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카페서… 유쾌한 '파격 결혼식'

세상이 변하면서 결혼식도 바뀌고 있다.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결혼식은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카페,공원,레스토랑 등 이색의 장소에서 커플들이 사랑의 결실을 맺고 있다.

    입력 : 2017.04.11 17:44

    [Story: 격식보다 개성… 이색 웨딩 올리는 커플들]
     

    화려한 샹들리에에 융단 깔린 ‘버진로드’를 걸어 장황하고 긴 주례사를 듣던 결혼식이 변하고 있다. 카페,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동네 공원 등에서 이색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사진은 이색 결혼식 공간 중 하나로 주목받는 제기동 청과물도매시장 내 복합문화공간 ‘상생장’에서 ‘프리웨딩’ 촬영을 하는 예비 신부. /모던빌리프

    #1. 지난달 18일 오후 1시 서울 신수동 서강대동문회관 카페 키노빈스 서강대 아루페관점. 정장 차려입은 사람들이 놀이공원 입장객처럼 종이 팔찌를 팔목에 두르고 ‘입장’하자, 미키마우스 머리띠 하고 고양이 모자 달린 망토를 두른 남성 서너명이 ‘입장객’들에게 타로점을 봐줬다. ‘무슨 행사일까’ 고개 갸우뚱하는 순간, 종이 팔찌에 선명히 찍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쿵짝쿵짝 결혼식’. 이 정체불명 행사는 신제용(29)·김진솔(26) 커플이 선택한 색다른 결혼식이다.

    타로점과 손님들의 자연스러운 대화로 ‘워밍업’이 끝나자 카페 테라스에 두 주인공이 등장했다. 장황하고 지루한 주례사 대신 신랑 아버지가 성혼 선언문을 낭독하고, ‘업체표 축가’ 대신 시인인 신부 둘째 이모가 축하 시 낭송을, 지인이 축가를 불렀다. 30분이 흘렀다. 그렇게 끝나는가 싶더니 깜짝 반전이 펼쳐졌다. 검정 턱시도·보타이 차림 신랑이 기타를 둘러메고 밴드와 등장했다. 신랑이 밴드 공연팀과 함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어젯밤이야기’ ‘take on me’ ‘그대에게’를 열창했다. 순식간에 결혼식장은 인디밴드 공연장으로, 하객들은 관람객으로 변신!

    #2.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7시 제기동 청과물도매시장 안 복합문화공간인 ‘상생장’에서 열린 윤정혁(37)·이지숙(34) 커플의 결혼식엔 양가 부모님은 물론이고 일가친척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식장엔 20~30대 젊은 하객 100여 명만 있었다. 무슨 말 못할 슬픈 가정사가 있느냐고? 천만의 말씀. 저녁에 펼쳐진 이 시장 안 결혼식은 이들의 ‘2부 결혼식’이었다.

    두 사람은 이날 다른 장소에서 각기 다른 그룹을 대상으로 두 차례 결혼식을 올렸다. 1부 결혼식은 ‘세븐스프링스 역삼점’에서 양가 부모님·일가 친척 등 어르신 모시고 ‘작은 결혼식(간소하게 올리는 결혼식)’ 형태로 식순에 맞춰 평범하게 진행했고, 2부 결혼식은 장소를 옮겨 친구·직장 동료와 편안한 분위기에서 ‘하우스 콘서트’ 콘셉트로 올렸다. 친구들과의 피로연을 대신한 2부 결혼식은 부부에게도, 하객들에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청첩장 하나 둘 날아드는 결혼의 계절, ‘스몰 웨딩(작은 결혼식)’이 유행하면서 ‘파격 결혼식’이 눈에 띄게 늘었다. 격식을 줄인 만큼 개성이 파고들 틈이 커졌다. 덕분에 경직된 분위기에서 벌 받는 기분으로 따분하게 식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하객들도 결혼식을 즐기게 됐다.

    평범한 결혼식장이 아닌 카페, 동네 소공원,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등에서 이색 결혼식을 올리는 커플뿐만 아니라 기상천외한 결혼 이벤트도 속속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달 22일 통계청의 ‘2016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혼인 건수는 1974년 이후 4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인 28만1600건, ‘결혼하지 않는 사회’ 속 신(新) 결혼식 풍속도를 들여다봤다.


