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 충격 이후 658조원 호텔 시장의 ‘조용한 변신’… 첨단 정보 기술 도입, 디자인·고객경험 차별화로 승부

    입력 : 2017.01.23 07:51

    [글로벌 호텔 전쟁]
     

    ‘늦은 밤 배가 고파 스마트폰 앱으로 룸서비스 피자를 주문했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려 문을 여니 로봇 직원이 피자를 가져왔다. 팁을 건네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로봇춤’을 춘다.’

    글로벌 호텔업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호텔 산업은 다른 분야에 비해 변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다. 다른 소비재 업계는 깜짝 놀랄 만한 이색 마케팅 아이디어가 넘쳐나지만, 호텔업계의 홍보·마케팅은 예나 지금이나 점잖기 그지없다. ‘집 떠난’ 고객들의 집이 되어주는 것이 사업의 본질이다 보니 변화 자체를 추구하기보다는 꼭 필요한 변화도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진행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2016년 매출 658조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호텔업계가 변화의 흐름과 무관하게 성장해온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몇년간 호텔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큰 폭의 변화를 경험해왔다.

    이런 변화는 지난 7~8년 사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코노미조선


    에어비앤비 창업 8년만에 기업가치 30조원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거품 경기 속에 잘나가던 호텔 산업에도 대형 악재였다. 2002년부터 6년간 상승세를 이어가던 미국 호텔산업 매출은 2007년 1564억달러(약 187조원)로 정점을 찍은 후 줄어들어 2009년에는 1333억달러로 급감했다.

    금융위기 속에서 호텔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혁신을 통한 차별화가 절실할 수밖에 없었다. 2008년은 애플의 아이폰 3G 출시로 스마트폰이 대중화한 원년이다. 업무와 엔터테인먼트, 각종 생활정보 등 삶의 모든 영역이 빠른 속도로 스마트폰에 ‘연동’되기 시작했다.

    호텔업계도 무시할 수 없는 변화였다. 자연히 호텔의 각종 시설과 서비스는 ‘디지털 친화적’으로 재편됐다.

    스마트해진 일상에서 정보 공유가 원활해지면서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도 더 치열해졌다. 여기에 2008년 에어비앤비(Airbnb) 창업은 ‘숙박공유 서비스’라는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며 호텔업계를 위협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호텔 컨설팅 기업 HVS는 최근 보고서에서 미국 뉴욕 소재 호텔들이 에어비앤비로 인해 입은 직접적인 손실이 연간 4500만달러(약 538억원)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에어비앤비는 창업 8년 만에 기업가치가 약 255억달러(약 30조6900억원)로 치솟았다. 이는 1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힐튼 호텔의 기업가치(236억달러)를 뛰어넘는 것이다. 창업자 브라이언 체스키의 개인 자산도 33억달러(포브스 추정)로 불어났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SNS 계정에는 비욘세, 저스틴 비버 등 스타들이 묵고 간 초호화 에어비앤비 저택이 여행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1박에 1000만원이 넘는 곳도 있다.

    에어비앤비의 성장은 국내에서도 두드러졌다. 2015년 12월 1일 기준, 국내 에어비앤비 숙소를 이용한 여행자는 1년 전보다 236% 증가했다. 이용 가능한 등록 숙소도 같은 기간 약 117% 늘었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와 호텔 설립 증가 영향으로 국내 주요 호텔들의 객실 가동률이 40%대에 머물렀던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세다.

    이준규 에어비앤비코리아 대표는 “에어비앤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한국을 홍보하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며 “관광산업 전체의 파이를 키우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비즈니스 환경 변화 속에서 생존을 위한 호텔업계의 도전은 크게 네 가지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멕시코 무헤레스 섬에 있는 호화 에어비앤비 숙소 /에어비앤비

    혁신1 가상 현실 등 첨단 기술 접목


    첫째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 접목이다. 7~8년 전만 해도 특급 호텔 객실에서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요금을 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요즘은 통신 보안이 상대적으로 엄격한 중국 주요 도시 호텔에서도 무료 와이파이(무선랜) 서비스는 기본이다. 스마트폰 앱을 통한 예약 서비스와 VIP 회원 관리,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홍보·마케팅도 이미 호텔업계의 중요한 업무가 된 지 오래다. 투숙객을 위해 객실마다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태블릿 PC를 비치하는 곳도 늘었다.

