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10년이 바꾼 대한민국 24시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을 세상에 선보인 기업 '카카오(kakao corp)'.
2016년 12월, 카카오는 10살이 됐다. 10년 동안 카카오는 문자 서비스뿐만 아니라 게임·음악부터
택시·대리운전 요청, 미용실 예약까지 한국인의 삶 곳곳에 침투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입력 : 2017.01.12 07:26

    [사회: 스페셜 리포트]
     

    지난 2016년 9월 12일 경상북도 경주와 그 일대를 강타한 지진이 발생했다. 진도 5.8로 한국 지진 관측 사상 가장 강했던 이 지진은 경주는 물론 부산·울산 등 거의 모든 경상도 지역과 대전 등 충청도에서까지 흔들림이 느껴졌을 정도였다. 이후 석 달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수백 회가 넘는 여진이 계속되며 경주와 인근 지역 주민들의 공포감을 키우고 있다.

    이 강진이 발생한 후 네이버, 다음 등 한국의 주요 검색·포털에서 예상치 못한 독특한 현상이 벌어졌다. 지진 직후 네이버와 다음 등 주요 검색·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로 ‘경주 지진’이 아닌 ‘카카오톡’이 등장한 것이다. 검색어 1위뿐이 아니다.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 거의 모두가 ‘지진 피해’ 등 경주나 지진 관련 내용 대신 ‘카카오톡 장애’ ‘카톡 먹통’ 등 카카오톡 관련 내용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경주 등 경상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카카오톡 메시지 사용량이 폭증했다. 트래픽이 순간적으로 급증하면서 국민 메신저로 불리는 카카오톡이 장애를 일으키며 먹통이 된 것이다. 놀랍게도 당시 대한민국 국민 상당수는 진도 5.8의 지진 공포보다 트래픽 폭주로 두 시간 남짓 서비스가 멈춰버린 카카오톡 장애가 가져온 불편함이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카카오톡이 2016년 한국인의 삶 속에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실례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한국에서 메신저계의 애플 혹은 국민 메신저로 통하는 카카오톡(Kakao Talk). 현재 카카오톡은 사용시간을 기준으로 한국 시장 점유율 95%(와이즈앱 자료)에 이른다. 단연 1위다. 네이버의 ‘라인(LINE)’, 페이스북 메신저(Messenger), 러시아산 텔레그램(Telegram) 등 미국·일본·유럽 등에서 대성공을 거둔 다른 유명 모바일 메신저들이 시장 경쟁자로 불리고는 있지만, 실상 이들의 한국 시장 점유율을 모두 합해도 카카오톡의 19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만큼은 사실상 그 어떤 모바일 메신저도 카카오톡의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네이버 이해진과 결별한 김범수의 복귀작


    이런 카카오톡을 세상에 만들어낸 기업이 ‘카카오(kakao corp)’다. 2016년 12월, 그 카카오가 세상에 등장한 지 꼭 10년이 됐다. 그 10년 동안 카카오는 어떻게 성장해왔고, 그들이 만들어낸 카카오톡은 한국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2006년 12월, 카카오는 ‘아이위랩’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한게임 창업자로 이해진씨와 함께 네이버 대박을 이끌어내며 게임과 포털 산업계의 수퍼스타로 불리던 김범수씨(현 카카오 의장). 그가 자본을 대고, 대학 졸업 후 줄곧 벤처기업을 운영하던 이제범씨와, 또 지금은 잊혀진 왕년의 인기 포털 프리첼의 스타 개발자 이상혁씨 등이 뭉쳐 인터넷 서비스 기업을 만들었다. 바로 아이위랩이었다. 이들이 뭉칠 수 있도록 중간에서 다리를 놔준 이는 김범수 의장의 친구인 서울대 산업공학과 박종헌 교수다. 박 교수가 졸업 후 벤처계에 뛰어든 이제범씨를 김범수 의장에게 소개해주면서 이들의 인연이 카카오로 이어졌다. 김범수 의장과 박종헌 교수는 이제범씨의 서울대 산업공학과 11년 선배다.

