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거펠트 서재에 압도, 그가 얼마나 남다른지 알겠죠?”

칼 라거펠트, 크리스티앙 루부탱, 올리비에 루스텡…
까다로운 아티스트도 앞다퉈 그에게 집을 공개한다.
바로 '남의 집' 사진 찍는 스타 사진가 토드 셀비 이다.

    입력 : 2017.05.16 17:10

    [The테이블: Creator의 공간]
     

    대림미술관서 전시 여는 포토그래퍼 토드 셀비

    “완벽하게 압도됐던 공간이 있죠. 바로 칼 라거펠트의 서재였어요. 수만 권의 빼곡한 책도 놀라웠지만, 그가 책을 배열한 방식이 감탄을 자아냈어요. 보통 책은 세로로 꽂는데 가로로 눕혀서 꽂아뒀더군요. 라거펠트가 얼마나 ‘남다름’을 추구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그 많은 책을 다 읽었다니!”

    자신이 살고 있는 모습을 공개한다는 건 은밀한 속살을 내비치는 것 처럼 꺼려지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남자 앞에선 다르다. 샤넬의 수장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구두 디자이너 크리스티앙 루부탱, 발망의 최연소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텡같이 패션계에서도 까다롭기로 소문난 크리에이터가 이 사람에게만큼은 ‘비밀’에 싸였던 집이나 작업 공간을 활짝 열었다. 루이뷔통, 펜디, 나이키, 에어비앤비,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는 이 사람에게 ‘찍어 달라’며 앞다퉈 문을 두드렸다.

    주인공은 미국 LA와 뉴욕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포토그래퍼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토드 셀비(40). 국내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2008년부터 운영한 ‘더 셀비(Theselby.com)’ 사이트를 통해 ‘남의 집’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하루에만 방문자 10만명을 모을 정도로 스타가 됐다. ‘패셔너블 셀비’ 등 저서 3권은 ‘공간’ 사진의 교과서 대접을 받는다. 특히 그가 2010년 찍은 칼 라거펠트의 서재는 수백만 건 공유되면서 토드 셀비의 이름을 전 세계적으로 알렸다. 베일에 싸였던 라거펠트의 숨은 공간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는 첫 계기이기도 했다.

    라거펠트 서재의 ‘실물 사진’을 비롯해 400여 점의 작품을 들고 토드 셀비가 최근 서울을 찾았다. 오는 10월 29일까지 서울 통의동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그의 전시 ‘즐거운 나의 집’ 참석차였다. 셀비와 마주 앉아 유명인을 무장해제시키는 ‘비법’을 들어봤다.

    “집은 결국 그 사람의 또 다른 얼굴이에요. 오랜 기간 지켜보며 친구가 돼야 분칠하지 않은 솔직한 사진을 얻을 수 있지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 ‘네트워크(인맥)’라고 했다. 상대가 자연스레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계속 다가선다. 손으로 직접 쓴 인터뷰 질문지와 일러스트를 취재원에게 보내 답변도 받는다.

    라거펠트에 대해 먼저 묻지도 않았는데 그가 입을 열었다. 라거펠트를 다룬 다큐멘터리 ‘라거펠트 콘피덴셜’(2007)에서 살짝 스쳐간 그의 집을 보고 ‘이거다!’ 싶었단다. 이후 라거펠트를 아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라거펠트를 찍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단다. 끈질김은 드디어 빛을 봤다. 프랑스의 유명 편집 매장인 ‘콜레트’ 대표가 그의 작업에 반해 파리 매장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콜레트 단골인 라거펠트가 눈여겨보면서 만남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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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 키 몇 배는 되는 높이의 책들이 벽 전체에 빼곡히 꽂혀 있다. 샤넬 총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의 서재를 렌즈에 담은 토드 셀비의 작품. 셀비의 인생을 바꿔놓은 대표작이다. 사진은 서울 대림미술관에 전시된 셀비의 작품을 찍은 사진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기자

