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인 나도 유산 기부… 이제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 않을까요?

50대의 나이에 유산을 기부를 한 이가 있다.
자타공인 대한민국 대표 CRM 전문가, 김영하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다.

    입력 : 2017.05.10 08:57

    [더 나은 미래 - Cover Story] 1억원 유산 기부… '헤리티지클럽' 4호 회원 김영걸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잘나가던 교수님'에서 NGO 재능 나눔가로
    우연한 계기로 NGO 활동 시작 "나이 마흔셋에 천사 만났죠"
    CEO 네트워크 활용해
    기아대책·기업 연결 역할
    '최경주 자선 골프대회'도 열어
    학교 후원 '마중물 전략' 적용
    "동료 교수들 먼저 설득하고 전체 이메일로 200계좌 달성"
    /조선영상미디어 양수열 기자
    이제 갑자기 교통사고가 난다 해도 마음이 편안해요."
    100세 시대에 아직 6부 능선도 오르지 않았는데,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김영걸(58·사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다. 그는 최근 1억원을 유산 기부, 기아대책 '헤리티지클럽(유산 기부자들의 모임)' 4호가 됐다. '50대에 웬 유산 기부?'라고 의아해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인터뷰에 나섰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CRM(고객 관계 관리) 전문가인 그가 언론에 고액 기부자로 나서는 건 처음이다. 14년째 NGO에 재능 기부를 해오며, 기부 전도사가 된 그를 지난 11일 서울 홍릉동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만났다.(그는 최근 보직이 바뀌었다며 '카이스트 발전재단 상임이사 김영걸'이라는 명함을 내밀었다.)

    ―이미 1억원 이상 기부한 고액 기부자 모임인 '필란트로피 클럽' 회원인데, 왜 '헤리티지 클럽'에도 가입했나. 
    "클럽 중독은 아니다.(웃음) 필란트로피 클럽은 1년 반 만에 회원수 50명을 넘기며 건강하게 잘 성장하고 있다. 근데 헤리티지 클럽은 1년 넘도록 3명밖에 안 되더라. 아직 우리나라 문화에서 확산이 어려운 기부 방식인 것 같았다. 형제들한테도 권했더니 '아직 창창한데, 왜 벌써 죽는 이야기를 하느냐'고 꺼려하더라. 유산 기부에 대한 인식이 둘 중 하나다. '젊은 나이에 괜히 나중 일로 폼 잡는 거 아니냐'는 인식, '괜히 기부했다가 사고라도 나는 것 아닌가' 하는 징크스에 대한 두려움이다. 활성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헤리티지 클럽 1호'가 돌아가신 어머니(故 설순희 여사)였는데, 어머니 1주기에 맞춰 유산 기부를 결심했다."
    ―유산 기부 하면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할 것 같은 인식이 있다. '유산 1억원 기부'가 생소하다. 
    "아내의 첫마디가 이랬다. '좋은 일이긴 한데, 당신 돈 없잖아.' 통장에 겨우 백몇십만원밖에 없었다. 4년 전 주택을 지어 이사했고, 재작년 딸 둘 결혼시키고, 기아대책 한톨청소년봉사단장 하면서 열심히 후원하고 나니까 내 수중엔 현금이 별로 없다. 아내는 '당장 사고라도 나면 (유산 기부 위해) 집을 팔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님 사후에도 1억원 유산 기부부터 먼저 하고 맨 마지막에 상속세를 냈으니까 아내는 그게 걱정된 것이다. 퇴직금, 일시 위로금, 사망 보장형 보험금 등을 합치면 1억원 정도 되더라. 집을 안 팔아도 된다니 아내도 오케이했다."
    ―유산 기부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가.
    "정말 쉽다. 나와 내 자녀 혹은 자녀 대표 한 명이 가서 유산 기부 약정서에 사인하면 된다. 기아대책에서 변호사나 세무사 및 관련 서비스를 전부 지원해준다. 사회를 위해 뭔가 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는 분들에게 적합한 방식이다. 당장 돈이 나가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유산'이니 살아있는 동안 할 필요가 없다. 현찰, 주식, 부동산, 심지어 보험까지 어떤 것으로든 기부할 수 있다. 고액 후원처럼 액수가 정해져 있지도 않다."
