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에 어울리는 것

  • 조성관 편집장 
  • 편집=박은혜

    입력 : 2017.07.23 10:53

    [편집장 편지]
     

    조성관 편집장.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아무것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로 인해 관심을 갖게 된 TV 광고가 있다. KIA자동차의 신차 스팅어 광고다. 자동차가 도로를 질주할 때 이 노래가 세 소절 나온다. ‘아무것도 나는 후회하지 않아요’는 에디트 피아프가 말년인 1961년 프랑스 파리 올랭피아극장에서 부른 노래다. 횡경막을 울리며 터져나오는 ‘r’ 발음이 압권인 노래다. ‘장밋빛 인생’과 ‘사랑의 찬가’는 다른 가수들도 리메이크했지만 이 노래는 오로지 피아프만이 부를 수 있다.

    이 광고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지 않는가.…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스타일 편)

    ‘언제부터 안정적인 삶이 나의 꿈이 되었는가?…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퍼포먼스 편)

    이 자동차 광고를 접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나이에 어울리는 것을 찾지 않는가’. 먼저 운율(韻律)을 보자. 두운·요운·각운이 완벽하다. 카피는 한국 사회의 고질(痼疾)에 대해 여러 가지를 함축한다. 개성을 억압하는 교육 시스템이다. 사람은 이름과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타고난 재능도 다르다. 현행 입시교육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목표를 향해 몰려가도록 몰아세운다. 공부가 아닌 다른 분야의 재능을 타고난 학생에게 노력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교사와 학부모가 최면을 건다. 이것은 입시교육에서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전부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정녕 내면의 자아가 원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영화 '인턴' 스틸 이미지.

    이 카피가 진짜 강조하는 것은 ‘나이 문화’에 대한 비판이다. 한국 사회의 역동성과 창의성을 갉아먹는 게 바로 ‘나이 문화’다. 우리들은 걸핏하면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이 나이에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래~’.`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한 영화 ‘인턴’에 왜 한국 관객이 열광했을까. 사람들이 바로 나이를 따지는 문화의 폐해를 깨닫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백남준이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으로 꽃피는 도정에는 결정적인 두 사람이 등장한다. 요셉 보이스와 존 케이지다. 20대 후반에 독일에서 두 사람을 만나 평생 동안 교유했다. 존 케이지는 20년 연상이고, 요셉 보이스는 12년 연상이다. 한국 같으면 이런 교유가 가능했을까. 냉정히 되돌아보자. 우리가 나이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한 게,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지 못한 게 얼마나 많은가. 중요한 것은 나이가 아니다. 짧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해봤느냐다.

    ‘언제부터 안정적인 삶이 나의 꿈이 되었는가?’ 이 카피도 가슴을 친다. 지금 수십만 명이 9급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다. 이들이 새벽녘 노량진 골목길에서 컵밥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은 바로 공무원이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준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 광고는 되묻는다. 안정적인 삶이 당신의 꿈이었냐고? 당신이 정녕 간절히 하고 싶어했던 일을 하고 있냐고? 문득, 궁금해졌다. 9급 공무원이 가슴을 뛰게 하는 직업일까, 한 번뿐인 인생에서.

    “Non, rien de rien(아니, 아무것도)… Car ma vie car mes joies(왜냐하면 내 삶이 내 기쁨이), Aujourd’hui ca commence avec toi(오늘 그대와 함께 시작되거든요).”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65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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