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이동 사다리가 사라진다

노력을 통한 계층간 이동을 상징하는 '계층사다리'는 이제 옛말이 되어버렸다.
과도한 사교육 열풍은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대학간판을 좌우하도록 만들었다.
그야말로 우리는 한줌의 희망마저 홀연히 사라진 '단절사회'에 놓여있다.

    입력 : 2017.05.15 07:28

    [스페셜 리포트] 돈발, 학원발, 부모발 없으면 폭망?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버클리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윤모씨는 지난 3월 중순, 모교인 서울 종로구에 있는 A중학교 특강을 하면서 힘이 빠졌다. 후배들이 도통 의욕이 없어 보였다. 새학년을 맞아 3학년 후배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려고 먼 길을 온 터였다. “선배님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식의 질문은 하나도 없었다. 미국 생활상과 음식 문화와 같은 누구에게나 들을 수 있는 질문만 쏟아졌다. 윤씨를 바라보는 후배들의 시선은 ‘외계인’ ‘나와는 다른 별종’이었다.

    윤씨의 아버지는 자동차공장에 다녔고 어머니는 전업주부다. 사교육 한 번 받지 않고 A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때 미국행을 택한 윤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아왔다. ‘뭘 하면 행복할까’라는 화두를 잊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다 보니 버클리대학교 경제학과를 가게 됐고, 졸업 후에는 호주계 투자회사에서 고액연봉을 받으며 일했다. 남들은 자신을 ‘개천에서 용 났다’고들 하지만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윤씨는 “우리 집은 가난하지도 부유하지도 않았다. 그저 있는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 보니 기회가 열렸다”고 말한다. 중학교 은사님을 찾아뵙고 특강을 자처한 것은 이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서였다.

    졸업한 지 13년, 학교 풍경은 변함이 없었지만 후배들의 분위기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윤씨의 말이다. “뚫기 힘든 벽이 느껴졌다. ‘내가 어떻게…’라는 패배의식이 전해졌다. 좋은 학교는 극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만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미국 학생과 한국 학생은 성공을 바라보는 잣대가 다르다. 미국도 사회구조가 완벽하진 않지만 있는 자리에서 기회가 많다고 느낀다. 가난하면 대출을 받고, B학점 받으면 그에 맞춰 미래를 설계하고, 그 과정에서 각자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한국은 타이틀을 향해 달려가고 그걸 놓치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윤씨가 졸업한 A중학교는 학군이 좋은 편이 아니다. 봉제공장에 다니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환경은 13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1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특강을 주선한 오모 교사는 “동기유발 특강교실에 있다가 답답해서 나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이 꿈과 희망, 도전의식이 없다. 동기유발이 쉽지 않다. 특목고는 부자들만 가는 곳으로 알고, 특목고 자체를 모르는 학생들도 많다. 10여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가난해도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은 점점 그런 아이들이 줄고 있다. 교실에서 학원으로 계급이 나뉜다. 가는 학원이 다르고, 푸는 교재도 다르니까. 이런 현실 자체가 아프다.”

    오 교사는 또 “과거에는 부모의 가난을 원망하는 상담 내용이 많았지만 지금은 아예 없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말일까. “가난은 상담 주제조차 되지 못한다. 원망한다는 건 문제의식이 있다는 거다. 지금은 문제의식 자체가 없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부모의 재력에 따라 갈 수 있는 학원이나 학교가 나뉘다 보니 가난한 아이들은 패배의식에 젖어 산다. 젖어 있을 땐 아픔이 아니다." 개선의 의지 없이 무기력증에 푹 빠져 있다는 얘기다.

    교육불평등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교육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새로운 정책을 족족 발표하지만 양극화는 더 극단으로 치닫는 양상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사라져가는 ‘닫힌 사회’에 근접하고 있다. 지난 2월 말 닐슨코리아가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 사회 공정성에 대한 인식 조사’에 따르면 19~29세의 청년층의 ‘계층 역전 가능성’에 대한 인식이 19.3%로, 전 연령에서 가장 낮았다.

