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쿤데라는 즐기지만 하루키는…"


소설가 이승우는 최근 '사랑의 생애'라는 장편 소설을 내놓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일 뿐이라는 판단 아래, 색다른 시각으로 써내려갔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진다.

    입력 : 2017.09.01 06:54

    [나의 사적인 서가] 소설가 이승우
     

    이 소설가의 최근작 장편 제목은 '사랑의 생애'(예담刊)다. 철수나 영희의 생애가 아니라 사랑의 생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숙주일 뿐이라는 게 이 생각 깊은 작가의 판단이다. 그렇다면 작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소설가는 이야기의 숙주일 뿐, 진정한 주인공은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닐까. 물론 어떤 작가의 몸을 빌려 생(生)을 시작하느냐에 따라 성장의 속도는 다르겠지만. 대외 공개용 말고 조금 더 내밀한 작가의 책 고백. 이번 회는 동인문학상(지상의 노래), 대산문학상(생의 이면), 황순원문학상(칼) 수상 작가, 이승우(57)다.
    /일러스트= 안병현

    1. 당신의 가을 초입을 함께하는 책은.

    '작가의 책상'. 이 책은 아직 출판되지 않았다. 나는 가제본된 이 책을 한국 독자 가운데 누구보다 먼저 읽는 행운을 누렸다. 필립 로스, 토니 모리슨, 파블로 네루다, 수전 손탁, 테네시 윌리엄스, 조이스 캐럴 오츠 등 대단한 작가들이 책상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과 그들의 길지 않은 육성이 실려 있다. 사진을 찍은 질 크레멘츠는 소설가 커트 보니것의 아내다. 물론 커트 보니것의 사진도 실려 있다.

    나는 가끔 책을 읽다가 어떤 충동에 이끌려 표지 안쪽에 실린 작가의 얼굴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곤 하는데, 그럴 때 그 작가의 얼굴이 내가 읽은 문장을 보증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면 안심이 된다. 잘 알고 있는 작가인 경우도 그렇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는데, 작가의 얼굴이 실려 있지 않으면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독서에 방해가 될 때도 있다. 픽션인 소설을 읽으면서도, 아니 그럴 때는 유독 더, 내가 읽은 문장이 그 작가의 육성이기를 바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글'을 읽으면서 작가가 직접 '말'하는 것을 듣는 느낌을 줄 때 안심하는 심사를 나도 뭐라 설명하지 못하겠다.

    만일 얼굴이 아니라 사물로 작가의 초상화를 대신한다면, 그것은 아마 책상일 거라는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했다. 이 책에는 '어딜 가든 내 책상을 가지고 다닌다'는 문장이 나온다. 리처드 포드의 말이다. 딱 그런 느낌이다.

    요즘 읽는 책은
    '작가의 책상'
    얼굴 아닌 事物로 그린
    작가 초상화

    김애란 소설 읽다
    바늘로 찔린 듯 아파

    김정환 시인이 준
    독일어 성경 못 잊어

    2. 최근 읽은 책 중 당신을 울게 만든 책.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일부러 뛰어드는 에반. 자기 몰래 보증금을 빼낸 동거남에게서 배신감이 아니라 안도감을 느끼는 젊은 연인. 그리고 벽지를 바르며 입동을 맞는, 아이 잃은 부부. 김애란의 단편집 '바깥은 여름'에 나오는 인물들이다. 울었다기보다, 멍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작가의 용의주도함에 의해 적재적소에 박힌 결정적인 문장들이 바늘에 찔린 것처럼 아팠다.

    3. 그렇다면 웃게 만든 책.

    조해진의 '빛의 호위'. 우스워서가 아니라 좋은 소설을 읽었을 때의 온당하고 마땅한 반응으로서의 흡족한 웃음을 선물했다.

    4. 죄책감을 느끼지만 좋아하는, 당신의 길티플레저는.

    내가 쓴 책들? 내가 썼으니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데, 내가 썼으니 또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5. 당신 책장에 있다면 사람들이 놀랄 책.

    무슨 책이 있다고 한들 놀랄까? 혹시 '유럽 맥주 견문록'이 있다고 하면 놀랄까? 이 책은 '비어헌터'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기중이 2009년에 쓴 책이다. 유럽 나라별 맥주를 구미 당기는 사진들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정독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잘 띄는 자리에 꽂아두고 가끔 꺼내 본다.

    2014년 7월 3일 '한국 문학은 프랑스에서 어떻게 주목받을 수 있을까' 이승우 작가가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토론에 참석했다. /이덕훈 촬영기자

    6. 잊을 수 없는 책 선물은.

    몇 해 전에 김정환 시인에게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신약성경과 시편)을 받았다. 그 전해에 런던 고서점에서 발견한 셰익스피어의 희곡('오셀로'였는지, '맥베스'였는지 확실하지 않다. 100년 전쯤 출간된 손바닥만 한, 제본 상태가 안 좋은 양장본이었다.)을 그에게 선물했는데(어쩐 일인지 그 책을 발견한 순간, 그에게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답례로 시인에게 소장하고 있던 루터의 성경을 선물받았다. 성경 사이사이에 루터의 삶과 믿음, 신약성경과 시편 번역 과정에 대한 설명이 화보와 함께 들어 있는 책이다.

    물론 나는 그 책을 읽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배웠고, 대학원 입학 시험을 준비하느라 남영동의 한 입시학원에서 몇 달 독일어 문법 강의를 들은 것이 전부인 나에게 독일어는 띄엄띄엄 읽을 수는 있지만 뜻은 해독할 수 없는 기호이다. 그래도 가끔 아무데나 펼쳐 루터의 사진과 성경 속 이야기를 표현한 삽화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때때로 책은 내용이 아니라 생김새로, 그러니까 존재 자체로 무슨 말인가를 들려준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 나는 약간 신비주의자가 된다.

    7. 당신이 종교 관련 책은 기독교 관련만 읽는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오해 아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내가 이청준이나 밀란 쿤데라는 즐겨 읽고 재미있게 읽지만, 하루키나 제발트의 책은 즐겨 읽지 않거나 읽지 못하는 것과 같다.

    "셰익스피어 위로 책벌레가 지나갔어요"
    "생일 선물로 책을 줘? 거, 나쁜 친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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