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강남역, 그래서 강남역!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전에도 유명했던 강남역.
강남역의 업종이 점점더 다양해지고 있다.
압구정 명품거리와는 또다른 매력의 강남역을 만나보자.

    입력 : 2017.02.14 17:48

    [Story: 강남역 르네상스]
     

    이곳을 스쳐가는 사람은 하루 100만 여명(강남구 자료). 서울 인구(2016년 현재 1020만4057명)로 치면 10명 중 1명이 매일 이곳을 지나친다. 지난 5일 서울시가 발표한 ‘2016 서울 대중교통 이용 현황’ 조사에서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지하철역으로 꼽힌 역도 이곳이었다. 하루 평균 19만9596명이 이용했다. 20년째 부동의 1위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사람들 많이 오가는 곳, 바로 ‘강남역’이다.

    강남역은 서울의 요지만이 아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대한민국의 얼굴이 됐다. 강남구에 따르면 지난해 강남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 수는 772만9999명. 2015년에 비해 32.6% 증가했다. 이 가운데 153만9722명이 강남역을 찾았다. 강남 지역 관광지 중 1위였다. 싸이가 말한 강남은 압구정동·청담동·강남역 등을 아우른 광의(廣義)의 강남이었지만, 외국인들에게 강남(Gangnam)은 강남대로였으며 강남역이었다.

    지금은 서울 사람들 제일 많이 드나들고, 한국을 대표하는 지역이라지만 한때는 무, 오이, 콩 농사짓던 밭이었다. 1969년 제3한강교(지금의 한남대교)가 놓이고 1970년 경부고속도로 전면 개통 이후, 본격적으로 한강 이남이 개발되기 전까진 강 북쪽 ‘서울 사람’ 먹을 채소를 재배해 공급하던 시골 땅에 불과했다.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의미로 영동(永東)이라 불리던 지역이 반세기 만에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것이다. 그것도 서울에서도 부자 동네 1, 2위를 다투는 강남구와 서초구가 딱 달라붙어 팽팽하게 맞선 최전선이 강남역이다.

    강남역으로 쉴 새 없이 사람이 오고 간다. 하루 평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20만명 정도. 20년째 이용자 수 1 위를 기록하고 있다. 1982년 개통 이후 강남역은 강남 개발의 젖줄 역할을 했다. 30여년간 역 위로 최대 상권이 만들어 지고 한국의 고도 성장을 목격했다. /염동우 영상미디어 기자

    압축 성장을 이룬 한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1970년대 본격적으로 시작된 강남 개발이 가속도가 붙은 건 강남을 가로지르는 지하철 2호선 개통이었다. 1982년 12월 지하철 2호선 강남역이 개통되자, 이곳을 중심축으로 강남대로와 테헤란로 개발이 본격화됐다. 상권도 커졌다. 벤처와 IT 산업의 메카였던 테헤란로, 패션과 최첨단의 길인 뱅뱅사거리에서 양재역까지 이어지는 강남대로가 교차하는 곳, 내로라하는 기업들의 마천루가 즐비하고 사람과 차가 쏟아지는 강남역은 1980~1990년대 성장과 발전의 급물살 속에 업그레이드된 한국의 상징이었다.

    힙합으로 무장한 90년대 ‘X세대’가 모여들며 신세대 문화를 선도한 것도 강남역이다. 압구정동에서 시작된 오렌지족 유흥 문화가 강남역으로 이어졌고, ‘소개팅’과 카페 문화가 확산했다. 강남역 7번 출구에 있던 카페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은 추억의 소개팅 성지였다. 지금은 홍대 앞이 주도하는 클럽 문화도 원조는 강남역이었다. ‘빠샤’ ‘오딧세이’ 같은 나이트클럽이 밀집돼 20대 청춘이 몰려들었다.

