽃다발도 증정할 거다. 영화에서처럼 자연스러운 로봇을 상상하는 분도 많던데, 그 수준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 일반적인 기대치와는 거리가 있을 거다."

    - 얼마 전엔 인공지능 로봇 '소피아'가 화제가 됐는데.

    "소피아가 우리 연구실에 3주 전쯤 다녀갔다. 지금은 우리 연구소에서 소피아 다리를 만들고 있다. 이번 주에도 오기로 했다. 로봇이 똑똑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모든 인공지능은 사람이 설계한 프로그램대로 움직인다.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인 알파고는 계산기일 뿐이다. 최적화된 값만 있을 뿐, 그 값의 의미는 전혀 모른다."

    -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 같은 인공지능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나는 레이 커즈와일이 말한 기술적 특이점(singularity) 개념도 믿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인간지능을 넘어서는 일은 발생할 수 없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대답하는 것은 생각의 결과다. 에고(자아)가 있어야 가능하다. '나'라는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은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 일론 머스크는 인간의 뇌에 칩을 심는 프로젝트 중인데.

    "그것도 당분간은 어려울 거다. 최소 30년은 걸린다고 본다. 알고리즘이 본질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나'라는 구간이 있어야 한다. 알고리즘은 내가 없다. 세상의 모든 이치를 달달 외우는 기계일 뿐이다. 새로운 걸 배운다는 개념은 정해진 룰대로 데이터베이스를 늘려나간다는 의미다. 만약 인공지능이 '내 생각에 일하기 싫어' 했다면 그 역시 통계의 결과다."

    -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자아라는 개념은 심을 수 없는 건가.

    "그렇다. 자아라는 개념을 시뮬레이팅할 수는 있다. '이게 자아다'라는. 현재 어떤 알고리즘도 그런 시도를 한 적은 없다."

    휴보의 저력, 1% 영재론

    - 휴보가 선진국에 비해 열악한 환경에서 우승한 저력은 뭘까.

    "진짜 연구는 98점에서 시작된다. 98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운 것은 98% 이후다. 2% 부족한 연구는 '0'이나 다름없다. 부족한 2%를 찾아서 그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노력을 해서 99.9%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짜 연구다."

    - 2%를 메우는 힘은 어디에서 오나.

    "열정 같다, 열정. 통찰력도 있어야 하고, 해야 한다는 도전정신도 필요하다. 그걸 안 하면 잠이 안 오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나는 영재의 정의를 이렇게 내린다. '그 일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무언가가 있는 사람.' 그게 음악이든 미술이든 어떤 분야든 상관없다."

    - 한 분야에서만?

    "일단 한 분야를 파고들게 되면 폭발적인 눈을 갖게 된다. 계속 파고들다 보면 소위 성공해서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경지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미 항공우주국 '오늘의 천체사진'에 뽑힌 일식 영상도 그 경우인가.

    "별을 관측하기 시작한 건 25년이 넘었다. 처음엔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몰랐다. 설과 추석 같은 연휴 때 천체관측기구를 싸들고 가서 별을 관찰하곤 했다. 주위에선 별짓을 다한다고 했지만 그저 재미있었다. 틈만 나면 별을 보고 파고들었다. 지금은 그 분야에서도 어느 정도 경지에 올랐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물체 전자광학 감시시스템에 들어가는 추적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정도로 인공위성을 추적하고 개기일식의 시작과 끝점의 예상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10명 미만일 거다."

    - 취미로 대가가 된 경우다.

    "로봇도 처음엔 취미로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방 안이 잡동사니로 가득 찼다. 나중엔 내 방에 신발 신고 들어가야 했다.(웃음) 결국 어떤 의무감으로 하면 좋은 결과가 잘 안 나온다. 열정을 가지고 스스로 뛰어들어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

    - 열정에 빠져들게 하는 힘은 뭘까.

    "좋아하고 잘하는 걸로 밥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20%밖에 없다. 20% 중 가장 많은 분야는 공부다. 법관이나 변호사 등. 나머지 80%는 성실과 근면으로 살아간다. 택시기사든 밥집이든. 좋아하는 걸 찾은 20%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 20% 중에는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영재라고 한다. 자기 잠재력을 억누를 수 없는 사람, 강요받거나 지배받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1% 정도 된다."

