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한달만 현지인처럼… ‘살아보는 여행’ 떠나요

뻔한 관광에서 벗어나 현지에서의 일상을 즐기며
추억을 쌓는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한 달이 세 달로, 세 달이 일 년으로… 바야흐로 '살아보는' 여행 시대다.

    입력 : 2017.05.23 17:30

    [The테이블: Story]
     

    제주發 ‘한 달 살기’, 해외로 확산… 아이와 일상 즐기며 평생 남을 추억 쌓기

    #1. 서울 살던 김현희(34)씨 가족은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의 제주 고택 ‘이안재’에서 열달째 ‘1년 살기’ 중이다. 딸 다빈(8)이는 아침에 일어나 여느 또래 친구들처럼 종달초등학교에 등교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웨딩플래너인 김씨는 구좌읍 송당리에 웨딩드레스와 돌 드레스 대여 매장을 열고 서울과 제주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딸을 위해 제주에 왔지만 우리 부부의 삶도 넉넉해졌어요. 계획에 없던 둘째도 생겼네요(웃음).” 김씨 가족은 1년 살기를 시험대 삼아 아예 제주로 이사하기로 했다.

    #2. 육아 휴직 중인 직장인 김인선(39)씨는 지난달 15일부터 한 달간 수아(8)·수린(4)·수별(3) 세 딸을 데리고 괌 ‘에덴하우스’ 게스트하우스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왔다. 미국령이라 영어권이고 공기가 깨끗하다는 사실이 좋았단다. 남편이 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여동생 가족과 같이 갔다.

    제주 구좌읍 종달리에 있는 제주 고택 ‘이안재’에서 ‘1년 살기’ 중인 김현희씨와 딸 문다빈양. 몇 년 전 열풍이 불었던 ‘제주 한 달 살기’는 ‘1년 살기’로 진화 중이다. 제주 한 달 살기를 시험대 삼아 ‘해외에서 한 달 살기’에 도전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결과는 대만족. “아이들이 돌고래 투어, 스노클링 하는 것도 좋아했지만 근처 어린이 도서관에서 책 읽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한 달간 사립학교 다니면서 신나게 현지 친구도 사귀고요. 기회가 되면 ‘세 달 살기’도 꼭 해보고 싶어요.”

    3~4년 전 복잡한 서울을 탈출해 아이와 제주에서 딱 한 달만 살아보자는 ‘제주 한 달 살기’ 붐이 시작됐다. 이제 한 달 살기는 기간도, 장소도 늘어나 ‘느린 여행’의 대명사이자 여행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한 달 살기의 진원인 제주에선 ‘1년 살기’가 시작됐다. 한 달 살기를 몇 차례 경험했던 이들이 기간을 연장해서 좀 더 현지 삶을 즐기는 것이다.

    20대~40대 초반 젊은 엄마들은 스마트폰으로 세계 각지의 정보를 찾아보고, 번역앱·지도앱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낯선 도시에서 아이와 해외 한 달 살기에 도전한다. 해외여행에 익숙한 이들은 ‘에어비앤비’나 ‘미스터 멘션’ 등 숙박 공유 플랫폼을 통해 현지 숙소를 직접 예약하고, 뻔한 관광 대신 현지에서의 일상을 즐긴다. 여기에 더해 현지 교육기관에 다니거나 여가 활동 프로그램을 등록해 현지인처럼 하루를 보낸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저서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즐거운 추억이 많은 아이는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라고 했지만, 경쟁의 쳇바퀴에서 숨 가쁘게 사는 요즘 우리 아이들은 즐거운 추억 쌓을 짬이 거의 없다. 학원, 과외, 선행 학습 접고 아이들의 반복되는 일상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뒤 전혀 새로운 도시에서 현지인처럼 한 달을 보내며 즐거운 추억을 쌓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괌에서 한 달 살기 중 현지 키즈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인선씨 자녀들./ 김인선

    파리 공원서 조깅, 하와이선 서핑… 엄마도 아이도 ‘추억 부자’ 된 한 달

    ‘살아보는 여행’ 시대
    “한창 뛰놀 나이 아이들과 하루종일 아파트에서만 지내니 육아 스트레스가 심했는데 작년에 제주 한 달 살기를 해보니 스트레스가 줄어들더라고요. 올해도 다시 해보니 한 달도 부족하다 싶어요. 이젠 ‘1년 살기’에 도전해보려고요.”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의 한 달 전용 숙소 ‘레이지마마 곽지’에서 4세, 6세 두 아들과 한 달 살기 중인 박신유(40)씨가 말했다.

    박씨처럼 3~4년 사이 제주 한 달 살기를 몇 차례 경험한 이들이 늘면서 한 달 살기의 유형과 기간, 장소가 다양해지고 있다. 일각에선 열풍이 서서히 꺼지고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유형이 변했을 뿐 여전히 인기다. 제주 내 한 달 살기 전용 숙소들은 이미 5월부터 만실이거나 예약이 완료되고 있다. 이창미 제주관광공사 연구조사팀 동향관리 연구원은 “제주 한 달 살기 현황을 조사할 때 숙소 임대 건수나 매매 건수 등을 기준으로 하는데 예년에 비해 증가 폭이 조금 줄어든 것뿐 수요는 전혀 줄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했다.