    부침(浮沈)도 있었다. 1974년 강남역보다 더 먼저 생긴 38년 터줏대감 뉴욕제과가 2012년 문을 닫고, 쌍벽을 이루던 랜드마크 타워레코드도 2000년 사라졌다. 2011년 집중호우로 물바다가 된 강남역은 녹지 없이 빼곡히 건물 들어선 ‘아스팔트 도시’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줬다. 성장에만 몰두하고 환경은 보듬지 못한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이었다. 지난해 강남역 10번 출구 인근 상가 화장실에서 일어난 ‘묻지 마 살인 사건’은 ‘여혐(여성 혐오)’ 논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

    강남역 위로 뻗어있는 왕복 10차선 강남대로.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

    가로수길, 이태원 등 요즘 ‘핫’한 동네들과 비교하며 누군가는 이제 강남역은 식상하다, 뻔하다, 개성 없다 한다. 그래도 막강한 유동인구 가진 교통 거점, 최대 상권으로서의 강남역은 건재하다. 지난해 7월 국내에 상륙해 화제 모았던 미국 수제버거 브랜드 ‘쉐이크쉑’은 몇몇 후보지를 물색하다가 1호점을 강남역으로 낙점했다. 이 브랜드를 들여온 SPC 그룹은 “‘강남’이라는 강력한 ‘네임 파워’, 상징성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어학원에 이어 최근엔 공단기, 박문각, 해커스패스 등 공무원 학원이 문 열어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이 몰리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사를 지켜보고, 때론 우리 사회의 깊숙한 치부를 비춘 거울 역할을 해낸 곳. 강남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중심이 된 강남역으로 가봤다.


    無개성이 개성…
    “강남의 중심이지만
    강남스럽지 않아 편해”


    ‘명품 거리’ 압구정·청담동처럼 고급스럽지 않아 부담 없어
    강남역은 먹고 노는 곳? 공무원 학원 들어서고 서점가도 생겨

    강남대로와 테헤란로가 교차하는 강남역은 교통 중심지이자 최대 상권이다. 도로를 꽉 채운 차들과 높은 빌딩이 강남의 밤 풍경을 수놓았다. 오른쪽 흑백 사진은 1980년대 초반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강남역 일대 풍경. 정면에 굴뚝 있는 건물 오른쪽이 뉴욕제과다. 왼쪽 사진은 수제 맥주 가게 캔메이커가 강남역 로고로 만든 맥주 ‘강남 페일 에일’.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서울역사박물관

    #1. “어머니가 1981년 가게 문을 여셨어요. 가게 문 열 때만 해도 강남역도 없고, 큰 건물도 없었는데 이듬해 강남역이 생기고 상권이 이동했어요. 대로변에 건물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몰려왔지요.”

    2대째 서울 역삼동 교보타워사거리 근처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이남수(49) ‘원주추어탕’ 대표가 강남역 일대 역사를 줄줄 꿴다. “지금 교보타워 자리는 영흥자동차학원 자리였어요. 그 옆 제일생명 건물이 랜드마크여서 사거리도 ‘제일생명 사거리’로 불렀는데, 2003년에 교보타워 생기면서 길 이름이 아예 바뀌었죠.” 어머니가 가게 열 때 중학교 1학년이던 아들은 쉰을 코앞에 두고 있다. 36년이 지난 지금 강남 풍경도 많이 바뀌었다.

    #2. “그래도 강남역이죠.” 웹디자이너 김지윤(29)씨가 ‘단톡방’에 ‘오늘 저녁 7시 강남역 11번 출구 앞’을 전송한 뒤 웃으며 말했다.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도 뜨면서 거기도 가지만 만나기 편한 덴 그래도 강남이에요. 논현동에서 일하는 저, 삼성동 근무하는 친구, 분당·한남동 사는 친구 만나려면 제일 편하거든요. 매장도 여전히 많고.”
    강남역을 찾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교통이 편리해서, 즐길 거리가 많아서, 부담스럽지 않아서. 다양한 사람들이 수많은 이유로 모이는 곳이다 보니 뚜렷한 개성 없이 모든 걸 껴안은 게 따져보면 강남역의 매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보인다, 진짜 강남역의 색깔이.

