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자아실현? '저녁 없는 삶'만 이어질 뿐

현대사회에서 '일하는 삶'은 지극히도 당연한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저녁도 없이 일하는 삶은 개인을 공허하게 만든다.
도서 <일하지 않을 권리>는 '일 중심 사회'에 일침을 가하며 일과 여가의 균형회복을 주장한다.

    입력 : 2017.06.19 10:02

    [북스]
     

    英 사회학자 프레인, 현대사회 '일 중심' 삶 비판
    식당 종업원 된 변리사 등 일과 여가의 균형 회복 주장
    일하지 않을 권리
    데이비드 프레인 지음|장상미 옮김
    동녘|352쪽|1만6000원
    "커서 뭐 하고 싶니."
    대답은 십중팔구 '변호사' '대통령' '프로게이머' '아이돌' 따위일 것이다. '자라나서 직업을 가지고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일련의 생각은 아이 때부터 학습하는 일종의 사회적 윤리다.
    현대사회에서 일자리는 생계 수단이자 사회인으로서 소속감과 지위를 제공한다. '일(work) 중심주의'가 이념과 종교를 떠나 일종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현실에 의심을 품기 어려운 이유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성경 구절은 기독교를 부정했던 공산국가마저도 정치 표어로 활용했을 정도다.
    '일하지 않을 권리'는 사회에 굳건하게 뿌리내린 '일 중심주의'를 분석하면서, 이 신념이 인류를 불행하게 한다는 지적(知的) 도발을 펼친다. 영국 가디언지 칼럼니스트이자 카디프 대학 강사인 30대 저자 데이비드 프레인은 "불평등한 급여, 일자리 부족, 대량 실업 같은 사안은 지금도 논의되지만 일 자체가 가지는 윤리적 지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드물다"며 "유급 활동을 뜻하는 '일'이 여가와 봉사 같은 무급 활동의 가치를 깎아내림은 물론 우리의 감정과 개성을 장악하려 든다"고 썼다.
    그는 막스 베버를 인용하며 "18세기 일 자체를 도덕적 목표로 떠받든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부상하면서 살기 위해서 일하던 사람들이 일하기 위해 살게 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일은 19세기 들어서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로, 20세기 이후로는 '자아실현의 통로'로 받아들여지며 지금 위치를 가지게 됐다고 한다. 일하는 '정상적 삶'의 탄생이다.
    문제는 '정상'이라 부르는 삶이 "일하기 위해 구입한 옷을 입고, 교통 체증 속에서 여전히 할부금을 물고 있는 자동차를 운전해서 옷과 자동차, 그리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종일 비워두기만 할 집에 드는 돈을 벌 수 있는 직장에 가는" 식이라는 것. 쉴 틈도 없어졌다. 저자가 인터뷰한 한 영국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토요일에는 오후 4시에 출근해서 밤늦게까지 일해요. 그럼 출근 전에는 내내 조바심만 느끼며 아무 일도 못 해요." 아도르노가 말했던 "자유 시간은 '이익에 기반을 둔 사회생활을 지속'시킬 뿐, 전혀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과 맥이 닿는다.
    삶의 중심에 일이 있다. 생계 수단도 사회적 지위도 일자리에 달렸다. 일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책은 ‘일 중심주의’의 한계를 지적한다. /동녘
    저자는 베버, 마르크스, 버트런드 러셀 등의 이론적 논의에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일을 줄이거나 자발적으로 실직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쌓아올린다. 일 중심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특허 변리사에서 웨이트리스가 된 여성, '쫓기는 느낌 없이' 살기 위해 철학 공부를 접고 조류 보호 왕실 단체에서 일하는 남성 등. 일을 떠나 안분지족(安分知足)한 이들을 보며 저자는 결론짓는다. "'일'에 복종해야만 금전적 보상을 받고 사회적 지위를 얻게 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한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
    '일'을 줄이거나 하지 않겠다는 주장이 경쟁에서 밀려난 일부 낙오자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하기 싫을 때 사람들이 선택하는 '도피 행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단해보자. 서류 대충 작성하기(역할 거리 두기),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사 욕하기(냉소주의), 월급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명품 지갑이나 신형 IT 제품 사들이기(소비주의). 정도 차이는 있겠으나 대부분 사람이 해당할 일이다. 일하기 싫다는 사람이 부도덕한 사회적 일탈자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저자는 절대다수에게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극단적 선택임을 인정한다. 일에 몰입하고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상당수 있고, 그 노력이 의미 없다고 깎아내리지도 않는다. 적게 벌고 적게 쓰는 일이 무조건 옳다는 주장도 없다. 다만 일을 하지 않거나 덜 하더라도 열심히 일하는 것 이상으로 행복할 가능성을 검토한다. 그는 직접 생필품을 만들고, 음식을 사다 먹는 대신 손수 만들어 먹는 것 등에서 '대안적 즐거움'을 찾는다고 주장한다. 변리사에서 식당 종업원이 된 사만다는 "전화로 이야기 나눌 시간도 없을 정도로 오래 일하는 삶이야말로 금욕적 생활"이라며 "변리사를 그만두고 얻은 여유와 기력을 생각하면 돈은 사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기증 나는 기술 발달 속에서 나오는 일자리 대책의 공통점은 기술 발전에 뒤처지지 않도록 '평생 공부하라'다. 주판알 튕기던 사람이 컴퓨터를 배웠는데 앞으로는 스마트폰을 통해 예순 넘겨서까지 일하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삶을 원해야 할까. 앞으로도 쭉 '저녁 없는 삶'을 살아야 할까. 이 책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편과의 사별을 기록한 페이스북 COO, 베스트셀러 작가 되다.
    빌 게이츠도 한 해에 보름은 컴퓨터 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