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이 있는 삶 위해 7시반에 불 끄는 회사

'한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의 영광은 지난 해 유한킴벌리의 것이었다.

자유로운 기업문화와 수평적인 조직문화,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을

제공하는 유한킴벌리의 안쪽을 탐방해봤다.

    입력 : 2016.11.29 16:41

    [남의 회사 구경하기: <9> 시간·공간 제약 없앤 유한킴벌리]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4시 퇴근, 오전 10시에 출근해 오후 7시 퇴근.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지만 일하는 공간도 자유롭다. 카페 같은 라운지에서 일하거나 도서관 같은 책상에서 일하거나. 20대 젊은 사원과 50대 임원이 서로 직함 대신 이름을 부르며 자유롭게 일한다.

    1970년생. 사람으로 치면 낼모레 지천명(知天命)인 ‘유한킴벌리’ 서울 대치동 본사 사무실은 생기 넘치는 신생 IT 기업을 연상케 했다. 2011년 유한킴벌리가 ‘스마트워크(Smart Work·ICT를 활용해 시간·공간 제약 없이 효율적으로 일하는 업무 체제)’를 도입하면서 달라진 사무실 풍경이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라!’ 시대는 빠르게 변하는데 기존 방식으로는 기업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 사무실 스마트하게 바꾼 유한킴벌리는 지난해 ‘한국에서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 1위에 꼽혔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스마트 오피스’가 낳은 혁명

    유한킴벌리는 1970년 유한양행과 미국 위생 제지 회사 킴벌리클라크의 합작으로 설립됐다. 국내 최초로 생리대와 미용 티슈, 기저귀를 출시했고 ‘뽀삐’ 화장지와 ‘크리넥스’ 티슈, ‘하기스’ 기저귀는 국민 상표로 성장했다. 주력 부문 대부분이 시장 1위로, 지난해 매출액은 1조5191억원이다. 김천, 대전, 군포에 생산 공장이 있고 용인에 연구·개발을 위한 이노베이션센터가 있다.

    직원 1748명 중 500여 명이 근무하는 강남 테헤란로 본사는 7개층 모두가 스마트오피스로 변신했다. 탁 트인 사무실엔 칸막이 하나 없다. 테이블과 의자 외에 다른 가구는 보이지 않는다. 중간중간 놓인 초록 식물이 유한킴벌리의 캠페인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를 연상시킨다. 책상 위엔 그 흔한 유선 전화, 종이 서류도 보이지 않는다. ‘미니멀’의 절정이다. 업무용 전화는 개인 휴대전화로 통합했고 전자 결재를 통해 불필요한 종이 서류를 없앴다. 부문별로 꼭 보관해야 할 서류만 정리할 수 있게 보관 공간을 따로 마련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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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마트오피스로 탈바꿈한 유한킴벌리 본사 사무실은 부서·직급에 관계없이 좌석을 선택하는 '오픈 좌석제'를 시행한다. 카페처럼 꾸며진 5층 그린웨이라운지에서 자유롭게 업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 모습.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가장 놀라운 건 누구 하나 정해진 자리가 없다는 것. 층별로 업무 관련성이 높은 부서가 모여 있긴 하지만 사무실 내 부서 구분이 없다. 임원실도 따로 없다. 매일 아침 직원들은 사무실에 출근해 개인 사물함에서 노트북을 꺼내 들고 앉고 싶은 자리를 찾는다. 입석, 벽을 바라보고 앉는 독서실형 1인 좌석, 카페 같은 라운지 등 자신에게 필요한 자리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다. 유일하게 주인이 정해진 자리는 창가에 마련된 ‘임산부 우선석’뿐이다.

