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은 어떻게 동양을 지배했나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소리를 하는 순간
유럽 우월주의, 사대주의 등 큰 반발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서양, 동양, 지배' 에 관해 문명의 발전을 이해하고자 한다.

  • 장강명 소설가 
  • 편집=박은혜

    입력 : 2017.08.07 13:34

    [장강명의 벽돌책]
     

    장강명 소설가.

    이언 모리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단 세 단어로 이렇게 도발하기도 쉽지 않겠다.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말인즉슨 지금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렷다? 무슨 근거로? ‘서양’은 뭘 뜻하고, ‘지배한다’는 개념의 의미는 뭔데? 책 제목이나 두께를 보아하니 논리적인 이유를 제시하겠다는 분위기인데, 설마 ‘서양의 지배’가 당연하다고 말할 참이야? 이거, 현학의 가면을 쓴 신종 유럽 우월주의 아냐?

    어떤 사람들은 정반대로 시큰둥할지도 모르겠다. 그거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총, 균, 쇠’에서 다 한 얘기 아닌가, 문명 발달 초기에는 세로로 길쭉한 대륙보다 가로로 늘어진 대륙이 유리하고, 중기에는 그런 유라시아에서도 해안선이 단조로운 중국보다 땅 모양이 들쭉날쭉한 유럽이 더 조건이 좋다고….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책 사진.

    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이언 모리스는 이런 두 종류 비판에 대한 반론을 먼저 제시한다. 우선 ‘서양, 동양, 지배’라는 단어를 상당히 좁게, 그리고 꽤 설득력 있게 정의한다. 그리고 서양의 우세가 필연이었다고 보는 ‘장기고착이론’은 자연환경 요소를 너무 강조하고, 반대인 ‘단기우연이론’은 산업혁명이 유럽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에만 주목한다고 지적한다. 두 관점 모두 산업혁명 이전 수천년의 사회사를 간과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수천년에 집중하는데, 읽는 동안 저자의 진짜 질문은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가 아니라 ‘문명은 어떻게 발전하는가’임을 깨닫게 된다. 책은 거대한 시야로 동서양의 역사를 살피며 사회학도 지리적 요소만큼 중요함을 보여준다.

    동서양 어떤 강대국도 수백년 이상 권세를 누리진 못했다. 초기에 그 나라를 일으킨 힘이 몇 세대 뒤에 반드시 걸림돌이 됐다. 그때 주변부 세력이 ‘후진성의 이점’을 업고 새 강자로 등장한다. 동양도 서양도 비슷한 단계에 대붕괴를 겪었다. 중앙집권국가가 출현하기 직전에 한 번, 제국이 농경사회의 한계에 부딪힐 때 다시 한번이다.

    익히 알던 사실(史實)을 재구성하는 관점의 위치가 까마득히 높아서, 웅장하다고 해야 할지 장쾌하다고 해야 할지 하여간 읽는 내내 희한한 흥을 맛보게 되는 책이다(작가도 외계인의 시선으로 보자고 독자를 부추긴다). 로마-한나라, 르네상스-주자학, 합스부르크 왕가-도요토미 히데요시, 테오도라 황후-측천무후라는 식의 짝짓기를 접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저자가 고전과 대중문화 양쪽에 모두 해박하고 유머와 재치도 빼어난 데다 대체역사소설 기법까지 능수능란하게 써먹는 특급 글쟁이인지라, 10 06쪽이 후다닥 넘어간다.

    우리 또래는 三國志를 읽어서 망했다
    극한의 경험 ‘전쟁’에서 계시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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