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을 야만으로 물리친 러시아 제정의 國父

러시아 근대화를 이끈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
그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일으켰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표트르 대제의 행보를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입력 : 2017.09.29 07:11

    [Books]
     

    표트르 대제
    린지 휴스 지음
    김혜란 옮김|모노그래프
    652쪽|3만2000원


    "나는 학생이며, 선생을 찾고 있다"며 서민 속으로 파고든 황제가 있었다. 러시아를 '무'에서 '유'로 변모시킨 주역으로 칭송받는 표트르 대제(1672~1725). 그는 1697년부터 1699년까지 3년 동안 평민으로 위장해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등을 돌아다니며 선진 문물을 접했다. 유럽에서 러시아가 중국의 황제나 튀르크의 술탄 같은 존재가 통치하는 '무례하고 야만적인' 왕국으로 받아들여지던 시절이었다.

    린지 휴스(1949~2007)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교수는 러시아 전문가의 시각에서 그의 행보를 연대기별로 추적한다. 당시 러시아 궁정에서 작성한 공식 일지, 표트르의 개인 서신, 서유럽 각국의 외교관·예술가·건축가들의 증언·보고서·회고록이 그의 집필 자료다.

    17세기 유럽 변방국
    러시아 근대화 이끈
    개혁군주 표트르 대제

    황태자 고문하고
    사형까지 선고하며
    개혁 반대세력 축출

    권력욕·광기로 이뤄낸
    영토 확장과 제도 개혁

    표트르 대제는 기존 질서를 파괴했다. 잘 알려졌듯 러시아 최초의 해군을 창설했고, 스웨덴 카를 12세와의 대북방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발트해 제해권을 확보한다. 러시아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여성의 지위도 서유럽 수준으로 향상됐다. 러시아에서 기혼 여성은 사람들 앞에서 언제나 머리카락을 숨겨야 했고, 모든 여성은 나이와 계층에 상관없이 얼굴과 손만 드러낸, 헐렁하고 몇 겹으로 된 옷을 입고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했다. 그는 여성들도 황위를 계승할 수 있게 했다.

    그는 "이전의 러시아는 이성과 지능을 사용하지 않고, 소문·미신·편견에 근거해 폭력을 행사했다"고 생각했다. 이복형과 함께 공동 황제로 집권하던 시기, 정적들에 의해 측근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났던 과거 때문이다. 저자는 "표트르 대제는 야만적인 행동을 야만적인 방법으로 극복해야 이성의 시대가 온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썼다.

    서유럽식 합리주의보다 권력욕과 광기(狂氣)를 이 행동파 개혁군주에게서 먼저 발견하는 건 어렵지 않다. 대제는 야만을 거부하지 않는다. 친아들이자 황태자였던 알렉세이를 고문치사하고, 정적은 죽은 자라도 부관참시하는 잔혹한 면모를 거듭 보인다.

    오스트리아로 망명한 황태자를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하고 러시아로 데려온 뒤 여론조작용 공개재판을 시작했다. 혐의는 오스트리아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암살하려고 했다는 것. 황태자가 정부(情婦)에게 "아버지가 만든 상트페테르부르크보다 모스크바를 선호하고, 해군 문제를 싫어하며, 러시아의 무력 정벌을 멈추겠다"고 말했다는 걸 증거 삼았다. 그는 황태자의 역모를 반개혁파를 공격하고 숙청하기 위한 기회로 썼다.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사형이 선고된 이후에도 고문을 멈추지 않았다. 황태자를 지지한 세력을 낱낱이 밝히라는 것이었다. 아들은 사형이 집행되기 전 고문 후유증으로 교도소에서 숨진다. 숨지기 전 마지막 고문 현장을 황제는 직접 지켜봤다.

    프랑스 화가 폴 들라로슈가 그린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 러시아를 개혁한 정복군주를 함포(艦砲), 세계지도, 서구식 콧수염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는 냉혹한 권력자로 때로 광기마저 드러냈다. /모노그래프·독일 함부르크 미술관 소장

    감탄을 자아냈던 서유럽 탐방도 사실은 황제의 특이한 사고방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해설한다. "표트르는 남 속이기를 좋아했고, 실제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집착'이 있었다"고 썼다. 서민적이라 평민을 가장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키가 2m가 넘는 장신 황제가 250명 규모의 사절단을 이끌고 움직이는데, 그가 가명을 쓰고 평민으로 가장한다고 해서 누가 속아주기나 했을까. 사실 서유럽에서 그의 유람 사실은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네덜란드에서 그가 일했던 조선소는 황제가 일한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온 사람들로 정상적인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부정부패를 없애려 했던 황제의 노력도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그는 '사형'까지 언급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작 최측근인 멘시코프의 비리는 눈감았다. 부정부패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는 투서가 궁정으로 날아왔다.

    그는 53세에 요로결석 합병증으로 숨졌다. 성공한 개혁 군주라는 평가를 받으며 업적은 부각됐고 약점은 가려졌다. 스탈린, 고르바초프, 푸틴… 러시아 권력자들은 러시아를 부강하게 한 그의 후계자를 꿈꿨다. 모스크바에는 30m 높이의 표트르 대제 동상이 세워졌다. 이 책은 역사 속 권력자를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시 확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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