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맛… 돼지 맞나요? 새로운 부위를 맛보다

돼지고기는 조선시대부터 소고기보다 선호도가 낮았다.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저렴한 삼겹살이 인기가 높아졌고,
식생활과 식문화가 발전하면서 볼살·안중살 등 새 부위가 속속 등장 중이다.

    입력 : 2017.06.22 07:53

    [돼지 고기의 진화]
     

    "이게 돼지고기 맞나요?" 원종식(45) '달배뒷고기' 대표가 구워준 돼지 볼살에서 깊고 짙은 감칠맛이 났다. 돼지고기보단 소고기에 가까운 맛. 씹을 때마다 육즙이 흠뻑 배어 나왔다. "맛있죠? 이런 거 먹다 보면 삼겹살은 싱거워서 못 먹는다니깐. 1970년대 우리 돼지고기를 일본에 수출할 때 일본인들이 가져가지 않아 남게 된 삼겹살이 시장에 풀리면서 유행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마장동에서 들었어요."

    기존 돼지고기 관련 서적을 보면 볼살이란 부위는 나오지 않는다. 돼지 특수부위를 전문으로 하는 달배뒷고기에서 새롭게 구이용으로 돼지 머리에서 분리해낸 부위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돼지 볼 부분의 살코기다. "돼지고기 소비 패턴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습니다. 삼겹살이라도 '기름이 많은 쪽으로 주세요' '기름이 적은 쪽으로 주세요'라고 세밀하게 구분해 요구하는 손님이 늘었어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퍽퍽해도 좋으니 기름기 없는 살코기를 달라'는 분도 계시고요."

    돼지고기 부위는‘핵분열’ 중이다. 사람들의 입맛이 발달하고 더 다양한 고기 맛을 즐기기 원하면서 없던 부위를 새롭게 개발하고 기존 부위를 더욱 세밀하게 나누는 시도가 외식 업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하긴 요즘만 그런 게 아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목살, 삼겹살 따위 부위가 없었다. 원 대표는 "돼지 전체를 '기름 많은 고기' '기름 없는 고기' 정도로만 나눠 팔았다"고 했다. 삼겹살이란 단어를 보편적으로 쓴 것도 1980년대부터다. 역사가 생각보다 짧다. 1994년 국어사전에 삼겹살이 등재됐고, 1996년 대패삼겹살이 등장했다.

    돼지고기는 선호도가 낮았다. 한국 사람들은 조선 시대부터 소고기를 유난히 선호했다. 상하기 쉬운 돼지고기는 여름철 먹었다가 탈 나기에 십상인 고기였다. 1970년대 들어 정부가 소고기값 안정을 위해 돼지고기 소비 육성책을 적극 펼쳤다. 1980년대 돼지보쌈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냉장고가 보급되며 돼지고기 보관이 쉬워졌다.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회식 메뉴가 소고기 등심·갈비에서 저렴한 삼겹살로 바뀌었다.

    삼겹살이 너무나 인기를 얻자 돼지 축산농가도, 소비자도 힘들어졌다. 소비자는 삼겹살 가격이 너무 올라 부담 없이 즐기기 힘들어졌다. 축산농가는 나머지 부위가 처치 곤란이 됐다. 여기에 식생활과 식문화가 발전하면서 돼지고기를 더 다양하게 즐기려는 수요 증가가 맞물렸다.

    이러한 상황에 맞춰 돼지고기 전문점들이 새로운 구이 부위 개발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삼겹살처럼 이미 즐기는 부위는 더욱 세분화하고, 머리나 다리처럼 구이용으로 사용하지 않던 부위에서 구워 먹을 만한 부위를 새롭게 개발하고 있다.

    요리연구가 박종숙씨와 청강문화산업대 푸드스쿨 김욱성 교수, 식품 MD 출신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씨 등 요리·음식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돼지 부위들을 맛봤다.

    한국 돼지고기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삼원교배종(요크셔·듀록·랜드레이스 교잡 돼지 품종·YDL이라고 부르기도 함)과 다른 맛으로 최근 주목받는 버크셔, 이베리코, 얼룩돼지 등 새로운 돼지 품종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돼지 턱뼈 안쪽에 붙어 있는 안중살을 썰어보면 꼭 참치 뱃살 같고, 먹어보면 꼭 소고기 같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머리: 삼각살, 호두살…이런 부위가 있었나

    구이감으로 새로 개발한 부위는 돼지머리 쪽이 가장 많았다. 돼지머리 부위는 탕이나 순대, 편육 따위 요리에 사용될 뿐 구이로는 치지 않던 부위다.

