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김 과장, 후줄근한 추 부장… 전투복은 달라도 전장의 고단함은 비슷

  • 김은령 월간 럭셔리 편집장 
  • 편집=박은혜

    입력 : 2017.03.14 17:29

    [김은령의 '남자들에게']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면서 사랑, 형사들이 범인 잡으면서 사랑, 셰프가 음식 만들면서도 사랑. ‘기승전사랑’으로 빠지는 것이 우리나라 드라마의 공식이니 드라마 ‘김과장’ 역시 김 과장이 회사에서 사랑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다행히 최근 보았던 드라마 중 가장 현실적인 ‘오피스 룩’이 등장해 같은 직장인 입장에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갔다. 사람은 역시 입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입는 것인가.

    사원과 대리 등 후배들이 생기고 다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넘치는 때가 과장 무렵이다. 드라마 타이틀 롤인 김 과장은 가볍고 속물적인, 과장된 성격 그대로 옷을 입는다. 군산에서 조폭 자금을 관리하다 갑작스럽게 서울 대기업에 입사했다 해서 어디 스타일이 한 번에 바뀌겠는가. 바지 길이도 뭔가 어설프고 바지 속으로 스웨터를 넣어 입고 그 위에 한 서스펜더도 어색하다. 첫 출근길 보여준 겨자색 코듀로이 슈트, 20대 넘어서는 입기 어려운 떡볶이 단추의 더플코트<사진> 등을 아무렇지 않게 입는 것은 자신감 덕분일 것이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언젠가 임원이 되고 최고경영자를 꿈꾸는, 일이건 패션이건 가장 자유로울 과장 연차기에 가능한 차림이다. 자기 멋에 취해 살 수 있는 짧은 기간이라 그 요란한 차림과 허세를 미워할 수가 없다.

    KBS

    그런데 부장으로 넘어가면 꿈과 현실을 구분하게 된다. 자기 커리어의 향방에 관해 대충 짐작이 오는 것이다. 아랫사람을 다그치며 야망을 불태우거나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버티기를 목표로 삼거나. ‘김과장’에 등장하는 추 부장은 단연 후자에 속하는데 그를 보며 “진짜 우리 회사 부장님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뒷머리는 까치집처럼 헝클어졌고 바지를 잔뜩 추겨 입는 기러기 아빠. 답답한 현실이니 후줄근한 셔츠는 윗단추 하나를 풀고 타이는 대충 느슨하게 맨다. 딸에게는 최신형 노트북을 사주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새 옷은 꿈도 꾸지 못한다. 그에게도 빛나는 시절이 있었다. 현실 속에서 찌들며 색이 바랬을 뿐. 큰일이 생기면 숨겨져 있던 리더십을 발휘하니 헐렁한 점퍼나 스웨터 차림만 보고 그의 연륜과 내공을 함부로 속단해서는 안 된다.

    외부에서 스카우트해 들어온 서 이사는 비즈니스 룩의 정석이다. 김 과장처럼 객기 넘치는 요란함도 아니고 추 부장처럼 체념의 아이콘도 아닌, 커리어 게임을 위해 제대로 유니폼을 입고 나온다. 한마디로 좋은 것 많이 보고 자신이 잘난 걸 아는 남자의 옷차림이라고 할까? 지나치는 법도 없고 그렇다고 아쉽게 느껴지지도 않게 슈트와 셔츠, 포켓치프와 넥타이 등을 갖춰 입는다. 재미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이런 스타일이 성공한다. 성공하려면 이미 성공한 것처럼 입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사는 상무·전무·사장으로 이어지는, 승진의 트랙을 달리고 있는 위치다. 김 과장의 표현에 따르면 ‘좋은 양복 입고 좋은 차 타는 양아치’, 야심에 넘쳐 잘난 척하기 일쑤이고 안하무인이니 당연히 밉상이어야 하는데 청색이나 보라색 스트라이프 셔츠로 연출한 강렬한 인상 뒤로 때때로 쓸쓸함이 느껴져서 뭔가 반전이나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일을 막 시작했을 무렵, 세상은 지위와 직책으로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안다. 한발 물러서 보면 결국 모두 비슷하다는 것을. 과장에게는 과장의 고민이 있다. 부장도 이사도, 아니 사장도 남모를 시름이 있다. 요란하고 후줄근하고 딱딱한 자기만의 전투복에 현실적인 고민과 미래의 지향을 담아 입고 매일 서야 하는 전쟁터. 그 고단함의 강도는 동일하니 결국 세상은 대충 공평하다고 위로하며 드라마로 지친 일상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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