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서울설렁탕은 바로 이 맛

66년 역사를 자랑하며 그 전통을 인정받아
'서울미래유산' 인증서를 받은 식당이 있다.
바로 을지로 4가역 뒷골목을 오랫동안 지켜온 '문화옥' 이다.

  • 정수정 음식칼럼니스트 
  • 편집=박은혜

    입력 : 2017.06.11 11:27

    [오래된 맛, 음식 名家 이야기] 문화옥
     

    아직 동트지 않은 새벽, ‘문화옥’ 주인장 이순자(77)씨의 바지런한 손길이 시작된다. 평생의 익숙한 손길로 고기를 손질하고 육수의 기름기를 말끔히 걷어낸 다음 그날의 첫밥을 손수 짓는다. 손님 맞을 채비를 마치면 얼추 6시, 아침 댓바람부터 누가 올까 싶지만 가게는 이내 설렁탕을 먹으려는 이들로 북적인다.

    ‘문화옥’은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 4가역 뒷골목을 오랫동안 지켜온 설렁탕 명가이다. 오래된 평양냉면집, 우래옥과 나란히 붙어 있는 이곳은 긴 세월 변함없는 맛과 분위기로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모았다. 1952년 이영옥씨(작고)가 처음 문화옥 간판을 건 곳은 동대문시장이었다. 시장 지게꾼과 상인들의 허기를 넉넉히 채워주는 설렁탕집으로 출발한 문화옥은 195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조금씩 늘려 지금의 규모가 되었다. 66년 역사의 문화옥은 서울시민의 기억과 감성이 담긴 가치 있는 곳으로 선정되어 ‘서울미래유산’ 인증서를 받았다.

    부드럽고 순한 양지설렁탕

    서울 시내에 문화옥보다 더 오래된 설렁탕집도 있지만, 이곳만큼 서울설렁탕 맛의 특징을 정확하게 간직해온 명소가 또 어디 있을까 싶다. 문화옥의 창업주와 주방장을 비롯해 대물린 며느리 이순자씨 모두 서울 토박이로, 탕은 물론이고 김치와 깍두기까지 서울 음식의 고유한 손맛을 고스란히 잇고 있다. 을지로 토박이 이순자씨는 결혼 후 3년이 지난 1969년부터 시어머니를 도와 문화옥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 딸 김정원씨가 3대째 가업을 잇기 위해 수업 중이지만, 아직도 문화옥의 모든 것은 이씨의 손을 거친다.

    “고기는 살생음식이니까 매일 기도를 올려요. 어디서든 잡히기 마련이지만, 이왕 우리 집에 왔으니 손님들 배부르게 해주는 공덕으로 부디 좋은 곳으로 가라고요.”

    기도하고 공들이는 마음이 음식 준비부터 맛과 서비스까지 두루 이어져서일까! 이곳에 오면 유난히 정갈한 분위기에 마음마저 편안해진다.

    이씨는 기본에 충실했을 때 최고의 맛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맛을 지켜낼 수 있었던 비결 역시 좋은 재료를 쓰는 것부터 시작된다. 설렁탕의 기본 재료인 쇠고기는 창업 때부터 마장동의 한 축산업체를 정해놓고 거래하는데, 그날그날 국내산 쇠고기를 선별해 수십 년을 하루같이 보내오니 문화옥 음식 맛을 변함없이 지켜낼 수 있었다. 특히 국물을 내는 사골은 언제나 한우 사골만 고집한다.

    “국물이 구수하게 잘 나오니까 비싸도 꼭 한우 사골을 쓰죠.”

    설렁탕은 한우 사골과 양지머리, 머리 고기 등을 찬물에 충분히 담가 핏물을 완전히 뺀 후 푹 고아 국물을 낸다. 이때 화학조미료는 물론 소금이나 양념을 일절 넣지 않는다. 조미료는 그렇다지만 소금까지 안 넣는 이유가 궁금했다. “소금을 미리 넣으면 국물이 삭아서 못 써요.” 이 집은 음식 맛의 기본인 소금 사용에 섬세한 정성을 기울인다. 신안군 염전에서 간수를 충분히 뺀 천일염만 사용하고, 음식 만들 때 저염을 실천해 ‘짠맛을 줄인 순한 식당’ 지정서를 받기도 했다. 푹 고아낸 설렁탕 국물은 분명 진국인데, 빛깔이 여느 식당의 설렁탕처럼 뽀얗지 않다.

