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는 과거에서 온 메신저… 전담 박물관 설립해야”

한국의 '미라' 에 관한 연구는 파평 윤씨 미라와 함께 시작됐다.
파평 윤씨 미라는 김한겸 교수를 본격적으로 미라 연구로 이끌었고
그는 한국에 몇 안 되는 미라 연구자로 왕성히 활동중이다.

    입력 : 2017.08.11 07:40

    [사람들] 미라 전문가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
     

    “오랜만입니다.”

    관 속으로 얼굴을 드밀며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가 인사를 건넸다. 다정한 눈빛이었다.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머뭇거림으로 인사를 대신하며 기자도 관 옆으로 다가갔다. 아담한 골격, 앞가르마를 해 뒤로 쪽을 찐 흔적이 있는 머리 모양의 여성이 관 속에 누워 있다. 양손은 가지런히 아랫배 앞에 모으고 있다. 그녀의 가족이 눈에 담았을 마지막 자세 그대로다. 추운 날 먼 길을 떠난 걸까, 한쪽 발에 신겨진 버선이 제법 두툼하다. 버선을 지은 사람도, 신긴 사람도 상상조차 못 했을 터다. 500여년 후 어느 봄날 고인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줄은. 그녀는 2010년 5월 9일 경기도 오산 건설현장에서 발굴된 ‘오산 6미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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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코끝에 소나무 냄새가 감돈다. “미라에게선 송진 냄새가 난다.” 기자의 표정을 읽은 듯 김 교수가 말했다. 7월 25일 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장례식장 내 부검실이었다. 김 교수는 한국에 몇 안 되는 미라 연구자다. 몇 명이라고 해봤자, 본격적 연구자는 김 교수 외엔 신동훈 서울대 의대 교수 정도다.

    김 교수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과 대한극지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대한병리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 김 교수가 연구한 미라는 모두 12구.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가장 기억에 남는 미라는?” 망설임 없는 답이 돌아왔다. “역시 파평 윤씨 미라다. 미라 연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게 해준 분이니까.”

    한국의 본격적인 미라사(史)는 파평 윤씨 미라와 함께 시작됐다. 2002년 9월 경기 파주시 교하면 파평 윤씨 종중 묘지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다. 사내아이를 몸 안에 품고 있었다. 그녀 이전까지 한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도 출산 중 사망한 미라는 발견된 적이 없다. 젊은 나이에 숨진 딸아이가 안타까워서였을까. 무덤은 타임캡슐 그 자체였다. 입고 있는 옷은 물론 한글편지 등 다양한 물품 103점이 발굴됐다.

    ‘병인윤시월’ 옷고름에 한글로 적혀 있던 5글자는 그녀가 1566년 겨울에 사망했다는 걸 알려줬다. 당시 미라 부검 및 연구를 지휘한 이가 바로 김 교수다. 병리과 전문의이다 보니 질환부터 사인까지 폭넓게 연구할 수 있었다. 파평 윤씨 미라는 이후 김 교수를 다른 미라에게 안내했다. 건설 작업이나 이장 도중 미라가 발견되면 김 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달려가서 목곽째 싣고 와 사인을 찾고 신체 상태를 분석하는 일이 반복됐다. 후손들이 다시 모셔간 적도 있다. 파평 윤씨 미라의 경우는 종중에서 연구를 위해 시신을 기증했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8구의 미라가 김 교수가 일하는 고려대 병원에 남아 있다.

    ㅡ왜 어떤 시신은 미라가 되나.
    “조선 전기, 귀족, 겨울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만나는 경우다. 조선 전기에 국가적으로 회곽묘를 권장했다. 관 주변에 생석회 갠 물을 부어 굳히는 방식이다. 마치 관 전체를 시멘트로 밀봉해놓은 것처럼 된다. 이때 생석회에서 열이 발생한다. 관 내부가 무균 상태가 된다. 시신이 썩지 않을 충분조건이 갖춰진단 얘기다. 생석회는 당시 공급이 한정돼 있었다. 양반층밖에 쓸 수 없었다. 겨울에 사망해야 부패가 시작되기 전에 매장될 가능성이 높다. 임진왜란 이후부턴 물자가 귀해져서인지 매장 방식이 또 바뀌었다. 미라는 조선 전기에 조성한 묘에서 집중적으로 나온다.”