    하지만 고객 대부분이 스마트 기기를 갖고 다니고 있어 태블릿 PC의 활용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객실 TV나 LED 터치스크린이 내장된 거울(스마트 미러)을 제공해 고객의 스마트 기기와 연동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호텔이 늘고 있다. 호텔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예약부터 객실 출입까지 스마트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도 2014년 처음 등장한 후 현재 세계 160여개 호텔에서 활용되고 있다.

    초기 단계지만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등 첨단 기술도 호텔 서비스의 일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특히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은 고객이 입체영상을 보면서 객실을 실제로 사용하는 듯한 체험을 할 수 있어 미래 호텔 마케팅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로봇 호텔리어도 힐튼과 어로프트 등 몇몇 호텔들이 시험 운영 중이다. 초기에는 로봇 호텔리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객을 끌어모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따뜻하고 인간적인 서비스를 기대하는 고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혁신2 디자인 차별화


    둘째는 디자인을 통한 차별화다. 두바이를 상징하는 돛단배 모양의 버즈 알 아랍 호텔과 거대한 성화봉 형태로 세워진 카타르 도하의 토치 호텔, 항공기를 개조한 파나마 숲 속의 호텔 등 독특한 외관의 호텔들은 예전에도 있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명품 업체들이 호텔업에 진출하면서 호텔 디자인은 이전과 크게 달라지고 있다. 패션 브랜드 ‘루이뷔통’과 주류 브랜드 ‘모엣샹동’으로 럭셔리 산업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LVMH는 2013년 몰디브에 ‘슈발 블랑’ 리조트를 오픈했다. 투숙객들은 루이뷔통과 디오르 제품을 쇼핑하고, 지방시 스파도 체험할 수 있다. 모두 LVMH가 보유한 명품 브랜드다. LVMH는 몰디브에 이어 이집트와 오만에도 고급 리조트를 건설 중이다.

    고급 호텔·리조트 개발과 운영에
    뛰어드는 명품업체들


    브랜드 자체만으로
    기존 호텔과 차별화 가능하며
    높은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와
    접점을 넓힐 수 있기 때문

    이탈리아의 명품업체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2010년 두바이에 ‘아르마니 호텔’을 오픈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조르지오 아르마니 회장이 직접 총괄했고, 객실 가구도 ‘아르마니 카사’ 제품들로 채웠다. 이듬해에는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아르마니 호텔이 문을 열었다.

    아르마니가 호텔 사업에 뛰어든 데엔 이탈리아의 강력한 라이벌 ‘베르사체’가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창업자 지아니 베르사체는 1997년 사망하기 직전 호주의 부동산개발업체 선랜드그룹과 손잡고 명품업체 중 가장 먼저 호텔·리조트 사업에 나섰다. 그 결과가 2000년 호주 골드코스트에 문을 연 ‘베르사체 궁전’이라는 뜻의 ‘팔라초 베르사체’다. 200여개의 객실과 90척의 요트를 정박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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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골드코스트에 있는‘ 팔라초 베르사체’ 리조트의 로비. /팔라체 베르사체

    샤넬은 마카오의 카지노 기업 SJM홀딩스와 손잡고 호텔 디자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 카를 라거펠트가 직접 디자인한 20층짜리 호텔이 2017년 개장을 목표로 현재 건설 중이다.

    경기불황으로 매출이 줄고 있는 명품업체들이 고급 호텔·리조트 개발과 운영에 뛰어든 것은 브랜드 자체만으로 기존 호텔과 차별화를 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쇼룸 등 한정된 전시 공간을 넘어 구매력을 갖춘 소비자들과 접점을 넓히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내에선 천편일률적인 모습이던 비즈니스호텔과 관광호텔들이 ‘부티크 호텔’로 바뀌면서 디자인 차별화에 나서고 있다.


    혁신3 ‘특별한 경험’ 제공


    셋째는 독특한 경험이다. 호텔과 다른 개성 넘치는 주거공간을 숙소로 등록해 홍보한 것이 에어비앤비 성공의 중요한 요인이었던 만큼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은 호텔업계의 중요한 과제가 됐다.

