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품질과 가맹점 우대로 日 최대 커피 회사 성장… 끊임없는 위기의식과 대비로 스타벅스 돌풍 이겨내

도토루커피는 20세기 후반 일본 커피 문화를 바꾼 주역 가운데 하나다. 스타벅스가 일본에 상륙했지만 도토루는 일본 최대 커피 체인 회사의
자리를 지켜냈으며, 2007년에는 일본 최대 외식 체인회사와 합병해 커피뿐 아니라 외식업 전체를 포함하는 복합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입력 : 2016.12.21 09:23

    [Case study: 日·유럽의 불사조 기업 <5> 日 도토루커피]
     

    미국 하와이섬 서쪽 구릉지대에 위치한 커피 농장 ‘도토루 마누아 메도우’. 맛과 향이 뛰어날 뿐더러 연간 생산량이 500여t에 불과한 세계 3대 커피로 꼽히는 하와이 코나(KONA) 커피 원두가 재배되는 이 지역에 일본 대표 커피 체인 도토루커피(ドトールコーヒー·Dotour Coffee)가 운영하는 직영 커피 농장이 있다. 도토루는 1991년부터 이 지역에 커피 농장 개발에 나서 2008년 여의도 면적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68만㎡(20만5700평)까지 면적을 넓혔다. 그 가운데 24만㎡(7만2600평)는 관광 농원으로, 하와이를 찾은 관광객들이 즐겨 방문하는 명소다.
    도토루커피는 밝고 활기찬 분위기를 강조하기위해 매장 인테리어와 조명 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원래 이 농장은 도리바 히로미치(鳥羽博道) 도토루커피 명예회장이 직원들의 휴양시설을 만들기 위해 1만8000㎡ 정도의 부지를 매입한 게 시작이었다. 하지만 도리바 명예회장이 “도토루만의 농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규모 추가 부지 매입에 나서, 지금의 모습이 됐다. 도토루커피는 자사 인터넷 웹사이트에 하와이 직영 농장을 거론하면서 높은 품질의 커피 생두를 직영 공장에서 볶아(roasting) 사용한다고 강조한다.


    고급 커피 대중화 개척


    도토루커피는 20세기 후반 일본의 커피 문화를 바꾼 주역 가운데 하나다. 1980년 일본 수도 도쿄(東京) 하라주쿠(原宿)에서 1호점을 낸 이후 빠르게 성장해 일본 최대 커피 체인 회사가 됐다. 현재 일본 내에서 운영하는 매장은 2015년 말 현재 약 1350개, 직영점 숫자는 약 340여개에 달한다. 주력 브랜드인 ‘도토루’뿐만 아니라 고급 브랜드인 ‘르 카페 도토루’, 스타벅스를 겨냥한 ‘엑셀시오르’ 등 6개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다. 모회사인 도토루·니치레즈홀딩스(ドトール・日レス)의 2015회계연도(2015년 3월~2016년 2월) 매출은 1250억엔, 영업이익은 100억엔에 달한다. 2007년엔 일본 최대 외식 체인 회사 일본레즈와 합병해 커피뿐만 아니라 외식업 전체를 포함하는 복합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도토루커피가 사업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커피숍은 지금과 같이 밝고 깔끔한 매장에서 가벼운 먹거리와 함께 맛을 강조하는 커피를 마시는 형태가 아니었다. 수십년 전 한국에서 일반적이었던 ‘다방’과 유사하게 어두운 조명에 어른들이 주로 왕래하는 곳이었다. 음악커피숍, 재즈커피숍 등 커피가 아니라 다른 것을 강조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심지어 미인커피숍, 누드커피숍이라는 이름의 퇴폐업소까지 성업(盛業)했다. 도토루커피의 성공은 커피 산업을 밝고 세련된 서구화된 형태로 바꿨다. 칼렌 홈즈이 전 스타벅스 부사장이 도리바 명예회장을 ‘아시아 커피 업계의 혁명가’라고 부른 이유다.

