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도 로스쿨 준비생도 회사원도 공시족!

지금 노량진 고시촌은 문재인 특수를 맞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공무원 추가 충원 계획을 발표함에따라 학원가 전체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20대 공시생들 외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자영업자와 회사원들까지 젖먹던 힘을 다해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 있다.

    입력 : 2017.06.25 11:40

    [현장] 노량진은 지금 '문재인 특수'!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전인 지난 2월 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고시학원을 방문하여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에게 공공부문 일자리 충원을 약속했다. /뉴시스

    지난 5월 29일 오전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에 위치한 박문각빌딩 11층 옥상. 이 건물에 있는 박문각 남부고시학원에서 ‘7급·9급 기본이론 영어’를 수강하는 김모(41)씨와 얘기를 나눴다. 내년 4월로 예정된 ‘9급 국가공무원 일반행정’ 시험을 준비 중이라는 김씨는 기자에게 담배를 건네며 자신이 공무원시험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한숨과 함께 털어놓았다. “장사도 요새 잘 안 되고 수입도 변변치 않아요. 아이들은 첫째가 초등학교 6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4학년인데 애들 뒷바라지를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연거푸 담배를 피워 물며 김씨는 자기의 형편을 좀 더 상세히 설명했다. 현재 그는 서울 송파구 천호동에서 아내와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다. 그가 이 학원에서 9급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5월 8일부터. “지금 이 나이에 다른 사업을 하자니 돈도 없고 인맥도 없잖아요. 이번에 공무원 채용을 늘린다고 하니까 나이 제한 없는 9급 공무원 시험에 한번 도전해 보겠다고 결심한 거죠.” 그는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서 오후 7시쯤 분식집으로 돌아가 아내와 교대한다고 했다.

    이 학원에서 김씨와 같은 40대를 또 만날 수 있었다. 9급 지방직 일반행정 시험을 준비 중인 이모(49)씨는 서울 용산 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수리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이씨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전문대 나와서 사업 등 이것저것 해보다가 10년 전부터 전자상가에서 컴퓨터 수리점을 하며 지내왔다”며 “아는 사람이 작년에 서울시 지방직 9급에 합격했다는 말을 듣고 나도 한번 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의 검정색 큰 가방 안에는 아내가 싸준 도시락이 들어 있었다. 그는 “아들도 고3 수험생이라 집에 수험생이 둘”이라고 말했다.

    지난 5월 29일 둘러본 노량진 공시학원가는 ‘문전성시’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붐볐다. 문재인 정부가 밝힌 올 하반기 공무원 1만2000명 추가 충원 소식으로 학원가 전체가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였다. 기존의 20대 공시생들 외에 인생 2막을 준비하는 40~50대까지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박문각남부고시학원에서 9급 일반행정직 필수과목인 ‘영어’와 경찰공무원(순경) 필수과목인 ‘한국사’ 수업을 청강하며 문재인 정부가 키워낸 ‘노량진 새내기 공시생’들을 만나 봤다.

    이 학원에서 ‘7급·9급 기본이론 영어’ 수업을 듣는 여대생 김모(27)씨는 대기업 시험에 수차례 낙방 끝에 공무원 시험에 뛰어든 경우. 대구 소재 대학에서 국제통상학을 전공하고 있는 김씨는 현재 졸업을 유예시킨 후 내년 합격을 목표로 국가직 9급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수업 시간 내내 앞자리에서 열심히 필기를 하던 김씨와 오전 수업이 끝나고 잠시 교실 밖에서 얘기를 나눴다. “2013년 아모레퍼시픽에서 인턴도 하고, 이후 공기업에서 대학생 서포터스 활동도 했어요. 토익 성적과 학점도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늘 서류심사에서부터 떨어지더군요.”

    김씨는 자신을 “‘지잡대’를 나와서…”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토로했다. “이제 여자로서 취업하기에 마지노선 나이라고 생각해요. 기업의 채용 조건이 (지방대학생들에게) 나아졌다고 해도 여전히 학벌을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소위 말하는 SKY 대학 출신이거나 서울 소재 대학 학생이 아니면 대기업 취직은 힘들죠. 나처럼 지방대를 나온 사람들에게는 공무원 시험이 돌파구예요.”

