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년 만에 깨진 서울역 체제…수서역이 몰고 올 변화는?

그동안 서울역을 대적할 역은 없었다.
광명역과 용산역 등 많은 역들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아성을 깨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강남권역에 새롭게 들어선 수서역은 시작부터 심상치않다.

    입력 : 2017.01.11 07:21

    [교통: 서울역과 대적할 수서역의 등장]
     

    지난 12월 9일 오전 5시10분,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목포행 SRT651 열차가 플랫폼을 출발했다. 수서역을 출발한 지 2시간14분 만에 목포역에 안착한 SRT651 열차는 수서발 고속철 시대를 여는 첫 번째 열차가 됐다. 개통에 하루 앞선 12월 8일, 수서역에서 열린 SRT 개통식을 주재한 황교안 국무총리는 “수서역이 또 하나의 서울 관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 12월 13일, 기자가 직접 탑승한 SRT고속철은 수서역 출발부터 지하로 깔린 수도권고속선을 달렸다. 다음 정거장인 동탄역까지 불과 14분 만에 주파했다. 자동차로는 약 40분이 걸리는 거리다. 서울역에서 용산역을 거쳐 광명역까지 새마을호, 무궁화호, 수도권전철 1호선 등과 함께 지상으로 놓인 재래선을 덜컹거리며 달리는 서울발 KTX고속철과 속도감부터 달랐다. 수서발 고속철은 고속선이 부설된 선로만 운행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진정한 의미에서 고속철이 사실상 KTX에서 SRT로 교체된 것이다. 

    수서발 SRT고속철의 시종착역인 서울 강남구의 수서역. /임영근 영상미디어 기자

    수서~동탄 14분에 주파

    수서발 고속철은 117년 만에 서울역 중심 철도 체제를 무너뜨린 데 큰 의의가 있다. 수서발 고속철 출범 전까지 구한말 남대문정거장부터 시작된 서울역 체제는 지난 100여년간 철옹성과 같았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몇몇 경쟁역들이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좀처럼 그 지위가 허물어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때 각각 동경성역과 남경성역으로 불린 청량리역과 영등포역은 애초에 상대가 안 됐다. 광복 후 도전장을 낸 것은 광명역이다. 사실 노태우 정부 때 경부고속철 건설 계획을 수립하고 1992년 첫 삽을 떴을 때, 고속철 중앙역으로 선정한 곳은 광명역이었다. 고속신선이 깔린 곳이 광명역까지고, 선로 포화상태를 빚고 있는 광명역 이북 금천구청역(옛 시흥역)~서울역 구간을 고속철이 비집고 들어가기는 무리였다. 하지만 ‘남서울역’으로 추진된 광명역 중앙역사 방안은 서울의 경계 밖에 있는 입지조건 탓에 강한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결국 광명역은 ‘지상 최대 간이역’ 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광명역이 무산된 직후 도전장을 내민 것은 용산역이다.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가 고속철 중앙역으로 합의해 낙점하면서다. 용산역은 경부선, 경의선(京義線), 경원선(京元線)이 교차하는 ‘X자형’의 한반도 철도 교통의 중심지였다. 서울시는 당시 고속철 중앙역을 용산역에 두고 용산역 철도정비창 부지를 ‘국제업무지구’로 복합개발하는 큰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 같은 그림마저 서울역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고속철 시종착역은 돌고 돌아 서울역으로 정해졌다. 용산역은 호남선 열차의 시종착역 지위를 거머쥐는 데 만족해야 했다. 당초 서울역과 용산역을 동시에 연결하려던 공항철도 역시 서울역으로만 들어가게 됐다. 
       
    수서발 고속철 개통으로 강북을 대표하는 서울역과 강남을 대표하는 수서역은 지역 간 경쟁에 본격 돌입했다. 국토부도 “117년 철도 역사 최초로 간선철도에 경쟁체제가 도입됐다”고 홍보 중이다. 실제 경쟁체제 도입으로 후발주자인 SRT의 운임은 KTX에 비해 평균 10%가량 저렴하게 책정됐다. 선발주자인 코레일도 2013년 폐지했던 마일리지 제도를 재도입하고, KTX에 스마트폰과 노트북충전이 가능한 콘센트를 장착하는 등 경쟁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또 서울역 경부선, 용산역 호남선의 이원화 출도착 체제를 13년 만에 폐지하고, 동남권 수서역과 대척점에 있는 서남권 광명역의 접근성을 강화하기 위해 광명역과 사당역 간에 셔틀버스를 내년 1월부터 운행하기로 하는 등 뒤늦게 승객이탈 방지를 위해 부산을 떨고 있다.

