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보다 힘든 마음 난임 여성 3명 중 1명은 우울증

그 어떤 위로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 있다.
당사자에겐 그 어떤 일보다 힘들게 다가오는 임신.
돈보다 마음이 힘들어 오는 우울증인 난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입력 : 2017.02.18 08:08

    [스페셜 리포트: 나의 난임일기(2)]
     

    난임일기 두 번째는 마음에 대한 것이다. 사실 난임 부부들에게 더욱 절박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의 문제다. 난임 여성 중 우울증 진단을 받는 경우는 전체의 30%. 암이나 심장병 환자들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난임이라는 사실조차 밝히기 꺼리는 우리 사회에서 마음의 문제를 나눌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다. 내 마음의 문제가 일반적인지,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누군가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게 난임 부부들의 바람일 것이다. 내가 마음의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아이를 못 낳는 나도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난임(難姙) 여성이라면 수백 번 되뇌었을 것 같은 이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두 시간 기다려 진료실에 들어가 “잘 안 되네”라는 의사의 혼잣말을 들을 때, 오로지 임신 한번 해보겠다고 수십만원씩 쓴 영수증을 들춰 볼 때, 겨우 하나 얻은 수정란을 품고 가만히 천장만 바라보며 누워 있을 때, 그러다 “이번에도 임신 아니네요”라고 조심스럽게 전하는 간호사의 말을 전화기 너머로 들을 때. 그럴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다.

    하루는 ‘몇 년만 더 일찍 임신 준비를 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남들과 조금 다른 학창 생활을 보내면서 잠도 아껴 가며 노력해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만 입학하면 모든 게 잘 풀릴 줄 알았지만 그렇지도 않아 졸업 후에는 이런 일, 저런 일 거치며 힘들게 원하는 직업을 얻었다.

    뒤처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던 중에도 운 좋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에 성공했다. 그러고는 ‘아이를 낳기 전에 신혼을 즐기고 싶다’며 별걱정 없이 즐겁게 보냈던 시간을, 나는 이제 와서 부정해야 할까. 만약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지금 삶이 너무 즐거워 3~4년 더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보다도 더 임신이 힘들어졌을 텐데. 그렇다면 나는, 내가 했던 일과 보낸 시간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까.

    /이철원 일러스트

    비단 난임 여성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출산을 겪은 친구의 말이, 자신은 평생 자신의 삶을 조절하고 살아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고 했다. 임신을 준비하고, 임신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결국 나는 생물학적 존재였을 뿐 그 외의 자아는 희미해지더라는 거다.

    나는 단지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태어난 게 아니라고, 평생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그러니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도 별 의미 없는 몸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매일같이 다짐해야 했다. 아이를 낳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난임 병원 의료진과 그 앞에서 몇 시간이고 의사를 기다리는 환자들 사이에서, 매일 마음을 다잡았다. 단지 취업 준비생처럼 취업하려 노력하는 것일 뿐 임신이 지상 최대의 명령이 아니라는 사실을 주문처럼 되뇌었다.

    난임으로 휴직 중이라고 말하면 별 생각 없이 “쉬니까 좋겠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임은 그런 게 아니었다. 주사만 맞고 좀 누워서 쉬다가 병원에 오랄 때 가는 그런 생활이 아니었다. 수치심과 좌절감 같은 부정적인 가정이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지 않도록 버티는 생활이 이어졌다. 수정란의 상태를 보고 의사가 “중하급이네요”라고 말해도 ‘수정란은 중하급이지만 나는 중하급이 아니야’라고 쿨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는 생활이었다.

    우리 부부는 끊임없이 묻고 대답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지, 두세 시간 넘게 대화하는 날도 많았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서로 아픔을 껴안고만 있었다면 아마 우리는 성공하지 못한 난임 부부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대로도 괜찮다’는 확신이 든 날이 바로 “더는 난임 시술을 받지 말자”고 말하던 날이었다.
      