    ◇모자(母子)가 함께 유산 기부… 국내 유산 기부 문화 확산 바라
    ―유산 기부 약정식에서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어머니께 유산 기부를 권해 드린 일"이라고 말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어머니는 85세임에도 정정하셨다. 근데 유산 기부를 약속한 후 두 달도 안 돼 쓰러지셨고, 7개월 후 돌아가셨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지 않나. 건강할 때 유산 기부를 권했고, 어머니께서 흔쾌히 결정하신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에서 '설순희 여사님 기아대책 유산 기부'라 쓰인 팝업 광고를 단체에서 세워줬다. 다들 어머니가 전 재산을 기부하신 줄 알고 놀라고 큰 감동을 했다. 어머니는 자녀·손주들 앞에서 찬사를 들으시고, 자녀는 '훌륭한 어머니 두셨다' 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걸 본 누군가가 유산 기부에 동참할 마음을 먹으면 더욱 좋은 일이지 않나. 실제로 헤리티지 2호 후원자도 고액 후원자 모임에서 어머니의 사례를 듣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얼마나 큰 기쁨인가."
    ―어머니께 유산 기부 1호를 권한 계기는. 
    "사실 10년 전부터 유산 기부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왔다. 1만원부터 4만5000원까지 정기 후원하는 해외 아동 결연 프로그램만으로는 수요에 한계가 있다. 계속 굶는 아이들의 모습만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고액 기부와 유산 기부 같은 블루오션 모델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해왔다. NGO 입장에서 유산 기부는 기부했다고 당장 후원금이 들어오는 기부도 아닌 불확실한 기부다. 그래서 '이미 한 분 확보해놓았다'고 설득했다. 그 한 분이 바로 어머님이었다(웃음). 5남매인데, 형제들도 좋은 일이라며 모두 찬성했기에 가능했다."(그의 여동생은 매일유업 김선희 대표로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미국이나 영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유산 기부 문화가 제대로 정착 안 됐다. 유류분(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한 상속 재산의 일정 부분) 제도가 있어서 사후에 자녀에 의해 유산 기부가 뒤집히는 등의 송사도 있었다. 이 때문에 NGO에서도 유산 기부 캠페인을 적극 벌이지 않았는데….
    "기아대책 간사님들께 '기증자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억원 기부했으니까 이제 더 하실 일 없겠네'라고 하겠지만, 그게 아니다. 처음에는 보통 재산의 일부를 한다. 앞으로 30년 더 산다고 했을 때, 내 재산이 늘어나면 어디에다 기부하겠는가. 유산 기부 약정해놓은 기관에다 하지 않겠나. 미래산업 정문술 회장님이 개인 기부 역사상 최초로 카이스트에 300억원을 기부했다. 사람들은 그걸로 끝인 줄 알았다. 근데 215억원을 더 기부하고, 110억원인가를 유증으로 더 기부했다. 유산 기부는 시작일 뿐 남은 기간 점점 더 많은 기부를 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실향민 1세대 창업주들은 돌아가시기 전에 통일이나 북한을 위해 좋은 일 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것이다. 이분들이 절실한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기회를 드려야 한다."
    ◇14년째 이어진 재능 기부… 한 NGO에 헌신한 '나눔' 정신
    김영걸 교수의 사무실 액자에는 '최경주 자선 골프대회', '슈팅 포 아프리카' 등 기아대책에 재능 나눔을 해온 이력이 모두 담겨 있었다. 무려 14년째 이어진 인연이다. 한 NGO에 유산 기부를 하기까지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이 조형물도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여 설치한 겁니다.” 인터뷰를 마친 김영걸 교수가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정 안 조형물 옆에서 환히 웃고 있다. / 조선영상미디어 양수열 기자
    ―30대에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 부임해 CEO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던, 소위 '잘나가던' 교수님이 어떻게 비영리단체에 재능 나눔을 하게 됐나.
    "하하. 인연이 안 생길 뻔했다. 2004년, 다니던 교회 목사님 부탁으로 기아대책 신옥철 간사란 분을 만났다. 그분이 찾아와, 수천 명이 참여하는 '한톨자선달리기'라는 행사를 하는데, 후원해주기로 한 기업이 갑자기 펑크를 냈다고 했다. 행사가 2주 후인데, 5000만원을 당장 후원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도 기부하려면 절차가 있는데, 갑자기 어떻게 5000만원을 후원받나. '기업 프로세스를 모르는구나' 생각했다. 그래도 면피는 해야겠으니, 아는 기업 CEO들에게 대충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당연히 후원이 안 됐다. 그러곤 깜빡 잊고 있었는데, 이 간사님이 또 전화를 해왔다. '우리 간사들에게 경영 특강을 좀 해주세요' 하더라. 미안한 맘이 좀 있었는데, 그건 쉬우니까 오케이했다."
    ―그 특강에서 마음이 움직인 것인가. 