    제주 한 달 살기에서 촉발된 한 달 살기 열풍은 파리·런던·시드니·방콕 등 대도시뿐만 아니라 괌·필리핀·말레이시아·발리·하와이·몰타 등 전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인스타그램에서 ‘#한달살기’란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전 세계 각지에서 현지인처럼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 동안 30여 개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본 김은덕·백종민 부부(‘한 달에 한 도시’ 저자)는 “2013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한 달 살기 여행자는 드물었는데 이젠 낯선 이국 공간에 잠시 소속돼 현지인과 친구가 되고 소셜미디어로 추억을 공유하는 ‘살아보는 여행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사진= 각 사례자 제공, 그림= 안병현 (이미지 확대 하단에 추가)

    파리 공원에서 조깅, 하와이 해변에서 서핑… 공부보다 ‘현지 일상 즐기기’

    “파리 뤽상부르 공원 근처에 숙소를 얻어 아침마다 공원으로 가 아이들과 조깅하고 ‘모닝 드로잉’을 즐겼어요. 2년이 지난 지금도 그 어떤 여행보다 기억에 많이 남아요.” 2년 전 당시 15세, 7세 두 딸과 함께 파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한 조인숙(‘파리에서 보낸 여름방학’ 등 저자)씨가 빙그레 웃었다. 조씨는 10년 전 큰딸이 일곱 살 되던 해 ‘런던 세 달 살기’를 시작해 북유럽, 일본 북해도 등에서 여름방학을 보내왔다.

    지난 겨울방학 초등학교 3, 5학년 두 아들과 하와이 한 달 살기 했던 김유진씨는 “하와이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아침에 눈만 뜨면 해변으로 달려가 서핑한 기억밖에 없다”고 웃었다. “기대했던 영어 공부는 전혀 못 했지만, 애들이 그때 사귄 서퍼들하고 영어로 메신저 하면서 일상을 교류해요. 가장 큰 수확이라면 수확이에요.”

    영어 연수 겸 해외에서도 한 달 넘게 머무는 경우도 있다. 김남우·노은숙씨 부부는 딸 하윤(5)이와 현재 필리핀 클락에서 ‘세 달 살기’ 중이다. “회사에서 3개월 장기 휴가를 받았는데, 그동안 생존 영어만 구사해 영어를 좀 더 배우고 싶은 마음에 어학연수 겸 온 가족 세 달 살기에 도전했어요.” 남편 김씨는 “현재 6주 차에 접어들고 있는데 가장 큰 소득이라면 다른 나라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된 것”이라고 했다.

    비용은 지역과 거주 형태 등에 따라 천차만별. 제주 한 달 살기의 경우 숙박비가 땅콩주택 단독형 기준 한 달에 평균 160만~180만원 정도 들고, 자동차 탁송비가 60만~70만원 정도다. 여기에 생활비가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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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각 사례자 제공, 그림= 안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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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각 사례자 제공, 그림= 안병현

    현지인들의 일상 존중해야 ‘진짜 한 달 살기’

    한 달 살기 해본 가족들은 한결같이 “낯선 공간에서 아이와 한 달을 살다 보니 가족애가 더욱 강해졌고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현지인들의 생활상이나 식습관, 문화 등을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며 무엇보다 친구를 사귈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다. 하지만 “단순히 유행에 편승해 도전하는 것은 삼가길 바란다”고 입을 모은다.

    2013년 제주 한 달 살기를 시작으로 1년 살기와 제주 이주 과정을 거친 ‘제주 한 달 살기 1세대’ 장유숙씨는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려고 한 달 살기에 편승하는 경우가 있는데 한 달 살기는 현지인의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좀 여유롭게 놀다 간다’는 생각으로 와 무책임하게 주변 환경을 훼손하거나 현지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사례도 여럿 있다고 했다.

    ‘아이랑 제주 한 달’ 저자 이연희씨 역시 “한 달 살기는 단순한 ‘중장기 여행’이 아니라 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도시와 환경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어떤 도시를 가든 여행자 입장이 아닌 현지 삶의 방식과 일상을 존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올레길 5㎞씩 걷기, 인스턴트 음식 끊기… 한 가지 목표만 이뤄도 성공

    한 달 살기 ‘깨알 팁’
    ‘한 달 알차게 보내겠다는 생각은 금물!’ ‘아이랑 제주 한 달’의 저자 이연희씨가 말하는 노하우다. “한 달 살기를 단기 여행처럼 스케줄 짜서 하면 노는 것도 일이 된다”는 게 이씨의 지론. 하나의 목표를 세워 한 달 동안 그 목표만을 이뤄도 성공한 것이란다. 예컨대 체력이 약하다면 ‘하루에 올레길 5㎞씩 걷기’를 목표로 잡고 일주일에 5번 도전하는 식. ‘한 달 살기 동안 인스턴트 음식 끊기’ 같은 목표도 좋단다. 여기에 매일 동네 도서관 가서 책 읽기 등과 같은 가벼운 도전 과제를 정하면 유익하게 보낼 수 있다.