    이미지 크게보기
    카카오 김범수 의장. /고운호 기자

    이들을 중심으로 네이버, 엔씨소프트 등 잘나가던 포털과 게임 기업을 뛰쳐나온 20여명이 뭉쳐 초기 아이위랩을 만들었다. 사실 아이위랩의 시작은 정교함이나 뚜렷한 목표가 제시돼 있던 기업으로 볼 순 없다.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아이위랩은 한국 시장이 아닌 미국 인터넷시장을 먼저 두드렸다. 네이버 이해진 의장과 갈라서기 전까지 네이버의 미국 사업을 맡았던 김범수 의장의 의지가 작용했다. 사진, 동영상 등이 담겨 있는 각종 블로그들을 쉽게 찾을 수 있는, 일종의 공유 사이트 부루닷컴을 2007년 ‘김범수의 복귀작’이란 마케팅을 앞세워 미국 등 영미권 시장에 선보였다. 결과는 참패였다.

    이 실패 후 2008년 아이위랩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 번째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이번에는 일종의 집단지성을 활용한 사업 모델을 내놨다. 인터넷상에서 누군가 궁금한 내용을 질문하면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구조였던 ‘위지아닷컴’을 선보였다. 하지만 이 역시 이미 시장을 선점한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인터넷 업계 스타 김범수를 홍보·마케팅의 전면에 내세웠던 두 번의 김범수표 인터넷 서비스의 실패 후 아이위랩은 주춤했다. 아마도 일반적인 벤처기업이었다면 당시 두 번의 실패로 자금 압박과 인력 이탈, 심지어 존폐를 고민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위랩은 연이은 실패에도 이런 고민까지는 몰리지 않았다. 한게임과 네이버의 대성공을 통해 인터넷 재벌로 떠올라 있던 김범수의 힘이었다. 그가 아이위랩에 상당한 자금을 꾸준히 투입했기 때문이다.


    아이폰, 카톡의 운명을 바꾸다


    그렇게 버틴 아이위랩이 세상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혁명적으로 세상을 바꾼 기기로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당시까지 세상에 없던 신세계인 스마트폰시장을 연 아이폰이 2009년 11월 한국에 상륙했다.

    아이위랩은 바로 아이폰에 집중했다. 기존에 구상했던 거의 모든 프로젝트를 접었다. 대신 아이폰에 최적화된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에 집중했다. 아이폰에 초점을 맞춘 세 개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이것이 한국 1위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시작이었다.

    2009년 말, 아이위랩은 사람들이 모바일에서 그룹 활동을 할 수 있게 한 모바일 카페 형태인 카카오아지트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동영상, 글을 공유할 수 있는 카카오수다, 그리고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 개발을 시작한다. 초기 카카오 3총사로 불리던 이 세 형태의 카카오 서비스는 2010년 2월부터 3월 사이 차례로 세상에 등장했고 이들 중 2010년 3월 나온 카카오톡이 소위 말하는 대박을 터뜨렸다.

    카카오톡은 등장과 함께 무서운 속도로 아이폰에 탑재되기 시작했다. 첫 출시 6개월 만인 2010년 9월 100만명이 카카오톡을 내려받았다. 여기에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OS 기반의 스마트폰인 갤럭시폰을 내놓으며 카카오톡의 성장에 불을 붙였다. 갤럭시폰 등장 한 달 후인 2010년 11월 카카오톡의 사용자는 500만명을 넘었고, 2011년 4월 1000만명을 돌파했다. 그리고 불과 석 달 후인 2011년 7월 2000만명을 넘어서더니, 2012년 6월에는 한국 인구와 비슷한 5000만명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카카오톡을 내려받았다. 2013년 7월에는 다운로드 실적이 1억건을 돌파했다. 카카오톡의 성공으로 아이위랩은 2010년 9월 회사 이름을 지금의 ‘㈜카카오’로 바꿔 버렸다.

    카카오톡 경기 성남 판교 사옥 내부 모습.