    "강의실이 완벽하게 꾸며진 대기업만 보다가, 그곳 지하실에 갔더니 엉망진창이더라. 먼지가 가득하고, 프로젝터도 너무 낡았고, 벽에 스크린도 없었다. 이전까지 가본 곳 중 가장 열악했다. 그런데 그곳에 간사들이 빼곡히 들어앉아서 집중하는데…. 눈을 보면 영혼을 알 수 있지 않나. 이렇게 맑고 선한 눈을 한꺼번에 많이 본 적이 없었다. 가슴에 뭔가가 꽂혔다. 한 분 한 분 천사 같아 보였다. 나이 마흔셋에 천사를 만난 것이다."
    ―그동안 어떤 역할을 해왔는가. 
    "IT, CRM(고객관계관리) 등에 전문 지식이 있으니, 기아대책의 후원자 관리 시스템에 대해 수시로 조언을 해왔다. 카이스트 최고위 과정을 통해 맺은 CEO 네트워크를 활용해서 기아대책과 기업을 연결하는 역할도 했다. 2005년에 '최경주 자선 골프대회'를 연 것도 기업 고객을 생각한 아이디어였다. 당시 홍보 대사였던 최경주씨와 후원 기업 CEO들이 함께 자선 골프를 치는 행사였다. 기아대책에서는 아무도 골프를 안 치니, 행사 추진이 어려워서 내가 나서서 도왔다. '슈팅 포 아프리카'는 새로운 펀드 레이징 캠페인을 실험해본 것이었다. 자녀들이 한 골 넣을 때마다 부모들이 기부하겠다고 약정을 했다. 장충체육관에 수천 명이 모여서 슛을 날렸다. '기부금 나가니까 그만 넣어라'는 부모가 어디 있겠나. 똑같은 기부금이지만, 의무감이나 위축되는 네거티브 모델이 아니라 기뻐서 더 내고 싶게 만드는 포지티브 모델이었다. 대성공이었다."
    ―'한톨청소년봉사단'의 경우 1기부터 4기까지 아예 단장을 맡고 있던데.
    "학원 지옥에 빠진 아이들을 탈출시켜서 국내외에서 나눔 교육도 하고, 길거리 모금도 하고, 특강도 받는 프로그램이다. 한 해 100명 정도 진행하는데, 지금은 경쟁률이 6~7대1이다. 이 중 평생 도움만 받던 불운한 환경에서 온 아이들이 있는데, 해외 다녀오면 바뀐다. 도시락 600인분을 직접 만들어서, 자카르타 땅굴 같은 곳에 들고 가는데 그곳에도 사람이 사는 걸 보면 놀란다. 조그마한 방에 몇십명이 모여 공부하는데도, 하나같이 웃고 밝으니까. 원망하고, 울분에 쌓여있고, 사회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아이들의 마음이 변한다. 압구정동에서 자란 한 아이는 처음에 화장실 청소부터 시켰다. 더러운 화장실에 붙은 얼룩을 지우는 사진을 찍어서 부모님께 보내줬더니 그 부모가 기절하려고 하더라. '우리 아이는 여름캠프 가자고 하면 화장실부터 확인하는 아이인데, 어떻게 이렇게 바뀌나'라고 하더라."
    ―작은 인연으로 시작해 깊숙하게 발을 담갔는데, 14년간 NGO에서 재능을 나누면서 개인적인 변화도 있었나.
    "내가 성격이 급하고 직설적이고 강한 편이라, 예전에는 의견이 맞지 않으면 충돌하고 들이받기도 했다. 학교 안에서도 '싸움닭'으로 악명 높았다(웃음). 적도 많았다. 그런데 NGO에 헌신하면서 하나같이 좋은 일, 즐거운 일을 하는 관계가 형성되다 보니 싸움닭 같던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최근 기부에 관한 기사 댓글을 보면 '단체의 투명성을 못 믿겠다'는 부정적인 댓글도 많다. 외부자 입장에서 NGO와 함께 일했으니, 훨씬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할 것 같다. 
    "현장을 다 가보지 않았으니 '모든 현장이 다 어떻다'는 말은 못 한다. 경험한 것만 말하자면, 14년 동안 내가 만난 모든 스태프가 모두 진실하고 선했다. 사람마다 성격은 다르지만, 자기 일의 고결성이랄까, 신념이랄까, '내가 왜 이 일을 하는가'에 대한 비전은 확고했다. 물론 이사진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힘든 적도 있었지만, 스태프 한 분 한 분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없었으면 기아대책과 함께 일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내 주변에서도 투명성을 의심하는 교수님이 있다. 그러면 '현장에 한번 같이 가보자'고 얘기한다. 원래 기업체에서도 우리 제품 좋다고 해도 모르는 사람들은 절반밖에 안 믿는다."
