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感의 기초는 味感..."잘 먹어야 좋은 건축 나온다"

최욱 건축가는 요즘 국내 대기업 오너들의 주택 프로젝트를 가장 많이 한 건축가 중 한명이다.
그는 건축가로서의 지닌 미감(美感)의 중요한 토대는 미감(味感)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의 건축사무실 안에 주방 '또'를 만들었다.

    입력 : 2017.02.14 17:48

    [Creator의 공간: 건축가 최욱의 사무실 주방 '또']
     

    이대 후문과 연대 동문 사이에 있는 원오원 사무실에 만든 직원용 주방 '또'. 가로,세로 2.5m 정사각 테이블 위에 건축가 최욱이 직접 만든 음식을 올렸다. 그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과정이 건축과 닮았다"고 했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건축가 최욱(54·원오원아키텍스 대표)은 조용한 사람이다. 사무실은 투명한 물잔 같다. 음악은커녕 잡음 하나 없는 공간. 발소리도 미안할 정도로 극도의 고요가 펼쳐진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비로소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며 적막공산(寂寞空山) 같은 사무실을 만들었다. 오죽하면 사무실 별칭은 절간, 그의 별명은 수도승이다.

    이 말 없는 건축가가 요즘 국내 대기업 오너들의 주택 프로젝트를 가장 많이 한 건축가 중 하나로 꼽힌다. 미감(美感) 까다롭기로 유명한 재벌들이 집이라는 가장 사적이고 중요한 공간을 그에게 맡긴다. 디자인 내세워 회사 DNA까지 성공적으로 바꾼 현대카드의 건축·디자인 프로젝트도 도맡다시피 하고 있다.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영등포 사옥, 여의도 본사 3관에 이어 다음 달 도산공원 근처에 문 여는 쿠킹 라이브러리까지 설계했다. 심미안 높기로 소문난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의 신임이 그만큼 두텁단 얘기다.

    네덜란드에서 구한 빈티지 수레와 조명(왼쪽),피아노(가운데),서재(오른쪽)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그런 최욱이 지닌 미감(美感)의 중요한 토대는 미감(味感)이다. 타고난 미식가이며 와인 애호가, 위스키 마니아다. 골프도 안 치고 사교 모임도 질색이라지만 음식은 다르다. 그가 이달 초 사무실에 색다른 주방을 하나 만들었다. 서울 대신동 봉원사 입구, 한쪽 창으론 연세대 동문(東門) 쪽 산이, 맞은편 창으론 이화여대 후문 쪽 언덕이 보이는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식당이 아니라 ‘주방’이다. 어떤 공간인가.

    “우리 사무실 건물 2층에 김동길 박사님이 이끄는 태평양시대위원회 사무실이 있었다. 최근 김 박사님이 사무실을 비우시면서 우리 회사 직원 주방 겸 강의실로 바꿨다. 김 박사님 생신 때 지인 분들이 사무실로 와서 같이 냉면 만들고 빈대떡 빚어 먹는 전통이 있었다. 그걸 계승해 직원들 위한 주방을 만들었다.”

    주방엔 ‘또’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도장 찍은 듯 빨간 글씨로 디자인한 로고까지 만들었다. 어린 시절 ‘뽑기’를 할 때 ‘꽝’이 걸리면 풍선껌을, ‘또’가 걸리면 스무개들이 캐러멜을 받던 추억이 있단다. 그 달콤한 기억을 직원들과 나누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건축적으론 어떤 의미가 있나.

    “잘 먹어야 좋은 건축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비싼 음식이 아니라 좋은 재료로 정성 담아 제대로 만든 음식 말이다. 직원들 점심시간도 90분으로 늘렸다. 한식 셰프도 영입했다. 아내(작가 지니 서)가 직원용 그릇도 디자인하고 있다. 그릇은 음식 담는 도구다. 형태도 중요하지만 음식이 들어 있을 때의 조화가 중요하다. 건축도 같다. 건물 형태 자체보다는 사람이 들어가 생활할 때 건물과 사람의 조화가 중요하다. 밥을 먹으며 그런 걸 자연스레 깨닫는 거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미쉐린 3스타 ‘가온’, 1스타 ‘정식당’ 등 유명 레스토랑 디자인을 많이 했다. 경험이 연결돼 있나.

