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뱃속에 5년간 들어갔다 나왔더니 내가 대통령 같더라”

김대중 정부 시절 5년간 연설비서관으로 근무했던 고도원 이사장.
청와대 퇴임 후 그는 아침편지를 통해 360만명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오랫동안 침묵해왔다.
그런 그가 드디어 최순실 사태에 대해 입을 열었다.

    입력 : 2017.02.01 07:07

    [인터뷰] 최순실 사태에 입 연 DJ의 연설비서관 고도원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눈 덮인 산속 공기는 쨍했다. 지난 1월 16일, 영하 11도의 강추위는 명상센터 ‘깊은 산속 옹달샘’의 작은 폭포에 팔뚝만 한 고드름을 만들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보내는 고도원 이사장의 꿈이 실현된 공간이다. 충북 충주시 노은면의 깊숙한 산골, 문성자연휴양림 숙소들을 지나야 나타나는 이곳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이다.
      
    이곳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 저력은 ‘언어’, 바로 말의 힘이다. 고도원 이사장은 아침편지를 통해 360만명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있다. 전 세계 47개국, 미국에서만 30만명이 넘는 동포들이 이 편지를 받고 있다.
      
    고도원 이사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연설비서관을 5년간 지냈다. 그간 고 이사장은 연설비서관 시절에 대해서는 함구해왔다. 그러던 그가 입을 열겠다고 했다.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말씀 자료를 수시로 열람하고 수정한 사태를 보면서 마음을 바꾼 듯 보인다.

    - 지금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없는데, 이유가 궁금하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깊은 산속 옹달샘’을 하면서 표방하는 바가 분명했다. 이곳은 비정치적, 비종교적, 비상업적 공간이길 바랐다.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해서는 부릅뜬 눈으로 바라봤지만, 언어는 삼키기로 했다. 누군가는 영혼의 우물을 지키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봤다. 누가 오더라도 영혼을 맑게 씻고 갈 수 있도록. 기자 출신이라 언론계 후배가 많아서 대통령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가 터질 때마다 인터뷰 요청, 코멘트 요청을 수없이 받았지만 그때마다 침묵했다."

    - 그런데 왜 입을 열기로 했나.
    “이번에 ‘절대고독’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을 쓰게 한 출발점이 대통령 연설문을 쓴 시간이다. 그 5년간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 지독한 절대고독의 강을 건넜다. 그러던 차에 연세춘추 후배들이 와서 ‘기록으로라도 남겨야 하지 않겠느냐’라면서 졸랐다. 그들이 내 입을 열어줬고, 이제는 큰 이슈도 지나가고 정돈돼가는 와중이니 내 말이 사회 시스템을 만드는 일, 진정한 혼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된다면 입을 열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 대통령의 연설문은 어떻게 탄생하나.
    “가끔 농담처럼 ‘대통령의 뱃속에 5년간 들어갔다 나왔더니 내가 대통령이더라’라는 말을 한다. 대통령의 연설문을 쓰기 위해서는 철저히 나를 비우고 대통령의 눈과 마음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고스트라이터가 될 수 있다. 엄청난 세상 공부였다.”

    - 대통령 연설문이 작성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내 밑에 행정관 4~5명이 있고, 연설자문위원단을 구성해 운영했다. 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 등 각계 각층의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8·15 광복절이나 3·1절 같은 국가행사가 있으면 관련 부처에서 연설문 초안을 보내온다. 이를 토대로 행정관들과 함께 1차 연설문을 작성한다. 비상시에 긴급 담화문을 발표해야 할 때에는 일련의 과정 없이 1급 연설비서관인 내가 단독으로 작성해 직접 대통령께 드리기도 한다. 9·11사태 때가 그랬다.”

    - 연설자문위원단 등 외부인에게 대통령 연설문을 보여주기도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자문위원단은 초안 작성에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대통령 연설문 초안이 일단 작성되면 대통령과 나 사이에 그 어떤 사람도 끼어들 수 없다.”

    - 민간인 최순실씨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을 수정해서 정호성 비서관에게 보냈다고 인정했다.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부터 이어온 견고한 시스템을 붕괴시킨 것이다. 언론사에 비유하면 자격 없는 이방인이 편집국장까지 거친 원고를 윤전기 앞에서 헤드라인 고친 격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역사를 망가뜨린 일이다."

