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보다 집중해서 읽은 미국판 ‘살인의 추억’

194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은 70년이 지난 지금도
범인을 밝히지 못했고 아마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이 사건을 소설로 풀어낸 미국판 '살인의 추억', 블랙 달리아를 읽어 보자.

  • 장강명 소설가 
  • 편집=박은혜

    입력 : 2017.07.21 05:00

    [무더위 날려줄 '추리·범죄 소설']
     

    장강명 소설가.

    블랙 달리아(전 2권)
    제임스 엘로이 지음 | 이종인 옮김 | 황금가지
    각 322·302쪽 | 각 8500원

    1947년 1월 15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주택가 길거리에서 벌거벗은 여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여인의 이름은 엘리자베스 쇼트. 나이는 만 22세, 배우 지망생이자 웨이트리스였다. 소설이 아닌 실제 사건이다. 그것도 엄청나게 유명한.

    희생자가 ‘고작’ 한 명인 살인사건이 그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시신이 너무 끔찍해서였다. 여기서 구체적인 묘사는 하지 않겠다. 쇼트는 산 채로 오랫동안 고문을 당한 것 같았다. 과연 인간이 인간에게 이런 짓을 저지를 수가 있는 건가, 의심스러워질 정도의 참혹함이었다. 십자가형이 자비로워 보일 지경이었다.

    블랙 달리아 책 사진.

    어마어마한 수의 경찰 인력이 수사에 투입됐다. 그런데 범인을 잡지 못했다. 자기가 범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기사가 줄었다”고 지적하고는 피해자의 물품을 보내주겠다고 했다. 다음 날 정말 그 신문사로 쇼트의 명함, 주소록, 출생증명서가 배달됐다. 그런데도 그걸 누가 보낸 건지 끝내 알 수가 없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당시 언론이 쇼트에게 붙인 선정적인 별명이 ‘블랙 달리아’였다. 한 해 전에 ‘블루 달리아’라는 영화가 있었다. 황색언론들은 그 영화의 이미지를 빌려, 쇼트를 착 달라붙는 검은 옷을 입고 다닌 요염한 여자로 왜곡해서 그렸다.

    여기까지가 실제로 있었던 블랙 달리아 사건의 개요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았고,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증거가 새로 나왔다느니, 이제야 겨우 진상이 밝혀졌다느니 하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렇게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판 화성연쇄살인사건이다.

    그렇다면 제임스 엘로이의 두툼한 소설 ‘블랙 달리아’는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살인의 추억’처럼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의 두 형사가 실제 사건을 수사하고 사건 관련자를 만나며 진범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형사들이 점점 미쳐간다는 점도 똑같다. 제정신으로는 오래 들여다볼 수 없는 문제인 것이다.

    누구나 자문하게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법은, 경찰은, 하느님은, 어디에 있었나? 도대체 이런 일을 저지른 자는 어떤 인물인가? 그놈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영화 '블랙 달리아' 포스터 사진.

    엘로이는 거장의 솜씨로 이 질문들에 정면으로 맞선다. 할리우드 드림, 배우 지망생을 착취하는 포르노업계, 신흥 부동산 재벌과 부패한 경찰에 이르기까지, 2차 대전 직후 들뜨고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상이 책 속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생동감 넘치게 되살아난다.

    이 소설의 야심과 박력은 어느 정도는 작가의 개인사에서 나왔다. 엘로이가 열 살 때 싱글맘이었던 그의 어머니는 외출을 나갔다가 로스앤젤레스 인근 거리에서 살해당한 채 발견됐다. 이 사건 역시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 엘로이는 자신이 이후 어머니와 쇼트의 죽음을 동일시하며 강박적으로 블랙 달리아 사건에 매달렸다고 밝혔다.

    영화 ‘살인의 추억’과 달리 이 소설에서 주인공 형사는 마지막에 진범을 붙잡는다. 그 추리 과정도 그럴싸하다. 오락물로서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얘기다. 참고로 말하자면 소설 ‘블랙 달리아’는 내가 태어나서 읽은 모든 인쇄물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물건이기도 하다. 수능 시험문제도 이렇게 집중해서 읽지는 않았다. 강력 추천한다.

    '추리소설 쓰는 변호사' 도진기의 등골 쭈뼛하게 하는 추리소설 5
    '밀실 증발' 수수께끼를 한 방에 푸는 지적 쾌감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