    해외 여행전문 포털에서 ‘독특한 호텔(uni-que hotels)’을 검색하면 온갖 종류의 기상천외한 호텔 정보가 쏟아진다. 기린과 함께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호텔도 있고 해수면 5m 아래의 수중 레스토랑에서 바닷속 멋진 풍경을 즐기며 ‘산해진미’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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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얏트 호텔 & 리조트가 2016년 3월에 론칭한 ‘언바운드 컬렉션 바이 하얏트(The Unbound Collection by Hyatt)’. /하얏트

    하얏트 호텔 & 리조트가 2016년 3월 ‘언바운드 컬렉션 바이 하얏트(The Unbound Collection by Hyatt)’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한 것도 새로운 숙소와 서비스를 찾는 소비자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메리어트와 힐튼 등 경쟁사와 비교하면 인수합병(M&A)을 통한 사세 확장에 소극적이었던 하얏트지만 관련 브랜드 론칭을 위해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특색 있는 호텔들을 인수했다.

    카리나 코렌겔 하얏트 아시아·태평양지역 브랜드 & 전략 담당 수석 부사장은 “SNS의 발달로 호텔산업에서도 독특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해 공유하도록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면서 “나무 위에 지은 호텔(tree-top hotel)이나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 호텔 등 독특한 이야깃거리가 있는 호텔들을 한데 묶어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드리스킬 호텔에서는 유령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종종 있었다. 이름 그대로 브랜드의 ‘경계를 없앤(unbound)’ 것이 브랜드의 특징인 셈이다.


    혁신4 인수합병으로 대형화


    마지막으로 최근 두드러진 브랜드 간 인수합병과 명칭 변경 등 ‘새판 짜기’ 움직임도 빼놓을 수 없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하 메리어트)은 2016년 9월 스타우드 호텔 & 리조트를 인수했다. 이에 따라 메리어트는 전 세계 110여개국에 5700개 이상의 호텔을 보유하게 됐다. 보유한 객실수만 해도 110만개에 이른다. 국내의 메리어트 계열 호텔도 JW 메리어트·리츠칼튼·코트야드·메리어트 이그제큐티브 아파트먼트·웨스틴·W·쉐라톤 등을 포함해 모두 16개로 인수합병 전 8개에서 두 배 늘었다.

    국내에서는 SK그룹 계열 호텔인 워커힐호텔이 글로벌 호텔 브랜드 ‘쉐라톤’과 결별을 선언했다. 1978년 호텔 본관 증축 때 미국 쉐라톤인터내셔널과 제휴를 맺으면서 쉐라톤 간판을 내건 지 39년 만이다.

    워커힐 전경. /조선일보 DB

    SK네트웍스는 2016년까지 계약된 쉐라톤 호텔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끝으로 독자적인 워커힐 브랜드로 영업에 나서기로 했다. 특히 1200억원을 들여 2018년 말 완공 예정인 연면적 3만㎡의 워커힐 리조트 스파를 기반으로 세계적인 도심형 리조트로 성장시킨다는 구상이다.

    중화권 자본의 서구 랜드마크 호텔 인수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중국 안방(安邦)보험은 2014년 뉴욕 맨해튼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약 20억달러에 인수했다. 안방보험은 10억달러 이상의 비용을 들여 이 호텔을 고급 콘도로 탈바꿈시키기로 한 바 있다.

    안방보험은 지난해 3월 스트래티직 호텔 앤드 리조트 산하 미국 고급호텔 16곳을 사모펀드(PEF) 블랙스톤으로부터 65억달러(약 7조원)에 매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3년간 안방보험이 블랙스톤으로부터 인수한 호텔과 업무용 건물의 총가격은 최소 160억달러(약 1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의 부동산업체 위타이는 2016년 7월 4230만파운드(약 633억원)에 영국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 소재 트래블로지 호텔 인수를 발표했다. 호텔은 6층짜리 건물로 142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중국 업체의 첫 영국 부동산 인수 사례로 주목받기도 했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는 중국 자본의 서구 호텔 인수가 미래 호텔업계의 서비스와 시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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