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로 없는 20층 공사장, 그곳에 ‘아버지’들이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계절이 왔다. 공사현장의 아버지들은
추위보다 자식 걱정이 앞선다. 현장서 만난 김반장은 소주 한 잔으로 고된 하루를 씻어내고
용역들이 '사람대접'받는 사회가 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입력 : 2016.12.16 07:15

    [겨울 닥치는 건설 현장 2박3일 체험기]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불꽃을 튀기며 그라인더가 철근을 잘라낸다. 오늘 내로 호이스트(화물을 들어올리기 위한 승강장치)와 맞닿은 10개 층의 안전문을 철거해야 한다. 내가 잠시 방심한 사이, 순식간에 잘려진 안전문 기둥이 건물 밖으로 떨어지려고 했다. “조심해! 빨리 잡아!” 모두가 소리치며 어쩔 줄 모르는 사이, 70대 반장이 그라인더를 던지고 주저앉으며 기둥을 움켜쥐었다. 두려움과 죄책감에 식은땀이 등을 적셨다. 이곳은 건물 한쪽 벽이 뚫려 있는 20층 높이 빌딩 위, 차가운 칼바람이 부는 서울 송파구 신천동 건설 현장이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빌딩 건설 현장 18층 작업장에서 근로자들이 호이스트 안전문을 해체하고 있다. /장민형 객원기자

    나는 지난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3일간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직업소개소에서 일자리를 소개받아 이틀은 빌딩 건설 현장, 하루는 조경사업 현장에 투입됐다. 나는 대학을 다니며 용돈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가끔 했다. 하지만 직업소개소를 통해 건설 현장으로 투입되는, 소위 말하는 ‘노가다’는 해보지 않았다. 일이 힘들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꼭 그렇게까지 돈을 벌어야 하나?’라는 게으름과 오만함 때문이었다. 

    새벽 4시30분에 일어나 현장으로 출근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무엇보다 매일 어떤 일이 주어지는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컸다. 3일 동안 안전망 설치, 호이스트 해체, ‘곰방’(짐을 나르는 일)을 했지만 다행히도 크게 힘들거나 위험한 일은 없었다. 


    교육부터 첫 현장까지

    지난 11월 14일 오전 8시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장을 찾았다. 건설업 기초안전보건교육 이수증이 없으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종전에 건설 일용근로자는 현장에서 안전교육을 받았다. 한 현장에서 다른 현장으로 이동하면 그때마다 안전교육을 받아야 했다. 2012년부터는 안전보건공단에서 허가한 전문교육기관에서 4시간짜리 안전보건교육을 한 번만 받으면 되는 것으로 제도가 개선됐다. 교육장 방문 시 필요한 것은 신분증과 수강료 격인 현금 4만원. 8시30분에 수강신청서와 교육 참여 확인서를 작성하고 교육이 시작됐다. 작업 시 위험요인, 대처요령 등을 파워포인트와 영상을 통해 교육받았다. 

    1시간 간격으로 출석부를 확인했고 4시간의 교육이 끝나자 교육 이수증을 바로 발급해 주었다. 

    다음 날인 15일 오전 5시, 철물점에서 구매한 안전화와 등산바지, 두꺼운 외투를 입은 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있는 한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서울특별시에 등록된 국내 유료 직업소개소는 총 2117개. 소재지 등록관청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갖춘 후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하면 누구나 운영할 수 있다. 이들 직업소개소는 건설 현장 등에 필요한 인력을 보내고 그에 따른 수수료를 받아 수입을 올린다. 

    차가운 새벽 공기가 코끝을 간질였다. 소개소에 들어가니 이른 시간 때문인지 3명의 ‘반장’들이 의자에 앉아 일자리가 돌아올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에서는 ‘김씨’ ‘아저씨’ ‘저기요’ 등의 말은 거의 쓰지 않는다. 서로 ‘반장님’이라고 존칭을 쓴다. 

    처음 방문했기 때문에 간단한 개인정보, 계좌번호를 적은 후 의자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렸다. 곧 소장이 내 이름을 불렀다. “문정동 건설 현장이 오늘 일할 장소예요. 옆에 3명과 함께 해당 주소로 사인지 들고 가세요.” ‘사인지’라고 불리는 근로내역 및 노무비 수령 확인서에는 일하게 될 현장 주소와 나를 포함해 ‘일반공’으로 분류된 용역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얻은 구직자는 용역으로 불린다. 퇴근할 때 사인지를 소개소에 제출하거나 사진을 찍어 문자로 전송하면 일당이 지급된다고 한다.

