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다 쓰리쿠션을 더 사랑했다"

고래, 고령화가족,나의 삼촌 브루스 리…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꾼
천명관 작가가 이번 사적인 서가의 주인공이다.
진정 사랑하고 잘하고 싶었던 건 당구·기타·영화라는 그의 내밀한 고백을 들어보자.

    입력 : 2017.10.13 07:04

    [나의 사적인 서가]
     

    많은 동료가 그의 이야기꾼 재능을 질투하지만, 정작 자신이 정말 사랑하고 잘하고 싶었던 건 당구·기타·영화라고 푸념하듯 말하는 작가가 있다. 대외 공개용 말고, 조금 더 내밀한 책 고백. 이번 회 주인공은 소설가 천명관(53)이다. 20대 시절에는 보험과 골프채를 팔았고, 30대에는 영화 시나리오를 썼으며, 40대 이후에는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파란만장 소설가. '고래' '고령화가족'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등 글과 삶이 함께 찐득거리는 그에게 물었다.

    1. 당신 책장에 있다면 사람들이 놀랄 책.
    '쓰리쿠션 당구 입문서'. 어떤 유형의 사람이 작가가 된다 한들 놀랄 건 없다. 또한 누구 집에 어떤 책이 있다 한들 놀랄 것도 없다. 인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 다만 작가라는 편견 때문에 당구에 대한 책이 있다면 뜻밖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진정 사랑한, 그래서 진짜 잘하고 싶었던 것 세 가지가 있다. 당구와 기타, 그리고 영화가 그것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를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것들은 늘 새침하고 까탈스러웠으며 결국 나를 외롭고 절망스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한 번도 돌려받지 못한 그 사랑의 흔적들이 집 안 여기저기 아프게 널려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쓰리쿠션 당구 입문서'다.

    2. 영화보다 원작이 더 좋았던 책 중 당신의 1위는.
    "존 어빙의 '가아프가 본 세상'. 이 놀라운 이야기꾼의 소설을 멋진 영화로 만들기란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주인공 가아프가 로빈 윌리암스라니! 굼벵이처럼 동글동글한 몸집이 어딘가 가아프와 유사한 점이 있다고 쳐도 제니 필즈로 분한 글렌 클로즈(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서너 살에 불과했다)의 아들이라는 건 정말 난센스가 아닌가 싶다. 그 기묘한 조합이 처음부터 몰입을 방해했는데, '가아프가 본 세상'을 영화화하겠다고 나선 이 무모한 감독은 과연 누구일까, 타이틀을 보고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스팅'과 '내일을 향해 쏴라'를 만든 조지 로이 힐 감독이었다. 이 두 영화는 나의 학창시절, '명화극장'에서 본 가장 멋진 영화 중 하나였으며, 이런 영화들엔 거의 맹목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무한한 애정과 향수가 배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가아프가 본 세상' 때문에 조지 로이 힐은 한순간에 뛰어난 소설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린 시원찮은 감독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으니 그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할 수밖에.”

    2013년 5월 2일 '고령화가족'의 소설가 천명관씨가 파주에서 소설의 영화화와 인생을 이야기했다. 천명관은 3년 동안 신용불량자였다. 카드 빚으로 살다가, 어쩌다 시나리오 계약금을 받으면 빚만 갚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소설가가 된 이후, 그는 부모를 부양하고, 후배들에게 술도 사며, 크게 돈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직업인인 소설가가 거기 있었다. /이진한 기자

    3. 원작보다 영화가 더 좋았던 작품 중 당신의 1위는.
    데니스 루헤인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루헤인의 짧고 쿨한 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Animal Rescue)'가 '더 드롭'이란 제목의 영화로 나왔다(1위라기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본 영화라 제일 먼저 머릿속에 떠올랐다).

    영화가 더 낫다는 건 그의 소설이 훌륭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 무더기로 나오기 때문이다. 톰 하디와 누미 라파스, 거기에 제임스 갠돌피니까지…. 이야기 또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즉 고독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위험한 범죄자들 사이에서 그 남자는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 한다. 용기가 필요한 순간이다. 그리고 그 일을 멋지게 해낸다. 개도 구하고 여자도 구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세상이 변한 건 아니다. 바 한구석에선 누군가 외롭게 술에 취해 잠들고 그 뒷골목에선 누군가 총에 맞고 죽어간다. 그것이 말하자면 도시의 누아르적 삶이다.

     

    당구·기타·영화
    내가 사랑했던 것들은
    왜 나를 외면하나

    책 선물할 만큼
    우아한 인생 산 적 없다

    완벽한 가을 즐기려면
    브라우티건을 읽어라

    천명관

    4.당신의 가을을 함께하고 있는 책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완벽한 캘리포니아의 하루'. 그를 읽는 것은 완벽한 가을을 보내는 방법 중의 하나다. 한국에서 번역된 그의 소설은 오랫동안 '미국의 송어낚시' 한 권뿐이어서 늘 아쉬웠는데 최근 브라우티건을 한국에 처음 소개했던 영문학자 김성곤 선생의 번역으로 몇 권 더 나왔다. 브라우티건이 미국 문학의 문을 두드리던 60년대의 캘리포니아에 대해 내가 뭘 알겠는가? 하지만 무심한 듯 툭툭 던지는 그의 짧은 이야기 속엔 비애의 정조가 감도는 슬픈 유머와 이미 사라진 것에 대한 향수와 아득한 상실감이 가을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처럼 눈부시다. 그렇게 문득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자살로 자신의 생을 마감했던 한 작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시간은 분명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달콤쌉싸름한 호사일 것이다. 죽음은 쓸쓸하지만 그 죽음은 내 것이 아니므로.

    5.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은.
    누군가와 책을 선물로 주고받을 만큼 우아하게 살아본 적이 없다. 다만 선물이라고 하니 생각나는 일이 하나 있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책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다.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었는데 당시 선물로 받은 책 제목은 '암굴왕'이었다. 뭔가 신비롭고 어두운 범죄의 냄새가 나는 그 책을 받자마자 나는 하룻밤 새에 다 읽어버렸다. 그리고 다음 날 서점으로 달려가 주인에게 말했다. 아버지에게 책을 선물로 받았는데 공교롭게도 이미 옛날에 읽은 책이었다고, 그러니 다른 책으로 바꿔달라고. 영악한 사내아이의 천연덕스러운 거짓말을 서점 주인은 눈치 챘을까? 그날 나는 두근거리는 죄의식과 함께 새 책을 받아들고 서점을 나섰는데 그 책이 무엇이었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아득히 먼 옛날의 일이다.

    6.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은 작가 3인.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커트 보니것. 미셸 우엘베크. 김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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