    -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는 오랜 인연이 있는 최순실씨만큼 자신의 속내를 잘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볼 수도 있을 텐데.
    “사사롭게 생각하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만약 최씨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시스템 안에 최씨가 들어가 있어야 했다. 그게 국가다. 그래서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엄정한 것이고. 우리가 ‘엄중하다’ ‘막중하다’ ‘무겁다’는 표현을 하는데, 국가지도자의 연설문을 쓴다는 건 엄중한 것이다."

    -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특징은.
    “그분의 언어가 많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분의 소신과 철학이 많이 녹아들어 있다. 그런데 담화문이나 연설문을 보면 가끔 튀는 의외의 표현들이 등장한다. 그건 스태프들이 제대로 역할을 안 했다는 거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이 있는 문고리 3인방은 ‘아닌데요’라는 역할을 했어야 했다. 정 다급하면 문짝을 차고 들어가는, 겁 없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번 사태는 없었다.”
      
    - 대통령의 연설문은 어떤 가치를 갖는가.
    “시대의 정신이자 영혼이고 국가의 비전이다. 그대로 교과서가 될 수도 있고,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는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이 그렇지 않나. 남북전쟁 당시에 링컨이 게티스버그에서 한 2분여짜리 즉흥 연설이 미국 역사상 최고의 연설문으로 남았다. ‘87년 전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 속에 잉태된~’으로 시작하는 이 연설은 영혼의 서사시다. 문장이 완벽하다. 링컨의 평소 언어의 저장고가 고갈돼 있거나 말라 있다면 절대 그런 고매한 언어가 나오지 않는다.”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즉흥연설을 안 하기로 유명하다.
    “김 전 대통령은 준비된 연설을 해야 한다는 지론이 있었다. 그래서 설화(舌禍)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즉석연설로 종종 설화를 입지 않았나.”

    고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 중에는 문학적인 비유가 많이 등장한다. 대표 어록을 몇 개 뽑아봤다. “일생을 살면서 두 가지 지표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하나는 ‘행동하는 양심’이고 다른 하나는 ‘실사구시’다”라는 표현이다.
      
    - 이 표현은 김대중 대통령의 표현인지, 아니면 연설비서관의 표현인지 궁금하다.
    “김 전 대통령의 워딩이다. 내가 처음 연설비서관을 맡자마자 김 전 대통령이 당부한 말이 두 가지였다. ‘서생적 판단’과 ‘상인적 기질’이다. 서생적 판단은 이상·꿈·미래이고, 상인적 기질은 현실적 경제적 가치이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길 바랐다. 김 전 대통령의 모든 연설문에는 이 두 가지가 녹아 있다. 이게 없으면 죽은 글이거나 허황된 글이다.”
      
    - ‘정치는 심산유곡에 핀 한 떨기의 순결한 백합화가 아니라 흙탕물 속에 피어나는 연꽃이다. 연꽃을 피게 하고 정치를 예술화하는 것은 국민의 예지와 책임감과 결단에 있다’는 표현은.
    "나의 워딩이다. 김 대통령의 연설은 늘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한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고, 문학적인 표현을 즐겨 쓰시는 분이기에 얼마든지 이런 문장이 나올 수 있다고 봤다.”

    - 김 전 대통령은 연설문을 많이 고치는 편인가.
    “많을 때에는 거의 다 고친 적도 있다. 빨간 볼펜으로 깨알 같은 정자체로 첨삭을 해온다. 그러면 내가 다시 수정을 해서 드리는데, 첨삭 원고를 또다시 첨삭하는 경우도 많았다. 행사 직전에 토씨 하나를 고치기도 했다. 고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1년쯤 지나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행사 끝나고 대통령을 뒤따라가는데 ‘고도원 비서관, 요즘 연설문 좋아요’ 하시더라. 그즈음 ‘고도원 비서관을 만나서 내가 좀 편해졌다. 나를 잘 읽어준다’는 칭찬을 여기저기 하셨다 한다. 그 이후로 연설문에 대해 범접하는 사람이 없었다.”
      
    고씨는 연설비서관을 마치고 한동안 은둔자의 삶을 자처했다.
      
    “글 쓸 때 피말린다고 하지 않나.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의 자리는 더욱 그렇다. 워낙 철두철미한 데다가 당대의 연설가이자 문필가 아닌가. 구술이 곧 연설문이 될 정도였으니까. 그런 분의 연설비서관은 정말 숨막히는 자리다. 기억력 좋고 부지런하고 사유의 구조가 꽉 짜인 노교수 아래에서 5년간 조교생활 한다고 생각해 봐라."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42호에서 발췌했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식물 대통령'과 마주쳐야 하나
    보수의 아이콘 조갑제 “藥 쓰면 되는데 수술 하자니”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