    직업소개소 맞은편 신설동역에서 일행과 9403번 버스를 40분 동안 타고 7시에 문정역에서 내렸다. 건설 현장 지하 2층에서 현장 인원을 관리하는 반장이 각반과 장갑, 안전모를 지급했다. 나는 양 반장과 함께 문정법조단지에 있는 한 건설 현장으로 걸어갔다. 공사가 한창인 건설 현장에는 40~50대 남성 약 70명이 일하고 있었다. 그중 20여명은 베트남, 태국 등에서 온 외국인 근로자였다. 그들은 외국인고용법 제11조에 의해 취업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후 현장에 투입된다. 

    전문 기술이 없는 용역들은 잡일을 도맡아 한다. 안전망과 안전대 설치, 자재 나르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오전 8시에 시작된 작업은 간단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수직보호망 설치였다. 산업안전보건법 제23조에 의하면 건설 현장에서는 물체의 낙하·비래(飛來)를 방지하기 위해 수직보호망을 설치해야 한다. 양 반장과 함께 파란 수직보호망으로 공사장 외부를 둘러싼 후 케이블타이로 고정했다.  

    오전부터 이어진 작업은 11시30분이 되어 잠시 중단됐다. 점심을 먹기 위해 건설 현장 옆 함바집으로 향했다. 함바집이란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의 식사를 제공해주는 곳을 말한다. 5000원을 내고 들어가 보니 닭고기, 각종 반찬, 된장국, 밥 등을 마음껏 그릇에 담을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부터 다시 시작한 작업은 오후 4시가 되어서 종료되었다. 그렇게 첫날 일이 끝났다. 직업소개소에서 가져가는 수수료 10%(1만2000원)를 뺀 10만8000원이 첫 일당이었다.


    부끄러운 일?

    첫날 같이 일한 50대 양 반장은 현장 경력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부산에서 올라온 그는 25년 동안 인테리어 회사 사장이었다. 회사가 어려워져 문을 닫은 후 8개월 동안 집에 누워 있었다. 인테리어 사장 때의 경험으로 공구를 만지고 건설 현장 작업에 능숙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노가다’였다. 

    “사장님 소리를 듣다가 누구 밑에 들어가서 잡일이나 하는 게 얼마나 부끄러웠겠어. 그런데 오랫동안 일을 하지 않다 보니 돈이 필요해졌어. 여기까지 오려고 결심하는 데 8개월이 걸렸지. 나같이 사업에 실패하거나 퇴직한 사람들이 현장에 많아.”

    양 반장은 인테리어 사무실을 운영하며 목수 아버지와 아들이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많이 봤다. 그 또한 아들과 현장에 나오는 것을 잠시 상상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기 때문에 아들이랑 현장에 나오기에는 내가 부끄러울 것 같더라고. 목수는 기술공 대접을 받으며 돈도 많이 받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잖아.” 겨울이 지나고 내년 봄이 오면 기지개를 켜고 사업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지난 5월부터 약 6개월간 건설 현장에서 일한 30대 박 반장은 처음 출근한 나를 보며 따끔한 충고를 했다. “이거 처음인가요? 그럼 하지 마요. 대학생이면 공부 열심히 해서 이 일은 피해요.” 그는 지방에서 올라와 서울의 한 허름한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6개월 전, 호텔이 철거되면서 직장이 갑자기 사라졌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어렵게 잡은 직장인데 허무하게 끝나니까 책상 앞에 앉아 있기가 싫었어요. 스트레스를 잊고 싶었지요. 그래서 밖으로 나왔어요.”

    그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다가 문정동 건설 현장에 오게 됐다. “나도 처음에는 한두 달 정도만 하고 그만두려고 했어요. 다른 곳에 취업하려고 했는데 벌써 11월이네요.” 그가 현장에서 오래 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서 10일 일하면 100만원 받아요. 100만원 벌어서 10일 놀고, 다시 10일 일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다 보면 대부분 타성에 젖어요. 하루하루 현금으로 돈을 받고 쓰는 그 생활에 익숙해지면 재기의 여지도 없어지죠.”

    그의 눈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듯 싸늘한 아침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아찔한 20층 위 곡예 공사

    수직보호망을 설치하는 모습. /장민형 객원기자

    11월 15일 오전 7시. 내가 찾아간 곳은 서울 송파구 신천동에 있는 고층 빌딩 건설 현장이었다. 이날은 직업소개소를 새벽부터 찾아가지 않았다. 전날 문자로 ‘일을 할 수 있다’고 하자 소개소에서 현장 주소를 알려줬다. 현장에 와 보니 공사는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호이스트 안전문 해체 작업이었다.

    호이스트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각층 난간에 있는 안전문을 해체하고 빈자리에 안전대를 설치해야 한다. 1층부터 27층까지 안전문 해체에 투입된 인원은 나를 포함한 총 4명. 나이가 지긋한 70대 노인은 그라인더를 이용해 안전문을 잘랐고, 나는 안전문이 아래로 추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온몸으로 고정시켰다. 다 잘라진 안전문은 해당 층에 대기해놓은 호이스트에 싣는다. 마지막으로 다른 두 명이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대를 설치한다.