    (위쪽부터) 강남역에 1호점을 낸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스토어. 국내 진출 첫 매장을 강남역에 연 쉐이크쉑 1호점의 모습. 오프라인 중고 서점 예스24 강남. /장은주 영상미디어 기자·예스24

    강남스타일… 강남역의 복권(復權)

    가로수길, 성수동, 경리단길 등 젊음과 개성으로 무장한 동네가 뜨면서 강남역의 인기는 한때 주춤했다. 요즘 세대들이 중요하게 보는 ‘취향’이라는 척도에선 뒤처졌단 인상이 강하다. 식상한 곳이란 이미지가 커질 무렵 의외의 호재가 생겼으니, 싸이의 ‘강남스타일’이었다. 홍보비 하나 안 들이고 세계적인 마케팅 효과를 거뒀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2015 외래 관광객 실태 조사’ 연도별 한국 여행 중 주요 방문지를 보면 2015년 외국인들의 방문 비율이 가장 높았던 곳은 명동(77.1%), 동대문시장(60.3%), 고궁(44.3%), 남산·N서울타워(40.7%), 신촌·홍대 주변(29.1%), 남대문시장(29.0%), 박물관(26.7%), 인사동(25.8%), 잠실(롯데월드)(23.4%), 강남역(23.1%) 순이었다. 이전엔 강남역은 아예 설문 대상도 아니었지만 2014년 인기를 반영해 추가됐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권태일 부연구위원은 “강남스타일과 한류의 영향, 의료 관광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강남역을 추가했다”고 했다.

    직장인 최준석(37)씨는 “강남역은 강남다우면서도 강남답지 않아 편하다”고 했다. “강남대로와 테헤란로가 교차하는 빌딩 숲 사이를 걷다 보면 여기가 강남의 중심이란 게 실감 나요. 청담동이나 압구정동처럼 고급스럽진 않지만요. 그래도 강남에서 회사원, 중고등학생, 중년까지 부담 없이 어우러져 즐길 수 있는 곳이 강남역 말고 또 있을까요.” 무개성이 되레 강남역의 강점이란다.

    강남에 깃발을 꽂아라

    전통적으로 젊은 유동 인구가 많은 데다 외국인 관광객까지 늘자 플래그십스토어들의 진출이 늘게 됐다. 대표적인 곳이 카카오프렌즈 플래그십스토어. 지난해 7월 첫 플래그십스토어를 옛 파리크라상 자리에 열었다. ‘1시간 만에 매장 입성’ 등 해시태그 단 인증샷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며 오픈 한 달 만에 45만명, 일 평균 1만5000명이 다녀갔다.

    한때 강남대로를 따라 즐비했던 화장품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 사이로 요즘엔 뉴발란스, 나이키, 언더아머 등 스포츠 브랜드가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청담동에는 명품 브랜드가, 가로수길에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플래그십스토어가 문 여는 것과 달리 강남역에는 타깃층이 폭넓은 브랜드가 주로 입점한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강남대로의 1층 매장은 월 평균 임대료가 1억5000만~2억원 수준”이라며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더라도 홍보 효과를 노리는 브랜드가 전략적으로 들어선다”고 했다.

    놀고 먹는 곳? 이젠 공부하는 강남역!

    2003년 강남대로 교보타워 사거리에 문을 연 교보문고 강남점은 강남역 일대의 문화 지도를 바꿔 놓았다. 강남대로를 따라 알라딘중고서점, 영풍문고, 예스24 오프라인 중고 서점까지 모여 들면서 책의 향기가 폴폴 날리는 중이다. 한때 이 지역엔 씨티문고·진솔문고·동화서적 등 서점들이 있었다. 그 사이 자취를 감췄다가 최근 다시 서점가가 형성되고 있다. 예스 24 오프라인 중고 서점에서 만난 대학생 이윤지(23)씨는 “예매해둔 영화의 상영 시간을 기다리다가 이곳에 왔다”며 “북적거리는 강남역 한가운데 조용히 책을 읽으며 쉴 수 있는 서점이 여러 곳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서점이 많아지는 데엔 학원가 영향도 크다. 강남역 주변엔 토익전문학원, 어학원, 편입학원, 전문대학원(MEET, PEET 등) 학원 등 다양한 학원이 몰려 있다. 최근 몇년 사이에는 ‘공시족’ 성지(聖地)인 노량진에서 진출한 공단기·박문각·해커스패스 등 공무원 학원이 강남역에 문을 열었다. “분당이나 인근 수도권 지역과 강남 지역에 거주하는 공시족들이 접근성 좋은 강남역 학원가로 모인다”는 게 학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공무원 학원 앞에서 만난 김수진(25·가명·서초동)씨는 “노량진보다 집에서 가깝고 학원들이 모여 있어 수험 생활을 하기에 괜찮다”고 말했다.