    서울 소재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최지은(22)씨는 불투명한 전공 분야의 진로를 걱정하다 지난 5월 8일부터 노량진행을 결정했다. “디자인 분야는 학생 수가 많아 공급은 많지만 수요는 제한되어 있는 곳이에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 분야에서 과연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기 시작했죠.” 20대 초반인 그는 당초 광고회사 입사 지망생이었지만 “시간과 돈 모두를 생각할 때 공무원 시험 준비를 일찍 시작하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채용 확충 계획을 보고 결정이 확고해졌다는 최씨는 “앞으로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 꼭 합격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9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의 한 고시학원. 9시부터 1시까지 있는 1교시가 끝나고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분주히 나오고 있다.(왼쪽), 식당가가 밀집한 노량진로 16길 일대. 오후 수업 전 점심을 먹으러 가는 학생들로 북적거린다.(오른쪽) /김민섭객원기자

    강원도 강릉 소재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 중인 박모(25)씨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서울로 유학을 온 경우다. 강원도 원주가 집인 그는 지난 5월 2일부터 노량진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지난 4월 군대를 마친 그는 내년 9월까지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휴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군 상병 때부터 차근차근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는 박씨는 “헬스트레이너가 목표였던 학과 선배 중에 1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순경이 된 사람을 알게 됐다”며 “체육학과를 나와서는 일반 직종 취업도 어렵고 체육교사 되기도 쉽지가 않아 경찰이 될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노량진 공시촌은 로스쿨 준비생도 빨아들이고 있었다. 지난해까지 로스쿨 진학을 준비했던 김모(28)씨도 지난 4월부터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2년간 서울 소재 로스쿨을 지원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현재는 경찰행정직 중에서도 법학 관련 학위 소지자만 지원할 수 있는 지능범죄직 특별채용을 노리고 있다. 김씨는 “서울 소재 로스쿨에 들어가려면 학점도 낮고 학벌도 못 미친다”고 토로했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법대생 유모(26)씨도 로스쿨을 준비하다 경찰 지능범죄직으로 방향을 바꾼 경우. 이씨는 “5급 일반행정직 준비생들과 함께 전공인 ‘행정법 연습’ 수업을 듣다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게 됐다”며 “로스쿨 떨어지고 난 후 지난 1월 학원에서 상담을 받고 경찰 지능범죄직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정부에서 공무원 채용을 늘린다고 하는데 언제 또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니까 이번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게 여기 분위기인 것 같다”고 했다.

    이 학원에서 경찰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대학생 이모(25)씨는 아버지가 인천의 5급 일반행정직 공무원이라고 한다. 그는 당초 대기업 취업을 희망했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경찰공무원 시험 준비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그는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찰공무원이 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정량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공무원 시험이 그나마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노량진 공시학원은 마치 ‘블랙홀’처럼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던 젊은이들까지 끌어들이는 양상이다. 경찰고시학원에서 ‘한국사’ 수업을 듣는 이모(30)씨는 지난 2월까지는 여행사 직원이었다. 그가 경찰행정직 시험 준비에 나선 이유는 얼마 전까지 다닌 여행사의 힘든 근무환경 탓. “야근도 너무 많고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했죠. 나이도 차면서 계속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있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공무원 일자리를 늘린다고 공약하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경찰공무원 시험을 결정하게 됐죠.”

    그는 대학교 3학년 때도 7급 국가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적이 있었는데 1차 필기시험에서 떨어지고 취업 준비로 방향을 돌렸다고 한다. 이씨는“그때는 고시학원을 등록하지 않고 5개월 정도 인터넷 강의만 들으며 준비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준비해 보려 한다”고 말했다.