    2011년 5월 3일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 쓰레기 제2매립장 조성현장에서 안정(安定) 나(羅)씨 종중 분묘(14기) 이장 중 조선시대 미라(4구)와 복식(의류), 명기(明器) 등이 발굴돼 문화재 관련 직원들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 /조선DB

    그렇다면 조선시대 왕 중 미라가 된 왕이 있지 않을까? 실제로 왕족이 미라로 발견된 사례가 있다. 1999년 7월 경기도 하남 능창대군 묘에서였다. 이장 중이었다. 능창대군은 인조의 동생이다. 후손들은 대군이 미라가 돼서 나오자 서둘러 재매장을 했다고 한다. 글만 보고 추측하던 조선 왕족의 실체를 생생히 목격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셈이다.

    ㅡ첨단과학 시대에 미라가 어떤 의미가 있나.
    “두 가지다. 하나는 질병의 역사다. 조선왕조실록에 이런 부분이 있다. ‘왕이 피를 토하다 죽었다’. 사학자들은 왕이 결핵으로 죽었다고 설명한다. 어떻게 확신하나? 결핵이란 질병이 그 당시 한반도에 있었는지 확신할 수 있나? 각혈 때문이라면 폐디스토마일 수도 있다. 추측과 실증은 다르다. 미라가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두 번째는 유전자 연구다.”

    ㅡ미라도 DNA 검사가 가능한가.
    “가능하다. 한국 미라는 조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 가능성이 높다. 3차원 프린팅 기술을 이용하면 내부 장기의 질병도 유추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점점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게 됐다.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아이스맨 외치의 경우, 신체정보와 유전정보를 해독해 병력, 생활습관 심지어 목소리까지 복원했다. 외국에선 단순한 복원 차원이 아니라 현대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도 미라 연구로 찾을 수 있다고도 말한다. 우리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나 혼자선 못한다.”

    무기력감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검도(7단)와 수영 등 운동을 즐기는 김 교수는 거의 항상 활달한 모습이었다. 걱정을 털어놨다.

    “지금까지 연구한 미라를 고려대 안암병원과 구로병원에 각각 4구씩 모셔놨다. 개인적 취미로 수집한 게 아니다. 이렇게라도 모셔두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했다. 흩어져 화장되는 등 유실될 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언제까지 고려대 병원에 모셔둘 수 없다. 제가 학교를 퇴직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EBS 원더풀 사이언스 - 과학, 미라에 말 걸다. /조선DB

    세상에 돌아온 후에도 고려대병원 해부학실습실에서 잠자고 있는 파평 윤씨 미라와는 달리, 외국의 주요 미라들은 화려한 삶을 산다. 이탈리아의 아이스맨 외치가 대표적이다. 5300여년 전 생존했던 외치는 알프스 인근에서 발견됐다. 외치를 전시 중인 볼자노시박물관은 주요 관광 명소가 됐다. 국경 부근에서 발견된 탓에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간에 소유권을 두고 법적 분쟁이 일기도 했다. 리투아니아에서도 미라가 발견됐다. 스위스 취리히대학이 전담해 연구 중이다. 아예 ‘미라 프로젝트’라는 연구팀을 만들었다. 수시로 연구 성과를 발표한다. 중국에는 ‘마왕퇴’ 미라가 있다. 후난성 창사시에 있다. 1971년 마왕퇴 동산에서 방공호를 파던 중이었다. ‘창사국’의 재상 리캉의 가족무덤이 발견됐다. 리캉은 기원전 150년경 사망한 걸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일가족 중 부인만이 미라로 발견됐다. 2100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시신의 보존 상태가 좋다. 실제 무덤을 축소 재현해 놓은 박물관은 규모가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미라는 공룡과 함께 자연과학 분야의 양대 스타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2003년 9월 파평 윤씨 전시회가 고려대 박물관에서 열렸다. 당시 길게 줄 서 있던 인파 속에 기자도 섞여 있었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이집트 미라전엔 총 34만3547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오산 미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 교수가 고개를 들었다. “왜 외국 미라는 되고 한국 미라는 안 되나. 미라를 전담해 연구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이 설립돼, 그곳에 이분들을 모셨으면 얼마나 좋겠나. 후손들에게 전해줄 말이 있어 세월을 건너 나타나신 분들 아닌가. 그 메시지를 제대로 듣고 싶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68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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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테이블] '역사 공부의 聖地'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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