    경남 김해 등 일부 지역에서 ‘뒷고기’ 또는 ‘달배고기’란 이름으로 구워서 먹었으나, 부위를 구별하지는 않는다. 뒷고기란 이름은 도축장 기술자들이 돼지를 손질하며 조금씩 잘라내 ‘뒤로 빼돌린 고기’라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돼지머리 뒤에서 나온 고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달배뒷고기에서는 뒷고기를 맛·식감별로 구분했다.

    볼살은 돼지 얼굴 양옆에서 나온다. 한 마리에서 200g 정도 나온다. 소고기처럼 짙은 맛이다. 청강문화산업대 김욱성 교수는 “이탈리아에서는 돼지 볼살을 염장·훈제해 ‘관찰레(guanciale)’를 만든다”며 “베이컨과 비슷하지만 더 짙은 맛”이라고 설명했다.

    설중살은 돼지 혀에서 질기고 냄새가 살짝 나는 껍질을 벗긴 고기이고, 설하살은 혀 아래 붙은 근육 덩어리다. 원 대표는 “고기는 운동을 많이 하는 부위일수록 맛있는데, 혀는 돼지가 죽을 때까지 움직이는 부위이니 맛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말랑하고 탱탱한 게 닭모래집과 비슷한데 살짝 피 맛이 도는 게 간 같기도 하다.

    엄지살(왼쪽). 안중살

    삼각살은 돼지 코 안쪽 살로, 삼각형 모양이다.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이 뛰어나다. 호두살은 돼지 머리 양옆 관자놀이에서 한 점씩 나오는데, 크기와 모양이 딱 호두 같다. 삼각살과 호두살 각각 한 마리당 90g밖에 나오지 않는다.

    두항정은 부드럽고 기름져서 구이용으로 삼겹살 뺨치게 인기있는 항정살과 맛이 거의 같지만 더 단단하다. “머리에 붙은 항정살이라 두(頭)항정이라 이름 붙였죠. 돼지를 도축할 때 머리와 앞다리를 어디서 칼로 가르느냐에 따라서 항정살이 앞다리에 붙기도 하고 머리에 붙기도 하는 거죠.”

    머리 부위에서 안중살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맛있었다. 볼살 뒤, 턱뼈 안 한가운데 있어서 안중살이라 이름 지었다. 얇고 짙은 붉은빛 고기가 근막을 사이에 두고 켜켜이 붙어 있는 모양이 참치 뱃살 같다. 불판에 올려 구우면 근막이 열을 받아 녹는데, 씹으면 녹진녹진한 것이 젤리 같다. 맛은 어찌 그리 진한지, 꼭 소고기를 먹는 듯하다.

    전반적으로 삼겹살보다 고기 맛이 훨씬 진하다. 삼겹살이나 목살만 먹어왔다면 ‘소고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삼겹살은 구우면 얇아지는 반면, 머리 쪽 부위는 오히려 수축하며 두꺼워져 육즙이 덜 빠진다. 새로운 돼지고기 맛을 발견하는 기쁨을 머리 부위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픽= 김현국 기자

    ■도축업자들이 몰래 구워 먹던 유삼겹

    유삼겹은 엄밀히 말하면 삼겹살은 아니다. 삼겹살을 감싸고 있는 아랫배 유두가 있는 부위다. 피하지방을 다량 함유해 매우 고소하다. 우유를 연상케 하는 달착지근한 맛까지 더해져 복합적인 풍미를 낸다. “옛날 도축업자들은 이 부위만 구워 먹었답니다.” 흰살 역시 삼겹살의 뱃가죽. 크림처럼 고운 흰빛이 구워도 그대로다. 삼겹살에서 지방을 떼어낸 맛이다.

    돼지 아랫배 맨 끝인 치맛살은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씨가 “이번에 시식한 부위 중 가장 맛있다”고 꼽았다. “돼지고기 본연의 맛을 가장 잘 표현하네요. 식어도 맛있고요.” 생김새가 치맛자락과 매우 흡사하다.

    ■앞다리: 육즙 풍부한 돼지 앞다리 부위들

    새로운 돼지구이 부위가 머리 다음으로는 앞다리(전지)에서 많이 개발됐다. 머리처럼 그동안 수육, 탕, 찜용으로 주로 이용되던 부위이다. 이겹살은 지방과 살이 세 겹은 안 되지만 맛은 삼겹살과 놀랍게 흡사하다. 삼겹살과 앞다리가 만나는 경계선에 위치한다. 납작살은 항정살 위에 납작 붙어 있다. 부채살은 앞다리 부채뼈(견갑골)를 빼내면 드러난다. 뭉치살, 멍석살 등 모두 앞다리살을 세분화했다. 그래서인지 육색과 육향이 짙고 육즙이 풍부해 씹는 맛이 좋다는 공통점이 있다.