    이모씨와 함께 ‘한국사’ 수업을 듣는 최모(29)씨도 작년 8월까지는 말레이시아 항공사인 ‘에어아시아’ 승무원이었다. 인하공전에서 항공경영을 전공한 그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3년간 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하다 경찰공무원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는 “이직을 결정하니까 결국 안정적인 생활이 보장된 공무원으로 눈길이 갔다”며 “경찰행정직의 경우 일반공무원 행정직보다 봉급이 높다는 점과 복지혜택이 많다는 점을 알게 돼 결정했다”고 했다. 실제 경찰공무원(순경) 1호봉의 월급은 148만6900원(2017년 기준)으로 9급 일반행정직 공무원 139만5800원보다 높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공무원 확대 채용 정책에 대해 “경찰이나 소방직의 경우는 부족했던 직군에 인원 수를 늘리는 것이니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시험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걱정이긴 하다”고 말했다.

    노량진 컵밥거리. 공시생들이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찾는다.(왼쪽),오후 1시50분, 한 경찰고시학원이 위치한 노량진 이데아빌딩 1층. 학생들이 오후 수업을 듣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줄을 서 있다.(오른쪽) /김민섭 객원기자

    인근 다른 공시학원에서 국가직 9급 시험을 준비 중인 김동권(33)씨는 전직 물류 택배회사 배송원이었다. 노량진 ‘컵밥거리’에서 만난 그는 “물류 택배회사 배송원은 일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김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일하면서도 틈틈이 인터넷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매일 아침 6시30분에 일어나 수원의 집을 출발해 지하철로 노량진까지 온다고 한다. “9급 일반직의 경우는 경쟁률이 치열해서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택배 배송원으로 일할 때보다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버팁니다.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더 열심히 해보려고요.”

    노량진역에서 만난 김서현(32)씨 역시 한 중소 IT 업체에서 3년간 일했지만 지금은 경찰공무원을 꿈꾸는 공시생이다. 지난 1월 퇴사 후 공시생이 됐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차별 없는 직업이 공무원 아닌가요. 내가 언제부터 공무원이 되려 했었나 회의가 들기도 하지만 차선을 선택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니까 나도 그 분위기에 따라가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역시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큽니다.”

    올해 4월 치른 9급 공무원 시험 원서접수자는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인사혁신처 채용관리과가 지난 5월 24일 발표한 9급 필기시험 합격자 자료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필기시험에는 22만 8368명이 원서를 접수했다. 이는 지난해보다도 무려 6515명이 증가한 수치. 이 중 실제 응시자 수는 17만2691명이었고 필기 합격자는 6894명이어서 최종 경쟁률은 35.2 대 1을 기록했다. 이 중 오는 7월 11일 면접을 거쳐 최종 선발되는 인원은 4910명이다. 7급도 6월 5일부터 9일까지 원서접수가 있고, 8월 26일 필기시험이 예정돼 있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일반행정직 3000명 충원’을 달성하기 위해 국가기획자문위는 7급은 8월에, 9급은 10월에 추가로 필기시험을 치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3월과 9월 연간 두 차례 채용시험을 치르는 경찰공무원의 경우도 올 9월로 예정된 하반기 채용 인원을 당초 1437명에서 2937명으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문재인 정부는 2018년부터 5년간 매년 3700명씩 경찰공무원을 선발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 3월 있었던 1차 경찰공무원(순경) 공개채용 필기시험의 경우 1차 시험 원서접수자는 6만1091명으로 41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경찰청 인재선발계의 한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실제 응시자 수와 필기 합격자 수는 따로 공개하지 않는다”며 “1500명 추가 충원에 대해서는 공고는 안 났지만 사실상 확정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발화시킨 공시생 대폭발의 현장에서 만난 공시생들은 너도나도 “삶의 안정”을 공무원이 되려는 주된 이유로 꼽았다. 하지만 아무리 공무원 채용 인원을 늘린다고 해도 공무원 시험 합격자는 전체 응시 인원 중 1.8%(2016년 공무원 시험 합격률)에 불과하다. 안정적인 삶을 좇다 ‘고시낭인’이 될 확률은 여전히 높은 게 현실이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61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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