    ―신뢰를 줄 수 있는 비영리 조직을 만드는 핵심 요소(key factor)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고액 기부를 포함, 기부 시장의 이탈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어느 NGO든 간사와 후원자 간의 몇백만개 조합 중에서는 실망할 만한 상황, 예를 들어 기부자 예우가 기대에 못 미치거나, 소통이 부족하거나, 연락이 이어지지 않는 경우 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극복하려면 기부도 계속 학습해야 하고, NGO 스태프도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해야 한다. IT 인프라 같은 전반적 인프라도 좋아져야 한다."
    ―인프라 측면에서는 어떤 개선이 필요할까.
    "어머니 유산으로 카메룬에서 '행복학교'가 지어지고 있다. 현재 1층을 다 짓고 2층을 올리고 있는데, 최근 이 현장 보고가 동영상으로 만들어져 왔다. 이런 소식이 책이나 보고서로 1년에 한 번 오는 것은 늦다. 요즘 기술이면 충분히 현지 모습을 실시간 CCTV로 보면서 담당자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간사, 본부, 지역사무실 등 사이에 정보가 빨리빨리 흘러야 한다. 모금은 어떻게 이뤄졌고, 후원금이 어디에 쓰였는지 등 정보의 흐름이 빨라지면 저절로 투명해진다. 그럼 신뢰가 높아지고, 기부 생산성도 높아질 수 있다. 정보화가 되지 않으면 결국 초일류 NGO가 될 수 없다."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이는'약장수 이론'
    CRM 전문가인 그는 스스로 펀드 레이징에도 일가견이 있다. 김 교수는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의 후원 시스템에 관여해 폭발적인 개인 후원을 이끌어내며, 최근 카이스트 발전재단의 상임이사로도 취임했다. 비법을 묻자 그는 "시골에 있는 약장수를 생각해보라"며 운을 뗐다.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안에서만 4000명이 넘는 후원을 모았다고 들었다. 카이스트 발전재단 상임이사로 부임하니, 다른 대학에서 바짝 긴장할 것 같다.
    "기존의 학교 후원이 (기업) 동문을 상대로 거액 후원을 유치하는 데만 집중했다. 지난 20년 동안 1만원 정기후원 계좌는 25개에 불과하더라. 이걸 1년 반 만에 계좌 수 600개를 넘겼다. 지난 20년 동안 1년에 1계좌를 모았다고 보면 최소 300배 이상을 만들어 낸 것이다."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인 비법이 무엇인가.
    "약장수랑 똑같다. 우리가 길 가다가 한 번이라도 눈길을 주게 되는 때는, 어디엔가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을 때다. 그럼 궁금해서 덩달아 다가가 보게 된다. 같은 약을 팔아도 잘 파는 약장수는 이렇게 '마중물 전략'을 쓴다. 마중물을 안 하면 아무리 해도 물이 안 나오지만, 잘 구사하면 사람들이 달려든다. 그때부터는 확 늘어나서 단위가 수백배로 뛰는 것이다."
    ―학교 후원에는 '마중물 전략'을 어떻게 적용했나.
    "대학 후원이라 하면 다들 동문을 먼저 생각한다. 그런데 예를 들어 우리의 마중물이 100계좌라 하면, 졸업해서 없는 동문을 어떻게 일일이 만나서 100개를 채우겠나. 가까이에 있는 학과 동료 교수님들을 먼저 설득했다. 그분들이 다들 10계좌씩 해줬다. 우리 학과만 50~60계좌가 되니 100계좌는 그냥 모았다. 길거리에서 '웅성웅성' 하는 효과를 먼저 만들었다. 100계좌 달성 후 학교 동문회에 전체 이메일을 날렸더니, 곧바로 200계좌도 넘겼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다."
    ―이번 헤리티지 클럽 가입도 같은 전략을 사용한 것인가.
    "그렇다. 첫 마중물로 저희 어머니를 확보하고 시작했다. 1년 반이 지났는데도 회원이 3명밖에 안 된다고 하니, '마중물이 부족했구나' 깨닫고 내가 나섰다. 원래 이렇게 일찍 유산 기부할 생각은 없었다. 대신 50대인 나도 했으니, 이제 60~70대도 할 것이다. 이렇게 퍼져나가다 보면, 분명 유산 기부에 동참하는 사람들도 1년 후 10명이 넘을 것이다. 다른 NGO들도 유산 기부 활성화에 뛰어들다 보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김영걸 교수는?
    1990년 미네소타대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 후 피츠버그대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1993년부터 KAIST 경영대학교수로 부임하였다. CRM과 엔터테인먼트 산업 분야의 전문가로서 대우인터내셔널사외이사, 매일유업 IT& CRM 자문교수, 전 문화관광부 문화정보화추진위원 등 정부와 산업체에서 다양한 자문 활동을 해왔다. 국내 최초로 선보인 트위터 강의를 모아 ‘소크라테스와 CRM’이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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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를 위한 1% 그 안에서 만드는 작은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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