    네이버 이해진 의장과 갈라선 후 인터넷과 웹 시장에 집중하던 김범수, 그가 경쟁자인 네이버 이해진보다 조금 앞서 모바일로 눈을 돌렸던 것이 카카오톡을 킬러 콘텐츠로 만들어낸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임과 포털업계의 스타였던 김범수가 그렇게 한국 모바일시장의 강자 자리를 움켜쥔 것이다. 카카오톡의 대박으로 모바일 강자가 된 카카오의 성공은, 늘 네이버 이해진과 비교 대상이었음에도 상당 부분에서 ‘그의 다음’으로 평가되던 김범수의 위상을 새롭게 한 전환점이 됐다.

    김범수 의장 스스로 “카카오에서 내가 한 결정 중 가장 중요한 결정이 스마트폰 시대에 합류한 것”이라고 말했을 만큼, 2010년 3월 카카오톡의 등장과 성공은 카카오와 김범수의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여기에 더해 ‘전화해’와 ‘문자해’로 대표되던 한국인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카톡해’라는 신조어로 통했을 만큼 당시 카카오가 내놨던 카카오톡은 한국인의 커뮤니케이션과 모바일 사용 습관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친구와 가족 간의 일상 대화를 넘어 회사 업무 지시는 물론 영업이나 사업 관련 사안에 대한 논의까지 많은 한국인이 카카오톡을 통해 해결한다. 이뿐이 아니다. 게임과 음악, 각종 콘텐츠를 내려받거나 공유하는 통로 역시 카카오톡을 활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욱이 늦은 밤 택시를 부르거나, 취객의 대리운전 요청, 또 미용실 예약까지 카카오톡을 실행시켜 해결한다. 내년 초는 카카오톡으로 주차장 예약까지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포부까지 내놓고 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모바일 속 대화나 소통 통로 정도로 여겨졌던 메신저로서의 카카오톡이 어느 순간부터 한국인의 소소한 삶 곳곳에 침투해 그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10년 만에 5조짜리 대기업 되다


    카카오톡의 성공 이후 김범수 의장과 카카오는 기업의 덩치를 급속히 키워나갔다. 몇몇 기업을 사들였고, 각종 서비스와 사업을 확장했다. 그리고 2014년 5월 네이버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포털시장 2위 ‘다음커뮤니케이션’과 합병을 선언하면서, 외형상 모바일과 인터넷의 결합 시대를 내세우며 다음커뮤니케이션과의 ‘합병’이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카카오가 자신보다 10년 앞서 만들어진 다음(Daum)을 전격 인수한 것이다. 

    메신저 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던 카카오와 그 카카오 성공의 핵 김범수가 보여온 성장욕과 식성은 모바일 메신저의 성공과 포털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을 손에 넣는 것에서 멈추지 않았다. 유명 내비게이션 업체 ‘김기사’를 626억원에 사들인 데 이어 2016년 1월에는 무려 1조8770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음원 사이트 ‘멜론’을 운영하며 연예기획 사업도 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까지 인수했다. 김범수·이제범 등 20여명이 시작한 카카오가, 그렇게 꼭 10년 만에 8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자산 5조2200억원에 2740여명의 직원이 있는 대기업으로 변신한 것이다.

    물론 이런 일련의 덩치 키우기 과정에서 ‘문어발식 확장’과 ‘소수 경영진에 의한 폐쇄적 기업 운영’ 등 기존 대기업들의 병폐로 지적돼왔던 행태를 그대로 복제한 듯한 모습을 드러내며 비판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에도 어쨌든 카카오톡은 2010년 이후 한국서 가장 성공한 모바일 콘텐츠 중 하나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실 카카오톡 외에도 한국에서 경쟁하는 모바일 메신저는 매우 많다. 한국 최대 인터넷 기업 네이버의 ‘라인’, 세계 최대 SNS 페이스북의 메신저, 중국 시장을 등에 업은 텐센트의 위챗, 보안성을 내세운 텔레그램 등 쟁쟁한 경쟁자들이 즐비하다. 이들 사이에서 카카오톡이 한국 시장 점유율 95%로 단연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카카오톡의 성공 이유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게 ‘빠른 시장 진입 속도’와 ‘선점 효과’다. 카카오톡의 첫 등장이 2010년 3월이다. 이때만 해도 아이폰과 함께 들어온 왓츠앱 등 외국산 모바일 메신저가 주류였고, 엠엔톡 등 소수의 국산 메신저가 막 시장에 등장할 때였다. 다르게 말하면 한국 시장에서만큼은 이들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충분했다는 의미다. 여기에 아이폰과 달리 안드로이드 OS를 쓰는 갤럭시폰이 2010년 10월 등장하며 스마트폰시장을 확대해 준 것이 결정적이었다. 아이폰의 한국 출시 시점과 갤럭시폰 등장 시점에 카카오가 절묘하게 카카오톡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다.
      