    “처음엔 내 자리가 없다는 게 이상했어요. 매일 출근해서 개인 사물함에서 짐을 꺼내고 퇴근할 땐 책상을 정리해야 하는 것도 불편했고요. 한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어디든 내 자리가 될 수 있어 더 편하더라고요. 디지털 마케팅 업무라 제품 담당자들과 협의할 일이 많은데 오픈 좌석제 덕에 오늘은 기저귀 담당자와 함께 앉아 일할 수 있고 내일은 젖병 담당자와 함께 앉아 일할 수 있으니까요.”(유아·아동용품사업부 양재혁 과장)

    유선전화, 종이 서류를 없애 미니멀해진 유한킴벌리 사무실(왼쪽). 임신한 여성 직원들을 배려한 '임산부 우선석'.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오전 7~10시 아무때나 출근
    원하는 자리 어디서나 근무
    직급·임원실도 없애…"원활한
    소통·협업이 생산성 높여"

    수평 문화도 눈에 띈다. 직급 호칭을 없애고 사장부터 모든 사원이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른다. 5층 그린웨이라운지에서 월 1회 공개적으로 열리는 임원 회의엔 누구나 참여해 의견을 내놓을 수 있어 소통과 협업에 시너지를 더한다.

    직급 호칭 말고도 없는 건 또 있다. ‘9 to 6’ 같은 고정된 근무시간이 없다. 10시부터 4시까지 ‘코어 타임’, 하루 8시간 근무시간만 지키면 된다. “가족 일정 따라 근무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제도가 저 같은 ‘워킹맘’에겐 더없이 든든하죠. 퇴근 시간도 각자 근무시간에 따라 다르니 인사하고 눈치 볼 일도 없어요.”(여성용품사업부 변아영 대리) 야근도 없다. 저녁 7시 30분이면 본사 건물 조명이 싹 꺼진다. 일하는 시간보다 일의 효율과 성과를 우선해 ‘저녁이 있는 삶’을 배려한 회사 방침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회사도 성장한다

    언제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스마트워크가 정착되면서 유한킴벌리 직원들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본사에 출근하는 대신 집에서 근무하거나 집과 가까운 군포, 용인 등의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업무 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설이나 추석 명절에 귀향하는 직원들은 미리 내려가 고향 인근의 스마트워크센터에서 일할 수도 있다. “가끔 ‘직원들이 일하는 게 눈에 보이지 않는데 불안하지 않은가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눈에 보이는 것보다 중요한 게 신뢰입니다. 성과가 곧 신뢰를 보여주지요.” 스마트워크서비스팀 안태건 부장은 “‘소통’과 ‘협업’ ‘창의성 개발’ 세 가지 원칙을 지키면서 좀 더 스마트하게 일하는 방법, 직원들이 만족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노력 중”이라고 했다.

    스마트워크 개선 사항은 각 층 대표를 통해 전달할 수 있고 개선해나간다. 지난해 5층에 새롭게 조성한 ‘창의공간’은 직원들 휴식과 운동 등 필요에 따라 공간 활용이 가능한 곳이다. 행사나 회의가 자주 열리는 그린웨이라운지와 붙어 있어 소음이 생기고 집중도가 떨어지는 탓에 사원들 의견을 반영해 용도를 바꿨다.

    직원들 의견을 수렴해 만든 '창의공간'에서 축구 게임을 하며 휴식 중인 사원들.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가장 큰 변화는 유한킴벌리 본사 직원 중 37.9%를 차지하는 여성을 위한 배려다. 전문성과 역량을 가진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로 그만두는 건 회사로서 큰 손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모성 보호 공간인 ‘느티나무 그늘 방’을 만들고 햇살 드는 창가 자리에 곡선형 책상의 ‘임산부 우선석’을 만든 이유다. ‘임산부 간담회’ 를 통해 출산과 휴직을 준비하는 과정을 의논하고, 매달 태아 검진을 위한 휴가도 실시한다.

    육아휴직 사용도 활발하다. 휴직 후 복귀율도 100%다. 고객지원본부 변정옥(44) 수석 부장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7개월을 합쳐 10개월을 쓰고 복귀했다”며 “남은 5개월은 엄마 손이 꼭 필요한 초등학교 입학 즈음에 사용할 생각”이라고 했다. “임신 중엔 전용 좌석에 앉아서 근무하고 태아 검진도 자유롭게 받으러 갈 수 있었죠. 무엇보다 동료들과 회사로부터 진심으로 배려받고 있다고 느꼈어요. 아이 키우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여성 임원들, 정년까지 많이 남았으니 자기 계발 열심히 하라는 상사들 격려를 들으면 저도 정년 채울 때까지 회사에서 일하고 싶어집니다.”

    유한킴벌리의 여성 임원 비율은 18.9%.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가 성장한다는 유한킴벌리의 평균 근속 연수는 17.9년, 퇴직률은 1.89%다.

