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위로 책벌레가 지나갔어요”

두근두근 내 인생, 달려라 아비, 비행운 등등….
이름만으로도 독자들에게 신뢰를 받는 작가가 있다.
작가 김애란, 어느새 작가생활 15년차인 그의 서가에 가보자.

    입력 : 2017.08.18 06:54

    [나의 사적인 서가] 소설가 김애란
     

    작가 김애란(37)을 표현할 방법은 그가 발표한 소설 수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이렇게 정의할 수도 있다. 퇴고를 할 때,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다시 한 번 키보드를 내리치며 한 번 더 써보는 작가. 이번 여름에 나온 그의 소설집 제목은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刊). 안에 실린 단편 7편을 모두 새로 타이핑하며 다듬었다고 한다. 반드시 새로 써봐야 할까. “모든 문장을 의심하면서 다시 쓸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게 이 우직한 작가의 변이다. 대외 공개용이 아닌, 조금 더 내밀한 책 고백. ‘나의 사적인 서가’ 이번 회는, 김애란이다.
    /일러스트=안병현

    1. 당신의 이번 여름을 함께 하는 책

    우리는 어디로 가? 우리는… 여름을 찾아서. 여름은 어디 있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태양을 가리켰다. 저기, 해가 지는 곳에.”(‘해가 지는 쪽으로’ 최진영·민음사·24쪽)

    올여름에 나온 책입니다. 모든 것이 끝난 자리에서,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 어렵게, 한 번 더, 다시 출발해보는 이야기. 잿빛 도시에서 작가가 두 손으로 길어 올린 작은 초록이 얼마나 귀한지 여러분도 함께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2. 최근 읽은 책 중 당신을 웃게 만든 책

    ‘유물즈’(김서울 등·나이스프레스)

    올봄 독립출판물전문서점 유어마인드에서 구입한 책입니다. 현장에서 아무 정보 없이 골랐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쪽에서 이미 유명한 책이더군요. 이 땅의 오래된 것, 아름다운 것, 이상하고 다정하게 생긴 유물들을 향한 지은이의 사랑. 사랑을 쑥스러워하는 사랑. 저는 누군가가 좋으면 그 사람을 웃기고 싶어지는데 아마 이 책의 작가도 그러지 않았을까요? 가장 먼 과거의 유물과 가장 동시대적 유머 코드가 만나 튀밥처럼 퐁퐁 웃음을 자아내는 풍경이 매 페이지 정겹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진심으로 한국 곳곳의 박물관에 가고 싶어졌어요.

    한국시로 다시 쓰는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

    3. 선물 받은 책 중 잊을 수 없는 책

    ‘SHAKESPEARE POEMS SON NETS’(HARPERS·1895) 1895년 하퍼스 출판사에서 나온 셰익스피어 소네트 시집입니다. 출간된 지 무려 100년이 넘었으니 저보다 오래 산 책이네요? 책 정보를 확인하려 앞장을 열었더니 때마침 조그마한 책벌레가 나타나 누렇게 뜬 종이 위를 지나갑니다(비유가 아니라 실제로요). 저는 이 책을 10여 년 전 어느 극작가에게 받았습니다. 미국 모 대학에서 연극을 가르치는 할아버지 선생님이셨지요. 선생님이 한국에서 극작 워크숍을 진행하셨을 때 당시 조교였던 제가 일손을 거든 기억이 납니다. 이렇다 할 추억도 친밀도 없는 사이지만, 저의 데뷔 소식을 들은 선생님이 미국에서 공부 중인 제 친구 편에 이 책을 들려 보내셨습니다. 살아남을지 어떨지도 모르는, 전망이 불투명한 이국의 한 젊은 작가에게 먼 나라의 다른 작가가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였지요. 이 책을 열면 제일 앞장에 선생님이 또박또박 한글로 적어주신 여섯 글자 ‘애란, 축하해요, Howard’가 박혀있습니다.

    4. 죄책감을 느끼지만 좋아하는, 당신의 ‘길티 플레저’는.

    ‘전집 구매’ 혹은 ‘사놓고 읽지 않은 고전’이 그렇지 않을까요. 언제든 읽을 수 있다는 안도감과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죄책감을 동시에 주니까요. 저희 집에도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옙스키 전집이 있는데, 저 역시 3분의 1정도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함에도 아니 좋아하기 때문에 그 앞을 지나갈 때마다 뿌듯한 동시에 마음이 어둑어둑해집니다.

    100년 소네트 詩集
    첫 장 열었더니
    “정말 벌레가”

    좋아하는 인용구는
    “타인을 비판할 땐
    꼭 기억하라.
    다들 너처럼
    유리하진 않다는 걸”

    5. 책장에 꽂혀있음을 자랑하고 싶은 책은.

    ‘상상’ 창간호(1993). 결혼하며 배우자와 책을 합치게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제가 처음 보는 책들도 있었는데요, 이른바 1990년대 ‘잡지 전성시대’에 나온 영화, 음악, 문화 잡지가 많았습니다. 1993년, 그러니까 제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창간된 잡지 ‘상상’ 표지에는 ‘신세대 문학이란 무엇인가’ ‘비디오에 대하여 알고 싶은 두 가지 것들’ ‘신세대 작가들의 여행’ 같은 목차가 흥미롭게 박혀 있습니다. 잡지 뒤에 박힌 ‘하이텔 무료 이용 교실’ 광고도 신선하고요. 그래도 목차 중 유독 눈길을 끄는 건 작고하신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입니다. 표지 위에 겹치는 ‘공적 이슈’와 ‘사적 진실’이 잡지를 더욱 잡지답게 하지요? 저는 이 표지를 본 뒤부터 1993년을 박완서 선생님이 ‘쓰기 정말 어려웠을 그 소설’을 발표하신 해로 기억하게 되었습니다.

    6. 신작이 나오면 꼭 찾아 읽는 작가

    저는 전작주의자가 아니지만 신간 소식이 들리면 관심을 두는 작가들이 있습니다. 이언 매큐언이나 줄리언 반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이 그렇고요. 동시에 다시는 그 사람의 신작을 볼 수 없는 죽은 작가들 생각도 자주 합니다. 쉼보르스카나 아고타 크리스토프, 카버나 베게트가 살아 있다면 지금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하고요. 이렇게 얘기하고 나니 정말 읽고 싶네요.

    7. 가장 좋아하는 책의 인용구 하나.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위대한 개츠비’)

    교훈적인 문장을 선호하는 편은 아니지만 이 문구는 가슴에 잘 새기려고 노력합니다. 타인을 대할 때도 그렇고, 작가가 인물을 만들 때 역시 참고할 만한 자세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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