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의 저 숫자는 뭐지? 번지수가 이름을 대신 하다

화려한 상호 대신 번지수로 식당 이름을 대신하는
'숫자 간판'이 늘어나고 있다.
눈길,발길을 절로 끄는 가게들을 만나 보자.

    입력 : 2017.05.16 17:10

    [The테이블: Trend]
     

    11818다이닝·까사684… 암호 같은 숫자로 호기심 자극
    한식주점·와인바·빵집… 색다른 분위기·메뉴로 반전 선사

    수상한 숫자가 간판을 점령했다. 암호인가? 발길 멈추고 숫자의 의미를 추측하다 보면 물음표가 더해진다. 그런데 뭐 하는 가게지? 궁금증 유발하는 숫자의 정체는 의외로 단순하다. ‘번지수’다. 주소를 그대로 가게 이름으로 삼았다. 뉴욕, 런던 같은 해외 도시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작명(作名)이지만 이름만 봐도 업종이 한눈에 드러나도록 상호를 짓는 게 일반적인 한국에선 드물던 풍경이다.

    단순하지만 명쾌하다. 덕분에 찾기도, 기억하기도 쉽다. 문 열고 들어가면 만나는 예상치 못한 색다른 분위기, 입맛 사로잡는 메뉴들은 반전을 선사한다. 번지수로 이름 달고 눈길과 발길 사로잡는 공간들에 들어서면 물음표가 금세 느낌표로 바뀐다. ‘번지수 잘 찾았네!’

    번지수를 이름 삼은 가게들이 늘고 있다. 도로명주소로 이름 단 역삼동 샐러드바 ‘테헤란16번가(TEHERAN16st)’의 간판./ 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강정미 기자

    알쏭달쏭 호기심 자극하는 숫자, 주소라고요!
    지난해 12월 문을 연 논현동 11818다이닝(02-545-5001)은 독특한 이름과 남다른 인테리어, 반전 메뉴로 입소문 난 모던 한식 주점이다. 11818은 이곳의 번지수(논현동 118-18번지)를 딴 이름이다. 화려한 샹들리에와 그림, 식물이 돋보이는 공간에 들어서면 우아하게 와인 즐겨야 할 것 같은데 메뉴판엔 ‘돼지반김치반찌개’ ‘달콤새콤간재미무침’ ‘보쌈’ 같은 한식 메뉴가 가득하다.

    대표 윤순근(46)씨는 디오르에서 15년 근무한 뒤 홍보 대행사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패션 업계에서 잔뼈 굵은 대표의 경력 덕에 패션 피플과 송혜교· 송중기·유아인 등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출몰’한다. 아지트 같은 분위기에서 소주부터 맥주, 와인, 위스키까지 다양한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한남동에 지난달 문을 연 까사684(02 -790-6840)도 알쏭달쏭한 숫자가 궁금증을 유발하는 곳이다. 와인 바로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청담동 까사델비노 은광표 대표가 연 캐주얼 와인 바. 이름은 주소 ‘한남동 684-51번지’에서 따왔다. 와인을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도록 꾸몄다.

    까사델비노의 상징인 와인 바를 20석으로 축소해 꾸몄다. 150종 와인의 평균 가격은 5만원. 모던하고 깔끔한 분위기의 바에선 저렴하지만 맛있는 가성비 좋은 와인을 즐길 수 있다. ‘혼술족’을 위한 바 좌석도 따로 마련되어 있다.

    1)간판 속 도로명주소가 곧 상호인 카페 ‘도산대로1길12’. 2)논현동 ‘11818다이닝’의 암호 같은 숫자는 번지수인 논현동 118-18번지에서 따왔다. 3)번지수를 딴 독특한 이름과 인테리어로 눈길 끄는 빵집 ‘안국153’. 4)익선동 한옥을 리모델링한 밥집 ‘익선동121’은 번지수를 상호로 내걸었다. 5)한남동 684-51번지에 문을 연 캐주얼 와인바 ‘까사684’./ 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강정미 기자