    물론 경쟁 강도는 철도 이용객의 기대수준에 여전히 미흡한 것도 사실이다. 경쟁권역은 수서발 고속철이 운행하는 경부고속선과 호남고속선 구간에만 국한한다. 코레일이 여전히 독점운영하는 경전선(서울~진주), 전라선(서울~여수), 동해선(서울~포항)에는 정치적 이유로 중구난방 신설된 역사에 KTX를 모두 정차시키는 배짱영업을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수서발 고속철 SRT의 운영사인 SR의 지분 41%를 코레일이 갖고 있어 엄밀히 경쟁이라 부르기 뭣할 정도다. SR 대표에는 김복환 코레일경영총괄본부장, SR 경영전략실장에는 최길묵 코레일 대전충남본부장이 선임되는 등 인적구성과 조직문화 역시 차별화하기 쉽지 않다. 자동차 업계로 비유하자면 현대차와 기아차의 한 지붕 아래 경쟁 강도로, SRT 출범 초 경쟁 열기가 반짝하는 데 그칠 수도 있다.

    강남 교통 본격 경쟁 시대로

    사실 경쟁체제만 놓고 보면 현 체제는 사설(私設)철도를 왕성하게 허용한 일제 조선총독부 철도국 체제만 못한 것이 현실이다. 철도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철도민영화’란 말 자체를 금기시하는 지금과 달리 1945년 광복 당시 국내 사설철도의 비중은 무려 21%에 달했다.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관할하는 경부선·경의선·경원선 등 간선(幹線)과, 민간이 운영하는 경전선·충북선 등 지선(支線)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졌다. 조선철도는 남만주철도(만철)와도 직접 운임경쟁을 벌일 정도로 국제적 성격이 강했고, 부산에서 베이징까지 정기편은 물론, 파리까지 국제철도를 취급할 정도로 철도교통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광복 직후 남북 분단과 미 군정의 영향으로 교통정책의 중심이 철도에서 도로로 바뀌면서 철도는 예산투자, 수송분담률 등에서 도로에 밀려 완패했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SRT고속철과 고속버스와의 강남 시장을 겨냥한 본격 경쟁이다. 수서발 고속철은 철도교통 불모지로 남았던 강남에서 고속철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의미가 있다. 강남은 고속버스의 아성(牙城)이었다. 박정희 정부 때 강남개발은 경부고속도로가 한남에서 양재 방향으로 놓이면서 시작됐다. 이후 경부고속도로를 채우기 위해 동대문과 서울역 일대에 분산돼 있던 군소 버스터미널을 반포에 한데 모아 서울고속버스터미널을 만들었다. 또 고속버스터미널 활성화를 위해 잠수교를 놓고 남산3호터널을 뚫는 등 정책적 지원을 퍼부었다. 서울지하철 3호선이 허리가 꺾인 기형적인 노선으로 고속터미널을 경유하는 것도 정책적 배려 탓이다. 이 밖에 남부터미널과 강 건너 동서울터미널 등이 촘촘히 강남4구를 에워싸고 있다. 
       
    금호고속, 중앙고속, 동양고속, 천일고속 등 고속버스 업계 역시 수서발 고속철 출범에 앞선 지난 11월 25일부터 서울~부산, 서울~광주 간에 프리미엄 우등고속버스를 투입하는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프리미엄 고속버스는 기존 우등고속(28석)에 비해 좌석 수를 21석으로 줄이고, 독립적인 공간이 보장되는 항공기 비즈니스클래스급 좌석을 장착한 버스다. 1992년 우등 고속버스 도입 이후 24년 만의 대변신이다. 국토부는 최근 공청회를 열어 1994년 처음 도입된 고속도로 버스전용 차로제의 적용범위를 영동고속도로까지 대폭 늘리는 등의 구체적인 검토에도 착수했다. 고속철과 고속버스 간의 또 한 번의 속도 및 편의 경쟁이 불가피해졌다.
       
