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가수들이여, 땅굴 아지트에 와서 맘껏 놀아봐요”

서울 아현동 지하보도를 개조해 만든
음악창작소 '뮤지스땅스'에서
최백호를 만나다

    입력 : 2017.03.14 17:32

    [Creator의 공간] 최백호의 '뮤지스땅스'
     


    그의 목소리는 목구멍 타고 오는 음성(音聲)이라기보다 저 아래 심장에서 솟구치는 마음 소리, 심성(心聲)에 가깝다. 최백호(67). 그가 가수 인생 불혹(不惑)을 맞았다. 1977년 돌아가신 어머니 그리며 쓴 데뷔곡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를 시작으로, 1995년 “설거지하는 아내 보며 첫사랑도 어딘가에서 설거지하고 있겠거니 하며 썼다”는 ‘낭만에 대하여’를 거쳐 40년을 달려왔다.

    가수로 쉼 없이 달려온 그에겐 생소한 직함이 하나 더 있다. ‘뮤지스땅스 어미벌레’. ‘뮤지스땅스’는 서울 아현동 마포대로 초입, 아현중학교 옆 지하보도를 개조해 만든 음악 창작소다. ‘뮤직(음악)’과 ‘레지스탕스(독립 저항군)’를 합한 이름이 말해주듯 비주류 음악가를 위한 공간이다. 3년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이곳을 만들면서 최백호가 총책임을 맡게 됐다. ‘어미벌레’란 앙증맞은 직함은 “음악 떡잎들의 어머니”라는 뜻으로 직원들이 붙여준 이름이란다.

    40주년 맞아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최백호는 선뜻 뮤지스땅스를 인터뷰 장소로 잡았다. “힘든 인디 음악인들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나는 안 나와도 좋으니 이 공간 크게 보여주세요.” 그가 몇 번이나 부탁했다. 쉴 새 없이 차들 오가는 8차선 대로 아래, 음악인들의 희망이 영그는 지하 땅굴로 내려가 봤다.

    “여기가 한때 노숙자가 들끓던 지하보도였다니 상상이 가세요.” 서울 아현동 지하보도를 개조해 만든 음악 창작소 ‘뮤지스땅스’ 지하 2층 공간에서 최백호가 웃으며 말했다. 가수로 40년 앞만 보고 달려온 그에게 이곳은 ‘봉사’를 실천하는 무대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저작권료는 공짜로 버는 돈, 미안함에 봉사

    ―뮤지스땅스를 어떻게 맡았나.“문체부에서 맡아달라 해서 ‘억지로’ 맡았다. 그런데 하다 보니 정말 중요한 일이더라. 소득이 연 1800만원 이하인 젊은 음악인, 65세 이상 원로 음악인을 우대한다. 돈 때문에 제대로 작업 못하는 음악인들이 와서 녹음하고 공연하니 보람 있다.”지하보도의 구조를 유지한 채 지하 2층으로 꾸며진 공간에는 최백호의 정성이 군데군데 묻어 있다. 기둥은 낡은 느낌을 주려고 직원들과 사포로 직접 밀었다. 소파와 테이블로 아늑하게 꾸며진 카페 같은 로비를 보면 한때 노숙자 들끓었던 곳 맞나 싶다.

    ―원래 사회적 활동에 관심 있었나.“능력이나 내 주제에 비해 많은 걸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일에 비해 저작권료도 너무 많이 들어온다. 그것도 사후 70년까지다. 공짜로 받는 거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런 활동으로 사회에 되갚는다 생각한다.”

    ―기부를 부탁하기도 했겠다.“아이돌로 돈을 번 대형 연예 기획사에 어려운 원로 음악인들 위해 기부를 부탁했더니 거절하더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될 만한 데엔 몇 십억원 기부하면서…. 굉장히 씁쓸했다.”

    (위에서부터 차례로) 지하보도 계단을 그대로 살려 만든 뮤지스땅스. 벽돌로 따뜻한 분위기를 낸 지하 2층. 음악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음악 장비./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국회의원 아버지가 내린 목소리

    ―후배들이 협업하고 싶은 선배 1순위로 늘 꼽힌다. 비결이 뭔가.“소속사 없고, 매니저 없으니 귀찮게 도장 찍을 일 없이 내 목소리만 가져가면 되니까? 허허.” 1970년대 야간 업소에서 노래할 때 잠깐 빼고는 매니저 없이 ‘홀가분하게’ 다녔단다. 이유? “매니저 있으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니까.”

    ―‘아무’ 목소리가 아니고, ‘최백호’ 목소리니까 그런 것 아닌가.“노인 목소리 말하는 건가.” 허스키한 목소리에 웃음이 기름처럼 돌았다. 겸손한 농담이 이어졌다.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들 한다.“신이 아니라 부모님이 주신 거다. 아버님(제2대 국회의원 최원봉)이 나 5개월 때 돌아가셨다. 기억은 없지만 전설 같은 얘기를 많이 들었다. 아버님이 1950년에 ‘기호 6번’ 무소속으로 부산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셨는데 상대편 유력 후보가 내무부 장관까지 지낸 거물급이었다. 그쪽에서 유세 방해하려고 마이크를 몽땅 싹쓸이했단다. 어쩔 수 없이 의자 하나 들고 다니면서 육성(肉聲)으로 정견을 발표했는데 목청이 얼마나 좋았으면 상대 목소리보다 더 컸다고 한다. 압승하셨다.”