    정신적 고통이 심각하다 60%

    한 조사 결과를 보자.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황나미 연구위원이 난임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정신적 고통을 심각하게 겪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60%에 달했다. 시험관 시술을 한 난임 여성이 대개 ‘심각하다’고 응답한 정신적 문제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고립감과 우울(59.6%), 죄책감(41.0%), 불안(55.8%), 무력감(53.3%) 등. ‘자살 생각이 들었다’는 응답도 13.7%나 됐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5’ 조사에 따르면 ‘우울감을 느꼈다’는 한국인은 전체의 13.2% 정도 되니 난임 여성의 우울감은 그 네 배가 넘는 셈이다. 해외 연구 결과를 보면 이런 감정적인 문제는 임신에 실패했을 때 평균 18개월간 지속된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들이 겪는 마음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로 치부됐다. 정부의 지원은 경제적인 부분에 집중됐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난임 부부에 대한 심리적 지원이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은 물론 임신 성공률까지 높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황나미 연구위원은 “심리적 지원이 난임 부부의 심리적 고통을 줄이고 결과적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면서 “비록 임신 성공률을 연구한 결과에 대한 확실한 결론은 없지만 긍정적인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난임 부부의 마음 문제는 개인의 우울감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마음 문제를 해결하면 매년 20만명씩 늘어나는 난임 인구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난임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는, 난임 부부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조차도 부족하다.

    난임 부부들이 가장 흔히 겪는 마음의 문제는 ‘지지를 받지 못함’에서 시작된다. 5번의 시험관 시술을 한 35살 이영란씨는 대기업 건설 부문 계열사에 재직 중이다. “지난해 여름에 시험관 시술을 받으면서 10일 휴가를 몰아서 낸 적이 있었어요. 부장이 ‘10일이나 필요해?’라고 물으면서 덧붙인 말이 ‘옆 팀 누구누구는 휴가 안 내고도 시험관 시술해서 성공하던데’라고 말하더군요. 말할 수 없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씨의 시댁에서도 난임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 “한 번은 시어머니가 ‘그렇게 힘드니?’라고 물으셨어요. 그러시면서 우리 때는 먹을 게 적고 일만 했어도 아이를 잘 낳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나약해서 아이를 잘 못 낳는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씨의 친구 정선미씨도 난임 진단을 받았다. 그는 원래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일과 가정을 양립한다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 것 같았어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겨우 용기를 얻게 됐죠.” 그런데 난임 진단을 받았다. 주변에서는 ‘나이도 많은데 왜 어려운 길 가려고 하느냐’ ‘아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며 되레 정씨를 말렸다. “어차피 나이도 많지 않으냐는 말까지 듣고 나니 너무 혼란스러워졌어요. 제 결정에 확신도 없어졌고요.” 정씨는 1번의 시험관 시술 실패 이후 1년 넘게 병원에 가지 않았다.

    박춘선 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2013년 자신의 논문에서 난임 과정 중에 가장 스트레스를 주는 요인은 주변인(61.8%)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해 과도하게 개입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난임을 비정상이고 비상식적인 것처럼 취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한 것 자체로도 지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일 텐데 오히려 손가락질받으니 난임 부부들이 그 과정을 헤쳐나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거죠.”

    /조선일보DB

    전문 심리상담 받은 적 있다 5.4%

    난임 부부의 마음 문제 중 여성의 문제에 주로 주목하는 이유는 난임 극복 과정에서 여성이 주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난임의 원인이 어디에 있든 난임 시술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이다. 여전히 임신, 출산, 육아의 책임을 여성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난임의 책임과 부담감 또한 여성이 지는 경우가 많다.

    30대 중반 교사 김소연씨는 2번의 시험관 시술에 실패하고 부부 관계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시험관 시술을 준비하는 과배란 단계에서는 매일 주사를 맞고 병원에 가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수정란을 이식하고 나서는 꼼짝도 않고 누워 있는데 그걸 두고 남편이 ‘쉰다’고 표현하더라고요.” 난임의 당사자인데도 난임 과정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김씨는 “실망했다”고 표현했다. “저만 이렇게 안달복달하면서 아이를 가지려고 하는 것인지 실망스러웠고, 또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어요.”

    박춘선 회장은 이런 사례가 매우 흔하다고 말했다. “크게 보면 난임 또한 출산, 육아의 한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부부 갈등과 난임 부부의 갈등 유형은 비슷합니다. 실패의 경험이 많은 난임 부부들일수록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박 회장은 “안타깝게도 이혼을 한 사례도 봤다”고 말했다.

    난임 여성들을 위한 지원은 거의 없다.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이 조사한 바로는, 심리 상담을 받은 적 있는 난임 여성은 5.4%에 불과했다. 남편이 심리 상담을 받은 적 있다는 응답은 더 낮아 1.1%에 불과했다. 반면 전문적인 난임 심리 상담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용할 것 같다’는 응답은 61.3%에 달했다.