    -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소질은.

    "생각하기다. 늘 나만의 시각으로 분석하려 노력하고 호기심도 많다. 무언가가 이해되지 않으면 굉장히 답답하다. 그것이 틀리고 맞고는 중요하지 않다."

    오준호 교수가 찍은 개기일식 영상. 미 항공우주국(NASA)은 이 영상을 '오늘의 천체사진(APOD)'으로 선정했다.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이고, 아마추어 천체사진가로는 최초다. /카이스트

    이 대목에서 그의 부모님의 양육방식이 궁금해진다. 그의 부모님은 둘 다 교육학자였다. 아버지는 고(故) 오기형 연세대 교육학과 교수, 어머니는 김현자 전 한국여성연맹 총재다. 폴오(Paul Oh) 전 미국 NSF(국립과학재단) 로보틱스 디렉터가 그의 사촌. 그의 집안은 소질과 적성을 중시했다고 한다. 오 교수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반 64명 중 58등이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 부모님 이야기를 해보자.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안 하셨나.

    "그게 재미있다. 두 분은 늘 '아이들은 소질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다. 기본적으로는 뭔가에 몰두하면 파고드는 나에 대한 신뢰가 있으셨고. 나는 강요받는 걸 싫어해 과외나 학원을 잘 못 다녔다. 그런데 과학만은 달랐다. 과학을 좋아하니까 아이들이 물어보면 다 알아야 한다는 자존심이 있었다. 생물, 물리, 화학, 지구과학 모든 분야에서."

    - 책을 많이 읽었나.

    "아니다. 책을 안 읽었다. 읽은 책은 교과서 정도? 지금도 독서를 거의 안 한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 중에는 자기만의 도그마에 갇힌 사람들이 많다."

    - 놀랍다. 그러면 그 많은 지식은 어디에서 얻나.

    "생각이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관찰 대상이 되는 모든 것을 사고체계 속에 넣어서 구조화한다. 나는 스스로 게으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논문도 열심히 제출해야 하는데, 그런 게 너무 하기 싫다. 책 읽는 시간도 아깝다. 그 시간에 생각하는 게 훨씬 낫다."

    - 오 교수만의 생각법이 있나.

    "항상 생각한다. 문제를 내 사고체계 속에 집어넣어서 인과관계를 찾으려 한다. 책을 안 봐도 세상에 정보는 널려 있다. 세상의 다양한 정보를 내 사고체계에 집어넣어 구조화하면 굉장히 단편적인 것이라도 스토리로 완성된다. 공식도 외우지 않고 그때그때 만들어서 쓴다."

    - 수학도?

    "하루아침에 수학에 빠졌다. 원래 수학을 좋아했는데 고등학교 때 수학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은 적이 있다. 전 과목이 재미없어지면서 최하위권이 되더라. 그러다 고2 때 미적분학을 배우면서 머리에 스파크가 일었다. 너무 재밌었다. '수학의 정석'을 사와서 2주일간 한 권을 다 뗐다."

    - 미적분학의 어떤 면이 끌리던가.

    "신기하지 않나. 미세하게 따지고, 극한으로 가면 0으로 수렴되고. 공부가 재미있어졌다. 그런 시각으로 보니 국어와 사회도 재미있었다. '아, 이것도 체계가 있구나' 깨달았다. 원래 외우는 걸 싫어했는데, 큰 틀 사이사이에 끼우면서 외우니까 재미있더라."

    - 그런 생각법을 널리 전파해볼 의향은.

    "세상에는 창의적 사고법, 문제해결법, 브레인스토밍 등 방법론적인 책들이 무수히 많이 나와 있다. 그런 건 의미 없다고 본다. 60인 사람을 80까지는 올릴 수 있지만 상위 5% 이상에는 먹히지 않는다."

    - 80~90점인 사람이 99점이 되려면?

    "책으로는 안 된다.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1%까지 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가장 비참한 것이 소질 있는 사람과 경쟁하는 거다."

