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실 증발' 수수께끼를 한 방에 푸는 지적 쾌감

소설쓰는 도진기 변호사가 추천하는 조금 색다른 추리소설 '망량의 상자'
책의 표지만봐도 섬뜩함이 피부로 느껴진다.
소설 속 미해결 사건들의 전개를 짚어보며 무더운 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보자.

  • 도진기·소설쓰는 변호사
  • 편집=오현주

    입력 : 2017.07.21 05:00 | 수정 : 2017.07.21 10:08

    [books] 무더위 날려줄 '추리, 범죄 소설' 망량의 상자

    결국 이 책까지 오고 말았다. 추리소설 추천 의뢰를 가끔 받는다. 그동안은 내 취향과 대중의 취향 사이 교집합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말해왔다.
    말하자면 될 수 있는 한 많은 독자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소설들이다. 소개하는 나도 욕을 먹거나 좀 이상한 사람 아니냐는 말을 들을 위험이 적은 소설들이다. 하지만 물량이 다했고, 결국 '망량의 상자'가 나오고 말았다.
    망량의 상자(전 2권)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각 512쪽 | 각 1만5000원
    /손안의 책
    연결점이 없어 보이는 사건이 병렬적으로 일어난다. 환상소설가 구보 슌코는 기차에서 소녀의 목이 든 상자를 품에 안고 여행하는 남자를 만나는 이야기를 발표한다. 사춘기 소녀 요리코는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가진 동급생 가나코를 선망하며 같이 기차 여행을 떠난다. 가나코는 기차에 치여 중상을 입고, 요리코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한편 도쿄 서부지역에서는 여자의 잘린 팔다리가 잇달아 발견된다. 사건 취재에 나선 편집자 도리구치와 소설가 세키구치는 길을 잘못 들어 거대한 상자 모양의 기묘한 건물에 도착한다. 가나코는 재계 거물의 손녀였고, 그 요새 같은 건물은 의식불명 상태인 가나코가 연명 치료를 받는 곳이었다. 그런데 돌연 가나코를 유괴하겠다는 협박장이 날아든다. 그리고 경찰을 비롯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가나코는 홀연히 사라진다.
    맥락 없는 전개에 독자들은 어리둥절해진다. 가나코의 '밀실 증발'에는 거의 정신이 혼미하다. 괴기·환상·SF 여러 요소가 섞여 있지만 결국 추리로 돌아간다. 마지막에는 따로 노는 것 같던 미해결 사건들이 자석 퍼즐처럼 한방에 맞추어지는 대단한 지적 쾌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더해지는 오싹한 느낌은 이 작품을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퇴근길 벤치에 앉아 후반부를 다 읽었다. 집을 바로 앞에 둔 지점이었는데, 도무지 중간에 끊고서 귀가할 수가 없었다. 책을 덮을 때 비로소 입을 벌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조선일보DB
    '페이지터너'라는 주제와 조금 들어맞지 않는 부분도 있다. 책장을 파라락 넘기게 되는 시점은 초중반부와 마지막 100페이지다. 나머지는 뻘밭의 발걸음처럼 더뎌진다. 주된 원인은 탐정 교고쿠도의 장황한 객담(客談)이다. 작자의 취미를 반영해 이 탐정은 일본의 온갖 설화, 민속학을 늘어놓는다. 맞지 않으면 이 부분은 건너뛸 것을 권해 드린다.
    이 작품은 한국에서 지명도가 낮지만 일본에서는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받았고, 영화·만화·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다. 일본이라고 해도 대중적으로 사랑받을 작품은 아닌데, 시장이 커서 마니아층만으로도 이 정도 흥행은 성립할 수 있는 것 같다. 양국 독자의 선호도 차이도 꽤 있다. 한국 독자들은 상대적으로 리얼리티를 선호한다. 그래서 작가의 글 솜씨 때문에 읽는 동안에는 설득당했다가도, 책을 덮고 나면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하고 머리를 흔들게 된다.
    취향에 맞을지는 기괴한 도입부에 매료되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도입부다. "그것을 보자 상자 속의 소녀도 생긋 웃으며, '호오' 하고 말했다. 아아, 살아 있다. 왠지 남자가 몹시 부러워졌다.'" 마음에 드시는가. 그렇다면 주저 없이 이 책을 집어 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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