    수서발 고속철 개통 이후에도 강남, 서초, 송파, 강동 등 강남4구(區) 주민들은 고속철이냐 고속버스냐를 놓고 행복한 고민을 거듭할 것으로 보인다. 고속철의 경우 서울역과 용산역 대신 수서역을 선택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다만 수서발 고속철의 운행범위가 경부축과 호남축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SRT와 KTX는 별개로 달리다가 평택에서 합류하는데, 그 이외 지역으로 가려면 중간역에서 KTX나 새마을, 무궁화 등 코레일이 운행하는 노선으로 환승이 불가피하다. 이로 인해 수서발 고속철 출범에 3조1272억원의 막대한 사업비를 투입했음에도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다. 향후 수서발 SRT고속철의 운행범위를 경전선, 전라선, 동해선으로 전면 확대해 코레일과 완전경쟁 체제에 돌입하고, 장기적으로 지분구조 역시 완전 민영화하기 전까지는 경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서발 고속철 운영사인 SR의 방종훈 홍보팀장은“운행확대 여부는 SR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국토부 철도운영과의 한 관계자는“당초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철도노조 등의 반발로 주간선(경부선, 호남선)에서만 제한적으로 경쟁체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라며“추후 SR의 경영상황과 추가 철도차량 구입 여력, 국민적공감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운행확대 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50년 뒤 수서발 고속철이 바꿔놓을 세상이 궁금해진다.

    서울역 변천사

     

    남대문정거장에서 서울역까지

    서울역의 전신인 남대문정거장.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은 1900년 국내 최초 철도인 경인선(京仁線)의 정식 개통과 함께‘남대문정거장’이란 이름의 중간정차역으로 탄생했다. 구한말 서울의 현관은 경인선의 시종착역이자 남대문정거장 북쪽에 있던‘경성역’이었다. 남대문정거장이 부상한 것은 1905년 5월 25일 열린 경부철도 개통식이 계기가 됐다. 대한제국의 고위관료들과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 육군대장(2대 조선 총독 역임) 등 일본 측 고급장성과 통감부 고위관료, 미국공사 알렌 등 외교사절들이 대거 참석한 행사였다. 이날 개통식 이후 남대문정거장은 기존의 경성역을 제치고 서울을 대표하는 새 관문역이됐다. 지금의 서울 이화여고 서편에 있던 기존‘경성역’은 경부선 개통과 함께‘서대문역’으로 격하된 뒤 1919년 폐역됐다. 반대로 중간정차역에 불과했던 남대문정거장은 1923년 정식으로‘경성역’지위를 넘겨받았고, 대대적인 신축에 착수해 1925년 도쿄역에 이은‘동양 제2의 기차역’으로 거듭났다.

    1925년 신축된 경성역(구 서울역).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의 현관’으로서 경성역의 공고한 지위는 광복 직후인 1947년‘서울역’으로 이름을 바꾸고도 그대로 유지됐다. 일제강점기 때 스위스의 루체른역을 모방해 붉은 벽돌에 돔형 지붕을 갖춘 기존 역사(사적 제284호)를 중심으로 남부역사(1957년), 서부역사(1969년), 지하철 서울역(1974년), 선상(線上)역사(1988년) 등 증축과 개량을 거듭하며 계속 덩치를 키웠다. 1975년에는 철도청까지 서울역에 신사옥을 지어 들어왔다. 박정희 대통령이 남긴‘安全輸送(안전수송)’이란 석비가 있는 현 코레일 서울본부다. 2004년에는 서울역 선상역사(현 롯데마트 서울역점) 남측에 KTX고속철도 신역사까지 민자(民資)로 신축 준공했다. 같은해 3월 3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던 고건 총리는 새로 준공한 서울역 신역사에서 경부고속철 1단계(서울~동대구) 개통식을 열었다.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37호에서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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