    - 자기 머리로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은 타고난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그건 장동건과 나의 차이와 같다. 내가 아무리 밥을 많이 먹고 운동을 하고 성형을 해도 장동건처럼 되지 않는다. 공부도 그렇다. 왜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지 모르겠다. 어떤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서울대 갈 아이는 가게 돼 있다. 그중 20~30% 정도만 바뀔 뿐이다. 지금의 교육은 마라톤에 소질 없는 사람까지 전원이 내달리는 형국이다. 무려 18년 동안 대입 전날까지도 '넌 서울대 갈 수 있어'라고 부추긴다."

    - 영재교육 무용론자인가.

    "영재는 스스로 빛난다.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튀어나온다. 세상에 자극은 충분하다. 오히려 과잉이다. 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면 다큐, 책, 인터넷 등에서 얼마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거기에 더 자극을 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진짜 영재는 영재교육에 흥미를 못 느낄 가능성이 많다. 스스로 탐구하도록 그냥 놔두면 좋겠다."

    - 오 교수는 모범생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어왔다. '별짓'을 많이 했고, 모두 대단한 결과물을 냈는데.

    "결과물을 못 내도 상관없다. 성실하면 된다. 될 때까지 한다."

    - 실패한 적은 없나.

    "시도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시도하다가 안 되면 그때 포기하면 된다. 나는 시작도, 포기도 잘 한다. 사람들은 포기할 거라면 시도하지 말라고 하지만 난 반대다. '하고 싶으면 해라, 하다가 재미없으면 그때 그만두라'고 한다."

    - 포기하는 시점은 언제인가.

    "재미없을 때.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할 이유는 없다. 재미없어도 이 단계를 넘기면 되겠다는 그림이 그려지면 계속하지만. 그런 경험이 쌓이면 지식이 많아진다.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시도한 것과 안 한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와인 책을 읽기보다 한 번 직접 담가 봐라'라고."


    휴보가 다르파 세계재난대응로봇 대회에서 우승하기까지

    2012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약 1년 후 다르파(DARPAㆍ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는 세계재난대응로봇 경진대회(DRC)를 열었다. 제2의 후쿠시마 사태가 일어날 경우 그 즉시 투입할 수 있는 로봇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였다. 당시 달리기가 가능한 로봇은 일본의 아시모와 우리나라 휴보 정도뿐이었다. 다르파 측에서는 막대한 연구비와 상금을 지원했고 예선부터 본선까지 장장 3년간의 대회기간을 거쳤다.

    7팀의 우승후보팀이 선정됐다. 이 팀들에는 180만달러가 지원됐다. 나사 존슨우주센터 '발키리', 나사제트추진연구소 '로보시미안', 샤프트(AISTㆍ일본산업기술연구소) '에스원', 카네기멜론대학교 '침프' 레이시온, 로보티즈 버지니아공과대학교 '토르(똘망)', 카이스트 '휴보', 보스턴 다이내믹스 '아틀라스' 등이 참가한 대회는 전 세계 인간형 로봇의 성능을 겨루는 각축장이 됐다. 나사가 막강한 우승후보로 거론됐다. 화성탐사에 나섰던 '스피릿'이나 '큐리오시티' 등도 모두 나사제트추진연구소 작품이었기 때문. 아시모를 개발한 일본산업기술연구소도 주목받았고, 대회에는 한국계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이 이끄는 버지니아공대팀도 있었다.

    2013년 12월에 치러진 본선경기에서 휴보는 처참하게 패배했다. 모래먼지와 바람으로 인한 오작동이 많았고, 미국 남부의 따가운 태양은 화상카메라를 먹통으로 만들었다. 이후 대대적인 보완을 통해 키 168㎝, 88㎏의 DRC휴보Ⅱ가 탄생했다. 2015년 6월에 치러진 최종 결승전에서 DRC휴보는 8단계 임무를 44분28초 만에 완수, 우승을 거머쥐었다. 2위 로보틱스와 3위 아틀라스 역시 만점을 받았지만 휴보보다 늦었다. 나사 존슨우주센터의 직원 수는 3000명이 넘고, 다르파 이전 대회인 어반챌린지 우승팀인 카네기멜론대학교 국립로봇공학센터는 1년 예산이 3000만달러에 달하는 것과 비교할 때 휴보의 우승은 기적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79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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