    도리바 명예회장이 외식 산업에 뛰어든 계기는 ‘가출’이었다. 1954년 16세의 나이에 집을 나온 그는 도쿄의 한 작은 레스토랑에 취직했다. 여기서 커피와 연을 맺게 된 도리바 명예회장은 2년 뒤인 1956년 원두 도매 회사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그리고 다음 해 이 회사가 유라쿠초(有樂町)에 내게 된 커피숍의 점장으로 발탁됐다. 여기서 수완을 발휘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1959년 브라질 커피 농장 관리인으로 ‘스카우트’됐다. 3년에 걸친 브라질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와 원두를 볶아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반제품을 공급하는 로스팅 사업을 시작했다.


    유럽 시찰 때 서구식 커피숍에 눈 떠

    도리바 명예회장 1971년 유럽
    시찰서 커피가 일상 생활에 깊이
    뿌리 내린 것에 깊은 인상 받아…
    고급 커피숍 사업 결심한 계기

    서구식 커피숍 사업에 눈을 뜬 계기는 1971년 유럽 시찰이었다. 그는 여기서 커피가 일상 생활에 깊이 뿌리 내린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아침에 출근하는 회사원들이 지하철역에서 우르르 나온 뒤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커피숍으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이들은 자리에 앉는 대신 카운터 앞에 서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 가격도 일본 돈으로 테라스는 150엔, 테이블은 100엔, 서서 마시면 50엔으로 달랐다. 또 도리바 명예회장은 독일의 대표 커피 체인 치보(Tchibo)가 매장에서 원두를 갈아 커피를 우려 낸 뒤 판매하는 것을 보고, 그 같은 형태의 고급 커피숍이 일본에서도 유행할 것임을 직감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커피숍을 내기로 결정했다. 먼저 1972년에 ‘건강하고 밝고 남녀노소에게 친근하다’는 콘셉트의 카페 ‘콜로라도’를 도쿄 근방 공업 도시인 가나가와현(神奈川) 가와사키(川岐)에 냈다. 원래 직영점부터 낼 계획이었지만 창업을 희망하는 점주와 뜻이 맞아 가맹점 형태로 시작했다. 콜로라도는 기존 커피숍과 다르게 원두를 갈아 직접 커피를 내렸고, 산지(産地)가 다른 원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때만 해도 테이블이 하루 6번 회전하면 성공하는 커피숍이라는 게 대체적인 ‘상식’이었던 상황에서 콜로라도는 일일 평균 회전율이 12번이나 될 정도로 대성공을 거뒀다. 가게 콘셉트를 다르게 잡으면서 회사원, 주부, 자영업자 등 고객층을 넓힌 게 주효했다. 1981년 콜로라도의 점포수는 280개로 급증했다.

    자신감을 얻은 도리바 명예회장은 ‘제2차 오일쇼크’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1980년을 도리어 스탠딩 형태 커피숍 개척의 호기(好機)로 보고 도토루커피 체인점 사업을 시작했다. 1호점은 하라주쿠의 가로 4m, 세로 7m의 9평짜리 매장이었다. 커피 한 잔 가격을 당시 일반적인 커피숍이 매긴 가격의 절반인 150엔으로 정했다. 식사를 해결하려는 직장인들의 수요에 맞춰 독일식 핫도그를 180엔에 함께 팔았다. 대신 테이블을 없애 한 번에 받을 수 있는 고객수를 늘리고 회전율을 끌어올렸다. 1호점은 하루 평균 방문객수가 850명에 달할 정도로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도토루커피숍은 1981년 4개, 1983년 20개, 1987년엔 100개로 늘어났다.

