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꿉장난 같은 신혼생활 보여주면서 결혼은 현실이라고?

    입력 : 2017.03.14 17:29

    [박상현 기자의 공감 혹은 유감] 
     

    “춘천이나 양양으로 가셔야 해요. 인제엔 신한은행이 없어요.”

    ‘신혼일기’(tvN) 첫 장면에서 ‘깡 시골’ 강원도 인제의 한옥에 막 입주한 구혜선(33)·안재현(30) 부부는 가까운 신한은행부터 찾는다. 콜센터 상담원이 일러준 춘천·양양지점은 이들 거처로부터 약 100㎞ 거리. 카메라는 뜨악한 표정의 부부를 꽤 오래 클로즈업하면서 도시인 용모를 풍기는 이 부부가 ‘도심과 완전히 결별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방송 설정상 이 ‘결별’은 아내인 구혜선이 원한 것이다. 착한 남편은 “도시보단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아내의 바람을 즉각 수용하고 떠난다. ‘강원도에서 신한은행 찾는’ 이 도심산(産) 부부의 신혼생활은 이렇게 시작된다.

    tvN

    자급자족하면서 식량을 충당했던 ‘삼시세끼’와 달리 이들은 돈벌이가 될 만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겨울 신혼살림을 염두에 두고 가을부터 무·고구마 같은 식량을 고이 ‘저장’해두는 모습이 잠깐씩 그려지지만, 이들이 피땀 흘려 수확한 작물이 아니기에 ‘그때그때 사먹으면 되지 않나’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장 보러 가는 남편과 생활권 쥔 아내가 만원짜리 한 장을 두고 옥신각신하는 장면은 그래서 ‘코미디’로 변모한다. “주유비가 모자란다”며 이미 마트에서 계산한 물건을 환불하는 장면도 작위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루일과 역시 밥해 먹기, 설거지, 설거지를 건 배드민턴 내기 정도로 ‘소꿉놀이’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비현실성에도 프로그램 클립(clip·방송 하이라이트) 영상엔 ‘달달하다’ ‘달콤하다’ ‘낭만적이다’ 같은 호평이 주로 달린다. 이 부부와 비슷한 나이대인 30대 초중반 사이의 남녀가 이 방송에 호평 일색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어 ‘댓글 작성 연령대’를 보니 ‘10~20대 여성’이 60% 이상이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의 ‘삼포 세대’라는 단어가 세상에 등장한 지도 벌써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삶은 더 팍팍해져 포기할 건 무한대로 증식했고 결국 ‘N포 세대’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아이러니는 포기해야 할 대상이 늘어갈수록 이를 대리 만족시키는 방송 콘텐츠는 더 늘었다는 사실이다.

    곤두박질 치는 출산율과는 정반대로 ‘아빠! 어디가’(MBC) ‘슈퍼맨이 돌아왔다’(KBS) 같은 육아 예능이 인기를 끌었고 ‘우리 결혼했어요’(MBC)도 모자라 남한 노총각과 북한 탈북녀, 노총각·노처녀 코미디언이 출연하는 가상 결혼 예능까지 넘쳐난다. 현실의 결핍을 대중문화는 대리 만족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2화 제목이 무려 ‘결혼은 현실이다’라는 ‘신혼일기’를 보면서 그저 팔자 좋은 연예인 부부가 놀고먹는 프로그램으로 보인다면 그 불편함은 이 세대가 처한 현실 때문일 것이다.

    ‘신혼일기’를 보면서 문득 군 복무 시절 ‘우리 결혼했어요’를 즐겨봤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풋풋한 ‘남들의 연애’를 관음적으로 훔쳐보는 ‘우결’을 좋아했던 것도 억압된 공간이 결핍을 줬기 때문이다. 아무리 전화 통화를 해도 음성만으론 채워지지 않던 그리움이나 헛헛한 마음이 어느새 리모컨을 누르게 한 것이다. ‘만족’의 주체는 ‘나’이지만, ‘대리 만족’의 주체는 ‘대리인’이다. 나를 대신해 만족해하는 대상을 보면서 즐거워한다. ‘신혼일기’가 울컥했던 건 이 대리 만족을 ‘현실’이라고 부르는 뻔뻔함에 대한 저항감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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