    미래사회를 짊어질 청년층이 “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가장 강하게 느끼는 현실은 생각거리를 던진다. 전체 평균값은 21.3%로 30~60대에서는 엇비슷하게 나타났지만, 20대 이하 청년층만 유일하게 20% 이하 수치를 보였다. “내 힘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인식이 점점 강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공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여길까. 1위는 ‘부모의 재력’이었다. 2위는 ‘부모의 직업이나 사회적 신분’, 3위는 ‘본인의 인맥’, 4위는 ‘본인의 학력’이 차지했다. 교과서에서 성공요인으로 꼽히는 ‘본인의 의지와 노력’은 겨우 5위를 차지했다. 특히 한국인의 두 명 중 한 명(50.5%)은 계층 역전 가능성이 10% 이하”라고 응답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폭넓다.

    '부모의 재력이 대학을 좌우한다’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여기서 재력이란 ‘돈발’ ‘학원발’이다. 그렇다고 돈이 많아야 비싼 학원을 보내는 것은 아니다. 가진 재산이 없어도 최고의 사교육을 향한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서울 학원가 학부모 사이에서는 ‘아이가 고3 되기 전까지 1000만원 모아 두기’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학부모 임모씨의 말이다. “고3이 되면 모두 열심히 하기 때문에 등급을 올리기 어렵다. 고액과외 같은 특급 처방전이 필요하다. 수준급 과외는 과목당 월 300만원 내외다. 세 달은 받아야 효과가 있기 때문에 평균 1000만원이 든다.”

    1000만원 비상금이 몰리는 과목은 주로 수학. 국어 고액과외도 늘고 있다. 임씨는 “과목 한 등급이 아이의 대학을 좌우하는데 1000만원이 대수겠냐”며 “막판 고액과외로 등급을 올려 연고대에 합격한 아이들이 꽤 된다”고 말했다.

    서울 대치동에 있는 고액 입시전문학원 중에는 경쟁률 낮은 학과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학원이 꽤 된다. 연도별 경쟁률 빅데이터 분석은 기본, 대치동 학원가에 모이는 정보를 공유하면서 눈치작전을 통해 경쟁률을 알아맞힌다. 전국 단위의 지원자 추이를 몰라도 오차가 크지 않다. 전형방법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사교육계 입시 전문가들이 뚫을 전형은 얼마든지 있다. 입시상담 및 자소서컨설팅 비용은 천차만별. 600만원이 넘는 곳도 꽤 된다. 이 고액컨설팅이 ‘돈값’을 톡톡히 해내는 경우가 많다는 데에 슬픈 현실이 있다. 돈값을 잘해낼수록 학생 자신의 능력보다 상위권 대학에 합격할 확률이 높다.

    서울 성북구의 B고등학교에서 다년간 고3 담임을 맡은 박소연 교사는 “빈부격차가 대학 서열을 좌우하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렇게 말했다. “생기부(학생생활기록부) 스펙 과열이라 자소서와 면접에서 특별한 스펙이 있다면 대학 측에 어필할 수밖에 없다. 외국 생활이나 오케스트라, 번역 봉사활동 등의 스펙은 가난한 아이들에겐 불가능하다. 학교 유료 현장체험도 갈 형편이 못 되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먹고살기 급급한 부모들에게 자녀의 스펙 관리는 다른 나라 이야기다.”

    청소년 5명 중 4명 “부모 돈이 성공 좌우”

    /주간조선
     이런 현실에 젖어 있는 아이들은 대한민국을 ‘불공평한 나라’로 인식한다. 온 국민의 애창곡이었던 ‘아! 대한민국’의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가 있어~’라는 노래 가사에 젊은이들은 콧방귀를 뀐다. ‘돈발, 학원발, 부모발이 없으면 폭망’이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지난 3월 초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학생 3181명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를 묻는 조사에서 1위는 ‘공정’(16.1%)이 차지했다. 2위는 ‘개혁’(15.6%), 3위는 ‘소통’(14.6%)이었고 ‘정의’(13.2%), ‘안정’(8.0%)이 그 뒤를 이었다. ‘성장’이라는 답은 3.9%에 불과했다. 젊은이들은 우리나라가 ‘발전하는 나라’보다 ‘공정한 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기울어진 운동장’ 내지 출발선이 다른 운동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해온 젊은이들의 억울한 심경이 읽히는 대목이다. 

    지난 3월 초에 교육부에서 발표한 사교육비 통계를 보면 소득수준에 따른 사교육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월 1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는 5만원인 데 반해, 월 700만원 이상 가구의 사교육비는 44만3000원에 달했다. 무려 8.8배 차다.