    아스팔트에 숨통 틔워야

    강남역 거리는 늘 사람으로 붐비고 활기차 보인다. 그러나 ‘거리 활력도’는 신촌이나 서래마을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리 활력도’란 특정 거리의 단순한 통행 인구량이 아니라 보행자의 다양한 활동과 머무는 시간 등을 포함해 활력도를 산출하는 개념이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강남역, 신촌, 서래마을 등 3곳의 거리 활력도를 분석한 결과, 강남역의 보행량은 신촌과 서래마을보다 많았지만 여유 공간이 없어 오래 머물지는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를 앞세운 고층 건물이 밀집해 있다 보니 아기자기한 재미가 적다는 것이다.

    유현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서울에 비어 있는 공간은 도로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실내 공간과 이동하는 공간만 있는 극단적인 예가 바로 강남역”이라면서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와 비교했다. 타임스스퀘어는 빌딩숲이지만 근처에 브라이언트 파크 같은 쉴 공간이 있어 숨돌릴 틈이 있다. 유 교수는 “건물과 건물 사이나 골목에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압축 성장과 그 이면 보여주는‘리틀 대한민국’

    강남역 小史

    “어디 가나 있는 특징 없는 도시,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강남의 속살을 보여주는 곳이 강남역이다.”

    강남의 역사를 심층적으로 다룬 책 ‘강남의 탄생’을 쓴 한종수 세종시 도시재생센터 사업지원팀장의 말이다. 강남역은 ‘강남’ 하면 떠오르는 최대 상권이자 한국의 압축 성장과 그 이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은 대한민국이다.

    1969년 한남대교,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강남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1970년대 초반 강남역 일대는 여전히 허허벌판이었다. 1974년 문을 연 뉴욕제과가 손에 꼽히는 번듯한 건물이었다. 1982년 지하철 2호선의 개통은 강남 발전의 전기(轉機)가 됐다. 강남역을 주축으로 강남대로와 테헤란로는 높은 빌딩 숲과 상가,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가 됐다. 그러나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와 경제 불황은 질주에 제동을 걸었다. 신흥 상권들이 강남역의 위세를 넘보기도 했다. 도심 한복판 물난리에 체면을 구긴 적도 여러 번. 추억의 장소였던 뉴욕제과는 2012년 폐점하고 SPA 패션 브랜드에 자리를 내줬다.

    강남역은 다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싸이가 부른 ‘강남스타일’ 덕에 세계의 관심을 받은 곳으로 ‘신분’ 상승했고, 최첨단의 시대에 더욱 빠르게 변하는 중이다.

    (왼쪽부터) 강남역 대표 랜드마크였던 뉴욕제과. 2012년 38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문 닫았다. (중간)2011년 침수된 강남역 일대 풍경. (마지막)2012년 강남역 한복판에서 ‘강남스타일’을 열창 중인 가수 싸이. /조선일보DB

    강남역 관련 주요 일지


    1974년 뉴욕제과(현 강남역 10번 출구 앞 에잇세컨즈 자리) 개점
    1976년 영동1로의 도로명 강남대로로 변경
    1982년 12월 지하철 2호선 강남역 개통
    1988년 강남대로 경계로 강남 서초 분리
    1989년 강남대로 10차선 확장
    2008년 1월 서초 삼성타운 완공
    2008년 8월 7호선 논현역 개통
    2009년 7월 9호선 신논현역 개통
    2011년 7월 강남역 침수
    2011년 10월 신분당선 강남역 개통
    2012년 5월 뉴욕제과 폐점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발생

    1년 만에 사직서 쓰는 신입사원들
    덴마크 꼬마의‘강남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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