    ‘한 달에 한 도시’의 저자 김은덕·백종민 부부는 “한 달이라는 시간은 낯선 도시에서도 친구를 사귀기에 좋은 시간”이라고 말했다./ 김은덕

    숙소 고를 땐 주변 자연환경이나 전망, 인테리어만 보지 말고, 층간소음은 없는지, 이웃과 함께 어울릴 만한 공용 공간이 있는지, 아이와 맞는 또래 친구들이 있는지도 살펴보는 것이 좋다.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철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재미.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의 저자 김은덕씨는 “하루에 한 끼 정도는 그 동네 시장이나 마트에서 구입한 현지 식재료로 간단한 음식을 해 먹어보라”고 권한다. 10년 전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처럼 서로의 집을 바꿔 한 달 살기 하면 숙박비도 아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 ‘게스트 투 게스트(guesttoguest.com)’ ‘홈익스체인지(homeexchange.com)’ 등 ‘집 바꿔주는 플랫폼’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열세 살 아이와 함께, 유럽’의 저자 김춘희씨는 “입이 짧고,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 의지가 없는 아이라면 더욱 식량 가방을 든든히 챙겨야 한다”고 했다. 기본적인 ‘생존 영어’는 익히고 간다. 없으면 번역 앱이라도 그때그때 활용한다. 짐은 여행자의 수보다 적게 꾸릴 것. 아이 손잡을 손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모든 서류는 스캔해서 휴대전화에 저장하고, 프린트해서 문서로도 갖고 다닌다. 엄마 체력이 바닥난 날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고, 도서관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자.

    물가 저렴한 태국 치앙마이, 문화행사 풍성한 런던… 여보, 어디가 좋을까?

    아이와 한 달 살고 싶은 도시 & 한 달 살기 좋은 도시
    ‘더 테이블’이 지난 5월 15~18일 네이버 ‘일년에 한 도시 한 달 살기’(cafe.naver. com/suddengongyou) 카페 회원을 대상으로 ‘현지인처럼 한 달 살기’란 주제로 댓글 응답 형식의 자율 설문을 진행한 결과, 한 달 살기를 가장 해보고 싶은 나라(도시)는 ‘제주’로 꼽혔다. 응답자 50명 중 18명이 제주를 답한 것.

    ‘호주’(5명), ‘런던’(4명), ‘뉴질랜드’(3명)가 뒤를 이었다. 이 밖에‘하와이’ ‘스위스’ ‘발리’ ‘밴쿠버’ ‘방콕’ ‘바르셀로나’ ‘괌’ ‘조호르바루’ 등 다양한 나라와 도시가 거론됐다.

    ‘한 달 살기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선 ‘정신적으로 쉬고 싶어서’라고 답한 사람이 18명으로 가장 많았고, ‘어학 및 문화 체험을 위해’가 1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와 느린 여행을 하고 싶어서’(9명), ‘미세 먼지로부터 해방되고 싶어서’(2명)라고 답한 사람도 있었다.

    여행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현지인처럼 한 달 살기 좋은 도시는 어디일까.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 저자 김은덕씨는 태국 치앙마이, 영국 런던을 꼽았다. 두 곳 모두 특히 아이와 지내기 좋은 도시라고. 치앙마이는 태국의 다른 지역보다 날씨가 선선하고 예술가들이 모여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룬 곳으로 아기자기한 카페, 레스토랑이 많다. 김씨는 “치앙마이는 영어 학원도 많고 수영장과 체육관이 있는 집 전체를 빌려도 한 달 50만원 선이니 경제적으로도 부담이 적다”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런던은 “숙박비는 비싸지만 국공립 박물관, 미술관 등이 거의 무료 입장 가능하고 정액 교통카드 ‘오이스터 카드’를 잘 활용하면 교통비도 좀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김씨의 설명.

    ‘파리에서 보낸 여름방학’ 저자 조인숙씨 역시 런던을 추천했다. “런던이란 도시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 문화가 잘돼 있다”는 조씨는 “무료 문화 행사도 많아 한 달 내내 여유롭게 문화 충전하며 보낼 수 있다는 건 축복”이라고 했다.

    ‘열세 살 아이와 함께, 유럽’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6가지 방법’의 저자 김춘희씨는 프랑스 니스를 아이와 함께 한 달 살기 좋은 도시로 추천했다. 푸른 지중해와 산책로를 품고 있고 샤갈, 마티스 등 화가들의 명작을 감상하는 걸 일상처럼 즐길 수 있다고. 김씨는 “영화의 도시 칸, 세계에서 둘째로 작은 모나코 공국, 레몬 축제로 유명한 망통 등 매력 넘치는 도시가 모두 1시간 거리에 있어 소풍처럼 다니기에도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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