    당시 다음의 마이피플, 네이버의 네이버톡, SK의 틱톡, 삼성전자의 챗온, 이동통신 3사가 연합해 만든 조인 등 다수의 대기업들이 엄청난 자본력을 앞세워 모바일메신저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카카오톡과의 차이 중 가장 두드러졌던 것이 진입 시점이다. 이들은 카카오톡보다 적게는 몇 달에서 많게는 1~2년 늦게 시장에 등장하며 이미 카카오톡을 사용하고 있는 스마트폰 사용자들로부터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 시장 선점 효과가 한국인들에게 스마트폰시장이 형성되던 초기 카카오톡에 대표적인 인스턴스 모바일 메신저 이미지를 갖게 하였다. 더구나 이 이미지는 한국인들에게 익숙함으로 자리 잡으며 사용자를 더 늘리는 확산 효과까지 이어졌다. 이런 현상들이 2010년 말 이후 소위 말하는 ‘대세 모바일 메신저’로 카카오톡의 위치를 굳혔다.

    IT·인터넷 분야 전문기자 장윤희씨는 “자본력이 충분한 대기업들이 모바일메신저시장에 뛰어들며 서비스와 기능을 너무 완벽하게 만들려다가 진입 시점을 놓친 것이 카카오에는 행운이었다”고 했다. 그는 “당시 카카오는 완벽한 서비스를 만들려다 타이밍을 놓치는 것보다 최소한의 기능에 집중해 경쟁자보다 먼저 출시한 후 시장 반응에 따라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게 수정해나가는 이른바 ‘린 스타트업(lean startup)’ 전략을 폈다”며 “이것이 대기업들이 보여준 모바일 메신저 사업과 차별화로 부각되며 스마트폰시장 형성 초기 한국인들의 선택을 받게 된 이유”라고 분석했다.

    카카오 판교 사옥 직원들의 근무 모습.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카카오 관계자 역시 카카오톡 성공의 요인 중 시장 선점 효과가 매우 중요했음을 말했다. 카카오 이수진 커뮤니케이션 팀장은 “당시 경쟁자가 많지 않던 적절한 시기에 시장에 먼저 들어간 효과가 컸다”며 “특히 한국인에게 익숙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인 전화의 원리를 메신저에 그대로 구현했던 게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들의 선택을 끌어낸 원인으로 본다”고 했다.


    공짜의 힘은 강했다


    선점 효과와 함께 카카오톡 성공에서 빠지지 않는 요인이 ‘무료’다. 스마트폰시장 형성 초기만 해도 왓츠앱 등 모바일 메신저 상당수가 유료였다. 이동통신사가 제공하는 문자 서비스는 건당 10~20원에 이르는 고가 정책이 유지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카카오는 ‘무료’ 서비스를 내걸었다. 누구나 공짜로 무제한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이 통신과 서비스 사용 요금에 특히 민감한 한국인의 정서를 공략한 것이다. 이 ‘무료’ 전략이 짧은 시간 동안 단숨에 수많은 사용자를 끌어모은 핵심 이유다.