    아버지는 석연찮은 사고로 세상을 떴다. 1950년 11월 갓난쟁이 아들 보러 서울에서 부산으로 지프로 내려가다 김천 부근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당시 동승했던 분들 증언으로는 북진하던 터키군 수송 차들이 천천히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대가 튀어나와 충돌했다고 한다. 이승만 정권에 반대했던 아버지를 그쪽에서 ‘제거’한 것 같아 4·19 이후 가족이 진상 조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젠 다 옛일이다.”


    딸뻘 후배에게 배운다

    ―젊은 가수와 일하니 세대 차는 없던가.“전혀. 아이유하고 하면서도 ‘배웠다’. 리듬 복잡하고 박자 까다로운 음악이었다. 나는 어려웠는데 음감이 뛰어나더라. 에코브릿지는 ‘부산에 가면’을 시작으로 이번 40주년 앨범(‘불혹’)까지 같이 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 음악적 기초가 탄탄했다. 인디 밴드 ‘스웨덴 세탁소’가 써온 곡도 탐이 나서 ‘덤볐다’.”

    최백호는 자식뻘(딸이 서른두 살이다) 까마득한 후배들, 그것도 그 연배에 생소할 법한 인디 밴드 이름 줄줄 외며 ‘배웠다’는 말을 몇 차례나 되풀이했다. 딱 한 명 빼고 후배들한테 꼬박 존댓말을 쓴단다. “‘알리’가 뭐라고 부를까 묻기에 ‘아버지’라 하라 했다. 그 후로 알리한테만 말을 놓는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데뷔한 지 40년, 감회가 어떤가.“1974년 부산의 한 카페에서 노래했다. 윤시내 노래 ‘열애’를 작사한 DJ 배경모씨가 우연히 카페 밖 스피커로 흘러나온 내 노래를 듣고 발탁했다. 그 인연으로 1977년 앨범 낸 게 시작이었다. 신기하게 지금은 욕심이 하나도 없다. 그저 좋은 노래 써서 후배에게 더 나눠 주고 싶다.”

    몇 해 전 윤시내한테 ‘꽃’이란 노래를, 혜은이한테 ‘눈물샘’이란 곡을 줬지만 그리 화제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원로가 되면 인디가 되는 이상한 나라다. 여든까지 노래 짱짱하게 하는 가수가 많은데 설 무대가 없다. 그들의 자리를 만들어 주는 게 내 몫이다.”

    ―선후배 사이 징검다리 같다.“요새 음악은 옛날하고는 다르다는데 모든 바탕의 맥은 같다. 옛날 노래든 요즘 노래든 가수가 노래하는 감성과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다. 에코브릿지 노래를 내가 불러 어울릴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어른들한테도 틀림없이 얻을 게 있다. 뮤지스땅스가 선후배 교류의 장이 됐으면 한다.”

    ―예전엔 교류가 많았나.“서로에 대한 호기심, 신비감이 있었다. 책으로만 읽고, 그림으로만 듣던 이름을 실제로 만나 보고 싶다는 기대. 지금은 인터넷에 모든 신상이 나와 있으니 오히려 더 경계하는 것 같다.”

    ―선배 예술가의 역할은 뭔가.“원석을 찾는 것이 선배 예술가의 몫이라 본다. 우리 사회에 책임지는 어른이 별로 없다. 단지 음악이 아니라 문화 창작과 관련해서 그런 역할을 하고 싶다.”


    내 삶의 삼박자, 음악·그림·만화

    최백호가 그린 유화 ‘나무’. 검은 나무가 인간의 두 다리를 닮았다./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그림(상당한 수준의 아마추어 화가인 그는 이달 말 뮤지스땅스에서 전시회를 연다) 말고 뭐로 영감을 얻나.“만화광이다. 내 인생의 만화는 김산호의 ‘라이파이’. 산호 선생님 팬클럽 회원이다. 요즘은 웹툰 ‘호랑이 형님’을 보는데 어마어마하다. 개인적으로 모르지만 홍보해주고 싶다. 내가 본 만화를 본 젊은 친구들은 인정해 준다. 하하.”

    ―근래 맘에 든 곡이 있다면?“자이언티의 ‘양화대교’. ‘아버지는 택시 드라이버~’ 아, 얼마나 좋은가. ‘열린 음악회’에서 한번 불러볼까 싶어 연습했다가 포기했다. 너무 어렵더라.” 그는 어렵다 했지만, ‘아버지는…’ 하고 최백호가 내뱉는 순간 가슴이 긁힌 듯했다. ‘최백호표 양화대교’가 듣고 싶어졌다.




    가수 최백호는…

    1950 부산 출생
    1969 부산 가야고 졸업
    1977 ‘내 마음 갈곳을 잃어’로 데뷔
    1995 ‘낭만에 대하여’ 발표
    1996 대한민국 영상음반대상 본상
    2008~ SBS 러브FM ‘최백호의 낭만시대’ 진행
    2011~ 한국음악발전소 대장
    2014 뮤지스땅스 오픈
    2016 제28회 한국PD대상 출연자상

    최백호와 아이유의 하모니처럼…
    예복, 언제 또 입는다고… 격식 갖춰 입는 게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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