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수첩, 펜, 보드게임...디지털에 대한 역습이 시작됐다

작가 스티븐 킹은 "모든 오래된 것은 머지않아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8년 만에 12배 증가한 미국 LP시장이 이를 증명한다.
디지털 대세를 부정할 순 없지만 아날로그 문화는 예전의 자리를 되찾아가고 있다.

    입력 : 2017.06.30 06:58

    [북스]
     

    수첩과 펜. LP와 턴테이블, 보드게임...아날로그는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물리적 경험을 제공한다. 작가 스티븐 킹은 "모든 오래된 것이 머지않아 새로운 것으로 탄생할 것이다"라고 썼다. 다음은 카세트테이프 차례일지도 /Getty Images Bank

    미국 LP시장 8년 만에 12배 증가
    전자책 점유율은 20%에서 정체
    디지털 대세 부정할 수 없지만
    아날로그 역시 자기 자리 되찾아

    아날로그의 반격
    데이비드 색스 지음
    박상현·이승연 옮김
    어크로스|448쪽|1만6800원
    2007년 99만. 2015년 1200만. 단순 계산해 미국에서만 시장이 12배로 커졌다. 이 상품은 ‘바이닐(vinyl)’이다. 흔히 LP라고 부르는, 턴테이블에 올려 음악을 듣는 레코드판이다. 국내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 서울 성수동 마장뮤직앤픽처스는 올해 문을 열고 LP 제작에 나섰다. 2004년 이후 국내에서 사라졌던 LP 공장이 서울 한복판에서 부활한 셈이다. 음악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듣는 것이 일반적인 시대에 오히려 아날로그가 힘을 얻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뉴요커 등에 칼럼을 기고해 온 캐나다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색스(38)는 이 현상이 LP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그는 디지털카메라보다 화질이 떨어지는 폴라로이드 사진, ‘동기화’가 안 되는 종이 수첩, 사람이 한 장소에 모여야만 할 수 있는 보드게임, 돈 내고 사 읽어야 하는 종이 잡지 등이 다시 시장을 키워나가고 있다고 풍부한 현장 답사와 관계자 인터뷰를 통해 설명한다. 복고 열풍이 아니라 디지털에 대한 아날로그의 반격이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기술 발전으로 인해 종이 잡지는 사라지고, 물건은 인터넷을 통해서만 사고, 교육은 가상공간서 이뤄질 것이란 전망은 사실과는 달랐다. 저자는 전자책 점유율은 20%대에서 정체 상태에 빠졌고, 무료 온라인 대학 교육 이수율 역시 10%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한다. 애플 제품을 가장 비싼 값에 파는 곳은 오프라인 매장 ‘애플스토어’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이 오프라인 매장으로 몰린다. 애플스토어 직원 1인당 매출은 50만달러(약 5억5000만원). 2001년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전문가들이 2년 만에 망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곳이다. 이제는 오히려 인터넷 유통 공룡 아마존이 굳이 오프라인 매장을 열고 있다.
    그는 종이와 LP를 통해 아날로그가 다시 힘을 얻는 이유를 설명한다. “종이는 ‘쿨’해졌다. 디지털 기기에는 잉크 냄새도, 바스락바스락 책장을 넘기는 소리도, 종이의 촉감도 없다. 아이패드로 기사를 읽는다면 모든 기사가 똑같아 보이고 똑같게 느껴진다. 인쇄된 페이지에서 페이지로 넘어갈 때는 그렇지 않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똑똑해진 느낌’을 받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종이책의 영역이다. 아날로그가 간직한 풍성한 경험이 즐거움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조선일보DB
     직접 LP를 사서 턴테이블에 올리고 바늘을 내려놓는 행위. 애플리케이션에서 재생 버튼 한 번 누르는 것과 비교하면 번거로운 절차들이나, 감각기관 대부분을 사용하는 충실한 경험이 된다는 것이다. LP를 고르고, 얹고, 때로 먼지를 불어서 털어내고, 1초간의 침묵 뒤에 음악이 흘러나오는 일련의 과정 말이다.
    아날로그 옹호자가 틈새시장에만 주목해 침소봉대한 것이 아닐까. 책 속 두 가지 사례를 보자.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옐프’는 회의실에서 화이트보드를 치우고 태블릿PC 등으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가 포기했다. 엔지니어들이 “화이트보드를 돌려주지 않으면 퇴사하겠다”고 들고 일어났기 때문. 그는 “트위터 등 여러 디지털 기업 임원들은 ‘머릿속 생각을 끌어내는 데 포스트잇, 노트, 화이트보드만 한 것이 없다’고 했다”고 썼다.
    토론토대 부설 초등학교는 학생 전원에게 노트북과 아이패드를 지급했다. 이 학교는 조회 시간 인터넷 기사를 돌아가면서 읽는데 학생들은 기사를 종이에 인쇄해 읽었다. 학생들은 “종이가 ‘더 진짜’ 같다”고 저자에게 답했다. 디지털 세계 선구자도,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아이도 아날로그를 더 익숙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단지 ‘복고’를 넘어선다. 아날로그가 익숙한 40대 이상이 향수를 느끼며 구식 제품에 지갑을 여는 틈새시장을 새롭게 조명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20~30대 젊은이가 LP를 사기 시작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장이 “내 회사 전체가 이 수첩 안에 들어 있다”며 몰스킨 공책을 들어 올린다. 2000년대 디지털로 촬영했던 ‘스타워즈’ 시리즈는 다시 필름으로 돌아왔다. 온라인 게임 시장은 나날이 성장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보드게임 카페가 성행한다. 캐나다 토론토 보드게임 카페 ‘스네이크 앤드 라테스’는 점심과 저녁 120석이 젊은이들로 가득 찬다. 국내에서는 작년부터 인기를 끌었던 ‘방 탈출 게임’이 이와 비슷하다. 가장 디지털화된 게임을 즐겼던 세대가 실제 공간에서 하는 게임을 찾아 나서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이 대세라는 사실을 그는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갈수록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아날로그 역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공개하던 때가 생각난다. 자판과 스타일러스 대신 손가락으로 직접 조작이 가능한 스마트폰이라고, 그는 최첨단 디지털 기기를 들고 자랑했다. 손가락이, 인간의 몸이 아날로그다. 일련의 ‘반격’이 계속될 것이란 주장에 수긍하게 되는 이유다.
    필사책 열풍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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