    번지수 그대로 이름 삼은 곳
    번지수 그대로 이름을 짓고 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에선 그 동네의 분위기가 한껏 느껴진다. 종로구 안국동 153번지,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 앞. 빵 굽는 냄새에 발길 멈춘 빵집 간판엔 다소곳이 주소 겸 상호가 얹혀 있다. 안국153(02-733-1530).
    독특한 이름과 간판만큼 초록색의 아담한 건물이 눈에 띈다. 창을 가득 채운 식빵들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100년 넘은 전통 가옥의 예스러움이 느껴지는 2층 카페에선 한가로이 여유 즐기기에 좋다. 우리 농산물로 자극적이지 않은 건강한 빵을 만든다. 야채식빵(5800원)과 밤식빵(4800원), 대추바게트(3800원), 통밀스콘(1800원)이 인기 메뉴. 주부 김용인(54)씨는 “친구들과 이 근처에서 만나면 꼭 들르는 참새 방앗간”이라며 “기억하기 좋은 이름뿐만 아니라 건강한 빵과 따뜻한 분위기가 좋다”고 했다. 2층 카페에선 커피도 좋지만 이곳에서 직접 담근 유자차, 대추차 등 한국적인 차와 갓 구운 빵을 함께 맛보는 것도 좋다.

    한옥 가득한 익선동에도 주소 내건 간판으로 발길 멈추게 하는 곳이 있다. 종로구 익선동 121번지 오래된 한옥을 리모델링한 밥집 익선동121(02-765-0121)이다. 직접 만든 카레와 한식 메뉴, 주류와 같이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다양하다. 익선동 옛 한옥, 골목과 어우러지면서도 현대적이게 변신한 가게 분위기가 독특하다.

    익선동을 찾는 여행자들뿐 아니라 인근 직장인들의 밥집으로도 사랑받는 곳. ‘수육을 곁들인 바지락 부추 된장비빔밥’(7000원), ‘바지락 순두부 뚝배기 찌개 덮밥’(7000원), 닭 가슴살 망고 카레와 토마토 치킨 카레 등 4가지 카레 중 선택할 수 있는 ‘반반카레’(7500원)가 인기.

    1)다양한 한식 메뉴를 즐길 수 있는 모던 한식 주점 ‘11818다이닝’의 순천 직송 자연산 피꼬막(2만8000원)과 차돌박이 샐러드(2만8000원). 2)한옥에서 든든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는‘익선동121’의 반반카레(7500원). 3)합리적인 가격의 와인이 가득한 한남동의 ‘까사684’의 하우스 와인(1만원), 모둠 사큐테리 6종(2만5000원), 구운 브로콜리(1만2000원)·아스파라거스(1만5000원)./ 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강정미 기자

    전화도 없다, 간판 속 주소가 유일한 단서
    2014년 도로에는 이름, 건물에는 번호를 붙이는 도로명주소가 전면 시행됐다. 번지수뿐 아니라 도로명주소를 이름 삼은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열고 있다.
    도산대로1길12는 도로명주소가 가게 이름인 카페. 지난해 1월 문 열었다. 매장엔 전화가 없다. 찾아가려면 스마트폰 속 지도에 주소 겸 상호를 찍고 찾아가야 한다. 가로수길과 가깝지만 유동 인구가 비교적 적은 강남구 신사역 8번 출구 인근, 동네 단골손님이 많은 곳이다.

    “도로명주소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신기해하는 분이 많으세요. 쓰다 보면 도로명주소가 길 찾기도 편하고 기억하기 쉬워요. 이곳만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가장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했죠.” 26㎡(약 8평) 남짓한 아담한 공간에선 직접 원두를 볶고 매일 빵을 굽는다. 더치 아메리카노(3000원)와 카페라테(3300원), 오렌지라테(4500원) 등 커피 메뉴와 단호박 스콘(2000원), 무화과 파운드 케이크(2000원)가 인기다. 영업시간은 오전 8시~오후 6시.

    ‘도산대로1길12’의 인기 메뉴인 단호박스콘(2000원)과 무화과파운드케이크(2000원)(위쪽). 직접 착즙한 주스바(4900원)와 무제한 샐러드바(점심 9900원)로 건강한 한 끼를 즐길 수 있는 ‘테헤란16번가’의 메뉴들(아래쪽)./ 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강정미 기자

    테헤란16번가(02-539-3222)는 강남구 테헤란로16길 15에 자리한 샐러드 바. “이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했었죠. 도로명주소도 시행됐고 해외에선 이렇게 이름 짓는 곳이 많으니까요. 가게가 이면 도로에 위치해서 길 찾기도 편하고 외우기 쉬울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길 헤매는 분들이 많아 너무 앞선 작명 같기도 해요.” 김정용(41)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한 번 온 사람은 이름 덕에 못 잊는단다. 샐러드로 건강한 한 끼를 즐기려는 테헤란로의 직장인들이 많이 온다.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공수한 신선한 제철 채소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샐러드 바가 점심 9900원, 저녁 1만2900원. 고급 호텔처럼 신선한 과일을 직접 착즙해서 즐길 수 있는 무제한 주스 바는 4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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