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 찻집 1000개의 찻잔 일일이 손으로 넣었죠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세트는 디자인에 한달, 공사에 또 한달이 걸렸다.
완성도 높은 무대미술 덕분에 시청자들은 더욱 드라마에 몰입해 감상할 수 있었다.
대본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마법같은 일, 작품을 빛내는 무대미술의 뒷모습을 공개한다.

    입력 : 2017.02.14 17:44

    [Trend: 드라마 ‘도깨비’ 빛낸 숨은 주역 무대 미술]
     

    이승의 기억을 남김없이 잊게 해주는 망각의 차. 저승사자(이동욱)가 망자에게 건네는 배웅의 손짓이다. 지나간 영혼을 위로하듯 수천개의 찻잔이 들어선 저승사자 찻집은 어떻게 만들어진 걸까. 통유리창을 감싼 담쟁이덩굴이 오롯한 도깨비(공유)의 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최근 인기 끈 작품 뒤 ‘무대’의 비밀을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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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도깨비’. /화앤담픽처스


    작품 빛내는 ‘숨은 주연’ 무대미술


    “너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신(공유)의 대사처럼 모든 장면의 완성도를 높여 ‘눈부시게’ 만드는 데 이걸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또 다른 주인공’이라 불리는 ‘무대’다. 현대를 사는 주인공을 갑자기 과거 속으로 놓는가 하면 세상에 없는 장소로 시청자를 이끈다.

    대본을 바탕으로 최대한의 상상력을 동원하는 무대는 미술감독의 손이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도깨비’뿐만 아니라 오페라 극장의 모습을 영화같이 화려하게 연출한 뮤지컬 ‘팬텀’, 0.1초마다 바뀌는 조명으로 마치 명화(名畵) 속에 와 있는 듯한 경험을 주는 뮤지컬 ‘아이다’ 등 독특한 ‘무대’로 인기를 끄는 작품의 숨은 비결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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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깨비’에서 공유와 이동욱의 식탁. 천장에 가득한 초가 세월을 의미한다. /화앤담픽처스

    1000개의 찻잔, 1000만원 샹들리에…무대 스케치에만 한 달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공유) 방. 저승사자(이동욱) 방과 찻집, 지은탁(김고은) 방 등은 모두 경기도 남양주 세트장에서 촬영됐다. 전체 총 2314㎡(약 700평) 공간 위에 세트는 661㎡(200평) 정도다. 남는 공간은 CG(컴퓨터그래픽) 촬영을 위한 세트로 이용됐다.

    ‘도깨비’의 김소연 미술감독은 “900년 넘게 산 김신의 공간은 낡은 느낌의 소품과 저물어가는 하늘의 푸르스름한 빛깔로 표현했고, 저승사자의 공간은 좀 더 모던한 감각으로 연출했다”고 말했다. 공간별로 스케치하는 데만 한 달 넘게 공들였고, 남양주 세트장에 무대 공사를 하는 데 또 한 달을 썼다.

    김소연 미술 감독의 저승사자 찻집 스케치. 정면 측면 등 수백 컷을 컴퓨터로 완성한다(왼쪽). 도깨비 집의 거실 스케치. /화앤담픽처스

    드라마 ‘도깨비’ 촬영세트
    한달 걸려 디자인, 공사에 또 한달

    도깨비 방은 커다란 방에 덩그러니 놓인 침대와 그 옆의 낡은 장식장 정도가 전부다.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죽고 나만 존재하면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도깨비의 빈 마음처럼 공허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푸른 빛과 녹색 톤을 많이 이용했는데 편안하면서도 동시에 차가운 색상이거든요.” 식탁 천장에 장식대를 달아 촛불을 잔뜩 올렸던 것도 시간이 촛농처럼 흐른 걸 표현하기 위해서다.

    여러 장면 중 화제가 된 건 저승으로 가는 망각의 차를 마시는 저승사자의 찻집. 수천개의 찻잔이 나무 수납대에 빼곡히 들어서 있다. 제작사 측은 “생(生)과 사(死)를 다루는 저승사자가 하늘로 인도한 삶의 수를 층층이 쌓인 수납대로 표현했다”고 밝혔다. 동굴 형태로 천장이 동그란 찻집은 사람 높이의 몇배가 되는 거대한 크기의 나무 입구 때문에 보통 CG라고 생각하지만 상당 부분 사람 손으로 만들었다. 김소연 미술감독은 “4m 정도까지는 실제로 제작했고 거기에 맞춰 찻잔 1000여개를 일일이 손으로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그 위에 끝모르고 솟은 찻잔 벽면은 CG로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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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케치에 따라 완성한 무대 세트. 일부는 실제 찻잔을 넣고 나머지는 CG로 작업했다. /화앤담픽처스
    시작은 이응복 PD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해외 촬영 갔다 뉴욕에서 발견한 샹들리에를 드라마에 넣고 싶다며 운반비까지 1000만원을 들여 사왔다. 이 PD는 ‘샹들리에를 연꽃 느낌으로 살려주는 공간’을 원했다. 여기 맞춰 김 감독은 아치형으로 찻집 입구와 내부를 디자인했다.


