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공예품으로 남미 여성들의 자립을 돕다

오랜 전통을 지닌 남미 여성들의 수공예품을 통해
그들의 자립을 돕기 시작해
한국 미혼모 돕기로 발전 중인 크래프트링크의 고귀현 대표를 만났다.

    입력 : 2017.05.13 08:44

    [Human]
     

    ‘수공예품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결하는 소셜벤처’
    크래프트링크 고귀현 대표

    2012년 초, 연세대 법학과에 다니던 고귀현씨는 남미로 향했다.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여행자금을 마련해 석 달 예정으로 떠난 길이었다.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등 4개국을 돌면서 그는 삶의 에너지와 즐거움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그곳 사람들은 가난해도 삶을 즐길 줄 알았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었다. 알록달록한 원색의 옷과 액세서리로 자신을 표현하고, 어디에서든 음악이 흘러나오면 거리낌 없이 춤을 췄다. 막연한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사는 사람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답답한 학창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법학과 친구들은 옆도 돌아보지 않고 사법고시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향해 달렸습니다. 저는 동질감을 느낄 수가 없었어요. 법학 공부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법률가가 제 적성에 맞는지는 의문이었거든요. 저는 새로운 데 관심이 많고 뭔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때 이스라엘 협동농장 키부츠에서 만났던 남미 친구들이 생각났다.

    “대학교 2학년 때인 2007년, 키부츠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세계 각국 청년들이 키부츠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 농사일을 해주는 프로그램에 참가했거든요. 그때 만난 남미 친구들에게 ‘5년 후에 남미로 갈게’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때는 5년 후면 인생이 달라져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동안 군대에 다녀오고 복학도 했지만 제 인생에서 확실해진 것은 없었습니다. 미래를 생각할 때 뭘 해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나는 즐거움이나 만족감을 느낄 수 없는 사람인가 보다’ 체념할 정도였으니까요. 허무감과 쫓기는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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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아 기자

    남미에서는 달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했고, ‘내게 아직 즐길 수 있는 에너지가 남아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다.

    “남미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국에서처럼 빽빽하게 계획을 세워 움직이려고 했어요. 얼마 지나자 그럴 필요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남들이 다니는 코스를 찾기보다 ‘지금 여기’를 충분히 즐기게 되었으니까. 세계 7대 불가사의라는 마추픽추도 찾지 않았습니다. 마추픽추로 가기로 한 날, 사막의 이름 없는 마을에 남았습니다. ‘내가 정말 있고 싶은 곳은 이곳’이라는 생각에서였죠. 세상에서 동떨어져 있는 느낌이 드는 오아시스 옆 마을이었어요. 해먹에 누운 채 사막의 석양을 바라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해가 사막의 능선 뒤로 넘어갈 때 미세하게 변하는 하늘 색깔, 밤하늘의 총총한 별들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었죠. 마음이 편안해지고 충족되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구걸하거나 관광객에게 수공예품을 파는 아이들을 볼 때 마음이 불편했다. 중남미 인구의 절반이 청소년이고, 그중 절반이 유엔이 정한 절대 빈곤 아래에 놓여 있다는 현실도 알게 되었다. 부모에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다면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에게 구걸이나 장사를 시키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2012년 3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새 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 말, 우연히 학교에서 열린 사회적기업 관련 강연을 들었습니다. 비즈니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 솔깃했지요. 곧바로 사업 기획을 해서 ‘소셜벤처경연대회’에 참가했고, 3등으로 입상했습니다. ‘고시생들이 버린 펜과 재활용 공책을 남미 어린이들에게 기증하고, 남미 여성이 만든 수공예품을 제값 주고 사들여 판매한다’는 간단한 아이디어였습니다. 고시생들은 펜 상태에 엄청 예민해서 필기감이 좋지 않으면 바로 버리거든요. 사법고시가 끝난 후 학교 고시반에서 쏟아져 나온 펜이 1000자루나 되더라고요. 2013년 2월, 기증품을 들고 다시 남미를 찾아 그곳 NGO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남미 여성들의 자립 지원을 위해 제작판매하는 ‘라틴컬렉션’ 팔찌들.

    남미 수공예 기술에 현대적 디자인 접목

    2013년 말, 그는 ‘수공예품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연결한다’는 취지로 소셜벤처 ‘크래프트 링크’를 시작했다. 단순한 기부가 아니라 남미여성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남미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들을 제값 받고 팔아주면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실정과 맞지 않은 상품이 많았고, 품질 관리도 어려웠다.

