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부터 밭 갈아야, 베이징 아파트 살 수 있다고?

'바링허우' 는 중국에 1가구 1자녀 정책이 도입된 후 태어난 세대이다.
단군 이래 최고학력을 자랑하지만 고학력자가 넘쳐나 경쟁력을 잃은 세대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링허우의 다른 이름은 바로 '개미족' 이다.

    입력 : 2017.08.07 13:34

    [Books]
     

    바링허우 책 사진.

    바링허우
    양칭샹 지음|김태성 옮김|미래의창
    312쪽|1만4000원

    “우리가 얻은 것은 쇠사슬이요, 잃은 것은 세계 전체다.”

    중국 런민대 문학박사 출신이자 중국현대문학관 객좌연구원인 저자 양칭샹(37)은 1980년대 태어난 중국 ‘바링허우(80後)’ 세대를 대변하며 이렇게 썼다. 바링허우는 중국에 1가구 1자녀 정책이 도입된 1979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 개혁개방의 과실을 자라나면서 누렸던, 소비 수준은 높지만 곱게 자라 버릇은 없는 ‘소황제(小皇帝)’ 세대로 익숙하다. 아쉬울 것 없이 행복해야 할 사람들. 그러나 1980년에 태어난 바링허우 출신 저자는 G2로 부상한 중국의 그늘에 청년들의 고단한 현실이 숨겨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태어나 자본주의 체제에 힘겹게 적응하며, 폭등하는 부동산 값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먼저 중국 젊은 층에게 나돈다는 블랙 코미디부터. 베이징에 있는 5억원짜리 30평대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은? 농사꾼은 당나라(618~907년) 때부터 지금까지 밭을 갈아야 하고, 막노동자는 아편전쟁(1840) 때부터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화이트칼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50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먹고 마실 돈도 없다) 월급을 모아야 한다. “인테리어, 가구, 가전제품 가격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양칭샹의 첨언. 소위 ‘고급 두뇌’인 저자의 경험담이기도 하다. 2004년 1년에 4000위안(약 66만원)이었던 그의 방값은 대학원을 마칠 즈음인 2009년에는 3만 위안으로 7배 이상 뛰었다.

    1980년대 30만명이었던 중국 대학 정원은 2000년대 들어서는 400만 이상으로 급팽창했다. 바링허우는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단군 이래 최고학력’이지만 고학력자가 넘쳐나서 경쟁력을 잃은 세대다. 그래서 바링허우의 다른 이름은 ‘개미족(蟻族)’이다. 월세 낼 돈이 없어 개미처럼 좁은 공간에서 집단 거주하는 처지에 빗댔다.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이들은 화장실 칸막이조차 없는 원룸에 몇 명씩 함께 살아간다.

    ‘개미족’으로 불리는 중국 청년들이 화장실 칸막이도 없는 원룸에서 함께 살고 있는 모습. 중국에서 1980년부터 1989년 사이 태어난 ‘바링허우(80後)’ 세대는 연애, 취업, 내 집 마련 등이 어려운 중국판 ‘N포 세대’다. /웨이보

    경제적으로 열악한데 정신적으로도 빈곤하다는 지적이 뒤를 잇는다. 저자는 ‘역사의식의 부재’가 이유라고 한다. 부모 세대인 우링허우(1950년대 생)는 가난했을지언정 경쟁에서 자유로웠고, 대기근과 문화대혁명을 극복하고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는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었다. ‘한강의 기적’이 ‘88만원 세대’ ‘N포 세대’의 것이 아닌 것처럼 중국의 ‘대국굴기’ 역시 바링하우의 자랑거리일 수 없다.

    2008년 원촨 대지진 당시 앞다퉈 자원봉사자로 나섰던 바링허우를 저자는 냉담하게 바라본다. “지진이 역사적 축제이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이 재미있는 연극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우리(바링허우)는 이 연극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어째서 재난이 거대한 축제로 변질되는가. 이야말로 우리에게 역사의식이 부재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아닐까.”

    이들 앞에 놓인 건 무한경쟁과 이미 올라갈 사다리가 끊긴 현실이다. 프티 부르주아지를 선망하며 도회적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소설을 열심히 읽고 ‘로또 당첨되는 법’ 따위의 책을 사본다. 그러나 그 도피는 깨질 수밖에 없는 꿈이다.

    바링허우 세대 80년대생 中 박사
    자본주의에 힘겹게 적응하는
    G2시대 중국 청년 현실 그늘 르포
    화장실 칸막이 없는 원룸 거주도
    韓·中 비슷한 경제 성장 거쳤지만
    중국서 기존 체제 비판은 어려워

    중국 소설가 위화는 에세이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에서 “유럽인이라면 400년에 걸쳐 겪었을 파란만장한 변화를 중국인은 불과 40년 만에 겪었고, 현실 속 격차는 중국인이 서로 다른 시대를 살게끔 분열시켰다”고 썼다. 저자의 문제의식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갈수록 우리 세대가 거대한 환상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된다”고 적었다.

    저자는 한국의 ‘88만원 세대’처럼 “청년이여 토플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라는 명확한 구호를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허덕이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믿으며 노력하는 바링하우들의 모습을 심층 인터뷰를 통해 조명한다. 빈털터리에서 IT기업을 일군 광둥성 둥관(東莞)의 기업가, 그래도 부모세대보다는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선전의 한 회사 직원 등의 육성을 들려준다.

    경제적으로야 비슷한 압축성장을 거쳤지만 한국과 중국은 정치적으로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중국에서 기존 체제를 날 세워 비판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 얼핏 성공한 바링허우 인터뷰는 ‘그래도 중국에 사다리는 남아 있다’고 말하며 중국 당국을 달래기 위한 ‘알리바이’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며 사는 중국 장삼이사(張三李四)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한 세대 전체가 실패를 마주하고 있다면 이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는 저자의 문제의식은 책 전반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문학 전공자이자 시인 출신으로 중국 당대 문학 텍스트를 분석하며 논지를 펴는 모습도 능숙하다. 엄밀한 사회과학적 접근과 통계 정보가 부족한 부분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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