    선점 효과·무료 정책과 함께 메신저 서비스이던 카카오톡의 ‘플랫폼으로의 변신’ 역시 한국인이 카카오톡을 선택하게 하고 있는 이유다. 사실 메신저는 모바일 기기를 활용한 서비스 상품이다. 카카오는 카카오톡이라는 서비스 상품을 넘어 개발자와 사용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플랫폼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게임 개발자가 자신이 만든 게임을 카카오톡에 공개하면 사용자는 이 게임들 중 원하는 게임을 카카오톡에서 쉽게 내려받을 수 있게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렇게 게임은 물론 TV나 영화, 음악 등 각종 콘텐츠는 물론 회사 업무까지도 카카오톡을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준 것이 바로 카카오였다.
      
    더 나아가 스마트폰 사용자와 택시기사를 직접 연결해준 카카오택시나, 취객과 대리운전 기사가 카카오톡을 통해 만나는 서비스, 복잡한 시내에서 주차 공간 제공자와 차량 운전자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 등 소소하지만 있으면 편할 것 같은 것들을 카카오톡이라는 한 공간에서 해결할 수 있게 해줬다. 이른바 메신저에서 플랫폼으로의 이 같은 변신 시도가 다른 모바일 메신저들과 차별화를 가져오며 시장지배력을 굳힌 결정적 요인이 됐다.


    한국인 95% 끌어들인 플랫폼 변신


    카카오톡의 플랫폼 변화 시도는 2010년 12월, 카카오톡 사용자들 간 선물하기 서비스가 나오면서 시작됐다. 일종의 커머스 플랫폼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카카오가 본격적인 플랫폼으로 변화를 꾀한 건 2012년 7월 ‘카카오 게임’이 등장하면서다. 기존에는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를 실행시켜야만 게임 같은 각종 콘텐츠를 내려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카카오톡은 이 과정을 없애며 카카오톡 안에서 게임을 내려받을 수 있게끔 통로를 제공했다. 게임 개발사(개발자)와 스마트폰 사용자를 사실상 직접 연결해준 셈이다. 이 카카오 게임이 대성공을 거뒀다. 시장이 즉시 반응하며 카카오뿐 아니라 라인 등 다른 메신저들까지 카카오의 플랫폼 시도 모델을 그대로 복제했을 정도다.

    김범수 이사회 의장. /카카오 제공

    카카오의 플랫폼 변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카카오페이로 불리는 간편결제와 금융서비스까지 카카오톡 채팅방을 통해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게임, 영화, 음악, 스포츠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쇼핑과 금융 결제까지 가능하게 되면서 카카오톡이 ‘서비스 플랫폼’의 기능을 더 강화하고 있다.

    카카오 이수진 팀장은 카카오의 플랫폼 변신에 대해 “사실 ‘절박함’에서 나온 선택이었다”고 했다. 카카오는 많은 이들이 선택한 1위 메신저였지만 2010년과 2011년만 해도 수익모델이 없었다. 기업으로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김범수 의장의 자금력에만 의존하던 상황을 벗어나야만 했다. ‘사람들이 모여든 서비스에 돈이 될 만한 아이템을 탑재해 보자’는 것이 당시 카카오톡 플랫폼화의 기본 개념이었다. 그리고 카카오 게임을 통해 무료 서비스인 카카오톡도 수익을 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카카오톡이 지금 같은 모바일 플랫폼으로 본격 변신을 시도할 수 있었던 이유다.
      
    카카오톡의 이런 성공 포인트들이 2010년 이후 적절한 시점에 등장하며 95%에 이르는 한국 시장 점유율을 만들어냈다. 이제 카카오톡은 한국인들에게 없으면 불편한 존재처럼 굳어지고 있다. 카카오라는 기업이 등장한 지 꼭 10년이 됐다. 또 그들이 만들어낸 카카오톡 서비스가 등장한 지도 벌써 만 6년10개월이 지났다. 이 시간 동안 카카오는 벤처계의 신데렐라에서 시장 지배자로 성장했고 한국인의 일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38호에서 발췌했습니다.>

    [The 테이블] 사무실서 킥보드 질주, '톡의보감'선 비만 치료
    카카오, 바퀴 달린 사업은 다 먹는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이전 기사 다음 기사
    기사 목록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