    그래서 오랜 전통을 지닌 남미 여성들의 수공예 기술에 현대적인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라틴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남미를 대표하는 인물과 장소를 색감으로 표현하는 팔찌를 디자인해 남미 여성들에게 제작을 맡겼다. ‘프리다’ 팔찌는 멕시코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색감, ‘말리’ 팔찌는 자메이카의 레게아티스트 밥 말리를 떠올리게 하는 색감, ‘우유니’ 팔찌는 하얀 소금으로 뒤덮인 우유니 소금사막과 파란 하늘을 연상시키는 색감의 실을 꼬아서 만드는 식이다.

    체 게바라, 파블로 네루다, 페르난도 보테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삼바축제가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아르헨티나의 아름다운 항구마을 보카 등을 내세워 팔찌를 만들었다. 여러 색의 실을 교차해 다이내믹하게 색상을 표현하는 마리나 매듭 방법을 활용하고, 왁스 코팅된 실을 사용해 물이나 땀에 강한 게 특징이다. 남미 여성들이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구독 서비스도 시작했다.

    크래프트링크가 의뢰한 팔찌를 제작하는 과테말라 여성들과 함께한 고귀현 대표.

    매달 1만원씩 구독료를 내면 석 달에 한 번씩 남미 여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선물로 주는 서비스다. 남미 여성뿐 아니라 한국의 미혼모를 위한 사업도 시작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모의 90%가 최저생계비 미만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온갖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인 어려움을 무릅쓴 채 아이를 혼자 양육하고 있는 미혼모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지요. 그들에게 육아와 병행할 수 있는 일거리를 주고 싶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전통 매듭인 국화매듭을 활용한 야생화 팔찌를 고안한 후 미혼모들을 교육시켜 일감을 줬다. 지금까지는 날개하늘나리와 고마리, 동이 팔찌가 나왔다. 날개하늘나리는 꼿꼿이 하늘을 향하는 꽃과 날개처럼 펼쳐진 잎이 아름다운 야생화, 고마리는 약초로도 쓰이고 연못도 정화하는 등 쓰임새가 많아 고마운 꽃, 동이는 잎을 오므리면 작은 동이처럼 물을 담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꽃이다.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한국의 야생화에 대한 관심도 일깨우는 팔찌다. 야생화와 같은 색깔의 실로 매듭을 만들면서 다른 색깔의 태슬 장식을 달아 변화를 줬다.

    오랜 전통을 지닌
    남미 여성들의 수공예 기술에
    현대적인 디자인과 스토리텔링을
    접목하기 시작했다.
    ‘라틴컬렉션’이란 이름으로
    남미를 대표하는 인물과 장소를
    색감으로 표현하는
    팔찌를 디자인해
    남미 여성들에게 제작을 맡겼다.

    “코리아컬렉션은 출시하자마자 금방 매진이 될 정도로 반응이 좋습니다. 외국인 선물용으로도 인기입니다. 지금은 주문량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태지요. 아기를 떼어놓을 수 없어 다른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미혼모들에게 우선적으로 일을 맡기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더 나은 직업으로 옮겨갈 수 있도록 ‘졸업제도’를 둘 계획입니다.”

    그는 소비자들에게 동정을 호소하지는 않을 작정이다. 세련된 디자인과 독특한 개성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라틴컬렉션에는 남미의 특징과 매력, 코리아컬렉션에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담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로도 시장을 넓힐 계획이다.

    “라틴컬렉션의 팔찌는 과테말라에 있는 한 마을의 여성들에게 제작을 맡깁니다. 아이들을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되도록 현지에 비해 2배의 임금을 주지요. 1년에 한 번 이상 그 마을을 방문해 어려움은 없는지, 소원이 뭔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가족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세계적인 여행지라는 남미에 살면서 자신들은 정작 여행 한 번 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박탈감을 느끼는 거지요. 그래서 불량률이 낮은 분들에게 상으로 가족여행을 보내드리고 있어요. 우선 이 마을 여성들의 수입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싶습니다. 매출 규모가 커지면 한 마을 한 마을 확장해나갈 계획입니다.”
    올해로 만 30세가 된 고귀현 대표. ‘그의 선한 의지가 결실을 이뤄나갔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도전정신을 부르는 역할이라면 언제든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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