    성공비결 1 |
    제품은 절대적으로 맛있게

    도리바 명예회장은 프랜차이즈가 성공하려면 △상품의 매력 △점포의 매력 △사람의 매력을 모두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커피와 먹거리의 맛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품질을 추구한다. 그는 “최고로 맛있는 것은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맛있다고 느낀다. ‘각자의 취향’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타협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도토루커피는 커피 생두 구매에서부터 가공까지 직영으로 일괄 관리한다. 직영 농장이 있는 미국 하와이를 비롯해 브라질, 에티오피아, 케냐 등 전 세계 20개국에서 도토루만의 맛과 향을 가진 생두와 이를 재배하는 농장을 확보해 공급받는다. 같은 지역 생두를 지정하는 ‘지역 지정’, 특정 농장을 지정하는 ‘플랜테이션 지정’이 도토루의 전략이다. 이후 직영 공장에서 독자 개발한 기술과 노하우로 커피 원두 배합 및 로스팅이 이뤄진다. 도토루커피는 로스팅 전 원료를 섞는 프리믹스 방식을 사용하는데, 로스팅 후 원두를 섞는 사후믹스 방식보다 원두 각각의 맛과 향을 살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까다로운 노하우가 필요하다. 도토루커피 로스팅은 불에 직접 볶는 직화식 배전을 통해 이뤄진다. 도토루커피는 1980년 운영 당시부터 뜨거운 공기를 이용해 원두를 가공하는 열풍식 배전 대신 소규모 공방(工房)에서 주로 이뤄졌던 직화식 배전을 채택했다. 이를 위해 전용 기계를 독자 개발했다.

    성공비결 2 |
    프랜차이즈는 ‘점장 산업’

    도토루커피의 간판 제품인 원두커피와 독일식 핫도그. 도토루커피는 1980년 1호점 개점 때부터 독일식 핫도그를 판매해왔다. 출근 시간에 짬을 내 식사를 하려는직장인들의 니즈를 공략하기 위해서다. /도토루 제공

    도리바 명예회장은 “우리 같은 장사는 ‘점장 산업’이라 불릴 정도로 점장에게 요구되는 비중이 크다”고까지 말한다. 도토루커피는 가맹점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가맹점주 선별, 점포 개설 전 교육, 개설 후 경영 컨설팅 및 사후 관리 등에서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가맹점주 선별 과정에서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와 감각을 가진 이들을 찾는다. 심사를 통과한 이들은 ‘IRP 경영학원’이라 불리는 1달 과정의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한다. 교육 목적은 지금까지 사고방식을 버리고 커피숍 운영에 적합한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토루커피는 ‘나이·직함·성별을 모두 잊는다’는 의미의 ‘3망(忘) 정신’을 내세웠다.

    매장 개설 이후에도 관리가 철저했다. 여기에는 일방적인 지시나 방침 전달이 아니라 본사가 매장의 불만을 듣고 해결해주는 성격도 강하다. 일례로 도토루가 인근 지역에 출점하자, 기존에 콜로라도 커피숍을 운영하던 가맹점주가 맹렬히 반발한 적이 있다. 도리바 명예회장이 직접 나서 가맹점을 방문했다. 그는 매장 운영 컨설팅은 물론, 회사 비용으로 벽을 새로 칠하게 했다. 이 매장은 이후 전년 대비 매출이 14% 이상 상승했다. 도리바 명예회장은 고객들이 보내온 항의성 편지를 모두 직접 읽어 경영에 반영했다.

    가맹점과 장기적인 공존공영 관계를 확보한 것도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다. 도리바 명예회장은 가마우지의 목을 묶은 뒤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어부가 뺏는 일본의 가마우지 낚시법에 빗대 “창업 초기부터 가마우지도, 가마우지 사육사도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가령 안착에 실패해 문을 닫게 되는 상황에 처한 가게가 있을 경우, 가능한 한 도토루커피 본사가 직접 나서 매입한 뒤 경영을 정상화시켰다. 이후 낮은 가격에 새로운 가맹점주에게 매각했다.

    성공비결 3 |
    끊임없는 위기 경영

    도리바 명예회장은 늘 미래에 닥쳐올 ‘위기’를 강조해왔다. 일본 프랜차이즈 업계는 그의 이러한 경영 방식에 대해 ‘편집증적’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이에 대해 도리바 명예회장은 “난 남들의 두 배로 위기에 민감한 체질”이라며 “항상 지니고 다니는 위기감은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사업이라는 건 잘되고 있다 해도 언제든지 방심하면 추락할 수 있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1998년 도토루커피는 그동안 무차입 경영 방침을 철회하고,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자금을 빌렸다. 앞으로 일본 경제가 심각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 기간 동안 버티기 위해 직원들의 2년치 급여만큼 현금을 쌓아두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영 방침은 10대 때 커피 업계에 뛰어들어 온갖 고생을 했던 도리바 명예회장의 경험에서 나온 결과다.