    지난해 10월 신혼집인 용산구 한남동 '산마을빌라' 앞 소공원에서 결혼식을 올린 곽승훈·이고운 커플. 이날 결혼식은 '동네잔치'처럼 진행됐다. /이고운
    친지들 모시고 점잖게 동료·친구들과 재밌게 결혼식 두번 했어요
    신혼집 근처 공원서 웨딩마치···동네 잔치 같은 훈훈함 가득

    "결혼한다는 게 어딘데···" 부모들도 결국 이색 결혼식 허락


    [Story: 파격 웨딩이 뜬다]

    동네 강아지도 하객…결혼식, 웨딩홀을 탈출하다

    “직업 특성상 남의 결혼식을 많이 ‘사전 답사’했는데 똑같은 방식, 똑같은 주례사, 똑같은 포즈 사진을 매뉴얼처럼 따르더군요. 하객들하고 ‘어, 왔어?’ 하고 끝내는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난해 11월 ‘세븐스프링스 역삼점’과 제기동 청과물도매시장 안 상인회사무실과 창고를 재활용한 복합문화공간 ‘상생장’을 오가며 하루에 두 번 결혼식을 올린 윤정혁(프리랜서 사진작가)씨 얘기다. 선택은 옳았다. 특히 상생장에서의 2부 결혼식은 특별했다. 신부 이지숙씨는 직접 드레스와 웨딩 소품 등을 챙겼고, 지인인 웨딩스타일링 디렉터 표소라(‘모던빌리프’ 대표)씨의 도움을 얻어 ‘완벽한 하루’를 완성했다. 하객들에게도 저녁 장 보러 나온 인파를 뚫고 결혼식장을 찾는 과정은 험난했지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동네 강아지까지 하객이 된 이색 결혼식도 있다. 지난해 10월 북한남동(한남동 북쪽) 주택가 소공원에서 열린 곽승훈(31)·이고운(33) 커플의 결혼은 그야말로 떠들썩한 ‘동네잔치’였다. 신부 대기실은 공원의 벤치였고, 신랑 신부가 행진하는 ‘버진로드’는 낙엽이었다. 산책하는 강아지, 동네 주민들이 자연스레 하객이 됐다.

    ‘동네잔치 스타일’ 결혼식은 결혼을 앞두고 큰 수술을 해야 했던 신부를 위해 신랑이 준비한 특별한 선물이었다. 철저한 사전 준비가 중요했다. 공공시설인 소공원 사용을 위해 구청 녹지과에 들러 사전 허가를 받고, 결혼식 전 집집이 떡을 돌리며 양해를 구했다. 주차 가능한 공간도 미리 섭외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엔 제주도 바다·청평 강가를 배경으로 한 야외 결혼식, 갤러리를 대관해 결혼식을 올리는 ‘갤러리 웨딩’, 공연장처럼 꾸민 결혼식장에서 축가 대신 짤막한 뮤지컬 공연을 보여주는 ‘뮤지컬 웨딩’ 등 각양각색 결혼식이 넘쳐난다. 김선옥 ‘와이즈웨딩’ 마케팅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이색 결혼 상담 건수가 10쌍 중 1~2쌍에 불과했는데 요즘엔 평균 3~5쌍으로 늘었다”고 했다.

    곧 결혼하는 신제용·김진솔 커플은 연애 시절 단골 카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피로연 대신 시랑과 밴드의 공연이 이어졌다. /김진솔

    ‘스드메’ 가고, ‘프리웨딩’ ‘애교 예단’ 생겨나
    작은 결혼식과 이색 결혼식의 유행은 결혼식의 필요충분조건인 듯싶었던 이른바 ‘스드메(결혼에 필요한 스튜디오 촬영+드레스+메이크업)’ 옵션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웨딩플래너인 전현미 와이즈웨딩 팀장은 “몇 년 전만 해도 웨딩업체에서 상담받고 웨딩 플래너를 통해 ‘스드메’ 및 결혼식장 예약, 스튜디오 리허설 촬영, 본식, 피로연을 하는 게 ‘정석’처럼 여겨졌으나 요즘엔 선택적으로 필요한 부분만 하는 커플도 많아졌다”고 했다.

    요즘은 리허설 촬영 대신 ‘프리웨딩(pre-wedding)’을 하는 게 대세다. 결혼식 전 가까운 지인들을 초대해 결혼식 예고편같이 하는 행사다. 본식 후 친구들과의 피로연을 아예 ‘2부 결혼식’으로 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럴 땐 비용을 잘 따져야 한다. 전현미 팀장은 “작은 결혼식 비용이 더 나오는 경우도 있고 프리웨딩이나 2부 결혼식 등을 과하게 했다간 자칫 결혼식으로 인해 빚더미에 올라앉는 ‘웨딩 푸어’가 되기 십상이니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다. 이색 결혼에 들어가는 비용을 고려해 스튜디오 리허설 촬영을 과감히 생략하고 신혼여행 때 데이트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는 ‘웨딩 스냅’을 선택하거나, 유명 디자이너가 만든 비싼 드레스를 대여하는 대신 저렴한 원피스 스타일의 ‘셀프 웨딩 드레스’를 선택하는 실속파 커플도 있다.