    “셰프는 음식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 먹는 사람의 친구라 생각한다. 숨어 있으면 안 된다. 손님 안색까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셰프가 보이도록 주방을 디자인한다. 또 시선이 편안하고, 손 닿는 부분이 부드럽게 만든다. 접시를 워머로 데워 내놓는 것과 같은 연장선에서 테이블의 온기도 중요하다.”

    ‘또’에는 가로·세로 2.5m 정사각 원목 테이블이 놓여 있다. 빙 둘러앉아 서로 얼굴 보며 밥 먹고 대화하기 좋은 거리와 형태를 고려한 수치다. 테이블 가장자리는 앉는 사람 시선에서 나뭇결이 수평이 되도록 원목을 둘렀다.

    ―알 만한 재벌가 고급 주택을 많이 디자인했다. 그 과정이 궁금하다.“1990년대 대기업 오너들이 유명 서양 건축가에게 집 설계를 맡기는 게 붐이었다. 그런데 써보니 불편해서 한국 건축가들을 찾게 됐다. 한국 사람들이 집에 대해선 어떤 민족보다 까다롭다.”

    ―어떤 면을 말하는가.

    “온돌 때문에 실내에서 맨발로 생활한다. 신발을 벗고 신는 공간을 섬세하게 분리해야 하고 사계절 외부 변화도 풍경으로 수용해야 한다. 서양 건축가들은 자기 작품을 하려는 성향이 강했지 한국의 독특한 생활 방식과 정서를 고려하지 못했던 거 같다. 특히 주방에서 문화 차가 컸다. 자연히 오너들이 한국적인 미감과 현대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결합된 건축을 찾게 됐다. 그 무렵 나는 한옥 느낌을 살려 삼청동 두가헌, 콩두 같은 레스토랑을 디자인했다. 철, 돌, 나무 같은 원재료를 쓰면서 한국적 감수성을 살린 걸 보고 고급 주택 의뢰가 왔다.”

    ―주방에서 문화 차가 크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오너가(家)에선 대가족이 모여 제사 지내는 빈도가 높다. 대개 냄새 나는 부엌과 안 나는 부엌, 개인적으로 쓰는 부엌과 여럿이 쓰는 부엌이 나뉘어야 한다. 제사 때 전 부치고 김장할 수 있는 야외 부엌을 원하는 경우도 많다. 저장 음식 많으니 냉장고 12대가 들어가는 주방을 설계하기도 했다. 이런 식 문화를 외국 건축가가 알기란 어렵다.”

    ―이번 주방은 세계적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이 베를린에 있는 스튜디오에 ‘키친’이라는 직원용 주방을 만들어 창의력을 기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책까지 낸 걸 떠올리게 한다. 아이디어 실험실 같달까.

    "단순히 먹고 쉬는 공간은 아니다. 생각이 오가는 곳이다. 3월부터 음식 다큐 전문 이욱정 PD, 올라퍼 엘리아슨 키친에서 10년 동안 요리사로 일했던 일본인 조각가 이와마 아사코, 미술관 큐레이터 등 다양한 분야 인물이 여기서 강의할 계획이다. 라이프 스타일을 이끄는 사람들이 음식을 매개로 영감을 주고받는 장(場)이 되길 꿈꾼다."

    최욱은 “건축이란 감각으로 만든 삶의 이미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풍경”이라 한다. 그의 사무실 주방은 풍경을 느끼는 ‘마음’과 ‘감각’을 단련하는 작은 실험실인 셈이다.

    /이경호 영상미디어 기자
    ▲대표작 학고재 갤러리(2007), 두가헌(2004), 여의도 현대카드 사옥 본사 3관(2015),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옛 서울시장공관, 2016) 등 /원오원아키텍스

    최욱의's Creator's Tip


    ―침잠(沈潛)하라. 마음의 침전물을 가라앉히고 고요함에 귀 기울이다 보면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소소한 관심사를 나눌 소울메이트를 두라. 오랫동안 함께 호흡한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생각이 정리된다. 내겐 이탈리아 유학시절 만난 30년 지기 일본인 친구가 그런 존재다.

    ―전공 밖 잡식성 독서를 해보라.

    다른 분야의 책을 읽다 보면 묘한 연결고리가 보인다. 책과 책 속 단어를 엮어 문장을 만들고 아이디어를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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