    우리나라처럼 극심한 저출산 문제를 겪는 일본에서 난임 부부에 대한 지원 문제는 일찍부터 논의돼온 부분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2007년 난임 전문 상담센터를 전국에 설치한다는 사업 계획을 발표했고, 2014년 7월까지 전국에 62개 센터를 세웠다. 그 사이 난임 상담센터를 이용한 사람들도 늘어 2012년에는 총 2만1452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전국적 조직인 ‘난임상담학회’도 설립돼 난임 문제에 대해서만 상담해주는 전문적인 상담 인력도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호주 역시 난임 상담 프로그램이 잘 조직돼 있다. 호주의 빅토리아주에서는 난임 시술 전에 난임 상담을 받는 것이 법으로 의무화돼 있다. 호주에서는 난임 상담만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 상담사 단체도 조직돼 있는데, 난임 부부들이 원한다면 이 단체를 통해 훈련된 상담사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유럽 국가 중에서는 난임 지원이 열악한 편이라는 영국에서도 국가보건의료서비스(NHS)를 통해 통합적인 난임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난임 부부가 원하는 경우 담당 주치의를 통해 의료 상담과 심리 상담을 총체적으로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국적인 민간단체가 많아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이 없다.

    무엇보다 다른 선진국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비슷한 경험을 나눌 만한 자조(自助) 모임이 잘 조직돼 있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주치의나 난임 클리닉에서 가까운 지역 내의 자조 모임을 소개해준다. 자조 모임이 정보를 나누고 서로 어려움을 털어놓음으로써 연대감을 느끼며 나아가 정신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도 전국적인 자조 모임 조직이 있어 지역별로 원하는 모임에 가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제적인 협력까지 얻을 수 있다. 

    /조선일보DB
    경제적 지원에만 그쳐서는 안 돼

    우리나라에서 현재 진행 중인 난임 전문 상담 프로그램은 정부에서 진행하는 난임 상담센터 한 곳, 비영리단체인 난임가족연합회에서 진행하는 상담 프로그램 등이 전부다. 정부에서 지원하는 난임 상담센터는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웹사이트 ‘아가사랑’(www.agasarang.org)을 통해 전화, 온라인, 대면 상담을 신청할 수 있다. 협회에 따르면 2015년 7월 센터 개관 후 진행된 상담 건수는 135건인데, 대개 의료상담보다는 심리상담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춘선 난임가족연합회 회장은 “그만큼 심리 상담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뜻”이라며 “상담을 진행하다 보면 초기에 쉽게 치료할 수 있었던 우울증이 곪아서 오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난임 상담은 통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처음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난임 부부들의 이야기를 일단 들어보면 어느 한 가지 도움만 필요로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마음도 다쳤는데 몸도 많이 상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에는 의료 지원, 심리 지원, 경제적 지원 등 모든 것이 다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난임 부부를 위한 지원은 경제적 지원에만 집중돼 있다. “돈만 주고 ‘자, 임신해 봐’라고 떠넘겨 버리는 셈이지요. 난임 진단을 받을 때부터 어떤 의료 처치가 필요한지,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돈만 주고 끝이잖아요. 난임 병원의 배만 불리는 꼴입니다. 난임 부부들은 그 돈을 가지고 계속 실패하면서 각자 알아서 시행착오를 겪으라고 손 놓은 겁니다.”

    매년 난임으로 진단받는 사람은 20만명에 달한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이들 중 60%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본다면 매년 12만명의 새로운 사람이 난임 문제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개인의 문제로만 간주할 수 없는 수치다.

    이제 경제적 지원을 넘어서 난임 부부에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얼마만큼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할 때다. 5년 사이 8번의 시험관 시술을 받아 결국 지난해 봄 쌍둥이 형제를 출산한 김혜림씨의 말이다.

    “아이를 낳고 보니 난임 부부에 대한 정부의 시선이 매우 애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사람을 열심히 설득하고 낳은 사람에게 혜택을 주려고 노력하지만, 낳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에 대한 지지는 없더군요. ‘어차피 도와줘도 못 낳을 걸’이라는 차가운 시선도 보이고 ‘우리가 안 도와줘도 알아서 낳으려고 하잖아’라는 나태한 태도도 보이더군요. 마치 난임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반영하는 것 같아 난임에서 벗어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42호에서 발췌했습니다.>

    쌍둥이 출산 최고치
    뭇매맞은 출산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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