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철들지 않는 이 남자

    입력 : 2016.11.15 17:48

    [The 테이블]
     

    영화감독 홍상수를 처음 본 건 20년 전입니다.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로 한국 영화계에 이단아처럼 등장한 서른다섯 살 그를 사직동 어느 한옥 문간방에 마주 앉아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시종 시큰둥한 표정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유명인사 된 소감을 묻자 “세상일이 다 그런 거지요” 합니다. “영화를 통해 억지로 인생의 교훈을 주거나 한때의 오락거리를 제공할 생각이 없다”는 그가, “진실은 표면에 있고 감독은 표면에 드러나는 삶의 진실을 가장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전달자”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홍상수 감독의 18번 째 영화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스틸컷. /하준사 제공

    보고 나면 우울해지지만 묘한 중독성 있는 홍상수 영화를 ‘끊은’ 건 결혼해 아이들 낳아 키우면서인 듯합니다. ‘널 불편하게 하는 삶의 진실이 바로 이거야’ 하며 코앞에 갖다대는 홍상수 영화를 보지 않아도 삶은 충분히 고단하고 불편하고 치열했으니까요. 몽환적인 하루키 소설을 끊은 것도 ‘악다구니 아줌마’ 대열에 들어선 무렵이니 제게 홍상수와 하루키는 전혀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입니다. 현실을 너무 적나라히 보여주거나, 대책없이 붕~ 떠 있거나.

    오랜만에 홍상수의 신작을 봤습니다.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홍상수 특유의 유머와 명민한 시선이 녹아 있는 작품이지만, 불혹(不惑) 지나 지천명(知天命)을 향해 달리는 아줌마는 그저 ‘풋!’ 하고 웃었습니다. 아직도 사랑의 정체를 찾아 헤매는 남자라니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는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들지 않았다고 할까요. 그러니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사랑’이란 걸 할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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