    ■갈빗살: 엄지랑 똑같이 생긴 엄지살

    엄지살은 갈빗살 앞쪽 끝 부분에 붙어 있는 부위로 크기와 모양이 남자 어른 엄지와 비슷하다. 동전처럼 동그랗게, 도톰하게 잘라 구우니 쫄깃하면서 육즙이 풍부하다. 마구리에 붙어 있는 꼬들살은 이름처럼 씹으면 꼬들꼬들한 식감이다.

    서울 구의동 ‘달배뒷고기’에서 안중살과 호두살, 유삼겹살, 이겹살 등 새롭게 구분한 돼지고기 부위 30여개를 맛봤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목심살: 소 살치살 뺨치는 살치목살

    목심살은 지방과 살코기 비율이 적당해 가장 돼지고기다운 맛을 가진 부위로 평가받는다. 등심과 머리 사이에 있다. 살코기는 씹을수록 구수한 육즙이 우러나고, 지방은 삼겹살처럼 지나치게 많지 않아 질리지 않는다. 달배뒷고기에서는 목심살을 윗목살·아랫목살·살치목살로 세분했다. “도축하다 보니 목살 윗부분은 소고기 꽃등심처럼 고소한 감칠맛이 풍부하고, 뒤쪽은 소고기 중에서 마블링이 제일 좋은 살치살 같더라고요. 그래서 따로 떼어내 그렇게 이름을 붙였죠. 아랫목살은 지방이 없고 살코기만 있어서 기름 싫어하는 분들이 선호할 듯하고요.”

    ■안심살 밑에 얇게 붙어 있는 안심날개살

    안심살은 근육의 결이 부드럽고 지방도 거의 없어서 서양에서 가장 사랑받는 돼지고기 부위다. 스테이크로 구워 먹을 때는 괜찮지만 한국처럼 고기를 얇게 썰어 바싹 익혀 먹으면 퍽퍽할 수 있다. 안심날개살은 안심살 밑에 얇게 붙어 있는 살을 떼어냈다. 안심과 비슷하지만 아롱사태처럼 젤라틴이 박혀 있어 많이 익혀도 퍽퍽하다.

    식생활과 식문화가 발전하면서 돼지고기를 더 다양하게 즐기려는 수요가 늘었다./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돼지 껍데기와 족발을 합친 듯한 꼬리살

    꼬리살은 이번에 시식한 부위 중 가장 특이한 모양과 맛을 지녔다. 보통 족발처럼 양념에 삶아 먹는 돼지 꼬리를 갈라서 넓게 폈다. 도톰한 껍데기 안에 얇게 살이 붙어 있다. 돼지 껍데기와 족발을 합친 듯한 독특한 매력을 지녔다.

    도가니살은 뒷다리 무릎 쪽에서 무릎뼈와 넓적다리뼈를 감싸고 있는 대퇴네갈래근이다. 짙은 붉은빛 살 속에 구수한 육즙을 다량 품고 있다. 결이 거칠지만 씹을수록 돼지고기 맛이 진하게 배 나온다. 보통 찌개·국거리·탕수육에 사용되는데, 윗부분만 분류해 도가니윗살이라 명명했다.

    설깃윗살은 돼지 뒷다리 바깥쪽 넓적다리 부위로 도가니살과 붙어 있다. 운동량이 적은 근육으로 육색이 등심처럼 옅은 담홍색이다. 한 마리당 4.6㎏ 정도의 큰 고깃덩어리가 나온다. 근섬유다발이 굵어 질긴 편이고, 육즙을 붙잡는 보수력이 낮아 잘못 요리하면 퍽퍽해지기 쉽다.

    “돼지 도가니살과 설깃살은 구이용으로 선호하지 않는 부위죠. 하지만 둘 다 위쪽 끝부분은 마블링이 꽤 있어서 잘 썰면 구이용으로 괜찮습니다.”

    요리연구가 박종숙씨는 “소비자 입장에선 삼겹살만 먹는 것보단 다양한 고기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고, 축산농가와 식당에서는 돼지 전 부위를 고루 팔 수 있으니 모두 윈윈(win-win) 하는 셈”이라며 돼지 부위 세분화를 반겼다. 뜨겁게 달궈진 불판에서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돼지고기 냄새가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달배뒷고기: 국내 처음으로 뒷고기를 부위별로 맛볼 수 있게 구분해 내준다. 숙성시켜 감칠맛을 극대화한 삼겹살과 목살 등 돼지 여러 부위를 두루 맛볼 수 있다. 뒷고기 모음 3800원, 뒷고기 3500원, 5˚C 숙성삼겹살·목살 각 4500원, 달배막창 4500원, 껍데기 3500원(이상 100g 기준), 모음 소시지 5000원(3개 210g). 서울 광진구 구의동 249-21, (02)457-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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