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된 얼짱 배우 “출산의 고통도 견뎠는데 뭘 못하겠나 싶더라고요”

얼짱 아르바이트생으로 이름 날리던 그녀가
지금은 배우로 안방극장을 누비고 있다. 워킹맘으로 돌아온 그녀를 만나 보자.

    입력 : 2017.05.10 15:35

    [The테이블: Table with]
     

    영화 ‘그녀를 모르면 간첩’(2004)의 한 장면. 서울로 급파된 남파 공작원 림계순(김정화)이 학원가 패스트푸드점에 위장 취업한다. 문제는 ‘은신이 생명’인 간첩 미모가 너무나 빼어나다는 것. 패스트푸드점은 그녀를 보러 온 남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삼수생 최고봉(공유)이 몰래 찍은 그녀 사진을 인터넷 얼짱 사이트 ‘그녀를 모르면 간첩’에 올리면서 정체가 탄로 날 위기를 맞는다.

    이 장면은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한 배우 남상미(33)의 실제 일화를 각색한 것이다. 15년 전 석관고 3학년 재학 시절 남상미는 겨울방학을 맞아 롯데리아 한양대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빛나는 외모로 ‘롯데리아걸’로 불리며 유명 인사가 된다. 당시 “아르바이트생 한 명이 ‘한양대 롯데리아’를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햄버거 가게로 만들었다”는 기사가 스포츠신문에 실릴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얼짱’ 아르바이트생으로 이름 날리던 여교생 남상미는 이제 ‘워킹맘’으로 안방극장을 누빈다. 얼마 전 복귀작으로 택한 ‘김과장’(KBS2)을 수목드라마 시청률 1위로 마쳤고, 예능 ‘집밥 백선생’(tvN)에서 ‘집밥 신생아’란 별명으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출산 후 비로소 ‘연기 강박증’과 ‘예능 울렁증’을 극복했다”는 그녀를 서울 역삼동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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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포털 사이트 네이버가 선정한 ‘올해의 신조어’ 1위는 ‘얼짱’이었다. 남상미는 그 단어를 대표하는 인물로 일약 스타가 되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는 “결혼 후 ‘얼짱’이라는 단어가 쑥 들어간 건 솔직히 아쉽다”며 환하게 웃었다./ 제이알 이엔티

    롯데리아걸, ‘워킹맘’ 되다
    ―‘김과장’으로 2년 공백을 지워냈다.
    “2년이나 쉴 줄은 몰랐다. ‘허니문 베이비’가 생겼다. 예상 못 한 공백이지만 이 시간이 참 값졌다.”

    ―결혼 전후 무엇이 달라졌나.
    “결혼 전 ‘배우 남상미’로만 살았을 땐 늘 중압감에 시달렸다. 쉼 없이 달리면서도 늘 잘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스트레스였다. 그러다 ‘인간 남상미’로 살아보니 ‘내려놓음’을 배우게 되더라. 가치관을 뒤바꾼 건 출산이었다. 출산의 고통도 견뎌냈는데 내가 무얼 더 못하리!(웃음) 2년 동안 아내, 엄마라는 같은 역할만 소화하다 보니 연기가 그리웠다. 연기는 다른 역할, 다른 삶을 살아보게 해주니까. 그래서 택한 배역이 스물아홉 경리부 대리 윤하경이다.

    ―제 몸에 꼭 맞는 배역 같았다.
    “연기할 때 ‘나’를 철저히 지운다. 맡은 역할마다 전부 남상미화(化) 돼버리면 심심하니까. 윤하경은 정반대다. 밝고 긍정적인 모습이 나와 닮았다. 윤하경이 남상미고, 남상미가 윤하경인 상태랄까(웃음). 노력도 있었다. 극 중 윤하경은 TQ그룹의 대표이사(이일화)와 손잡고 사내 비리를 파헤친다. 제아무리 여주인공이라도 말단 사원이 이런 일에 가담하려면 타당한 이유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타당성을 부여하는 대사, 이를테면 ‘전 이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제 몸 다 바쳐서라도 사람들 위하는 일이요’ 같은 대사를 진정성 있게 소화하려 했다.”