    현장 내 안전규정에 의하면, 고층에서는 추락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벨트에 달린 안전고리를 걸고 작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네식 안전벨트를 착용해본 결과, 벨트와 연결된 줄의 길이가 짧아 작업에 방해가 됐다. 현장에서는 안전벨트 착용을 교육하고 있지만, 반장들은 불편함을 이유로 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채 고층에서 위험한 곡예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2015년 산업재해 발생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사망자는 건설업(493명·27.2%)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으며 이는 전년대비 1.4%나 증가한 수치다. 약 1년간 이 일을 해온 50대 최 반장은 고층에서 추락하는 사람을 2명이나 직접 목격했다고 말했다.

    “가족들이 산업재해보상보험금을 받고 회사에 민·형사 소송을 걸어도 자기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안전이 가장 중요해.”


    젊은 청년의 분노

    11월 16일 오전 7시에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신상계초등학교 앞에 도착했다. 벽면녹화사업을 추진 중인 노원구는 요즘 인도 한쪽에 화초를 심는 작업을 하는 중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에는 반장들이 초등학교 앞 인도에 드릴로 땅을 뚫고 거기에 나무 받침대를 집어넣고 있었다. 받침대 사이마다 흙을 쏟아부어야 한다. 초등학교 앞 작업이 완료된 후 트럭을 타고 공릉터널 삼거리로 이동했다. 인도 위에는 지게차가 옮겨놓은 흙 포대가 쌓여 있었다. 포대를 하나씩 옮긴 후 속에 든 흙을 붓는 작업을 했다.

    작업을 하던 중 같이 일하던 23살 황군의 휴대폰 벨소리가 계속 울렸다. “아니 돈을 달라니까요? 왜 안 주는데요!” 전라도 영광에서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올라온 그는 일주일 전 한국전력공사 인재개발원 현장에서 이틀 동안 일을 했었다. 그는 현장에서 오래 일한 용역의 지시에 따라 ‘야리끼리’를 했다. ‘야리끼리’란 정해진 양만큼만 일을 하고 퇴근을 하는 것을 말한다. 45도 경사에서 아침부터 오후 1시 전후까지 열심히 일한 후 퇴근을 했더니 업체 측에서 임금을 반만 지급했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2015년 임금체불 신고 건설 근로자 수는 연평균 5만8900여명에 달하며 지난해 건설업 체불임금 총액은 2487억원에 이른다. “입금된 금액이 적어 전화했더니 담당자가 인천에 있으니 찾아오라고 하네요.” 그는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서울 노원구 벽면녹화사업 현장. /장민형 객원기자

    땀 묻은 노동자의 삶, 부모의 삶


    밝은 햇살 아래 종이컵 가득 소주가 채워진다. 술 냄새가 진하게 풍긴다.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60대 김 반장은 동네 슈퍼에서 산 쥐포를 뜯었다. 그의 아들뻘인 23세 황군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지난 35년간 이 일을 해온 김 반장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어렸을 때에는 나를 위해 돈을 벌었어. 사고 싶은 것을 사고, 결혼 자금을 마련했지. 지금은 아니야. 난 할 줄 아는 일이 이것밖에 없지만, 이렇게 벌어서 아들을 대학 졸업시키고 싶어.”

    흙먼지가 군데군데 묻은 그의 휴대폰 화면에는 아버지를 응원하듯 밝게 웃고 있는 아들이 있었다. 사진을 한참 바라보던 그의 눈이 곧 촉촉하게 젖었다.

    앞서 만난 반장들도 자식 생각뿐이었다. 등록금, 용돈 걱정이 우선이고, 그 다음에서야 자신들의 삶을 되돌아본다. 김 반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없어. 우리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니까 지금처럼 살면 돼. 다만 우리 용역들을 ‘사람 대접’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내 자식들이 자라서 사회에 발을 내디뎠을 때,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

    건물을 지을 때 용역들은 가장 기본적인 역할을 맡는다. 자재를 나르고, 간단한 작업을 하고, 먼지더미에서 청소를 한다. 건물을 완공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힘이 필요하다. 최 반장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자신이 일했던 곳을 지나쳤다고 말했다. 그때 그는 완공된 건물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뿌듯했어. 건물을 짓는 데 내가 작게나마 도왔잖아. 사람들이 우리를 한 번 더 좋은 눈으로 바라봐줬으면 좋겠어. 우리는 먼지 묻은 지저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대들이 딛고 있는 바닥을 받쳐주는 사람들이라고.”

    <본 기사는 주간조선 2434호에서 발췌했습니다.>

    [태평로]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자들의 떼죽음
    "내 그림이 北 주민에게 등불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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