    도토루커피는 언제나 가상의 적을 만들어 그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경영 전략을 짜왔다. 1994년 미국에서 커피 체인 회사 스타벅스가 400개 매장을 냈을 정도로 성업 중인 것을 본 뒤 스타벅스 일본 진출 시나리오를 가상으로 작성하고, 이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점포수를 늘리고, 고급 브랜드 체인을 강화한 뒤 다양한 가격대와 품질의 커피 체인점으로 스타벅스를 포위하는 것이었다. “다소 무리를 해도 7~8년 이내에 가맹점을 확장해야 한다”고 점포 개발 담당 임원을 다그치기도 했다. 스타벅스는 2년 뒤인 1996년 상륙해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는 많은 경우 ‘때’를 기다리면서 인내해왔다. 그는 1971년 유럽 시찰 이후 9년간 기다리면서 철저하게 준비한 끝에 도토루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인들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생활 양식이 바뀌어야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 전에 중간 단계로 콜로라도를 운영하면서 노하우를 확보했다. 이런 대비 덕택에 스타벅스 돌풍도 잘 막아냈다.

    <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 177호에서 발췌했습니다.>





    PLUS POINT

    乙로 살던 대인공포증 소년
    日 프랜차이즈 대표가 되다

    도리바 히로미치 도토루커피 명예회장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일을 책임졌다. 화가였던 아버지는 유리로 인형 눈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지만, 장사에 서툴러 도리바 명예회장이 대신 인형 눈을 팔러 돌아다녀야 했다. 어머니는 그가 아홉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상황을 참을 수 없던 도리바 회장은 16세였던 1954년 집을 나와 도쿄로 상경했다.

    레스토랑 주방 보조를 거쳐 취직한 원두 도매 회사에서는 대인공포증 때문에 애를 먹었다. 사람을 마주보며 이야기하면 얼굴이 벌게지면서 계속 식은땀을 흘렸다. 고민하던 끝에 직접적으로 판매를 권하기보다 고객인 커피숍에 도움이 되는 일을 먼저 해줘 마음을 열게 하는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브라질에서 돌아와 1962년 24세의 나이에 직원 2명을 데리고 시작한 원두 도매 회사는 좀처럼 장사가 되지 않았다. 당시 원두 도매 회사는 이미 350여개에 달했다. 도쿄 번화가 긴자(銀座)의 고급 커피숍에서는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 운 좋게 납품을 하더라도 대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원두가 필요한 커피숍이라면 멀리 있는 지방을 마다하지 않고 발로 뛰어가며 영업망을 확보했다. 당시 경험에 대해서 그는 “도토루커피를 하는 데 긴자의 고급 상점에서 상대해주지 않던 굴욕감을 되갚고 싶다는 생각과 사람들을 위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원동력이 됐다”고 술회했다.

    직접 커피숍을 내겠다고 마음먹은 1964년에는 창업자금 700만엔을 사기로 몽땅 날리는 일을 겪었다. 상대방과 소송까지 갔지만 막판에 변호사의 실수로 패소하고 만다.1972년 커피숍 콜로라도 사업을 준비했을 때는 함께했던 컨설턴트가 고객들의 가게 업황은 신경 쓰지 않고 돈만 챙기려 했다. 이 태도에 분개해 가맹점주들을 위한 회사를 차리겠다고 결심했다.

    도리바 명예회장은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 요인에 대해 △본사가 프랜차이즈 비즈니스의 노하우를 얼마나 축적하고 있는가 △체인점을 운영하는 가맹점주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장사를 해주는가 △본사와 체인점의 관계가 공존공영의 관계인가, 아닌가를 든다. 젊었을 때 ‘을(乙)’입장에서 갖은 고생을 하면서 겪은 경험이 사업 철학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커피가 아니라 경험을 팝니다
    “중국 진출 15년에 흑자 전환… 매장 1000개 더 연다 ‘100% 수타, 100% 수제, 100% 석쇠구이’로 차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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