    ―극 중에선 싱글이지만, 사실 ‘워킹맘’이다.
    “‘김과장’ 녹화를 마치고 귀가하면 아침 7시였다. 퇴근이라기보단 집으로 다시 출근하는 기분이었다. 드라마 배경이 직장이다 보니 ‘워킹맘’들 심정이 절로 이해가 가더라. 프리랜서인 나는 촬영 기간인 3개월만 버티면 끝이지만, ‘직장맘’은 이 피로감을 365일 겪어야 하지 않나. 심지어 일과 가정에서 제 역할을 모두 잘해내야만 ‘본전’이다. NG 컷이나 비하인드 컷을 모은 방송이 잡히면 한 번쯤 외치고 싶었다. ‘워킹맘 여러분, 힘내십쇼!’”(두 주먹 불끈 쥐고 외치는 “힘내십쇼”는 극중 윤하경의 트레이트 마크다.)

    ―이제 ‘얼짱’보다 ‘배우’란 수식어가 어울린다.
    “좋지만 아쉽다. 그 타이틀은 놓치고 싶지 않은데(웃음).”

    꼬리표 된 ‘얼짱’, 아이 낳고 강박 떨쳐
    남상미는 딸을 출산한 2015년과 이듬해를 제외하곤 데뷔 이후 한 해도 작품을 쉬지 않았다. 연기상(賞)도 아홉 차례나 수상했지만 ‘배우 남상미’의 진가를 인정하는 대중은 드물었다. 한때는 훈장이었던 ‘롯데리아걸’ ‘얼짱’이라는 타이틀은 시간이 흐르자 애매한 꼬리표가 돼 버렸다. 결혼 후 사라졌다는 “무조건 잘해내야 한다는 강박”도 이 지점과 맞닿아 있었다.

    ‘집밥 백선생’의 한 장면. 남상미는 점차 ‘집밥 우등생’으로 거듭나고 있다./ tvN

    ―슬럼프는 없었나.
    “‘빛과 그림자’(MBC) 끝나고 슬럼프 아닌 슬럼프가 찾아왔다. 윤하경과 같은 스물아홉 살 때다. 죄다 비슷한 배역만 들어왔다. ‘나는 연기를 왜 하는 걸까’ 자문하게 됐고, 연기가 무서워졌다. 휴지기를 갖다가 장편이 아니라 단막극으로 숨 고르기를 하자고 했다.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현장에 나가니 다시 살아났다. 그때부터 시집을 가든, 아이를 낳든 연기와 나를 떼놓고 살긴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연기하는 데 조력자가 돼준 남편을 만났다. 연기 열심히 할 거다(웃음).”

    ―요리 예능 프로에 고정 출연한다.
    “요리를 못한다. ‘집밥 백선생’ 출연하기 전까진 부엌이 모델하우스에 가까웠다. ‘집밥…’은 요리와 예능을 둘 다 못해서 출연했다. 일종의 ‘젬병’ 커밍아웃인 셈이다.”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그렇다. ‘집밥…’에 출연하면서 여자들의 가사 부담을 내려주고 싶었다. 척척 잘해내는 모범 답안 대신 작대기 쫙쫙 그어진 시험지 보여주듯 서툴지만 노력하는 내 모습을 보여준다. ‘저 굉장히 못해요’라는 말은 어쩌면 ‘그래, 못할 수도 있지’라는 말이다. 살다 보면 무엇이든 잘해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익숙해져 내려놓을 포인트를 놓칠 때가 잦다. 또래 여자를 대변해서 못하는 모습,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예능도 ‘배우면서 성장한다’의 일종인가.
    “예능이 두려웠던 건 할 말이 없어서다. 에피소드를 끊임없이 쏟아내야 하는데 나는 ‘말할 거리’가 딱히 없었다. 작품 할 때를 빼곤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해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 계정도 만들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를 낳으니 ‘말할 거리’가 조금씩 생기더라. ‘집밥…’을 통해서 두 난제(難題)를 조금씩 극복해가고 있다. 나는 ‘집밥 신생아’라는 별명이 참 좋다. 신생아는 무럭무럭 자랄 일만 남았으니까. 촬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장소 가리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싶다. 우리 딸처럼.”



    남상미는…
    1984 경북 영주 출생
    2003 드라마 ‘러브레터’(MBC)로 데뷔.
           ‘령’ ‘그녀를 모르면 간첩’ ‘잠복근무’ ‘슬로우비디오’ 등 영화 7편 출연.
           ‘달콤한 스파이’ ‘불량가족’ ‘인생은 아름다워’‘김과장’ 등 드라마 11편 출연.
    2006 MBC 연기대상 여자 신인상, SBS 연기대상 미니리시즈부문 연기상
    2007 MBC 연기대상 여자 우수상
    2009 KBS 연기대상 미니시리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2012 MBC 연기대상 특별기획부문 최우수연기상
    2013 SBS 연기대상 장편드라마부문 최우수연기상
    2014 KBS 연기대상 중편드라마부문 여자 우수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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