    결혼의 허례허식으로 종종 지적되는 예단(禮緞)에도 신(新) 풍속도가 생겼다. 대표적인 게 ‘애교 예단’. 예단을 생략하고 ‘예쁘게 봐달라’는 의미로 간단한 것에 의미를 담아 보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결혼식 전 양가가 눈치 보며 예단을 주고받는 대신 양가 직계 가족이 예단 비용으로 서로 친목을 다지는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른바 ‘예단 여행’. 이종현 ‘아이웨딩’ 차장은 “어려울 수 있는 사돈끼리 결혼 전 예단 여행을 다녀와 가족처럼 돈독해진 경우도 여럿 봤다”며 “작은 결혼식이 낳은 긍정적인 문화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곧 결혼하는 정상혁·한지수 커플은 결혼 전 으레 하는 '스튜디오 촬영'대신 '대자연'을 택했다. 속초시 설악동에서 찍은 결혼 사진. 웨딩드레스 끌로 산 넘고 물 건너 힘들었지만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고 /정상혁

    ‘작은 결혼식’ 불 지핀 ‘이효리’, 야외 결혼 이끈 ‘이나영’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벌 받듯 장황하고 긴 주례사를 들은 뒤 식권 하나씩 받아들고 식당으로 향하던 ‘판박이 결혼식’의 틀을 깨는 데엔 두 커플의 공이 컸다. 2013년 이효리·이상순 커플이 제주에서 올린 소박한 결혼식은 ‘작은 결혼식’이 인기 끌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후 2015년 원빈·이나영 커플이 원빈의 고향인 강원도 정선에서 대자연을 배경으로 올린 결혼식은 ‘야외 결혼식’의 로망을 갖게 했다.

    비혼(非婚)율 증가, ‘삼포 세대(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등 결혼하지 않는 사회 속 결혼식에 대한 부모 세대의 인식이 달라진 것도 이색 결혼이 느는 데 한몫했다. “딸이 교통 편리하고 주차 공간 잘 돼 있는 도심의 결혼식장을 두고 근교의 한적한 갤러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했을 때 처음엔 반대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처럼 결혼 안 하는 세상에 늦게라도 결혼한다는 게 어디냐 싶더군요.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지요.” 지난해 서울 근교 아담한 갤러리에서 결혼식을 올린 이경은(35)씨의 어머니 장정임(69)씨가 웃으며 얘기했다. 자식의 이색 결혼식을 허락한 부모들은 “결혼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한발 양보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색도 과유불급…하객 배려해야
    ‘파격’ ‘이색’ 결혼식이 능사만은 아니다. 불편한 목소리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달 25일 유명 한옥에서 열린 이색 결혼식에 참석한 김수향(63)씨는 “결혼식장의 주차 공간이 협소해 애먹었는데 결혼식장 좌석, 음식이 모자라 결혼식 끝나고 인근에서 밥을 내 돈으로 사 먹어야 했다”며 “개성 살린 결혼식도 좋지만 축하하러 온 하객을 배려하는 결혼식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몇 번 이색 결혼식에 가 본 문정희(63)씨 역시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통과의례의 하나인 만큼 예를 갖춰 진행하는 게 깔끔하고 보기 좋더라”며 “이벤트도 재미는 있으나 과유불급. 길고 과하면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했다.
    이색 결혼식을 할 때 성숙한 문화도 고민해봐야 할 점이다. 작년까지 이색 결혼식장으로 애용되던 부산의 한 복합문화공간 대표는 “장소를 꼭 쓰고 싶다고 해 좋은 취지로 대관해주었더니 결혼식 끝나고 뒷정리를 하지 않거나 늦게까지 피로연을 연 뒤 쓰레기를 그대로 두고 가더라”며 “영화 속 로맨틱한 결혼식 장면만을 생각해선 안 된다”고 했다. 김시웅 월간 웨딩21 편집장도 “당사자들만 행복한 결혼식은 결코 축복받을 수 없다”며 “이색 결혼식일수록 전체 진행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써줄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플러스준 홍대점, 마켓오 도곡점, 워커힐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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