    “나무 심어 숲 보호“ 33년간
    환경 캠페인 앞장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운동
    5093만5841그루가 뿌리 내려


    유한킴벌리의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은 1984년 첫발을 내디뎠다. 환경보호의 중요성이나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만 해도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자는 캠페인은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나무를 심고 숲을 보호하자는 공익 광고 이미지 때문에 유한킴벌리를 제지 회사나 목재 회사로 오해하는 일도 많았다. 하지만 해를 거듭하며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는 사이 환경 보존을 위한 사회적 운동이 확대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기 시작하면서 유한킴벌리에 ‘착한 기업’ ‘존경받는 기업’이란 수식어를 달아줬다. 33년간 지속된 이 캠페인으로 뿌리를 내린 나무는 올해까지 무려 5093만5841그루나 된다.

    '여고생 그린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숲에서 나무의 수령을 측정하고 있다. /유한킴벌리

    ‘우리 강산 푸르게 푸르게’ 가 장수 캠페인이 된 건 무엇보다 나무 심기에 적극 동참하는 참가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1985년 시작된 ‘신혼부부 나무 심기’ 행사를 통해 새로운 인생의 출발을 다짐하며 나무를 심은 신혼부부가 올해까지 9885쌍이다. 그중엔 자녀와 함께 다시 나무를 심으러 온 부부도 꽤 많다. 최미선씨는 “신혼 때 금강산에 나무를 심었는데 10년 만에 딸과 아들을 데리고 여주에서 다시 나무를 심으니 기분이 새롭다”고 했다.

    1988년에 시작한 ‘여고생 그린캠프’는 나무와 물, 토양 생물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자연환경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여고생 대상 체험 프로그램이다. 지금까지 총 4267명이 참여했는데 참가자 가운데 대학생이 된 후 자원봉사자로 재참여하거나 결혼 후 ‘신혼부부 나무 심기’에 참여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SNS를 통해 캠페인을 확산하고 있다. ‘우푸푸 프로젝트’는 페이스북(facebook.com/woopoopoo.net)과 인스타그램, 블로그를 통해 아름다운 우리 숲을 소개하고 숲을 더욱 친근하고 편안하게 즐기는 방법을 알리는 콘텐츠로 숲과 사람의 공존이라는 가치를 전달하고 있다. 우푸푸 프로젝트로 유한킴벌리는 ‘2016 대한민국 SNS 대상’에서 사회 공헌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연중 수시로 인재 선발, 경력직은 모집 공고 없어도 상시 지원… '도전과 창의' 높게 평가

    인턴 수료자는 서류전형 면제


    유한킴벌리는 정기 채용보다 연중 수시 채용으로 인재를 선발한다. 부문별로 새로운 인재가 필요하거나 결원이 발생했을 때 신입·경력 직원 모집 공고를 내는 식이다. 단 경력직은 모집 공고가 없어도 이메일(mychoi@y-k.co.kr)로 상시 지원할 수 있다.

    개인 책상이 없는 직원들이 노트북과 자료를 보관하는 개인사물함.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수시 채용 특성상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 회사에 필요한 적합한 역량을 갖추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해당 분야의 전문성이 기본, 새로운 것에 도전했던 경험을 특히 높게 평가한다. 유한킴벌리가 추구하는 ‘도전과 창의’ ‘신뢰와 배려’ ‘책임과 공헌’이라는 핵심 가치를 업무에서뿐 아니라 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인재상에도 적합해야 한다. 함께 일할 새로운 팀원을 찾기 위해 채용 분야 팀원들이 서류 심사 단계부터 지원자를 꼼꼼히 평가하고 면접에 참여하는 것도 유한킴벌리만의 방식이다.

    인턴사원 제도는 대학생들이 미리 유한킴벌리라는 회사의 기업 문화와 전문 분야 경험을 쌓을 기회다. 상·하반기 10명씩 선발하며 5개월간 근무한다. 정규직 전환은 되지 않지만 인턴을 수료한 사람이 입사 지원 시 ‘서류 전형 면제’ 혜택을 준다. 이재우 인사기획팀장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창의적인 모습을 드러낼 구체적 사례와 역량을 최대한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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