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기 하나미치'는 어쩌다 슬램덩크 강백호가 되었나

만화(漫畫)는 현실에 거울을 비춰 비현실의 천변만화를 보여주는 '만화경'(萬畵鏡)이다.
그래서 독자들이 선정한 10편의 만화 또한 갖가지 다채로운 매력을 뽐내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의 만화 <슬램덩크>가 1위에 올랐다.

    입력 : 2017.08.11 07:25

    [북캉스 TOP10] 내 인생의 만화 1위 '슬램덩크'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대원씨아이
    각 권 5000원(총 31권)

    온 힘을 다해 내리꽂는 강력한 덩크슛. 슬램덩크(Slam Dunk)는 만화 제목인 동시에 전율의 동의어이며, 멎어 있던 심근계에 거센 박동을 점화하는 제세동기라고 알려져 있다.

    일본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50)가 스물세 살 때 발표한 ‘슬램덩크’는 1990년부터 6년간 연재됐고 일본에서만 1억200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국내엔 1992년 소개돼 몇 차례 개정판을 거쳐 현재 누적 판매 1000만 부를 넘어섰다. 이미 스포츠 만화의 정전(正傳)이 된 이 작품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것이 조금 남사스러운 일일 수 있다. 신장 188㎝ 천둥벌거숭이 북산고 1학년 강백호가 농구부에 들어가 동료를 얻고 승부를 겨뤄나가는 성장의 기록. “왼손은 거들 뿐” “포기하면 거기서 시합 종료야” 같은 명대사를 적중시키며 성장기 독자의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손바닥 자국을 남겼다. 그러니 이 만화를 읽은 전국 청소년들이 왜 갑자기 눈시울이 빨개지고, 용돈을 털어 조던 농구화를 구매하고, 운동장 흙바닥으로 뛰쳐나가야 했는지 묻지 마시라.

    캐릭터는 이 만화를 스테디셀러로 밀어올린 근원적인 힘. 잠재력으로 무장한 신출내기 강백호, 극단적 에이스 서태웅, 돌아온 탕아 불꽃남자 정대만, 착하고 아리따운 매니저 채소연…. 아귀가 딱딱 맞는 이 한국식 이름은 왜색을 덜어내기 위해 당시 ‘슬램덩크’ 담당 편집자였던 장정숙(48)씨가 붙인 것이다. 장씨는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뒤져가며 친구들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말했다. 그러니 송태섭·채치수·윤대협과 같은 불멸의 이름은 지극히 현실인 것이다. 사쿠라기 하나미치(櫻木花道·강백호), 루카와 가에데(流川楓·서태웅)는 정서적으로 너무 멀리 있다.

    만화의 감동은 아무래도 이들의 땀이 마찰하며 피워올리는 뜨거운 체취에서 오는 것 같다. 다크호스 북산고와 지난 대회 우승팀 산왕공고의 전국대회 2차전 경기. 종료 직전, 1점 차로 뒤진 북산고의 서태웅이 개인 돌파를 시도하다 난관에 부딪힌다. 수비수들 틈으로 앙숙 강백호를 본다. “왼손은 거들 뿐.” 읊조리던 강백호가 패스를 넘겨받아 역전 점프슛을 성공시킨다. 온 힘을 다해 부딪치는 두 남자의 첫 하이파이브. 비록 강백호는 큰 부상을 입고, 북산고는 다음 경기에서 맥없이 패배해버리지만, 이 만화의 진앙은 승리에 있지 않으므로 관계가 없다. 그들은 좌절하지 않으며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



    농구왕·해적왕·음식왕 ··· "만화王 납시오."

    만화는 현실에 거울을 비춰 비현실의 천변만화를 보여주는 만화경(萬華鏡)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이 선정한 10편의 만화는 하나의 초점을 거부하는 실로 다채로운 색채무늬를 발산하고 있다.

    농구라는 구기 종목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슬램덩크’가 압도적 선두, 해적왕을 꿈꾸는 괴짜들이 연일 일본 내 최다 판매 부수 기록을 경신 중인 연재 20주년 ‘원피스’, 손오공을 중국이 아닌 일본산(産)으로 확실히 각인시킨 초능력 격투만화의 전설 ‘드래곤볼’까지 명성이 자자한 일본만화 작품이 톱3를 싹쓸이했다. ‘망가’의 힘은 강력한 것이어서 ‘명탐정 코난’(6위)과 ‘몬스터’(9위) 등을 합치면 6편이 일본 만화였다.
    국산 만화는 고참들이 자존심을 지켰다. 웹툰에도 인생의 깊이가 가능함을 증명한 윤태호의 ‘미생’(6위), 미식 열풍을 타고 식도락가의 필독서가 된 허영만의 ‘식객’(7위), 고인이 된 고우영 화백이 1978년부터 신문에 2년간 연재했던 ‘고우영 삼국지’(10위)가 높은 지지를 얻었다.

    한·일 순정만화가 나란히 4·5위를 차지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만화 주제곡으로도 친숙한 ‘캔디 캔디’와 신화적 세계관을 고집하는 신일숙의 대표작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 그 주인공. 설문에 참여한 1만722명 중 여성 응답자가 72%였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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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화 '검정고무신'과(왼쪽) 만화 '은하철도 999'(오른쪽)/투니버스,조선일보DB

    100% 남성으로 구성된 조선일보 문학·출판팀의 취향은 액션 판타지를 향했다. 특히 외계 기생 생물이 지구인의 뇌에 들어가 육체를 조종한다는 상상에서 출발하는 ‘기생수’나 광기의 전쟁터를 누비는 전사의 투쟁기 ‘베르세르크’, 식인 거인과의 대결을 그린 ‘진격의 거인’은 그림체만으로 압도적인 흡인력을 과시하는 작품. 모두 19세 미만 구독 불가지만, 만화는 애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그저 잔혹하기만 했다면 명작의 칭호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일본 만화의 강세는 지속됐다. 자신이 살려낸 환자가 살인마였다는 사실을 알게 돼 그 살인마를 죽이기 위해 떠나는 의사 ‘몬스터’(독자 투표)와 어릴 적 친구끼리 나눈 장난스러운 음모가 30여 년 뒤 전 지구적 재앙으로 현실화되는 ‘20세기 소년’(기자 투표)이 모두 리스트에 올라, 원작자 우라사와 나오키(57)는 독자와 기자의 지지를 얻은 유일한 작가로 꼽혔다. 불사의 몸을 위한 꼬마 철이의 우주여행기 ‘은하철도999’와 순수한 소년의 피아니스트 성장기 ‘피아노의 숲’, 청춘 야구 만화의 교본 ‘터치’는 만화의 내핵에 자리한 ‘꿈’의 메타포를 최대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60년대를 따뜻하게 회상하는 ‘검정 고무신’과 귀신을 부리는 암행어사의 활극 ‘신암행어사’도 한국 만화가의 자존심을 세웠다.

    월간 산 만화 ‘악돌이’ 550회 연재 박영래 화백
    만화방 아들, 웹툰의 새 판을 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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