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 디자이너에서 전통공예 장인 돕는 디자이너로 변신

세계 최고 부자들을 위한 럭셔리 요트 디자인과 한국 농부와 전통 장인들을 위한 디자인.
얼핏 서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영역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조기상 페노메노 대표다.

    입력 : 2017.04.23 11:10

    [top class : 조기상 페노메노 대표]
     

    /김선아 기자

    세계 최고 부자들을 위한 럭셔리 요트 디자인과 한국 농부와 전통 장인들을 위한 디자인. 얼핏 서로 연결되지 않을 것 같은 이 두 영역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디자이너가 있다. 조기상 페노메노 대표다. 이탈리아에서 럭셔리 요트 디자이너로 활약하다 2011년 귀국한 그는 전국 방방곡곡을 돌면서 만난 농부와 장인들을 위해 디자인 작업을 해왔다.

    전통 장인들의 기술을 현대생활에 접목한 그의 디자인은 외국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유기장, 옹기장, 사기장, 옻칠장, 목조각장, 침선장, 각자장, 소목장 등 전통장인들의 기술을 활용하면서 현대화한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아우로이’의 매장 오픈을 앞두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는 조기상 대표를 창덕궁이 마주 보이는 서울 원서동 페노메노 사무실에서 만났다. 페노메노는 브랜드 디자인 컨설팅과 공간설계 등 여러 일을 하면서 자체 브랜드 아우로이(‘아름다운 우리 것을 아울러 이롭게’라는 뜻)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국민대에서 자동차·운송기기 디자인을 전공한 후 2007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고, 디자인 명문학교인 IED 대학원에서 요트 디자인을 공부했다.

    세계 부자들을 위한 1000억 대 요트 디자인
    “해병대에서 군 생활을 할 정도로 바다를 좋아했어요. 요트 디자이너의 복제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 <아일랜드>를 본 후 요트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이탈리아는 전 세계 요트산업의 56%를 차지할 정도로 요트 강국이라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지요. IED는 밀라노와 베네치아, 토리노에 캠퍼스가 있는데, 저는 주로 베네치아 캠퍼스에서 공부했습니다.”

    1년 6개월 만에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세계 최고 부자들을 대상으로 주문 제작 요트를 디자인해주는 회사에서 일했다.

    “럭셔리 요트는 한 척에 수백억에서 1000억원이 넘기도 합니다. 그런 요트를 개인적으로 주문하는 사람들이니 얼마나 엄청난 부자겠어요? 러시아 부자를 위해 길이 58m, 1200억원짜리 요트를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요트는 바다에 떠 있는 집과 같아서 디자인을 하려면 배의 구조와 설비부터 공간설계, 요트에 들어가는 가구와 소품, 각종 소재의 내구성과 내마모성, 부식성까지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세계 최고 부자들의 까다로운 취향을 충족시키기란 쉽지 않죠. 그래서 고객과 소통하면서 제 디자인 철학을 관철시키는 능력이 중요해요. 그 일을 하면서 전방위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쌓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세계 요트 디자인 대회인 MYDA(Millennium Yacht Design Award)에서 2008년, 2009년, 2010년 연이어 수상했다.

    “2010년 시상식에서 제 우상이었던 크리스 뱅글(Chris Bangle)을 만났습니다. 18년 동안 BMW 수석 디자이너를 지내신 분이죠. 그분과 ‘같이 뭔가 해보자’고 의기투합해 요트 디자인 프로젝트를 함께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집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는데, 그분이 ‘너희 나라 디자인의 특징은 도대체 뭐지?’라고 묻는 거예요. 금방 대답하지 못해 무척 부끄럽고 창피했습니다. ‘우리 디자인은 뭘까?’라는 의문과 고민을 안고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럭셔리 산업이 급격하게 타격을 받았고, 이탈리아 요트산업도 마찬가지일 때였다. 비자 만료가 되었을 때 그는 이탈리아에 남기보다 귀국하기로 했다. ‘요트 디자인은 어차피 주문 받아서 하는 일이니 어디에서나 일해도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2011년 귀국 후 그의 디자인 방향은 많이 바뀌었다. 아니 더 넓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10년 지기 친구들과 디자인사무실을 열고 제일 처음 한 일이 경북 봉화 사과 재배 농부에게 브랜드를 만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영세한 농부와 대중 사이의 접점을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이후 빙그레 ‘따옴’ 등 대기업 브랜드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지방자치단체와 국립무형유산원

