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 힙합의 외침

힙합을 마이너리그로 칭할 때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 각종 음원차트에서 힙합이 상위권을 차지하며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힙합은 더이상 마이너가 아니다. 메이저리그 이다.

    입력 : 2017.08.11 07:50

    [음악]
     

    “Show me the money.”

    1996년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서 스포츠 에이전트인 제리 맥과이어(톰 크루즈 분)에게 미식축구선수인 로드 티트웰(쿠바 쿠딩 주니어 분)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나에게 돈을 보여줘.”

    “네가 나에게 얼마나 줄 수 있는데?”라는 의미다. 이 직설적인 말은 미국인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영화 대사 3위에 오를 정도로 ‘명대사’가 됐다.

    한국에서는 같은 이름의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 여섯 번째 시즌을 맞고 있다. 지난 시즌에 비해 세 배 정도 되는 총 1만6000명이 지원했고 힙합의 고장인 미국 LA와 뉴욕에서도 예선전이 진행됐다. ‘쇼미더머니’라는 노골적인 이름을 붙인 이유는 관객이 이들의 무대를 평가해 순위와 상금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의 우승자는 총상금 1억원과 음원 발매, 대형 힙합 콘서트에 참여할 기회와 협찬사의 자동차를 상품으로 받게 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더 이상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아니다. 엄연한 메이저리그의 이야기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길 거야

    ‘거리의 시’ ‘저항의 리듬’이라 불렸던 힙합이 주류가 된 이유는 뭘까. 힙합은 1970년대 미국 뉴욕의 브롱스 지역에서 시작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히스패닉 등의 커뮤니티에서 태어난 문화다. 이들은 가난했으나 분방했다. ‘힙합(hip hop)’이라는 이름 자체가 ‘통통 튀는’ ‘생기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처음에는 파티의 DJ가 음악을 틀고 중간중간에 즉흥적으로 뱉는 말로 시작했다. 이들은 분위기를 이끄는 사회자 역할을 했다. 래퍼의 이름 앞에 MC, DJ 등이 붙는 이유다.

    ‘즉흥적으로 뱉는 말’로 시작한 ‘랩’은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마음의 소리’다. 다른 사람이 대신 써줄 수 없고, 그러는 순간 ‘가짜’가 된다. 때문에 랩의 라임이나 리듬, 메시지의 돌파력은 래퍼의 자질을 구성한다. 이 자질을 겨루는 게 배틀이고 오디션이다. 지난 시즌인 ‘쇼미더머니’ 시즌 5의 우승자이자 ‘쇼미더머니가 배출한 최고 랩스타’라 불리는 비와이는, 빠른 리듬 안에서도 숨 한 번 몰아쉬지 않고 명확한 발음과 발성으로 랩을 전달해 찬사를 받았다. 이 전달력을 ‘딜리버리(delivery)’라고 부르는데, 비와이의 경우 발음·딜리버리·플로(흐름)·리듬감 면에서 ‘흠 잡을 데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와이라는 빅스타의 탄생은 다시 한 번 ‘쇼미더머니’의 흥행을 부채질했다. ‘제2의’ 비와이를 꿈꾸는 이들이 경연장에 몰려들었다. 2012년 첫방송을 시작한 이래 시즌을 거듭할수록 흥행성과 인지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뮤지션도 “힙합은 이제 주류 음악이 됐고, 그만큼의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이를 가장 절감하는 게 한국 힙합의 전설 타이거JK다. 그는 힙합 1세대다. 한국 힙합의 역사를 담은 책 ‘힙합하다’에는 당시 그의 인터뷰가 담겨 있다.

    “1집 당시 인터뷰를 하면 저한테 꼭 물어봤던 게 랩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라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첫 문장을 ‘지’로 끝내고 다음 문장을 ‘어’로 끝내면 안 된다’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웃음)”

    ‘쇼미더머니’ 시즌 5 우승자 비와이.
    ‘지금’ ‘여기’의 힙합, 너와 나의 마음의 소리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트렌드로 만드는 견인차가 됐다. 매니아층의 취향이던 힙합을 ‘너와 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 ‘한국 힙합, 열정의 발자취’를 공저한 평론가 김봉현은 “래퍼들이 돈과 성공에 대한 욕망을 드러낼 때, 기성세대에는 이것이 ‘속물주의’이지만 청년세대에는 생존이다. 힙합의 이런 면모는 ‘쇼미더머니’를 통해 한국 청년을 관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랩 좀 한다는 사람들은 다 모여 있다”는 평가를 받는 ‘쇼미더머니’는 청년의 삶 그 자체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이야기한다. 지난 시즌 가장 화제가 된 곡 중 하나는 샵건의 ‘비행소년’이다. 그가 처음 집을 나와 성신여대 앞 바퀴벌레 많은 네 평(13㎡)짜리 방에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성공할 수만 있다면/ 나 무릎이라도 꿇지 뭐 어/ 자초한 길 끝까지 가야지/ 엄마 당신의 청춘을/ 내가 갚아줄게 하나씩/ 애비 없는 자식이라며/ 욕먹었던 양아치/ 그 양아치가 TV에서/ 랩 하지 이렇게/ 나 이제 날아볼게.”

    비행소년이 기어이 날아올라 ‘비행’하겠다는 이야기에 객석에 있던 샵건의 어머니는 물론 숱한 불효자들이 눈물을 훔쳤다.

    /MNET 쇼미더머니6 방송화면 캡처
    이제 힙합은 래퍼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트렌드에 가장 민감한 광고계에서 힙합을 차용한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쇼미더~’를 붙인 제품은 차고 넘치고, 제품설명을 랩으로 소화하는 장면은 이제 흔하다. MBC ‘무한도전’은 한국의 역사를 배우는 툴로 ‘랩’을 사용해 경연을 벌였다. 배우 소지섭은 ‘힙합’을 스트레스의 해방구이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매개체로 사용한다. 인터뷰에서 그는 “배우는 주어진 대사를 하는 사람이고 노래는 내 얘기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20년 차 배우인 그의 행보에 힙합은 다소 생뚱맞은 이야기다. 그는 “앞으로도 힙합으로 원대하게 성공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게 연기에 도움을 준다”고 했다.

    ‘쇼미더머니’도 원대한 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여기의 척박한 현실을, 즐기며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궁리다. 김봉현 평론가는 힙합을 다시 이렇게 정의한다.

    “부모 세대는 ‘판검사’가 곧 인생의 성공이었고, 먼 미래에 잘살기 위해 기꺼이 현재를 희생했으며,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각자의 꿈도 너무나 다양해졌고, 보장받지 못할 미래보다는 현재의 삶을 즐기려고 하며, 자기가 할 말은 확실히 하고 싶어한다. 힙합은 ‘한 번뿐인 인생, 현재를 즐기며 너의 꿈을 좇으라’고 말한다. 래퍼들이 무대 위에서 ‘밑바닥에서 내 힘으로 정상의 자리까지 왔다’고 웅변할 때 그들은 그 어떤 음악보다 거대한 에너지를 흡수하며 자기 삶의 전의를 다진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68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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