    파리 작업실에서 라거펠트와 똑같이 옷을 입은 집사들이 셀비를 맞았다. 라거펠트가 오기 전까지 마음대로 공간을 찍어도 된다고 전했다. 수십 종류의 아이팟이 모인 걸 보면서 라거펠트가 대단한 수집광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비위 맞추는 데 힘들지 않았냐고 많이들 묻더라고요. 전혀요. 오히려 마음대로 하라며 라거펠트가 포즈를 취하더군요. 촬영이 끝나니 그가 선글라스를 벗었어요! 평생 안 벗기로 유명한 그 선글라스요. 평온하고 순수한 눈빛이었죠.” 라거펠트는 셀비 앞에서 아이처럼 쿠키도 먹었단다. “집이란 모든 것이 가능한 마법의 공간이자 또 하나의 생명체같이 따뜻한 것이란 걸 깨달았죠.”

    원하는 대로 다 찍었지만 단 한 가지만 못 했다. 서재에 편안히 앉아보라는 주문을 끝내 라거펠트는 거절했다. 사진작가이기도 한 라거펠트가 생각한 ‘미장센(요소 연출)’ 때문이었다.

    토드 셀비가 자신의 작업실을 재현해 놓은 대림미술관 전시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고양이 얼굴의 셔츠는 그가 직접 만든 작품이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아내 덕분에 패션계에 관심이 생겼다. 아내 다니엘레 셔먼은 할리우드 스타 올슨 자매와 함께 패션 브랜드 ‘더 로우’를 론칭한 디자이너 겸 사업가. 뉴욕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의 디자인 디렉터, 아일랜드 록밴드 U2의 보컬 보노가 아내와 함께 만든 이던(Edun)의 총괄 디자이너도 맡았다. “‘집’에서 크리에이터의 공간인 ‘작업실’로 관심을 돌리게 된 데는 아내의 영향이 커요. 아내가 복잡한 세상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이젠 이해하게 됐죠.”

    지금은 톱스타, 톱 브랜드와 작업하는 사진가로 유명인 반열에 올랐지만, 사진을 제대로 배워보지도 못했다. 야간 대학에서 기초 과정을 배운 게 전부. 나머지는 스스로 익혀갔다. 미국 버클리 대학에서 라틴 문화를 전공했다. 사진가로 일하기 전엔 멕시코 정치인 부패 방지 컨설턴트, 멕시코 티후아나 관광 가이드, 코스타리카 지도 제작자, 캘리포니아 딸기 산업 연구원, 분뇨 비료 개발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여러 분야에서 몸으로 익힌 지식과 친화력이 사진가로서의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어린 시절 뇌과학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 러시아 등지를 여행한 경험도 지금의 그를 만든 바탕이 됐다.

    “전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말로 ‘Walk in stupid’가 있어요. 순수한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실행하자는 뜻이죠. 또 하나 당부. 완벽한 것보다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해요. 뭘 두려워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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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에 걸린 토드 셀비의 사진 작품. 1)퍼플 매거진의 편집장 올리비에 잠의 침실. 2)발망의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텡이 작업실에서 모델에게 옷을 맞춰보고 있다. 3)랑방의 주얼리 디자이너 엘리 탑의 작업 모습. 그는 회사 외에 작업실을 따로 두지 않고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디자인을 한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토드 셀비가 추천하는 책

    Le Corbusier Le Grand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세계관과 작품을 충실히 설명한 책.

    Less and More: The Design Ethos of Dieter Rams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로 불리는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에 대한 책.

    Carl Aubock: The Workshop 각종 연장 등 작업장과 관련된 사진을 망라한 책.

    The Last Whole Earth Catalog 지구백과.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에서 ‘내 인생의 책’으로 언급했다.

    Les Diners de Gala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자신의 초현실 작품관을 담아 쓴 요리책<사진>. ※모두 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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