    등에 디자인 자문을 하면서 각 지역의 장인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예전 방식을 고집하는 장인들을 만나보면서 ‘조금만 현대화하면 세계시장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인에게 우리 것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유기 그릇과 옷칠한 나무 그릇(왼쪽),유광,무광,반유광 옷칠가공으로 재질 차이를 준 유기반상기(가운데),서구적으로 바뀐 식생활에 맞춰 유기로 접시와 포크,나이프를 만들었다.(오른쪽) /페노메노

    아우로이는 장인들의 전통공예 상품을 현대생활에 맞는 디자인 상품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다. 그중에서도 유기장 김수영과 협업해서 만든 유기 반상기는 특히 관심을 모았다.

    “옛사람에 비하면 요즘은 밥을 훨씬 적게 먹잖아요? 밥그릇과 국그릇의 크기를 줄이면서 얇게 만들어 ‘유기그릇은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하고 싶었습니다. 주물로 만든 유기를 최대한 얇게 깎아야 하기 때문에 공정은 좀 더 복잡해집니다. 뚜껑을 열려고 하다 놓치기 쉽다는 점을 개선하기 위해 안쪽에 굽을 달아 열전도를 차단하고 뚜껑에 테두리를 만들었습니다.”

    단순한 선과 비례만으로 조형미를 드러내면서 소재에 집중하는 디자인 철학은 그가 요트 디자이너로 활동할 때나 전통공예를 현대화할 때나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가 디자인한 유기 반상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유광,무광, 반유광, 옻칠가공 등 재질 차이로 변화를 주었다고 한다. 유기의 살균 기능을 살린 냉장고 보관용기, 보온·보냉 효과를 활용한 텀블러를 제작하고, 양식용 포크와 나이프도 만들었다. 현대 식생활에 적극 활용하기 위한 시도다. 그는 유기뿐 아니라 옹기, 백자, 목기로도 같은 디자인의 반상기를 만들어 파리, 밀라노, 베를린, 뮌헨, 뉴욕, 런던 등 세계 각국의 도시에서 열린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가 디자인한 그릇들은 청와대 정상회담 만찬 때 쓰이기도 했다.

    만든 손가방은 독특하고 기발했다. 갓의 검은색 모자 부분은 가방 몸체로 갓끈은 손잡이로 변신해 어디에도 없던 가방이 탄생했다. 페노메노 사무실에는 단순하고 세련된 디자인에 나무 재질이 돋보이는 접시와 컵 등 그의 디자인으로 장인들이 만든 제품들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목조각장 이수자에게 의뢰해서 만든 하회탈 윷도 위트 있다. 윷가락의 한쪽 끝에 양반, 선비, 중, 초랭이의 얼굴을 새기고, 각 계층을 상징하는 갓과 삿갓 모양의 말을 만들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우리 전통공예의 생명을 유지하려면 핵심 기술이나 정신은 잃지 않으면서 디자인이나 쓰임새는 시대에 맞춰 계속 변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생활방식이 계속 달라지고 있으니까요.”

    ‘너희 나라 디자인의 특징은 뭐냐?’던 크리스 뱅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찾았느냐고 물었다.

    “글쎄요, 말로 정의할 필요가 있을까요? 세계인에게 우리 것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생활과 문화 속으로 들어가 뿌리내릴 수 있게 해야지요. 수많은 장인들을 만나면서 현대화·세계화할 만한 소재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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