    ‘도깨비’의 25m 크기 배 vs 배우가 운전하는 ‘팬텀’ 230kg 배

    배 만드는데 1회 제작비
    최고가 소품은 1000만원 샹들리에

    ‘도깨비’의 전체 세트 제작비는 대략 7억~8억원 정도. 가구와 커틀러리 같은 식기 등은 대부분 협찬을 받았지만 해외에서 사온 소품도 상당하다. 도깨비와 저승사자 집에 있는 거울은 700만원 정도. 가장 많은 제작 비용이 든 건 1회에서 김신이 배를 타고 있는 장면이다. 배를 만드는 데 드라마 한 회 제작비 정도를 써야 했을 정도로 돈도, 공도 많이 들였다.

    김 감독은 “세상에 없는 배”라며 “고려 시대라는 배경이 있지만 그와 상관없이 가장 어울리는 느낌의 배를 완성해 달라고 이 PD가 주문했다”고 말했다. 전체 길이만 25m 되는 대형 배다. 배는 두 척을 제작했다. 부서지는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배가 들어가는 수조가 없어서 수조 촬영이 가능하게 원래 제작된 작품의 3분의 2 크기로 또 만들었다.

    ‘도깨비’ 제작팀이 직접 만든 배(왼쪽). 김소연 미술 감독의 배 스케치. /화앤담픽처스

    드라마 ‘도깨비’의 배만큼 화제가 되는 것이 뮤지컬 ‘팬텀’의 배다. 팬텀은 가스통 르루의 원작 ‘오페라의 유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브로드웨이 뮤지컬. 국내에선 박효신·박은태 등이 주인공 팬텀 역을 맡으며 연일 매진 기록을 세우고 있다. 오페라 극장에 사는 ‘유령’ 팬텀은 지하 감옥 같은 음산한 느낌의 무대에서 배를 운전한다. 팬텀의 기술감독인 이연구 캠프 프로덕션 대표는 “230㎏ 되는 배인데 배우가 수동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뮤지컬 무대는 ‘처음무대’, ‘쇼앤 아트’ 등 대형 무대 제작사들이 만든다. 이번 ‘팬텀’은 15일간 철야로 제작했는데, 그 속도와 완성도에 브로드웨이 팀도 놀랐다고 한다.

    뮤지컬 ‘팬텀’에서 배우가 직접 운전하는 배. /EMK

    드라마의 경우 제작한 소품은 고가의 경우 제작사가 소유하거나 대부분 재활용한다. 뮤지컬 소품은 무대에 다시 올리기 위해 지방 저장소에 보관하는 게 보통이다.


    0.1초마다 바뀌는 조명 쇼


    최근 주목받는 무대 장치로 조명을 빼놓을 수 없다. 환상적인 느낌을 주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조명을 가장 잘 활용한 것으로 평가받는 뮤지컬 ‘아이다’의 경우 일반 조명 900대, 무빙 라이트 80대가 설치됐다. 2000년 토니상 조명상 수상자인 나타샤 카츠의 조명 디자인을 지금도 그대로 이용한다. 주홍빛 석양으로 물드는 무대를 보고 있으면 마치 현대 미술가인 마크 로스코나 바넷 뉴만의 명작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공연 중 총 445번 조명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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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 작품 같은 ‘아이다’의 석양 연출(위). 화려한 조명 쇼로 주목받는 뮤지컬 ‘아이다’. /신시컴퍼니

    아이다 조명을 감독한 토탈 코리아 박민수 조명부장은 “원작의 조명 장비가 낡아 외국 조명 디자이너와 협의해 최근 조명을 새로 바꾸었지만 원작자의 저작권 때문에 조명 색상은 하나도 바꾸지 않았다”고 했다.

    관객들이 특히 좋아하는 장면은 암네리스의 의상 쇼 장면. 16개로 나뉜 뒷배경의 색상이 계속 바뀌어 현란하다. 배우가 쓰는 고양이 모자만 5㎏. 실크 의상에 스와로브스키 장식으로 조명에 더욱 빛난다.

    조명감독이 가장 난색을 표하는 장면은 ‘어나더 피라미드’ 장면. 평균 4초에 한 번 정도 불빛이 바뀌는데, 일부는 0.1초 간격으로 변한다. 보통은 미리 프로그래밍을 해서 컨트롤 박스로 조정하지만 미세한 조정을 위해 사람이 직접 버튼을 누른다. 박민수 감독은 “배우 움직임에 일일이 맞춰야 하기 때문에 손가락으로 1초도 안 되는 간격으로 조명을 바꾼다”고 말했다. ‘노동’이 ‘작품’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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