    “쌀뜨물, 프림 그런 걸 전혀 안 타요. 음식 맛이 정직하다고 손님들이 먼저 알아주시는데 그랬다간 큰일나지요.”

    가정에서 사골을 우려낸 듯 슬쩍 속이 비치는 반투명한 국물에 국수사리와 먹기 좋게 저민 양지 수육을 넣어준다. 듬뿍 올려준 대파를 숟가락으로 휘 저어 한술 뜨면 깊고 구수한 육향이 입안에 감돌면서 뒷맛이 담백하고 순하게 남는다. 기름기를 제대로 걷어내어 입술에 쩍쩍 붙지 않고 깔끔하다. 양지 수육도 고소하고 부드러우면서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이 맛이 바로 서울설렁탕의 고유한 진미일 터! 국수사리 한 젓가락을 호로록 먹고 난 뒤 밥을 말아 고기와 잘 익은 깍두기를 올리면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

    2대 대표 이순자씨

    식사로 설렁탕, 도가니탕 등이 제대로라면 술안주로는 수육이 일품이다. 설렁탕 국물에 알맞게 삶아낸 소혀, 양지, 머리 고기, 지라 등을 정갈하게 저며 부추를 깐 따듯한 그릇에 담아 내온다. 부추와 함께 초간장에 찍어 먹으면 느끼하지 않아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

    문화옥의 설렁탕, 도가니탕, 족탕 등을 더욱 맛있게 해주는 신의 한 수는 바로 김치다. 배춧잎에 깍두기를 몇 개 올린 다음 접어서 일인용 접시에 담아 각자 가위로 잘라 먹게끔 한다. 멀리서 이 김치를 먹기 위해 달려오는 손님이 있을 만큼 정평이 나 있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아삭아삭하며 톡 쏘는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시어머니가 오랜 노력으로 개발해 이씨에게 전수해준 김치 양념의 비법은 오로지 이씨 모녀만 공유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300포기가 넘는 김치를 담그는데, 파란 겉잎은 걷어내고 하얀 속배추로만 다듬어 배춧속의 아삭한 식감과 고소한 맛을 살릴 수 있도록 살짝 익힌다. 여기에 서울식으로 담근 깍두기는 새콤하게 익혀 배추김치와 대조를 이룬다. 이것이 바로 서울설렁탕집의 김치와 깍두기를 내는 격식으로, 토박이 서울 사람들이 김치와 깍두기 맛이 옛 맛 그대로라며 반길 만하다.

    문화옥의 고객은 대부분 중·장년층 이상의 서울 사람들이다. 그중에는 2~3대를 이어서 찾아오는 이들도 적지 않고, 때로는 그곳에서 만난 손님들끼리 인사를 주고받는 정겨운 풍경도 벌어진다. 오랜 세월 가족처럼 지내는 단골들이 많아서이다. 150석 남짓한 자리가 점심은 2~3시까지 빈자리가 거의 없고, 주말에도 먼 곳에서 가족 단위로 찾는 손님들과 모임이 많은 편이어서 명절 연휴를 제외하곤 연중무휴로 문을 연다.

    문화옥은 매달 마지막 주가 되면 특별한 손님들을 모신다. 을지로에 사는 독거노인들이다. 1990년부터 매달 마지막 주마다 동네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을 모셔다 점심을 대접해왔다. 시어머니가 지병으로 별세한 뒤, 봉사활동을 하러 동네 경로당을 찾았던 이씨는 시어머니와 같은 연배인 어르신들이 점심 끼니를 거르는 모습을 보면서 따듯한 밥 한 끼라도 정성 들여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외며느리인 저를 끔찍이 아끼셨던 생전의 시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시작했죠.”

    문화옥에 초대받은 어르신들이 따듯한 설렁탕 한 그릇에 기뻐하는 모습을 본 이씨는 능력이 되는 한 자주 대접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것이 27년째 매달 이어져 그동안 대접한 설렁탕만 3만2000여그릇에 달한다. 이씨는 시어머니가 애써 일군 문화옥의 음식을 보다 많은 분들이 드시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59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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