    그렇다면 사교육의 효과는 얼마나 될까. 교육사다리 문제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에 의하면 부모 경제력이 학생의 대입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김세직·류근관 교수의 논문 ‘학생 잠재력인가, 부모 경제력인가’(2015)에서는 강남구와 강북구 출신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부모 경제력이 서울대 합격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부모의 경제적 여건을 배제하고 학생의 노력과 타고난 잠재력만으로 측정할 경우 강남구와 강북구의 서울대 합격률은 각각 0.84%, 0.50%로 그 차는 1.7배에 불과했다. 그러나 2014년 입시에서 강남구와 강북구의 실제 서울대 합격률은 각각 2.07%, 0.11%로 약 20배 차가 났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서울대 합격률이 학생의 타고난 능력보다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따른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공정경쟁 약화, 경제성장 하락 초래
    김세직 교수는 이를 ‘진짜 인적자본’과 ‘겉보기 인적자본’으로 설명한다. ‘진짜 인적자본’이란 부모 경제력에 상관없이 학생 본인의 노력과 잠재력에 의해 결정되는 능력을, ‘겉보기 인적자본’은 사교육, 선행학습, 특수고 진학같이 부모의 경제력 차이에 의해 영향받는 능력을 말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교육 및 입시제도는 진짜 인적자본이 뛰어난 인재를 가려내서 이들을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연결해주는 자원배분 역할에 실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정경쟁 약화로 인한 부작용은 비단 교육 부문에만 그치지 않는다. 김 교수의 논문 ‘경제성장과 교육의 공정경쟁’(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하락과 공정경쟁 약화는 같은 선상에 있다. 1990년대 말 이래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성장률 하락이 교육 효율성 저하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시 말해 진짜 인적자원을 가려내지 못한 결과가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김세직 교수의 말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이 이룬 초고속성장의 원동력은 교육을 통한 급속한 인적자본 축적에 있다. 지역과 계층에 관계없이 우수한 잠재력을 가진 인재를 가려내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했다. 여러 지역, 여러 계층, 여러 개천에서 수많은 야생의 용들이 날아올라 한국 경제를 짊어지는 형국이었다. 모두 가난했던 시기에는 몇몇 개천에서 용이 나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개천 여기저기에서 용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한국 교육시스템은 진짜 용을 가려내는 데 점점 실패하고 있으며, 인적자본을 효율적으로 배분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겉보기 인적자본을 ‘용 그림’에 비유한다. ‘용 그림’이란 진짜 용이 아닌 치장법으로 만들어진 용을 말한다. 그는 용 그림은 돈과 함수관계에 있다고 지적한다.

    "모두 가난했던 경제성장 초기에는 학생 간 치장법의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진짜 우수한 인재들을 대학에서 가려내기 용이했다. 그러나 부모세대의 경제력 차이가 커진 지금에는 치장법에 의해 크게 좌우될 수 있다. 그러면 부유하지 못하면서 ‘진짜 인적자본’이 큰 아이는 대입에서 불리해진다.”

    진짜 인적자본과 겉보기 인적자본을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하나 분명한 것은 현 대학입시는 진짜 인재를 가려내는 데 실패하고 있으며, ‘가난한 똑똑이’가 ‘부유한 평범이’보다 낮은 서열의 대학에 가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경우가 많아질수록 ‘부모를 잘못 만난 죄’를 탓하는 아이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교육불평등이 교육 전 과정에 걸쳐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교육불평등이 초·중·고교의 보통교육 과정뿐 아니라 고등교육 과정인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는 말이다. 또 조 교수는 “교육불평등은 실증적으로 심화되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사회계층이 고착화되고 있다. 여전히 사회이동이 가능할 것으로 믿는 사람이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전통적인 능력주의의 믿음은 현실에서는 희귀하다.”

    1990년대까지 귀가 아프게 들어온 성공 신화는 이렇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구두닦이와 신문배달, 우유배달로 학비를 벌었고/ 불쌍한 동생들까지 먹여살려가며/ 주경야독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드디어 입신양명 출세길에 올랐다.’

    이런 ‘개룡(개천 용)’들이 점점 씨가 말라가고 있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막혀 금수저는 금수저끼리, 흙수저는 흙수저끼리 경쟁하는 단절사회가 돼간다. 금수저를 능가하는 ‘다이아수저’도 등장했다. 사다리는 ‘누구든 열심히 하면 더 높이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이다. 사다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50호에서 발췌했습니다.>

    “사교육 폐지가 아니라 사교육 필요 없는 시스템 만들자는 것”
    조사마다 달라지는 삶의 질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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